예술의 우주/예술사 54

서양 미술사: 근대 미술 강의 노트 1

오래 전에 어느 문화센터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이지 못한 강의였고 다소 어려운 주제를 다루었던 관계로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만, 그 때 정리해놓은 강의 노트가 있습니다. 여러 참고 문헌, 그리고 제가 배웠던 서양미술사를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제 이력이 유별나,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인문학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양미술사는 인문학의 꽃입니다. 철학사(혹은 지성사)와 비슷하게 움직이며, 언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들의 정신적 세계를 보여주며, 그 시대의 보이지 않는 모습까지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작품들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동시의 철학 책이나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오래 전에 포스팅한 글이다. 조금 다듬어 다시 올린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미학이나 미술사를 공부하게 되면, 거의 매시간 듣게 되는 단어이지만,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는 극명한 지적 차이를 드러내게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고전주의에 대해서 젊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첫 머리를 떠올리면 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한데, 왜냐하면 영혼..

마네, 우키요에, 자포니즘

* 몇 년 전에 적었던 글을 업데이트해봅니다. Le fifre (The Fifer) 1866; Oil on canvas, 160 x 98 cm (63 x 38 5/8 in); Musee d'Orsay, Paris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이 작품이 가지는 미술사적 의의를 아는 이는 드물다. 그것은 회화 공간의 평면화이다. 19세기 후반 인상주의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될 평면화가 마네에게 있어서도 두드러진 특징이었다는 것이다. 즉 환영주의나 눈속임(Trompe l'oeil)로 이름붙여진 어떤 전통이 후퇴하고 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평면적인 양식이 두드러지는 최초의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평면적 구성이 서양의 사상사나 예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지만, 매우 흥미롭게도 이 ..

고야, 방랑 배우들(Strolling Players)

Strolling Players 1793 Oil on tinplate, 43 x 32 cm Museo del Prado, Madrid 고야의 작품은 언제나 흥미롭고 격조있지만, 비극적이고 끔찍한 우울과 절망을 가리고 있다. 몇 년 전(2004년 6월), 어딘가에 올렸던 글을 다시 여기에 옮긴다. 낭만주의 시대(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최고의 예술가는 "프란시스코 고야"다. 그는 계몽주의가 남긴 혁명의 그림자 속에서 삶의 허무와 거짓된 역사를 뚜렷하게 목격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서 보통의 낭만주의자들이 이야기하곤 하는 사랑이라든가 환상, 또는 매혹의 도피 따윈 다 허위이거나 기만이고, 도리어 그 세계 속에서조차 우리는 삶의 허무나 죽음,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래서 자..

로마 시대의 회화

로마 예술 양식을 이야기할 때, '환영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위의 그림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벽화인데, 꼭 창문인 것처럼 그렸다. 그래서 창 너머로 다른 건물이 있는 듯하다. 그 옆의 그림은 꼭 액자 속에 담겨져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 너머의 어떤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 오래 전에 업로드한 이미지다.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벽화 사진으로, 시중에 나온 서양 미술사 책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로마 시대의 회화 양식에 대해서 알게 해준다. 실제 로마 시대 내내 회화는 실내 벽 장식으로 주로 그려졌다. 북아프리카에서는 나무판에 그려진 초상화들도 있지만, 로마 전역에 유행했기..

루브르의 그뢰즈

로코코 시대의 성적인 메타포가 가득찬 작품을 어수선한 루브르 미술관 안에서 보았을 때, 대단한 감동이 밀려들진 않았다. 다만 책에서 보던 어떤 작품을 실제 보았다는 것 뿐. 장 밥티스트 그뢰즈는 18세기 시민-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한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충실히 18세기 로코코적 여성들을 그렸다. 볼은 홍조를 띄고 창백한 피부와 마른 듯한 몸매에 성적인 분위기를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현실적인(정치-경제적인) 고통과 육체적 쾌락을 대비시켰다. 하지만 루브르에서 위 작품을 보고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걸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소녀는 깨진 항아리 탓에 치마 가득 꽃을 들고 있다. 이 흥미로운 배치로 인해, 이 작품은 노골적인 로코코적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요..

서양미술사 입문

오래 전에 공저로 미술사 책을 낸 적이 있었다. 다시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먼저 블로그에 초고 노트를 정리해 올릴 계획이다. 2~3년 하다 보면, 책을 낼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Introduction to ‘History of Western Art’ 1. 예술(Art)이란 무엇인가? art(영어), ars(라틴어), techne(희랍어) - 예술의 가치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 ‘예술의 역사’가 예술 이해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2. 다양한 시대의 미술 작품과 우리들의 감동이 가지는 연관관계 - 우리는 어떤 작품을 고전이라고 말하는가? - 과연 미술교과서는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3. 기술과 예술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 보이는 것(형태)과 보이지 않는 ..

마그나스코와 로코코 미술 Magnasco and Rococo Art

Alessandro Magnasco, Sacrilegious Robbery, 1731, Oil on canvas, Quadreria arcivescovile, Milan 이탈리아 로코코 화가인 Alessandro Magnasco의 작품은 어딘가 어둡고 무거우며 침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바로크적이거나 로코코적이기 보다는 매너리즘에 더 가깝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이런 느낌을 환기시키는 그림을 떠올린다면, 'Stil Life'류의 작품이 될 수 있다. Jean Simeon Chardin, Still Life (The Silver Tureen), 1728, Metropolitan Museum of Art 둘 다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목적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작품의 스타일은 판이하게 틀리..

귀도 레니(Guido Reni)의 성 세바스찬(St. Sebastian)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갑자기 찾아든 가을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육체와 영혼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진정시키란 구름이 가뜩 끼어있는 서울 하늘에서 별빛을 발견하는 것처럼 어려운 종류의 일이었다. 갑작스런 계절의 변화는 자주 격렬한 심리적 불안과 섬세하고 민감한 우울을 동반한다. 이럴 때 기댈 수 있는 초월적 실체, 또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시대는 니체와 프로이드로부터도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 ‘신은 죽었다’고 말했을 때의 니체만큼 신을 갈구했던 이도 없었을 것이다. 프로이드는 아예 영혼의 신비를 없애버렸으며, 젊은 루카치는 심리학의 발달을 비난했다. 하지만 ‘종교는 아편’이라며 공격했던 마르크스는 종종 나에게 그만큼 종교적인 사람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하지만 종교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