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58

근황

오늘 일정표에는 중기청 창업 지원프로그램인 팁스 사업설명회 참석이 있었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만만치 않게 여겨지는 건 그만큼 부족하다는 뜻이다. 2015년도 벌써 15일 지났고 올 한 해의 모습을 그려보지만, 알 수 없다. 나는 올해 진짜 도전과 모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저 멀리 1월 1일의 태양이 떠올랐다. 저 태양처럼 나도 떠오를 수 있기를. 방배동 사무실 근처 가끔 가서 커피를 마시는 '커피프레지턴트' 버스에서 내려 건널목을 지나가려는 순간, 눈에 들어온 낙서. 혹은 그래피티. 오랜만에 후배를 만나 오뎅에 정종을 먹었다. 며칠 전 술에 취해 서재에 앉아 오래, LP를 들었다. 마크 알몬드 베스트앨범. 그리고 산타나의 문플라워 1, 2집. 이걸 LP로 가지고 있는데, ... ..

12월 23일 사무실 나가는 길, 나는.

방배동으로 나가는 길, 중대 앞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효자손을 든 5살 무렵의 꼬마 여자아이와 길거리 카페 문 앞 긴 나무 조각들로 이어진 계단을 네모난 카드로 뭔가 찾는, 흰 머리가 절반 이상인 중년의 여자가 실성한 듯 두리번거렸다. 어제 불지 않던 바람이 오늘 아침 불었고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년의 여자와 꼬마 여자아이는 제 갈 길을 잃어버린 듯했다. 겨울 추위는 제 갈 길 잃어버린 자들에게 동정을 베풀지 않는다. 지구의 겨울은 거짓된 길이라도 제 갈 길을 가라고 가르친다. 심지어 인류의 역사도 길 잃은 자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발목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호랑이 무늬의 앙고라 자켓을 입은 꼬마 여자아이는 추위에 새하얗게 변한 얼굴 위로,..

어떤 단상 - 부암동에서 구기동까지

상명대 앞까지 걸어갔다. 십 수년 전, 자주 다니던 길이었다. 내가 자취를 했던 곳들 중 많은 곳이 번화해졌다. 가을이면 노란 단풍으로 물들던 신사동 갤러리 길은 이젠 신사동 가로수길로 불린다. 호주로 떠난다는 여자 선배를 보았고 짝사랑하던 여자에게, 마음에도 없는 터무니없는 고백을 하기로 했다. 자취하던 집에서 걸어 3분이면 표갤러리가 있어, 프랭크 스텔라를 보기도 했다. 날카로운 진지함으로 무장한 스텔라는 보는 이의 시각에 도전하며 보는 것, 보여지는 것, 우리가 느끼고 인지하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미술을 다시 물었지만, 그 때 내가 관심 있던 건 오직 사랑 뿐이었다. 쓸쓸한 사랑. 이제 자본주의 깊숙한 곳까지 내 몸이 빠져, 나이가 들수록 허우적, 허우적, ... 이젠 그럴 힘조차 없어졌다...

어떤 습작의 시작, 혹은 버려진 추억.

십수년 전만 해도, 소설가가 되리라는 꿈을 꾸곤 했는데, 지금은 놓은 지 오래다. 얼마 전 아는 형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 나가는 소설가들의 인세 이야기를 듣고선(뭐, 한국에서 몇 명 되지도 않지만), 약간 부러웠던 건 사실이다. 아니, 매우 부러웠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소설가가 되지 않은 것이. 적어도 이제서야 인생의, 아주 작은 일부를 안 것 같으니 말이다. 아마 그 땐 다 거짓말이거나, 짐작, 혹은 추정이거나 과도한 감정 과잉 상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문득 습작을 하던 글이 눈에 띄어 옮긴다. 이것도 거의 십오년 전 글이군. 그 사이 한 두 편 더 스케치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술만 마셨다. 어떤 소설이 아래와 같이, 이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역시 글은 ..

밤 10시 반, 택배.

밤 10시 반 현관벨 소리에 나가 보니, 단감 1박스가 놓여있다. 택배 기사 아저씨가 놔두고 간 것이다. ... 마음이 아프다. 오늘같이 이렇게 추운 날, 그는 이 한 박스를 배달해서 버는 돈은 2012년 기준으로 325원, 올해 택배 시장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나 채 400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낮에 점심 식사를 하면서 앞으로 한국은 10년 이상 최악 환경을 맞이할 것이라며 흘러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나도 최악을 향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바람 소리가 아파트 창을 두드리는 수능 바로 전 날, 학력고사를 치러 서울로 올라왔던 그 때가 무심코 떠오른다. 그 땐, 이렇게 춥지 않았지. 내일, 좋은 일만 가득해보길 기원한다.

난 화분과 혼다 효과

지난 주부터 갑작스럽게(혹은 예상된) 사정이 안 좋아졌다. 이번 주도 계속일 듯 싶다. 오늘 본 어느 아티클 제목은 Free Your Strategy from Annual Planning이었다.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정해진 계획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그 때 그 때 계획을 세워야 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혼다의 미국 시장 진출기다. 혼다가 미국 시장을 갔을 때, 미국 시장은 대형 오토바이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대형 오토바이를 팔 생각만 했다. 그러나 누가 혼다의 오토바이를 사겠는가! 투자가 계속 이루어졌지만, 매출은 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대박이 난 곳은 '스쿠터'였다. 미국에 나간 직원들이 집과 사무실을 오가기 위해 '스쿠터'를 몰고 다녔는데, 난생 처음 보는 소형 오토바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