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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아는 이가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가 없냐고  물었다. 그대
       는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말했다. 난 좋아하는  작가가 있
       지만, 그들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 있다고 보
       기 힘들다 말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고민에 잠겼다.  과연
       나에게 그런 작가는 없었나 하고 말이다.
         
          볼프강 보르헤르트.
          그는 침울하고 지친 표정으로 앙상한 손을  내밀었다. 그
       는 나에게 한 마디 인사도 하지 않고, 창백한  눈빛으로 "이
       번 겨울엔 쓸쓸하게 술을 마시지 말게나"하고  말했다. 이미
       죽은 자의 손을 마주 잡고 난 한참을 서있었다.  "그래야 겠
       지. 하지만 여자들은 날 좋아하지 않는다네.  그러니 어쩌겠
       나." 보르헤르트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정 술을  마시고 싶
       으면 날 부르게. 아마 별빛들 사이에서 내가  술잔을 내밀고
       있을 것이네." 그리곤 그는 조용히 누렇게 변해가는 책 속으
       로 걸어들어갔다.
         
          그는 한동안 내가 가지 않던 그 곳에 앉아  있었다. 병들
       고 지치고 서른이 되기도 전에 죽은 사내. 유일하게 내가 좋
       아하는 작가. 그를 잊고 있었다니!
         
          볼프강 보르헤르트.  1921년  5월 12일   함부르크 출생.
       1947년 11월 20일 바젤 사망.
         
          (* 민음사에서 나온 『이별없는 세대』가 낫다.  최근 보
       르헤르트전집이 나왔으나, 민음사의 번역문장이 낫다. )
         
                        *                   *
         
          돈을 벌 것이냐,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꿈꿀 것인
       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과 돈
       이 무관할 때 상황은 달라진다. 난 단지 하고 싶은  일을 택
       했을 뿐이다. 돈이 중심이 되는 세상에서 난 돈을 중심에 놓
       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
       다. 그걸 벗어나는 방법은 외딴섬이나 두메산골에 올라가 혼
       자 농사지으며 사는 것뿐이리라. 글이 늘어질려 한다.
         
          한 달에 이십만원씩만 준다면, 죽을 때까지 책 읽으며 소
       설을 쓰겠다는 소설가 형이 생각난다. 누군가는 하루에 식사
       로 이십만원씩 꼬박꼬박 사용할  것이다. 세상은 말이  되는
       곳이 아니라 말이 안 되는 곳이다. 말이 안 되는  곳에서 살
       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
       리라.
         
                      *                        *
         
          9월의 첫번째 주, 엉망으로 보내고 말았다.  정신은 갑자
       기 피곤해졌고, 육체는 갑자기 축 늘어졌다.  하늘은 높았지
       만, 햇살은 8월의 그것과  똑같았고, 가을바람은 그  햇살과
       싸워 패배하고 있다. 패배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난 죽을 때
       까지 패배할 각오를 다지고 있는 셈이다. 왜냐면, 말 안되는
       세상에서 말 되게 사는  것은 바로 패배를 자초하는  일임으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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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가을이 오면 그대 울게 되리, 가을이 오면 그대 옷자락 끝을 붙잡고 바람 속에 둥지를 틀리, 가을이 오면 그대 눈물 얼어 심장이 되고 그대 눈동자 갈색으로 늙어 빛바랜 훈장이 되리, 그대 향한 이 마음 주춤거리는 사이, 아,  가을은 무섭게 내 가슴 도려내리니, 손가락 자르고, 발가락 자르고, 그대 위해 글을 쓰지도, 그대 향해 걸어가지도 못하게 하여, 그대 향한 이 마음 식히리라.
          
02.
오랫만에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순간들이 모여있는 곳이 계절과 계절 사이이다. 
          
이틀 전엔 밤을 세워 공부를  했고, 어젠 새벽 한  시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보통 일어나는 시간이 오전 11시쯤이니,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것은  아니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처음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회의에 사로잡히곤 한다. 나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 하는 유일한 힘은 '자존심'이다. 이건  일종의 나르시즘이기도 하다. 가끔 새벽 잠을 청할 때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 순간 날 지탱하는 것도 '자존심'이다. 
          
자본주의 속으로 들어가느냐,  자본주의 속으로  들어가지 않느냐의 갈림길에서 난  '들어가지 않겠다!'라고  선택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나혼자만의  선택일 뿐, 우리  부모님이나 동생들, 혹은 내가 나중에 만나게 될 내 가족들을  위한 선택은 아니다. 이미 선택은 끝났으니,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환갑이 얼마 남지  않으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과연 내 선택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이윤 뭘까.
          
03.
9/20 <댓스 댄싱>. 잭 하레이  1985
10/18 <태양은 외로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11/15 <메트로 폴리스>. 프리츠 랑 1926
12/20 <베니스에서의 죽음>. 루치노 비스콘티 1971
           
위의 영화 상영 목록은  환기미술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이달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들이다. 입장료는 5천원. 집이 미술관 옆이면서 한 번도  가지 못했다. 한 번  가야 겠 다. 그런데, 잭 하레이는 어떤 놈이지? 
           
04.
오에 겐자부로의 『동시대게임』을 다 읽었다.  작년 12월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몇 달이 걸린 셈인가! "오에의 작품세계는 고향 숲속 마을, 갇힘, 성, 핵, 반전, 장애자, 공생, 공포, 절규, 환상, 우주, 미래, 인류, 재생, 구제 등 다양한 주제를 추구해 왔고, 문체는 특이하며  난해하다"라는 편집위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다음 읽을 오에의 소설을 골라본다. 
          
지금 새로 손에 잡은 소설은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집이다. 지금 레이몬드 카버의 영문소설은  교보문고에 가면 구할  수 있다. 내가 잡은 건 번역본이다. 영문으로 구하고 싶은 건 도널드 바셀미와 리차드 브라우티건이다. 
          
05.
언젠가 스터디 때  '일본은 동네동네마다 틀리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한국은 박통의 근대화로 인해  동네동네, 도시도시가 똑같다고 의견이 수렴되는 것을 보았다.  그 당시엔 그냥 넘어갔지만,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을 듯하다. 왜냐면, 일본이  단일국가체제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또한 얼마나  많은 소부족들이 있었는가.  하지만, 한국이 단일국가체제로 지내온 것은 천년이 넘었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일본은  동네동네마다 틀리고, 한국은  왜 동네동네가 똑같은가'에 대한  이유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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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비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꼭 변심한 애인을 찾아나선 사내
   의 발걸음같이 내리는 저 비는 무슨 사연이 저리도 깊어서 또 다시 내
   리는 것일까? 아직 그는 변심한 애인을 찾지 못했나 보다.
    
     여러번 기습적인 비로 인해, "비의 포옹"을 당했다. 오늘도 우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는데, 무거워지는 하늘을 보고선 다시 집으로 들어
   왔다. 그리고, 이렇게 지금 비가 내린다. 번개와 천둥도 함께.
    
     새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소설의 제목은 "매혹당한 자들의 죽음"
   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난 소설의 반을 이미 끝낸 셈이다. 기
   쁘다. 오늘 밤엔 기념으로 술이나 마셔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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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블론드 머리를 한 아가씨를 내가 처음 본 것은 배가 출항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우리는 식당 테이블 좌석을 정하기 위해서 식당에
모여야 했다."
  - 막스 프리쉬, 『호모 파베르』 중의 한 문장.
    
     아버지와 딸의 첫 만남. 폴커 쉘렌도르프의 영화 『Voyager』(국내
   번역 제목: 사랑과 슬픔의 여로)의 원작 소설. Stanley Myers의 영화
   음악을 들으면서 지축을 울리며 추락하는 비 속의 감상에 빠지고 말았
   다(* 참고로, 이 영화 속의 쥴리 델피는 정말로 이뻤다).
    
                 *             *
    
     또다시 비가 내린다. 저 비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까? 혹시 사랑하는 이가 이 지상 어딘가에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혹은 그녀)를 찾기 위해서.
    
                   *            *
 
     
                     몸 밖의 그대 1
    
    
                                   채호기
     
     
   
     1.
     그대와 마주앉아 그대의 술잔에 술을 따릅니다. 그대의 몸을 조금
   씩 채워가는 술. 그대와 마주앉아 내 몸에 따르어지는 그대를 봅니다.
   내 몸 속에 채워지는 그대. 술은 그대 핏속으로 스며 구멍마다 붉은
   꽃송이 내질러 숨막히는 향기로 내 몸을 묶어놓습니다. 그대는 내 몸
   으로 들어와 영혼을 점령하고 옴쭉달싹 못하게 합니다.
    
     2.
     내 몸 속에는 그대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죽었다고 하
   지만 내 몸 속에는 그대가 온전히 살아 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의 사막에 홀로 버려질 때 그대는 내 몸을 찢고
   밖으로 나옵니다. 내가 그대를 그토록 사랑했듯 그때야 비로소 나는
   없고 오로지 그대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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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레코드판 위에 핀 푸른 곰팡이들 같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덥고, 짜증나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날씨 말이다. 안개에  휩싸인 도
     시의 풍경이 꼭 폭격으로 인해 뿌연 연기로 뒤덮인  것같았다.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저주스런 생활을 견디게 하는  그 힘
     말이다. 혹시 그건 죽음이 아닐까? 사랑이나 희망 같은 눈부시고 아름
     답다고 칭송되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축축하며 무거운 죽음이 우리의
     삶을 지탱시키는 건 아닐까?
        이런 뜬금없는 생각을 하는 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
     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지만, 정작 우리들 중  '정말로 행복하다'
     고 느끼는 이는 극히 드물다는  데에 있다. 너무 변덕이  심해서 그런
     것일까?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난 다음 의심할 수 없는 그것을 자
     신의 사고라고 생각했다지만, 사고라는 것도 미치기 전이거나, 사고가
     추악한 세계의 교육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난 다
     음엔 의심할 수 없어도 의심해야만 하는 것을.
       
                        *                       *
       
        공부를 해서 돈을 벌겠다든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취직에 목을 맨다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지 하는 따위의
     고민은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중고등학교때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라든가, "돈이 이 세상의 전부다"라는 실제 세상의  논리를 가르
     쳐준 교사는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이 학생들에게  하는 말의
     대부분은 '살기 좋은 우리나라' 이데올로기이든가, 아니면 그래도 '살
     아볼 만한 세상'이라는 소시민적 발언들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렇
     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이 세상은 엿같이 변했을  지도 모른
     다. 그리고 내가 돈이 되지 않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견딜 수 있는
     것도 그들의 가르침(?)이었는  지도 모른다(*  난 전적으로  부정하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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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등 불빛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거미줄  끄트머리에서 여름밤
     바람은 찰라를 머물다 지난다. 그 머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속삭
     이는 풍경을. 거미줄 한가운데 어린아이 손톱 크기만한 거미가 앉아있
     었다. 그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끊어질 듯한 세계지만, 그 세계 속으
     로 무수한 것들이 스치고 지나감으로.
       
        불면증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 날 억지로 잠을  청하다 종종
     가위에 눌려 새벽에 놀라 깨기도 한다. 이런 날 자장가를 불러줄 여인
     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난 그 여인 대신 턴테이블이
     나 시디 데크에 음반을 올려놓고  잠을 청한다. 그러나, 음반이  끝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꼭 다시 일어나 한 번 더 바늘을 올려놓든
     지, 플레이버튼을 누르지만.
       
        TELDEC에서 "바흐전집"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때까
     지 녹음된 모든 바흐의 음악을 전집으로 내겠다는 것이다. 족히 몇 백
     장은 나올 이 전집은 벌써부터  바흐 매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요즘은 Lisa Ekdahl이라는  71년에 태어난 여자의 재즈  보컬을
     듣고 있다. 그냥 편안한 목소리다. 가냘프고 여린, 꼭 풀잎에 맺힌 이
     슬같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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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오후와 저녁 사이에 난 경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그리고, 새벽과
   아침 사이 난 중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난 달렸
   다. 그러나 내가 달리지 않더라도 시간과 시간 사이는 물결처럼 흐른
   다. 하지만 난 달렸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를 알게 된 순간, 그것
   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그리
   고, 이때까지 그 유일한 일을 난 희망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
   림자일 뿐이다. 희망의 그림자. 난, 아니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 세계의 본질은 '절망'이다. 그 절망을 만든 것은 우리들 옆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단
   지 희망의 그림자 뿐만 존재할 뿐. 절망 속에 갇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글도 사랑도 꿈도 아닌 울음 뿐이다. 울 수밖에 없다. 고개를 숙
   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 수 밖에 없다.
     어제 술에 취해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달리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치원까지 내려갔다가 술에 취해 중부고속도로 위를 질주
   했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눈물 뿐이었다. 이 세상의 본질은 절망이며,
   그 절망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울음 뿐이다.
    
     02.
     '울음'으로서의 저항? 그럴 지도 모른다. 운다는 것에 소극적인 의
   미의 저항이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저항? 그렇다면, 과연 그 저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면 역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명명할 것
   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말
   은 부르조아지들이 가난하지만 순결한 젊은 영혼들을 꼬드기기 위해
   만든 말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 함부로 '고생'하면 큰 일 난다. 장애
   자가 될 수도 있고, 순결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 자칫하면 죽을 수
   도 있다. 그러니,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그리
   고, 돈을 벌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고생을 해야만 한다. '세상
   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지랄같은 소리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순
   결한 젊은 영혼이 살아갈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으며,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돈을 벌어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지 못한다. 돈이 없으
   면, 돈을 빌려서라도 돈을 마련해야 한다. 돈을 빌리려면, 변변찮은
   담보물이라도 하나 있어야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긴, 죽음을 각오해야지. 그러다 죽어도 책임지지 못해.
   고작 죽는 것뿐인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03.
     IMF라고 난리다. 그러나, 이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이상
   하다. 돈이 많은 사람은 계속 돈이 많다. 하지만, 돈이 없었던 사람은
   아예 폭싹 내려앉아버렸다. 몇 해전 운동권 후배들과 술을 마셨다. 난
   그때 이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게 하려면 아예 뒤집어 엎어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들은 집회 때면,
   쇠파이프와 짱돌과 화염병으로 무장한다). 그렇다. 뒤집어 엎지 못한
   다. 왜냐면, 인간이 뒤집어 엎을 수 있을 만큼 이 세상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맨날 '투쟁! 투쟁!'을 외친다. 난 그들의
   순진무구함이 역겹다.
     'YS체포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YS를 체포하면 어떻게 할까? YS를
   어느 대학 학생회실에 감금할까? 아니면, 검찰에 고발할 것인가? 즉,
   'YS체포대'는 정말로 체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하
   나의 순진한 이벤트일 뿐이다. 그들은 맨날 '정권타도'을 외치는데,
   만약 그들의 소원대로 '정권'이 물러난다면, 어떻게 할까? 새로 내각
   을 만들고 헌법도 새로 고칠까? 즉,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점이다.
     내가 운동권에 대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의 팔할은
   순진한 신입생들이 눈에 보이는 불평등한 풍경에만 민감한 반응을 보
   이는 운동권 바보가 되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정
   작 중요한 것은 그 풍경 속에 감추어진 이 세상의 본질일 것이다.
    
     04.
     비가 내렸다. 나에게 소설을 가르쳐주신 한 선생님께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했다. 즉, 프랑스 혁명도 그
   런 것이라는 점이고, 4.19가 일어난 것도 그런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
   리 무수한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데모를 하더라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
   는다는 점이다. 정작 이 세상이 변하려는 기미가 보였을 땐, 누군가가
   온몸에 기름을 붓고 자살을 하거나, 고층빌딩에서 떨어져 내렸을 때뿐
   이라는 점이다. 그는 그것을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평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혁명적 낭만주의는
   이성적이 아니라, 감정적이라는 것이며, 광기의 산물이다. 광기는 필
   연적으로 피를 부르게 마련이다. 피를 부르지 않게 하기 위해 이성적
   인 작업은 계속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나누어
   진다. 모던을 믿는 이들은 계속 이성적인 작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
   람들이며, 포스트모던을 믿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이성적인 작업이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알았으니, 이성을 버리고 광기를 수용하거나, 그
   러지 못할 바엔 아예 자살하는 편이 낫다는 사람들이다.
    
     05.
     내가 아는 건 별로 없다. 내가 아는 건 지금 비가 내리고, 창 밖으
   로 새소리가 들린다는 것뿐이다. 순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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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오후와 저녁 사이에 난 경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그리고, 새벽과
     아침 사이 난 중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난 달렸
     다. 그러나 내가 달리지 않더라도 시간과 시간 사이는  물결처럼 흐른
     다. 하지만 난 달렸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를 알게 된 순간, 그것
     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그리
     고, 이때까지 그 유일한 일을 난 희망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
     림자일 뿐이다. 희망의 그림자. 난, 아니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 세계의 본질은 '절망'이다. 그  절망을 만든 것은 우리들  옆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단
     지 희망의 그림자만    존재할 뿐. 절망 속에 갇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글도 사랑도 꿈도 아닌 울음 뿐이다. 울 수밖에  없다. 고개를 숙
     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 수 밖에 없다.
        어제 술에 취해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달리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치원까지 내려갔다가 술에 취해 중부고속도로 위를 질주
     했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눈물 뿐이었다. 이 세상의  본질은 절망이며,
     그 절망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울음 뿐이다.

        02.
        '울음'으로서의 저항? 그럴 지도 모른다. 운다는 것에 소극적인 의
     미의 저항이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저항? 그렇다면, 과연  그 저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면 역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명명할 것
     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말
     은 부르조아지들이 가난하지만 순결한  젊은 영혼들을 꼬드기기  위해
     만든 말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 함부로 '고생'하면 큰 일  난다. 장애
     자가 될 수도 있고, 순결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 자칫하면  죽을 수
     도 있다. 그러니,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그리
     고, 돈을 벌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고생을 해야만  한다. '세상
     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지랄같은 소리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순
     결한 젊은 영혼이 살아갈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으며,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돈을 벌어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지 못한다. 돈이 없으
     면, 돈을 빌려서라도 돈을  마련해야 한다. 돈을 빌리려면,  변변찮은
     담보물이라도 하나 있어야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긴, 죽음을 각오해야지. 그러다 죽어도  책임지지 못해.
     고작 죽는 것뿐인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03.
        IMF라고 난리다. 그러나, 이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이상
     하다. 돈이 많은 사람은 계속 돈이 많다. 하지만, 돈이 없었던 사람은
     아예 폭싹 내려앉아버렸다. 몇 해전 운동권 후배들과 술을 마셨다. 난
     그때 이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게  하려면 아예 뒤집어 엎어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들은  집회 때면,
     쇠파이프와 짱돌과 화염병으로 무장한다). 그렇다. 뒤집어  엎지 못한
     다. 왜냐면, 인간이 뒤집어 엎을 수 있을 만큼 이 세상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맨날  '투쟁! 투쟁!'을 외친다. 난  그들의
     순진무구함이 역겹다.
        'YS체포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YS를 체포하면 어떻게  할까? YS를
     어느 대학 학생회실에 감금할까? 아니면, 검찰에 고발할  것인가? 즉,
     'YS체포대'는 정말로 체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하
     나의 순진한 이벤트일 뿐이다.  그들은 맨날 '정권타도'을  외치는데,
     만약 그들의 소원대로 '정권'이 물러난다면, 어떻게 할까?  새로 내각
     을 만들고 헌법도 새로 고칠까? 즉,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점이다.
        내가 운동권에 대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의  팔할은
     순진한 신입생들이 눈에 보이는 불평등한 풍경에만 민감한  반응을 보
     이는 운동권 바보가 되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정
     작 중요한 것은 그 풍경 속에 감추어진 이 세상의 본질일 것이다.

        04.
        비가 내렸다. 나에게 소설을 가르쳐주신 한 선생님께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했다. 즉, 프랑스  혁명도 그
     런 것이라는 점이고, 4.19가 일어난 것도 그런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
     리 무수한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데모를 하더라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
     는다는 점이다. 정작 이 세상이 변하려는 기미가 보였을 땐, 누군가가
     온몸에 기름을 붓고 자살을 하거나, 고층빌딩에서 떨어져 내렸을 때뿐
     이라는 점이다. 그는 그것을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평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혁명적  낭만주의는
     이성적이 아니라, 감정적이라는 것이며, 광기의 산물이다.  광기는 필
     연적으로 피를 부르게 마련이다. 피를 부르지 않게 하기  위해 이성적
     인 작업은 계속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나누어
     진다. 모던을 믿는 이들은 계속 이성적인 작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
     람들이며, 포스트모던을 믿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이성적인 작업이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알았으니, 이성을 버리고 광기를 수용하거나, 그
     러지 못할 바엔 아예 자살하는 편이 낫다는 사람들이다.

        05.
        내가 아는 건 별로 없다. 내가 아는 건 지금 비가 내리고, 창 밖으
     로 새소리가 들린다는 것뿐이다. 순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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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지 못한 영혼 하나
또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으로
날아와 보잘 것 없는
절망의 흔적을 남긴다

"누가 우리를 위해 증언해 줄 것인가? 우리의 작품인가, 아니면 대체 무엇인가, 단지 ......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 그러나 사랑은 침묵이다. 우리는 모두 남모르게 죽어간다."
- 알베르 까뮈

몇 달만에 벗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모델이다. 그는 티브이에 나오기도 했으며, 곧잘 패션쇼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자유였다. 그는 그 자유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망가뜨리기로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에서 망가짐이란, '자본으로 온 몸에 떡칠하기'다. 일 년 전쯤, 그와 함께 강남의 술집과 호텔 나이트를 전전했으며, 새벽이면 이태원으로 나갔다. 지금 그는 술과 여자로 젊음을 탕진하고 있다. 오늘 전화기 속에서 그는 대뜸 나에게 "술 사라!"고 말했다. 그러나, 밤 10시가 지난 상태라 은행 현금인출기가 되지 않는 까닭으로 해서 그의 작은 희망을 들어주지 못하고 말았다. 아마 그가 자유를 꿈꾸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망가지지 않고, 잘 나가는 "스타"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몇 명의 여자가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을 지나갔고, 몇 명의 남자는 베낭을 메고 인도로 떠났다. 가끔 자신의 광기를 주체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 젊음과 만나기도 하고, 가끔 자신이 누구인가에 집착한 나머지 모든 것을 버리는 젊음과 만나기도 한다. 술에 취해 아스팔트 위를 기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 순간 허공을 비추는 별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던가를 난 기억하지 못한다. 술은 하늘의 별빛보다 더 위대한 것이다. 모든 기억, 모든 아픔들은 술 속에서 묽어지고, 술과 더불어 우리들에게서 멀어진다.

오늘 누군가 아이디 해지 신청을 했고, 오늘 누군가 우리집에 전화를 걸어 아직까지 딸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몇 년 만에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꺼내보았다. 책의 첫 여백에 적힌 글자들....

"내 사춘기 때 유일한 꿈은 사랑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 아직까지 사랑을 하지 못했다. 거짓으로 세상을 살아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일까. 활자의 틈 속에서 죽고 싶다. 영원히."
- 96.4.4. 涉.

혹시 꿈 속에서 꿈 속 허공을 나는 '검은새'를 만난 적이 있는가. 그 검은 새. 그는 우리들이다. 정처없이 아스팔트 위를 떠도는 90년대의 우리들. 그 위에서 상처 입어도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 단지 그 상처가 곪아가는 과정을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며 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밖에 없다.

어제 집을 나간 그녀와 오늘 해지 신청을 한 그녀에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소설책 첫머리에 놓인 詩人 안재찬의 산문을 들려주고 싶다. 턴테이블에 존 레논의 'LOVE'를 올려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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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라기의 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서는 그 차거운 碑ㅅ돌을 세우지 마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
       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 날아 오르
       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함형수咸亨洙. <<詩人部落>> 창간호. 1936.
         
          길을 가다 해바라기로 둘러쳐진  무덤을 본다면, 그대의 무덤인  줄
       알고 고개 숙여 그대를  그리워하겠나이다. 그리고, 파아란 허공  속을
       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저는 아직 꺼지지 않은 그대 꿈을  쫓아 산으
       로, 들로, 바다로 뛰어다니겠나이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길은  갈색
       보도블록으로, 뚝뚝 부서진 시어처럼  외로이 서있는 가로등과  가로수
       로, 멍한 눈빛으로 하루를 사는 행인으로 둘러쌓여있음을.
         
                              *                          *
         
          글을 쓰지 못한다는 무력감은 일주일 넘기고 있다(*  문화공장에 올
       리는 글이 요즘 쓰고 있는 글이 전부일 정도로). 시를  쓰던 선배가 죽
       었다. 서른이거나,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을 나이일 텐데, 그는  몸의
       통증을 느낀 지 하루만에 죽었다. 어제는 그의 遺作들을  읽었다. 그의
       시는 일종의 암호처럼, 시어와 시어의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그 거리
       사이에서 그는 아파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거리는  가까워질 수
       있었는데).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그 아픔의 거리를 즐기고  있었
       다. 그 먼 거리의 은유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도 날 버리고, 문학도 날 버렸다"라며, 먼 선배가 신문  한 귀
       퉁이를 장식하며 자살했다. 난 그녀를 알지 못한다. 아마 동문회나, 혹
       은 길 가다 우연히, 그렇게 옆을 스쳐지나갔을 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자살이라는 테마는 너무 가슴 아프다. 분명 그녀는 자신을 버린 사랑을
       향해 칼을 들었을리라. 그러나, 그 칼은 자신을 향했고, 상처  입은 채
       로 세상 이전으로 돌아갔으리라.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 ...)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
         
                             *                  *
         
          萬感이 교차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겨울도 아니고,  그렇다고
       봄도 아닌 날씨 탓인가. 내 몸뚱아리는 그것이 늦가을의 날씨라는 고집
       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날씨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날씨는  그냥
       날씨일 뿐임을.
         
          "詩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
       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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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릭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거리>>(김화영 역, 책세상)라는 소설을 읽다보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한 부류는 책을 쓰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한 부류는 책과 같은 인생을 살아감으로 해서,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야. 자네는 어디에 속할 것같나?" 라는 문장을 만난다. 한때 이 둘을 혼동했었다. 책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만 책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책과 같은 인생일 뿐, 책은 아니다.

나도 김영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매력적인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 <도드리>를 읽고 '제법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나를 --->>(문학동네)을 읽고 망가졌다. 송경아도 이 부류이다. 조경란은 그녀의 등단작 <불란서 안경원>을 텍스트로 문장연습을 한 경험이 있어,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녀의 단편은 살아남지 못했다. 온통 빨간펜이었으니. 아직 백민석은 읽지 못했다.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들도 바흐를 들었고, 모짜르트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모던했었는지도 모른다. 한국문학사를 보면 1950년대는 '암흑기'다. 뛰어난 작가들은 다 월북한 상태였고, 아직 김수영과 김승옥은 나타나지 않았으니.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민음사)을 읽으면서, 고진은 20세기초반 일본문학에 대해 이토록 명징한 글을 쓰고 있는데, 왜 한국은 그렇지 못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의 근대문학시기에 한국은 무엇을 했는가? 식민지 상태였지만, 그로 인해 많은 명석한 지식인들이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절망을 몸에 새긴 채로 일본 유학을 했었다. 가끔은 유럽에 유학을 갔던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칸트와 헤겔, 마르크스, 엥겔스를 가지고 들어왔으며, 세잔느를 알았고, 바흐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 9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매우 낯선 이야기다.

                 *            *

프랑스로 그림 공부를 떠났다가 아예 붓을 버리고 이가 몇 된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떨린 가슴을 안고 렘브란트나 세잔느의 작품을 보러 루브르로 달려가고, 그들은 그 곳에서 '과연 내가 꿈꾸는 그림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처절한 물음에 봉착하게 되고, 끝내 붓을 버린다고 한다. 뒤샹도 그림을 버렸다. 아직 뒤샹의 모든 고민을 알지는 못한다. 그의 <<샘>>이라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萬感이 교차한다. 근대 소설이 시작됨과 동시에 근대소설을 벗어나는 스턴의 <<트리스트람 샌디>>(*번역 되지 않았음. 번역이 되어도 재미없을 것같음)가 만들어졌고, 세잔느 이후로 현대미술이 시작되었다라고 본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뒤샹 은 아예 미술 그 자체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곤 붓을 버렸다. 뒤샹 이후의 작가들은 뒤샹이 그어놓은 미술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 할 뿐이다.

               *                *

역시 플라톤은 대단한 놈이다. 그가 그어놓은 인간 본질에 대한 물음, '인간은 존재(being)의 세계에서 생성(becoming)의 세계로 추방되었다'는 말은 그가 죽고 난 몇 천년동안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헤겔도, 하이데거도, 아니 모든 철학자와 예술가는 본질적으로 플라톤주의자일 지도 모른다. 그건 자신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을 동일하게 만들기 위한, 고대 이후의 인간 사투를 가르쳐주는 한 단어일 것이다. 뒤샹이 그림을 버린이유는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표현한 작품의 불꽃이 하늘의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같아질 수 없다는 절망에 대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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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렸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알 턱도 없었고 알기도 싫었을 것이며 알려는 의지도 없었다. 이미 선 긋기는 시작되었다. 저 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지 못하는 곳.....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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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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