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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끊임없이 고개를 돌리는 사람과 가슴에 많은 구멍을 가지고 있는 사람, 손가락 하나 사랑하는 이 가슴에다 심어주고 온 사람, 그렇게 세 명이서 만났다. 원래 네 명이 만나기로 되어있었는데, 한 명은 며칠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손가락'이 '고개'에게 손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개'는 웃기 시작했고, '가슴 구멍'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도 웃었다. 웃으면서 '고개'는 계속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고 '가슴 구멍'은 등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슴에 나 있는 구멍들을 통과해 나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손을 앞가슴 쪽에다 갖다대었다. 갑자기 돌풍이 몰아쳤고 '가슴구멍'의 몸에서 바람소리가 멜로디를 만들었다. '고개'는 너무 고개를 많이 돌려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손가락'이 바지 주머니에서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 하나를 꺼내며, '이게 내 사랑이야, 음... 그녀의 향기
가 나...' 그리고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바람이 멈췄다. 시간은 흐르지 않았고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마지막 사람이 도착했다. 그는 '자기 얼굴'라고 불렸는데, 늘 자기 얼굴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언제나 길을 가다 뭔가 걸려 넘어지고 난 다음에다 자기 얼굴이 몸에서 떨어져 길바닥 위를 뒹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고개'가 '자기 얼굴'을 보면서, '여전히 상처투성이군'이라고 말했다. '손가락'이 바지 주머니에서 딱딱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몇 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고개'가 '한 시, 오후 한 시야'라고 말했지만, '가슴 구멍'은 '새벽 다섯 시', '자기 얼굴'은 '아침 열 시'라고 주장했다. '손가락'이 웃었다. '시간은 오후 세 시야. 그러니까 그녀의 가슴에 내 손가락이 붙은 시각이 오후 세 시야. 하하하.'

'자기 얼굴'이 또 넘어졌다. 그리고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기 얼굴을 주워 다시 목 위에다 달았다. 그러자 '손가락'이 주머니에서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을 꺼내 '자기 얼굴'에다 보여주며 '사랑의 향기'가 난다며 울기 시작했다.

다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바람 한 가운데 네 명은 자기가 해오던 일을 계속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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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 본Sarah Vaughan의 낡은 테잎을 선배가 하는 까페에
     주고 난 다음, 난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그녀의 앨범을 샀다. 영화 <<접속>> 때문에 나온 '2 for 1' 모
     음집. 예전부터 들어왔던 음악이 영화나 광고 때문에 유명해지
     면 기분이 나빠지기 일쑤다. 누군가에게 음악을 추천하면 대체
     로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똑같은 음악이 영화나 광고에
     서 유명해지면 내가 권했다는 사실을 잊고선 그 음반을 사선,
     이 음악 좋지 않냐고 내게 말한다. 이건 소설이나 책 따위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하면 잘 듣지도 않다가 교수나 유명한 작
     가가 이 책 좋으니 읽어보라고 하면 바로 산다.

                 *               *    

       '1963년에 이파네마 아가씨는 이런 식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 역시 마찬가지
     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그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는
     다.
       (... ...)
       그러나 레코드 속에서는 그녀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스탠
     게츠의 벨벳 같은 테너 섹스폰의 선율 속에서는, 그녀는 언제
     나 열여덟이며, 활달하고 부드러운 이파네마 아가씨다.
       내가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걸고, 바늘을 내리면 그녀는 곧
     모습을 나타낸다.'
       - 『1963년. 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유유정 옮김. 문학
     사상사. 1996)에 실린 작은 단편)
      
                *             *    

       아스트러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The Girl From Ipanema'. <>를 사라 본의 음
     반과 같이 구입했다. 몇 초의 고민 끝에 집어든 음반. 하루끼
     가 이 음반의 한 노래에 소설을 쓴, 매우 매력적인 음반.
      
       책도 두 권을 구입했는데 놀랍게도 책을 살 땐 가슴이 떨리
     지 않았는데, 음반을 구입할 땐 가슴이 떨렸다. 이젠 완전히
     도취된 모양이다. 이래저래 모은 음반이 LP, CD 합쳐서 250여
     장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것이 내 사소한 평가
     다. 얼마나 많은 돈을 허비할까.
  
       재즈광으로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나중에 그를
     만난다면 소설 따위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고, 맥주를 마시며
     그의 턴테이블에다 LP를 걸고 재즈에 대해 몇 마디 하고 난 다
     음 음악이나 들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가 다시 재즈까페를 운
     영했으며 좋겠다. 놀러가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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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개의 문장들:
            
             * 그렇다고 수용소가 이제 폐쇄되었다고 해서  계급사회가 끝
          난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 사서인 안톤이 내게  그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 죽음은 삶의 사건의 아니다. 인간은 죽음을  체험하지 못한
          다.(Der Tod ist Kein Ereign  des Lebens. Den Tod  erlebt man
          nicht ......)(-비트겐슈타인)
            
             *    결국, 내게는 죽음 이외의 아무 것도 없다
                       나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 ...
                    (- 세자르 발레조. 페루 시인. 1893-1938)
              
             * 글쓰기란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거부하는 것이다.
            
             * 카프카는 마르크스가 죽은  1883년에 태어나, 레닌이  죽은
          1924년에 죽었다.
            
            
                            *                    *
            
             일요일 오전 내내 블라디밀 아쉬케나지가  연주하는 라흐마니
          노프를 들으며, 죠르쥬 쌍프렝의 『글이냐 삶이냐L'e'criture ou
          la vie』를 다 읽었다. 그리고,
            
             1979. 12. 30.
             엄마가
             쇼핑센터레코드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2번을 들으면서 이 노래는 왜
          이렇게 내 귀에 익은 것일까 하는 생각을 때때로 한다.  내가 음
          악을 듣는 곳은 유일하게 내 방의, 튜너가 없는 중고 오디오뿐이
          기 때문이다. 아마 기억 나지 않는 장소에서 들었던 모양이다.
            
             난 일요일 오전을 좋아한다. 일요일 오전에  앉아 라흐마니노
          프를 들으며 한 소설을 다 읽었다. 그리고 그 라흐마니노프 음반
          은 헌책방에서 먼지 속에서 잠자고 있던 중고 LP. 그  레코드 자
          켓 뒷면 가장자리에 적힌 몇  개의 단어들: 1979. 12.  30. 엄마
          가. 쇼핑센터레코드에서.
            
             이것으로 갑자기 찾아온 가을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
          던 내 영혼의 그림자를 다시 내 곁에 붙으러 매둘 수 있을까. 소
          설이라고 말했지만, 이 소설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적이었
          다. 그리고 날 더욱 놀라게 했던 건, 어떻게, 그것도  이십대 초
          반의 젊은이가 삼백편의 시를  암송할 수 있단 말인가!  독일어,
          스페인어, 불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이십대 초반의, 레지스땅
          스 대원이며, 코뮤니스트, 에꼴 노르말 준비반 학생.  이러한 이
          유로 몇 주간 이 책을  잡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서점에서 구입을 결정하게 된 유일한 이유는,
            
             "추억하고자 하는 사람은 망각을 믿어야 한다. 절대적 망각이
          라는 위험을 믿어야 하며,  그때 추억은 아름다운 우연이  된다.
          이 아름다운 우연을 믿어야 한다"라는 모리스 블랑쇼의  문장 때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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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은 그녀를 따라갔다. 그는 그녀가 걷는 것을 바라보았
     다. 그녀는 왼쪽으로 한 발짝, 오른쪽으로 한 발짝 걷더니, 고
     개를 숙였다.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불안했던 것일까? 공자그
     는 고개를 숙이고, 탐욕스럽게 빙긋이 웃었다. 그는 그녀를 꿈
     꾸었다. 거인만이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딸의 눈 속에 이
     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욕망과 기다림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시간의 지배자』중에서,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           *

       작년에 나온 몇 개의 뛰어난 소설들 중의 하나. 매혹적인
     이름,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그와 술을 마신 선배의 평에 의하
     면, "아직 어린 친구다"였다. 내 기억에 의하면 그는 나보다
     어리거나, 같은 나이일 것이다.
      
       오늘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 왔다.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근대를 보는 눈』(수묵. 채색화)와 아름답지 않지만, 그러나
     가슴 저린 『영국 현대 미술전』을 보았다.
    
       『근대를 보는 눈』은 올초에 있었던 한국 근대 유화 전시
     에 이어 기획된 전시였다. 이 전시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다.
     왜냐면, 작가나 작품의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작품을
     전시하였기 때문에. 그러나, 이 전시를 기획하기 위해서 국립
     현대미술관 측은 몇 년을 준비했을 것이다.
    
       『영국 현대 미술전』는 현대 미술이 어떤 경향으로 흘러가
     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전시회이다. 현대 미술에 관심없는 사
     람이라면, 분명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따위 것들을 작품이라
     고 버젓이 전시해놓았는가' 라는 푸념을 할 것임에 분명하지
     만, 그런 작품을 만든 작가들의 변명을 혹시라도 듣게 된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지도 모른다.

       영국의 젊은 작가들이 고민하는 것이나 한국의 젊은이가 고
     민하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 우린 세상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동시에 『근대를 보는 눈』에는 관
     람객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근대에 너
     무 무관심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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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면 발작증.
          My Own Private Idaho 첫 몇 쇼트에 나오는 단어.
          그리고 시인 박서원이 앓고 있는 병.
         
          영화를 보고 난 다음 꽤나 멋있게 보였던 병(* 수전 손탁이
       말한 병의 은유?). 하버드 대학 법대에 다니는  애인과 헤어지
       고, 119 구급 대원과 결혼한 여자. 그리고 그 결혼의 실패.
         
          문학 잡지에 실린 그녀의 시를 읽고, 손톱 만한  그녀의 사
       진을 보고 난 다음 풍부한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라는 감상과
       함께 실제로 만나면 꽤나 매력적이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
       나, 열음사에서 나온 그녀의 첫번째 시집은 그다지  좋지 못했
       고, 그것이 끝이었다. 가끔 잡지에서 그녀의 시를  읽었고, 최
       근에 나온,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주목받았던 시집들을 보긴 했
       지만 사서 읽진 않았다.
         
          오늘 신문 기사들 가운데 그녀의 기사가 실렸다. 어느 후배
       가 짙은 화장을 한 그녀가 자신의 시를 읽는 모습을 보고 반했
       다고 말하는 풍경을 떠올려 보며, 그녀의 실패한  사랑과 그녀
       의 육체와 그녀의 고통을 생각해 본다. 가을 오후 늘 주머니에
       약통 하나를 가지고 다니는 시인의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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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
     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
     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
     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
     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
     는 참혹......,그러나 킥킥 당신
       
        - <혼자 가는 먼집>, 허수경.
       
       
       
       
        어젠 가을바람 속에 앉아 소주와 맥주를 번갈아마시며  술 한
     잔 마시고, 음악을 바꾸고, 시  한 편 소리 내어 읽고,  다시 술
     한 잔 마시고, 밖으로 나가 가을 오후의 대기와 바람과 구름, 저
     편 산꼭대기를 가슴에 안아보곤, 다시  음악을 바꾸고 시 한  편
     소리 내어 읽고, 다시 술 한 잔, 그렇게 저녁 8시쯤까지 마셨다.
       
        가끔 살아가다보면, 미친 짓도 필요한 법이다. 음표들이 일제
     히 내 몸을 뚫고 지나가는, 혹은 시어들이, 아니면 가을 바람이,
     그러면서 하루가 저물었다.
       
        혼자 술을 마신 이유는 오랫만에 맑은 가을날이 왔는데, 집에
     서 빈둥빈둥거리자니 꼭 손해보는 것같아서였다.
       
        오늘도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젠장. 오늘도 미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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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너무 좋아 집  안에서 빈둥거리기로 마음 먹었다.  몇
     달만에 Sidsel Endresen을 꺼내 듣는다.
       
        "So I write/about the world/and only rarely come close/to
     saying this/so we  can share  this/it's just black  marks/on
     white  paper/and  me/wanting   another blank   page/and  yet
     another/so I write/thinking I'm constructing a  bridge/but I
     get lost/on the  way across/and  I stumble/on  implications/
     associations/ synonyms/combinations/of the perfect  words/so
     I write/and I get lost/in black marks/on the white paper/and
     still/it is this/this......"
        (* So I Write라는 노래의 가사)
       
                         *                     *
       
        날씨가 너무 좋아 집에서  빈둥거리다니, 내 생에 이런  날이
     있으리라 누가 예상을 했겠는가! 이런 날에 아리따운  처자와 덕
     수궁 돌담길이나 걸어야 하거늘, 오늘 난 습기 먹은 음반들을 꺼
     내 조심스럽게 닦곤 음악을 듣고  있다니! 젠장, 왜 이리도  '사
     랑'을 노래한 음악은 많은 것인가!
       
                         *                    *
       
        용산 데이콤 앞에서 버스를 탄 허름하고 초췌한  차림의 중년
     사내는 버스가 한강대교 중간  지점까지 갈 때까지 동전을  찾지
     못하며 당황하고 있었다. 그 때 앞좌석에 앉아 있던,  정확히 말
     해 버스 운전석 바로 뒷 좌석, 그 중년의, 깔끔한 외출복에 연한
     화장을 한 여인이 핸드백에서  토권 하나를 꺼내 중년  사내에게
     건네준다. 그 때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사내는 그것을 받고
     황급히 시선을 거두곤 버스 뒤로 들어갔다. 버스는  한강대교 끄
     트머리에서 빨간 신호등에 걸렸고, 토권은 운전석 옆  네모난 공
     간 속으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앞좌석에 앉은  그 중
     년의 여인은 연신 뒤를 쳐다보았고,  그 중년 사내는 그  시선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정거장 가지 않곤  그
     사내는 무언가에 쫓기듯 버스에서 내렸다. 잠시 후  여인은 핸드
     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가끔 젊은 한때  맹렬하게 사랑했던 이를, 그러나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이를 아주 우연스럽게 만나기도 한다. 비 오는 날
     이나 지금 같이 지내고 있는 이를 사랑하지 않음이 느끼는  순간
     마다 떠오르는 사람을 아주 우연히 스치기도 하는 법이다.
       
        이 세상엔 무수한 사랑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에는  남자와 남
     자와의 사랑, 여자와 여자와의 사랑, 섹스로만 연결된  사랑, 고
     등학생과 중년 사내나, 중년의 여자 사이의 사랑도 있을 수 있으
     며, 한 사람은 때리고 한 사람은 맞으며, 그러면서  사랑을 확인
     하는 관계도 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인지 사랑이 아닌지를 결론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자신 밖에 없다. 그것을 사랑이 지나간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되더라도.
       
                        *                      *
       
        난 '사랑'이라고 표현된 것들을 믿지 않는다. 왜냐면, '사랑'
     만큼 사람 뒷통수 잘 때리는 것도 드물기 때문에. 여하튼 오늘은
     너무 날씨가 좋다. 이런 날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다. 앞으로  계속 빈둥거릴
     것같다. 오! 가엾은 내 젊은 날이여. 오! 투명한 초가을의 내 생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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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하고자 하는 사람은 망각을 믿어야 한다.  절대적 망각
     이라는 위험을 믿어야 하며, 그때 추억은 아름다운  우연이 된
     다. 이 아름다운 우연을 믿어야 한다.
        - 모리스 블랑쇼
       
                        *                   *
       
        새벽 공기에 묻은, 지난 하루의 흔적들을 물로, 비누거품으
     로 씻어내고 난 다음, 낡은 턴테이블에 자정이 지난 시간에 어
     울릴 만한 음반 하나를  올린다. 또 이렇게, 무참하게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오는 길에 술에 취해 계단에서 쓰러지는  한 여
     대생을 보았다. 그녀를 보며, 언젠가 술에 취해 쓰러지는 여대
     생을 안스럽게 바라보았던 날 기억해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녀가 부러웠다.
       
        서가에서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꺼내
     "풍경의 발견"이라는 첫 장을 다시 읽었다.  김윤식교수가 '풍
     경'이라는 단어를 비평에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실은 가라타
     니 고진의 단어였음이 탄로났다며, 反김윤식성향의 비평가와의
     대화를 기억하며 웃었다.
       
        새벽 한두시가 내 귀가시간이다. 그때까지 도서관에서 소설
     나부랭이 읽다가 집에 온다. 소설 나부랭이 읽는  도중에 영어
     공부도 하고, 장차 대학원 전공이 될 서적들도 뒤적인다. 하루
     8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동서기'보다 힘없는 미래를  위해 내
     스물여섯의 초가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personae님의 의문에  대해서: 연기? 많이  보아야
     한다. 연기를 알기 위해선  영화보단 연극이 나을 것이다.  특
     히, 연기 못하는 배우와 연기 잘하는 배우가 똑같은 무대에 서
     는 작품! 너무 기본적인 대답이긴 하지만, 어느 것이  잘된 연
     기인가를 알기 위해선 많이 보는 수밖에 없다. 이것보다 더 빠
     른 방법은 직접 연기를 해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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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이가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가 없냐고  물었다. 그대
       는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말했다. 난 좋아하는  작가가 있
       지만, 그들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 있다고 보
       기 힘들다 말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고민에 잠겼다.  과연
       나에게 그런 작가는 없었나 하고 말이다.
         
          볼프강 보르헤르트.
          그는 침울하고 지친 표정으로 앙상한 손을  내밀었다. 그
       는 나에게 한 마디 인사도 하지 않고, 창백한  눈빛으로 "이
       번 겨울엔 쓸쓸하게 술을 마시지 말게나"하고  말했다. 이미
       죽은 자의 손을 마주 잡고 난 한참을 서있었다.  "그래야 겠
       지. 하지만 여자들은 날 좋아하지 않는다네.  그러니 어쩌겠
       나." 보르헤르트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정 술을  마시고 싶
       으면 날 부르게. 아마 별빛들 사이에서 내가  술잔을 내밀고
       있을 것이네." 그리곤 그는 조용히 누렇게 변해가는 책 속으
       로 걸어들어갔다.
         
          그는 한동안 내가 가지 않던 그 곳에 앉아  있었다. 병들
       고 지치고 서른이 되기도 전에 죽은 사내. 유일하게 내가 좋
       아하는 작가. 그를 잊고 있었다니!
         
          볼프강 보르헤르트.  1921년  5월 12일   함부르크 출생.
       1947년 11월 20일 바젤 사망.
         
          (* 민음사에서 나온 『이별없는 세대』가 낫다.  최근 보
       르헤르트전집이 나왔으나, 민음사의 번역문장이 낫다. )
         
                        *                   *
         
          돈을 벌 것이냐,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꿈꿀 것인
       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과 돈
       이 무관할 때 상황은 달라진다. 난 단지 하고 싶은  일을 택
       했을 뿐이다. 돈이 중심이 되는 세상에서 난 돈을 중심에 놓
       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
       다. 그걸 벗어나는 방법은 외딴섬이나 두메산골에 올라가 혼
       자 농사지으며 사는 것뿐이리라. 글이 늘어질려 한다.
         
          한 달에 이십만원씩만 준다면, 죽을 때까지 책 읽으며 소
       설을 쓰겠다는 소설가 형이 생각난다. 누군가는 하루에 식사
       로 이십만원씩 꼬박꼬박 사용할  것이다. 세상은 말이  되는
       곳이 아니라 말이 안 되는 곳이다. 말이 안 되는  곳에서 살
       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
       리라.
         
                      *                        *
         
          9월의 첫번째 주, 엉망으로 보내고 말았다.  정신은 갑자
       기 피곤해졌고, 육체는 갑자기 축 늘어졌다.  하늘은 높았지
       만, 햇살은 8월의 그것과  똑같았고, 가을바람은 그  햇살과
       싸워 패배하고 있다. 패배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난 죽을 때
       까지 패배할 각오를 다지고 있는 셈이다. 왜냐면, 말 안되는
       세상에서 말 되게 사는  것은 바로 패배를 자초하는  일임으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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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가을이 오면 그대 울게 되리, 가을이 오면 그대 옷자락 끝을 붙잡고 바람 속에 둥지를 틀리, 가을이 오면 그대 눈물 얼어 심장이 되고 그대 눈동자 갈색으로 늙어 빛바랜 훈장이 되리, 그대 향한 이 마음 주춤거리는 사이, 아,  가을은 무섭게 내 가슴 도려내리니, 손가락 자르고, 발가락 자르고, 그대 위해 글을 쓰지도, 그대 향해 걸어가지도 못하게 하여, 그대 향한 이 마음 식히리라.
          
02.
오랫만에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순간들이 모여있는 곳이 계절과 계절 사이이다. 
          
이틀 전엔 밤을 세워 공부를  했고, 어젠 새벽 한  시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보통 일어나는 시간이 오전 11시쯤이니,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것은  아니지만, 태어나서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처음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회의에 사로잡히곤 한다. 나로  하여금 공부를 하게 하는 유일한 힘은 '자존심'이다. 이건  일종의 나르시즘이기도 하다. 가끔 새벽 잠을 청할 때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 순간 날 지탱하는 것도 '자존심'이다. 
          
자본주의 속으로 들어가느냐,  자본주의 속으로  들어가지 않느냐의 갈림길에서 난  '들어가지 않겠다!'라고  선택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나혼자만의  선택일 뿐, 우리  부모님이나 동생들, 혹은 내가 나중에 만나게 될 내 가족들을  위한 선택은 아니다. 이미 선택은 끝났으니,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환갑이 얼마 남지  않으신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과연 내 선택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이윤 뭘까.
          
03.
9/20 <댓스 댄싱>. 잭 하레이  1985
10/18 <태양은 외로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11/15 <메트로 폴리스>. 프리츠 랑 1926
12/20 <베니스에서의 죽음>. 루치노 비스콘티 1971
           
위의 영화 상영 목록은  환기미술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이달의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들이다. 입장료는 5천원. 집이 미술관 옆이면서 한 번도  가지 못했다. 한 번  가야 겠 다. 그런데, 잭 하레이는 어떤 놈이지? 
           
04.
오에 겐자부로의 『동시대게임』을 다 읽었다.  작년 12월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몇 달이 걸린 셈인가! "오에의 작품세계는 고향 숲속 마을, 갇힘, 성, 핵, 반전, 장애자, 공생, 공포, 절규, 환상, 우주, 미래, 인류, 재생, 구제 등 다양한 주제를 추구해 왔고, 문체는 특이하며  난해하다"라는 편집위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다음 읽을 오에의 소설을 골라본다. 
          
지금 새로 손에 잡은 소설은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집이다. 지금 레이몬드 카버의 영문소설은  교보문고에 가면 구할  수 있다. 내가 잡은 건 번역본이다. 영문으로 구하고 싶은 건 도널드 바셀미와 리차드 브라우티건이다. 
          
05.
언젠가 스터디 때  '일본은 동네동네마다 틀리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한국은 박통의 근대화로 인해  동네동네, 도시도시가 똑같다고 의견이 수렴되는 것을 보았다.  그 당시엔 그냥 넘어갔지만,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을 듯하다. 왜냐면, 일본이  단일국가체제가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또한 얼마나  많은 소부족들이 있었는가.  하지만, 한국이 단일국가체제로 지내온 것은 천년이 넘었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일본은  동네동네마다 틀리고, 한국은  왜 동네동네가 똑같은가'에 대한  이유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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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비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꼭 변심한 애인을 찾아나선 사내
   의 발걸음같이 내리는 저 비는 무슨 사연이 저리도 깊어서 또 다시 내
   리는 것일까? 아직 그는 변심한 애인을 찾지 못했나 보다.
    
     여러번 기습적인 비로 인해, "비의 포옹"을 당했다. 오늘도 우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는데, 무거워지는 하늘을 보고선 다시 집으로 들어
   왔다. 그리고, 이렇게 지금 비가 내린다. 번개와 천둥도 함께.
    
     새 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소설의 제목은 "매혹당한 자들의 죽음"
   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난 소설의 반을 이미 끝낸 셈이다. 기
   쁘다. 오늘 밤엔 기념으로 술이나 마셔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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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블론드 머리를 한 아가씨를 내가 처음 본 것은 배가 출항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우리는 식당 테이블 좌석을 정하기 위해서 식당에
모여야 했다."
  - 막스 프리쉬, 『호모 파베르』 중의 한 문장.
    
     아버지와 딸의 첫 만남. 폴커 쉘렌도르프의 영화 『Voyager』(국내
   번역 제목: 사랑과 슬픔의 여로)의 원작 소설. Stanley Myers의 영화
   음악을 들으면서 지축을 울리며 추락하는 비 속의 감상에 빠지고 말았
   다(* 참고로, 이 영화 속의 쥴리 델피는 정말로 이뻤다).
    
                 *             *
    
     또다시 비가 내린다. 저 비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까? 혹시 사랑하는 이가 이 지상 어딘가에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혹은 그녀)를 찾기 위해서.
    
                   *            *
 
     
                     몸 밖의 그대 1
    
    
                                   채호기
     
     
   
     1.
     그대와 마주앉아 그대의 술잔에 술을 따릅니다. 그대의 몸을 조금
   씩 채워가는 술. 그대와 마주앉아 내 몸에 따르어지는 그대를 봅니다.
   내 몸 속에 채워지는 그대. 술은 그대 핏속으로 스며 구멍마다 붉은
   꽃송이 내질러 숨막히는 향기로 내 몸을 묶어놓습니다. 그대는 내 몸
   으로 들어와 영혼을 점령하고 옴쭉달싹 못하게 합니다.
    
     2.
     내 몸 속에는 그대가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죽었다고 하
   지만 내 몸 속에는 그대가 온전히 살아 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나일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의 사막에 홀로 버려질 때 그대는 내 몸을 찢고
   밖으로 나옵니다. 내가 그대를 그토록 사랑했듯 그때야 비로소 나는
   없고 오로지 그대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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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레코드판 위에 핀 푸른 곰팡이들 같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덥고, 짜증나고, 사람을 지치게 하는 날씨 말이다. 안개에  휩싸인 도
     시의 풍경이 꼭 폭격으로 인해 뿌연 연기로 뒤덮인  것같았다.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저주스런 생활을 견디게 하는  그 힘
     말이다. 혹시 그건 죽음이 아닐까? 사랑이나 희망 같은 눈부시고 아름
     답다고 칭송되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축축하며 무거운 죽음이 우리의
     삶을 지탱시키는 건 아닐까?
        이런 뜬금없는 생각을 하는 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
     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지만, 정작 우리들 중  '정말로 행복하다'
     고 느끼는 이는 극히 드물다는  데에 있다. 너무 변덕이  심해서 그런
     것일까?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난 다음 의심할 수 없는 그것을 자
     신의 사고라고 생각했다지만, 사고라는 것도 미치기 전이거나, 사고가
     추악한 세계의 교육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난 다
     음엔 의심할 수 없어도 의심해야만 하는 것을.
       
                        *                       *
       
        공부를 해서 돈을 벌겠다든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취직에 목을 맨다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지 하는 따위의
     고민은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중고등학교때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라든가, "돈이 이 세상의 전부다"라는 실제 세상의  논리를 가르
     쳐준 교사는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이 학생들에게  하는 말의
     대부분은 '살기 좋은 우리나라' 이데올로기이든가, 아니면 그래도 '살
     아볼 만한 세상'이라는 소시민적 발언들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렇
     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이 세상은 엿같이 변했을  지도 모른
     다. 그리고 내가 돈이 되지 않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견딜 수 있는
     것도 그들의 가르침(?)이었는  지도 모른다(*  난 전적으로  부정하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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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등 불빛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거미줄  끄트머리에서 여름밤
     바람은 찰라를 머물다 지난다. 그 머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속삭
     이는 풍경을. 거미줄 한가운데 어린아이 손톱 크기만한 거미가 앉아있
     었다. 그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끊어질 듯한 세계지만, 그 세계 속으
     로 무수한 것들이 스치고 지나감으로.
       
        불면증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 날 억지로 잠을  청하다 종종
     가위에 눌려 새벽에 놀라 깨기도 한다. 이런 날 자장가를 불러줄 여인
     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난 그 여인 대신 턴테이블이
     나 시디 데크에 음반을 올려놓고  잠을 청한다. 그러나, 음반이  끝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꼭 다시 일어나 한 번 더 바늘을 올려놓든
     지, 플레이버튼을 누르지만.
       
        TELDEC에서 "바흐전집"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때까
     지 녹음된 모든 바흐의 음악을 전집으로 내겠다는 것이다. 족히 몇 백
     장은 나올 이 전집은 벌써부터  바흐 매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요즘은 Lisa Ekdahl이라는  71년에 태어난 여자의 재즈  보컬을
     듣고 있다. 그냥 편안한 목소리다. 가냘프고 여린, 꼭 풀잎에 맺힌 이
     슬같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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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오후와 저녁 사이에 난 경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그리고, 새벽과
   아침 사이 난 중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난 달렸
   다. 그러나 내가 달리지 않더라도 시간과 시간 사이는 물결처럼 흐른
   다. 하지만 난 달렸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를 알게 된 순간, 그것
   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그리
   고, 이때까지 그 유일한 일을 난 희망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
   림자일 뿐이다. 희망의 그림자. 난, 아니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 세계의 본질은 '절망'이다. 그 절망을 만든 것은 우리들 옆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단
   지 희망의 그림자 뿐만 존재할 뿐. 절망 속에 갇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글도 사랑도 꿈도 아닌 울음 뿐이다. 울 수밖에 없다. 고개를 숙
   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 수 밖에 없다.
     어제 술에 취해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달리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치원까지 내려갔다가 술에 취해 중부고속도로 위를 질주
   했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눈물 뿐이었다. 이 세상의 본질은 절망이며,
   그 절망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울음 뿐이다.
    
     02.
     '울음'으로서의 저항? 그럴 지도 모른다. 운다는 것에 소극적인 의
   미의 저항이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저항? 그렇다면, 과연 그 저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면 역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명명할 것
   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말
   은 부르조아지들이 가난하지만 순결한 젊은 영혼들을 꼬드기기 위해
   만든 말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 함부로 '고생'하면 큰 일 난다. 장애
   자가 될 수도 있고, 순결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 자칫하면 죽을 수
   도 있다. 그러니,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그리
   고, 돈을 벌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고생을 해야만 한다. '세상
   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지랄같은 소리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순
   결한 젊은 영혼이 살아갈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으며,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돈을 벌어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지 못한다. 돈이 없으
   면, 돈을 빌려서라도 돈을 마련해야 한다. 돈을 빌리려면, 변변찮은
   담보물이라도 하나 있어야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긴, 죽음을 각오해야지. 그러다 죽어도 책임지지 못해.
   고작 죽는 것뿐인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03.
     IMF라고 난리다. 그러나, 이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이상
   하다. 돈이 많은 사람은 계속 돈이 많다. 하지만, 돈이 없었던 사람은
   아예 폭싹 내려앉아버렸다. 몇 해전 운동권 후배들과 술을 마셨다. 난
   그때 이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게 하려면 아예 뒤집어 엎어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들은 집회 때면,
   쇠파이프와 짱돌과 화염병으로 무장한다). 그렇다. 뒤집어 엎지 못한
   다. 왜냐면, 인간이 뒤집어 엎을 수 있을 만큼 이 세상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맨날 '투쟁! 투쟁!'을 외친다. 난 그들의
   순진무구함이 역겹다.
     'YS체포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YS를 체포하면 어떻게 할까? YS를
   어느 대학 학생회실에 감금할까? 아니면, 검찰에 고발할 것인가? 즉,
   'YS체포대'는 정말로 체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하
   나의 순진한 이벤트일 뿐이다. 그들은 맨날 '정권타도'을 외치는데,
   만약 그들의 소원대로 '정권'이 물러난다면, 어떻게 할까? 새로 내각
   을 만들고 헌법도 새로 고칠까? 즉,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점이다.
     내가 운동권에 대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의 팔할은
   순진한 신입생들이 눈에 보이는 불평등한 풍경에만 민감한 반응을 보
   이는 운동권 바보가 되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정
   작 중요한 것은 그 풍경 속에 감추어진 이 세상의 본질일 것이다.
    
     04.
     비가 내렸다. 나에게 소설을 가르쳐주신 한 선생님께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했다. 즉, 프랑스 혁명도 그
   런 것이라는 점이고, 4.19가 일어난 것도 그런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
   리 무수한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데모를 하더라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
   는다는 점이다. 정작 이 세상이 변하려는 기미가 보였을 땐, 누군가가
   온몸에 기름을 붓고 자살을 하거나, 고층빌딩에서 떨어져 내렸을 때뿐
   이라는 점이다. 그는 그것을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평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혁명적 낭만주의는
   이성적이 아니라, 감정적이라는 것이며, 광기의 산물이다. 광기는 필
   연적으로 피를 부르게 마련이다. 피를 부르지 않게 하기 위해 이성적
   인 작업은 계속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나누어
   진다. 모던을 믿는 이들은 계속 이성적인 작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
   람들이며, 포스트모던을 믿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이성적인 작업이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알았으니, 이성을 버리고 광기를 수용하거나, 그
   러지 못할 바엔 아예 자살하는 편이 낫다는 사람들이다.
    
     05.
     내가 아는 건 별로 없다. 내가 아는 건 지금 비가 내리고, 창 밖으
   로 새소리가 들린다는 것뿐이다. 순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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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
        오후와 저녁 사이에 난 경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그리고, 새벽과
     아침 사이 난 중부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를 난 달렸
     다. 그러나 내가 달리지 않더라도 시간과 시간 사이는  물결처럼 흐른
     다. 하지만 난 달렸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를 알게 된 순간, 그것
     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동시에  알게 되었다. 그리
     고, 이때까지 그 유일한 일을 난 희망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그
     림자일 뿐이다. 희망의 그림자. 난, 아니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이 세계의 본질은 '절망'이다. 그  절망을 만든 것은 우리들  옆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 세상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단
     지 희망의 그림자만    존재할 뿐. 절망 속에 갇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글도 사랑도 꿈도 아닌 울음 뿐이다. 울 수밖에  없다. 고개를 숙
     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 수 밖에 없다.
        어제 술에 취해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달리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치원까지 내려갔다가 술에 취해 중부고속도로 위를 질주
     했다. 내 나이 스물 여섯.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희망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눈물 뿐이었다. 이 세상의  본질은 절망이며,
     그 절망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울음 뿐이다.

        02.
        '울음'으로서의 저항? 그럴 지도 모른다. 운다는 것에 소극적인 의
     미의 저항이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저항? 그렇다면, 과연  그 저항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면 역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명명할 것
     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말
     은 부르조아지들이 가난하지만 순결한  젊은 영혼들을 꼬드기기  위해
     만든 말일 뿐이다. 요즘 세상에 함부로 '고생'하면 큰 일  난다. 장애
     자가 될 수도 있고, 순결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며, 자칫하면  죽을 수
     도 있다. 그러니,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그리
     고, 돈을 벌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고생을 해야만  한다. '세상
     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지랄같은 소리다.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순
     결한 젊은 영혼이 살아갈 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으며, 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에서 돈을 벌어 편하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지 못한다. 돈이 없으
     면, 돈을 빌려서라도 돈을  마련해야 한다. 돈을 빌리려면,  변변찮은
     담보물이라도 하나 있어야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긴, 죽음을 각오해야지. 그러다 죽어도  책임지지 못해.
     고작 죽는 것뿐인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03.
        IMF라고 난리다. 그러나, 이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이상
     하다. 돈이 많은 사람은 계속 돈이 많다. 하지만, 돈이 없었던 사람은
     아예 폭싹 내려앉아버렸다. 몇 해전 운동권 후배들과 술을 마셨다. 난
     그때 이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게  하려면 아예 뒤집어 엎어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데, 이들은  집회 때면,
     쇠파이프와 짱돌과 화염병으로 무장한다). 그렇다. 뒤집어  엎지 못한
     다. 왜냐면, 인간이 뒤집어 엎을 수 있을 만큼 이 세상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맨날  '투쟁! 투쟁!'을 외친다. 난  그들의
     순진무구함이 역겹다.
        'YS체포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YS를 체포하면 어떻게  할까? YS를
     어느 대학 학생회실에 감금할까? 아니면, 검찰에 고발할  것인가? 즉,
     'YS체포대'는 정말로 체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냥 하
     나의 순진한 이벤트일 뿐이다.  그들은 맨날 '정권타도'을  외치는데,
     만약 그들의 소원대로 '정권'이 물러난다면, 어떻게 할까?  새로 내각
     을 만들고 헌법도 새로 고칠까? 즉,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점이다.
        내가 운동권에 대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의  팔할은
     순진한 신입생들이 눈에 보이는 불평등한 풍경에만 민감한  반응을 보
     이는 운동권 바보가 되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정
     작 중요한 것은 그 풍경 속에 감추어진 이 세상의 본질일 것이다.

        04.
        비가 내렸다. 나에게 소설을 가르쳐주신 한 선생님께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했다. 즉, 프랑스  혁명도 그
     런 것이라는 점이고, 4.19가 일어난 것도 그런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
     리 무수한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데모를 하더라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
     는다는 점이다. 정작 이 세상이 변하려는 기미가 보였을 땐, 누군가가
     온몸에 기름을 붓고 자살을 하거나, 고층빌딩에서 떨어져 내렸을 때뿐
     이라는 점이다. 그는 그것을 '혁명적 낭만주의'라고  평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혁명적  낭만주의는
     이성적이 아니라, 감정적이라는 것이며, 광기의 산물이다.  광기는 필
     연적으로 피를 부르게 마련이다. 피를 부르지 않게 하기  위해 이성적
     인 작업은 계속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서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나누어
     진다. 모던을 믿는 이들은 계속 이성적인 작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사
     람들이며, 포스트모던을 믿는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이성적인 작업이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알았으니, 이성을 버리고 광기를 수용하거나, 그
     러지 못할 바엔 아예 자살하는 편이 낫다는 사람들이다.

        05.
        내가 아는 건 별로 없다. 내가 아는 건 지금 비가 내리고, 창 밖으
     로 새소리가 들린다는 것뿐이다. 순간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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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지 못한 영혼 하나
또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으로
날아와 보잘 것 없는
절망의 흔적을 남긴다

"누가 우리를 위해 증언해 줄 것인가? 우리의 작품인가, 아니면 대체 무엇인가, 단지 ......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 그러나 사랑은 침묵이다. 우리는 모두 남모르게 죽어간다."
- 알베르 까뮈

몇 달만에 벗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모델이다. 그는 티브이에 나오기도 했으며, 곧잘 패션쇼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자유였다. 그는 그 자유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망가뜨리기로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에서 망가짐이란, '자본으로 온 몸에 떡칠하기'다. 일 년 전쯤, 그와 함께 강남의 술집과 호텔 나이트를 전전했으며, 새벽이면 이태원으로 나갔다. 지금 그는 술과 여자로 젊음을 탕진하고 있다. 오늘 전화기 속에서 그는 대뜸 나에게 "술 사라!"고 말했다. 그러나, 밤 10시가 지난 상태라 은행 현금인출기가 되지 않는 까닭으로 해서 그의 작은 희망을 들어주지 못하고 말았다. 아마 그가 자유를 꿈꾸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쯤 망가지지 않고, 잘 나가는 "스타"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몇 명의 여자가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을 지나갔고, 몇 명의 남자는 베낭을 메고 인도로 떠났다. 가끔 자신의 광기를 주체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 젊음과 만나기도 하고, 가끔 자신이 누구인가에 집착한 나머지 모든 것을 버리는 젊음과 만나기도 한다. 술에 취해 아스팔트 위를 기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 순간 허공을 비추는 별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던가를 난 기억하지 못한다. 술은 하늘의 별빛보다 더 위대한 것이다. 모든 기억, 모든 아픔들은 술 속에서 묽어지고, 술과 더불어 우리들에게서 멀어진다.

오늘 누군가 아이디 해지 신청을 했고, 오늘 누군가 우리집에 전화를 걸어 아직까지 딸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몇 년 만에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꺼내보았다. 책의 첫 여백에 적힌 글자들....

"내 사춘기 때 유일한 꿈은 사랑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 아직까지 사랑을 하지 못했다. 거짓으로 세상을 살아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일까. 활자의 틈 속에서 죽고 싶다. 영원히."
- 96.4.4. 涉.

혹시 꿈 속에서 꿈 속 허공을 나는 '검은새'를 만난 적이 있는가. 그 검은 새. 그는 우리들이다. 정처없이 아스팔트 위를 떠도는 90년대의 우리들. 그 위에서 상처 입어도 우리는 우리의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 단지 그 상처가 곪아가는 과정을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며 생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 밖에 없다.

어제 집을 나간 그녀와 오늘 해지 신청을 한 그녀에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소설책 첫머리에 놓인 詩人 안재찬의 산문을 들려주고 싶다. 턴테이블에 존 레논의 'LOVE'를 올려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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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바라기의 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서는 그 차거운 碑ㅅ돌을 세우지 마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
       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 날아 오르
       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 함형수咸亨洙. <<詩人部落>> 창간호. 1936.
         
          길을 가다 해바라기로 둘러쳐진  무덤을 본다면, 그대의 무덤인  줄
       알고 고개 숙여 그대를  그리워하겠나이다. 그리고, 파아란 허공  속을
       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저는 아직 꺼지지 않은 그대 꿈을  쫓아 산으
       로, 들로, 바다로 뛰어다니겠나이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길은  갈색
       보도블록으로, 뚝뚝 부서진 시어처럼  외로이 서있는 가로등과  가로수
       로, 멍한 눈빛으로 하루를 사는 행인으로 둘러쌓여있음을.
         
                              *                          *
         
          글을 쓰지 못한다는 무력감은 일주일 넘기고 있다(*  문화공장에 올
       리는 글이 요즘 쓰고 있는 글이 전부일 정도로). 시를  쓰던 선배가 죽
       었다. 서른이거나,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을 나이일 텐데, 그는  몸의
       통증을 느낀 지 하루만에 죽었다. 어제는 그의 遺作들을  읽었다. 그의
       시는 일종의 암호처럼, 시어와 시어의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그 거리
       사이에서 그는 아파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거리는  가까워질 수
       있었는데).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그 아픔의 거리를 즐기고  있었
       다. 그 먼 거리의 은유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도 날 버리고, 문학도 날 버렸다"라며, 먼 선배가 신문  한 귀
       퉁이를 장식하며 자살했다. 난 그녀를 알지 못한다. 아마 동문회나, 혹
       은 길 가다 우연히, 그렇게 옆을 스쳐지나갔을 지도 모르리라. 하지만,
       자살이라는 테마는 너무 가슴 아프다. 분명 그녀는 자신을 버린 사랑을
       향해 칼을 들었을리라. 그러나, 그 칼은 자신을 향했고, 상처  입은 채
       로 세상 이전으로 돌아갔으리라.
         
          가거라,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썩어서 공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
          (... ...)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
         
                             *                  *
         
          萬感이 교차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겨울도 아니고,  그렇다고
       봄도 아닌 날씨 탓인가. 내 몸뚱아리는 그것이 늦가을의 날씨라는 고집
       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날씨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날씨는  그냥
       날씨일 뿐임을.
         
          "詩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
       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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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릭 모디아노의 <<잃어버린 거리>>(김화영 역, 책세상)라는 소설을 읽다보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한 부류는 책을 쓰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한 부류는 책과 같은 인생을 살아감으로 해서,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야. 자네는 어디에 속할 것같나?" 라는 문장을 만난다. 한때 이 둘을 혼동했었다. 책과 같은 인생을 살아야만 책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책과 같은 인생일 뿐, 책은 아니다.

나도 김영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매력적인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 <도드리>를 읽고 '제법이다'라고 생각했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나를 --->>(문학동네)을 읽고 망가졌다. 송경아도 이 부류이다. 조경란은 그녀의 등단작 <불란서 안경원>을 텍스트로 문장연습을 한 경험이 있어,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녀의 단편은 살아남지 못했다. 온통 빨간펜이었으니. 아직 백민석은 읽지 못했다.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들도 바흐를 들었고, 모짜르트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모던했었는지도 모른다. 한국문학사를 보면 1950년대는 '암흑기'다. 뛰어난 작가들은 다 월북한 상태였고, 아직 김수영과 김승옥은 나타나지 않았으니.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민음사)을 읽으면서, 고진은 20세기초반 일본문학에 대해 이토록 명징한 글을 쓰고 있는데, 왜 한국은 그렇지 못한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의 근대문학시기에 한국은 무엇을 했는가? 식민지 상태였지만, 그로 인해 많은 명석한 지식인들이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절망을 몸에 새긴 채로 일본 유학을 했었다. 가끔은 유럽에 유학을 갔던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칸트와 헤겔, 마르크스, 엥겔스를 가지고 들어왔으며, 세잔느를 알았고, 바흐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 9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매우 낯선 이야기다.

                 *            *

프랑스로 그림 공부를 떠났다가 아예 붓을 버리고 이가 몇 된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떨린 가슴을 안고 렘브란트나 세잔느의 작품을 보러 루브르로 달려가고, 그들은 그 곳에서 '과연 내가 꿈꾸는 그림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처절한 물음에 봉착하게 되고, 끝내 붓을 버린다고 한다. 뒤샹도 그림을 버렸다. 아직 뒤샹의 모든 고민을 알지는 못한다. 그의 <<샘>>이라는 작품을 보고 있으면, 萬感이 교차한다. 근대 소설이 시작됨과 동시에 근대소설을 벗어나는 스턴의 <<트리스트람 샌디>>(*번역 되지 않았음. 번역이 되어도 재미없을 것같음)가 만들어졌고, 세잔느 이후로 현대미술이 시작되었다라고 본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뒤샹 은 아예 미술 그 자체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곤 붓을 버렸다. 뒤샹 이후의 작가들은 뒤샹이 그어놓은 미술의 경계선에서 왔다갔다 할 뿐이다.

               *                *

역시 플라톤은 대단한 놈이다. 그가 그어놓은 인간 본질에 대한 물음, '인간은 존재(being)의 세계에서 생성(becoming)의 세계로 추방되었다'는 말은 그가 죽고 난 몇 천년동안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헤겔도, 하이데거도, 아니 모든 철학자와 예술가는 본질적으로 플라톤주의자일 지도 모른다. 그건 자신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을 동일하게 만들기 위한, 고대 이후의 인간 사투를 가르쳐주는 한 단어일 것이다. 뒤샹이 그림을 버린이유는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표현한 작품의 불꽃이 하늘의 '별들이 발하고 있는 빛'과 같아질 수 없다는 절망에 대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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