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87

슬픔 속에서

끔찍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분노하며 소리치고 목놓아 울음을 터뜨린다. 왜 활주로 끝에 콘크리트 벽이 세워져 있었을까. 그것만 없었다만.  토요일 광화문에 나가서 행진을 했고 일요일 오전 끔찍한 사고 소식을 보았다. 기운이 없었다. 지쳐 있었다. 힘을 내어야하지만, 내지 못했다. 주일 미사를 빠지고 재활용분리수거를 하였다. 책을 조금 읽었고 커피는 마시다 말았다. 아이는 영어 숙제로 힘들어했지만, 나의 도움은 필요없다고 화를 냈다. 나는 온라인 서점에서 ADHD 관련 책들을 검색했다.  노력한다는 건 무얼까. 나는 과연 노력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신앙심이 깊었던 미켈란젤로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믿는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며 살았다. ..

결국 탄핵

선거 때마다 경제가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경제가 잘 되려면 정치가 제대로 돌아가고 기능해야 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왜 2번을 찍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서로 헐뜯고 비난하면서 정치를 망가뜨리려고 노력하는지 알 수 없다. 대통령 후보에 대한 소문들 대부분 거짓말로 들어났지만, 얼마 전 탑승한 택시 기사 아저씨는 그 거짓말을 아직도 믿고 있었다. 나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좋은 소문은 그냥 사라진다.  아직도 언론인들은 잘못된 프레임으로 야당 지도자를 교묘하게 편집한다. 계엄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차례 있었으나, 언론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진 적은 없다. 야당 지도자에겐 날선 질문을 던지면서 탄핵 당한 대통령에겐 질문 다운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야당 대표의 제대로 된 답..

내일은..

헬기 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창을 두드렸다. 살며시 아이의 방문을 열었다. 자주 방문을 잠그는 사춘기 아들이 방문을 잠궜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 위로 헬기 소리가 흘렀다. 계엄 속보를 보며 믿지 못했다. 그리고 계엄을 했다는 걸 사실임을 알았다. 소셜 미디어에는 국회의사당으로 모여 달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믿지 못했다. 하지만 헬기 소리가 들렸다. 여의도 근처라 국회의사당에서 들리는 헬기 소리임을 직감했다.  다음 날 아침에 지하철 역마다 장갑차가 있겠구나. 국회의사당에는 시체가 뒹굴겠구나 등등의 생각을 하며 뜬 눈으로 지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엄해제안이 통과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이마저도 국무회의를 통해 처리되어야 했다. 새벽에 처리되긴 했지만, ... 제 정신이 아닌..

기록. 2024년 12월 7일

기말고사가 있었다. 매번 등록만하고 수업을 거의 듣지 못하고 어떻게 수업을 들으면 여러 업무 탓에 시험을 치르지 못해 매번 졸업 이수 학점을 채우지 못했다. 몇 점 남지도 않았는데. 나는 생각이 많은 편이다. 전형적인 천칭자리다. 우유부단하여 결정이 느리다. 그리스 신화의 '파리스의 심판'에 등장하는 파리스라는 목동도 천칭자리다. 제우스조차 결정내리지 못하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해야하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나는 별자리가 천칭자리다. 아니면 그런 강박관념을 가지고 태어나는 바람에 모든 질문들에 대해 너무 신중하다 못해 우유부단하며 실행에 느린 경향을 지닌다고 평가받곤 한다.  이럴 땐 주위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수록 주위의 조언을 잘 듣고 바꾸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자..

계엄과 탄핵

애초에 나는 탄핵에 부정적이었다. 탄핵을 거론하는 이들은 이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할 수 있는,  아무 때나 가능한 어떤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비상 사태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아, 그런데 스스로 탄핵의 길로 들어서다니. 만약 계엄군의 국회 장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계엄해제안이 통과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 다음날 아침 국회의사당 앞에는 몇몇 주검이 있고 시민들이 다치고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최악의 경우엔 내란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윤석열 정권에 동조할까? 동조하는 군대와 그렇지 않은 지휘관이 있는 군대와 충돌한다면? 그러면 미군의 자동 개입이다. 우습지 않은가?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이런 생각을 하지..

불안과 스트레스, 그리고 위기

요즘 불안과 스트레스로 잠을 자지 못한다. 잠을 자지 못했다. 우리는 대체로 알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 어쩌면 행동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기에 모른다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이 점에서 나 또한 후회하고 반성한다. 노력해야 하지만, 마음도 몸도 예전같지 않다. 그저 아플 뿐이다. 나나 너나 우리나.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보면서, 저 무슨, '소 귀에 경 읽기'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냉소적일까. 얼마 전에 고향 어른들의 말들을 들으며 경악했는데, 그 쪽(경상남도)의 나이 드신 양반들은 아직도 이번 정권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다들 아직도 건강한 육십대 후반이거나 칠십대들이었다. 그러니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직도 지..

어항, 금붕어, 달팽이

2024년 11월 25일 업데이트. 문득 금붕어 생각이 났다. 하긴 가끔 생각난다. 저 금붕어들. 지금은 사라진 이마트 김포공항점에서 공짜로 받은 금붕어 두 마리. 야누스 같은 내 삶의 일부를 지탱하던 금붕어. 한 마리는 금방 죽었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몇 년을 같이 살았다. 몇 주 이상 집을 비워 두었는데도 그/그녀는 살아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요한 어둠이 주위를 감싸면 겨울인가 보다 하고 잠을 잔다고 했다. 그/그녀는 겨울잠을 잤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스탄불에 갔을 때도, 칼스루헤에 갔을 때도, 파리에 한참 가 있었을 때도 나를 반겨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물 위로 떠올라왔다. 그 때가 정확히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금붕어가 노는 모습을 참 이쁘다. 왜 마당 한 가운데를 파서 ..

내일보다 나은 오늘이 존재한다면,

미래란 중요치 않은 것이 되어버렸고, 신탁의 신에게 질문을 하는 것도 그만두게 되었으며, 별들은 이젠 하늘의 궁륭에 그려진 경탄할 만한 그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 때만큼 큰 희열을 느끼며 섬들이 흩어져 있는 수평선 위의 창백한 새벽빛과, 끊임없이 철새들이 찾아드는, 요정들에 바쳐진 서늘한 동굴들, 황혼녘에 무겁게 날아가는 메추라기떼를 바라본 적은 그 이전에는 결코 없었다. 나는 여러 시인들의 시를 다시 읽었다. 몇몇 시인들의 작품은 옛날보다 더 좋아보였지만, 대부분은 더 나빠 보였다. 그리고 나 자신이 쓴 시는 여느 때보다 덜 불완전한 것 같았다. -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 중에서  흔들리는 소음들도 가득찬 좁은 지하철 객차 안에서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나에게도 저랬던 오늘이 있었나 생각했..

문득, 그리움

가을이 왔다는 걸 알지 못했다. 바빴고 여유가 없었다. 스트레스가 심했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한강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누구에게도 추천을 받지 않았다.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의 르 끌레지오를 사랑했지만, 그보다는 밀란 쿤데라가 받을 것이라 여겼다. 모디아노가 받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하루키는 받지 못할 것이며, 오에 겐자부로의 목소리는 일본 속의 소수자들을 대변할 뿐이었다.   창원에 내려와 도서관에 잠시 들렸다. 도서관 창으로 숲이 보이고 가을이 보였다. 고향 집으로 가면서 노란 은행잎을 책 속에 넣었다. 추억이 떠올라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