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나이가 들수록 늘어나는 건 신중을 가장한 우유부단함과 배려를 가장한 겁 먹은 눈빛, 그리고 상처입는 것을 두려하는 소심스러움이다. 반대로 줄어드는 것도 있으니, 그건 열정이요, 희망이요, 도전이며, 뜨거운 사랑이다. 가끔 나이든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스무살의 내가, 지금의, 서른 다섯의 나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아웃룩을 정리하다가 읽은 글이 마음에 걸린다. 너무 걸린다. 내가 변해야 한다. 내가.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김정남 최근 나는 아주 오랜 방황 끝에, 남아 있는 생에 지침이 될 수 있는 좋은 ‘말씀’ 하나를 찾아냈다. 이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사원에 묻힌 어느 성공회주교의 묘비명으로 쓰여져 있는 글이라고 한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 무한한 상상력을 가졌을 때, 나는 세..

영화

영화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몇 명의 감독은 좋아한다. 왕가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로베르 브레송, 장 뤽 고다르. 하지만 영화는 예술이 되기에는 너무 현실적이었다. 아니 현실적 여건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끝내 현실에 굴복하고 마는 양식이다. 예술가 1인의 작품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작품도 아니다. 결국 감독과 주연 배우 몇 명의 작품일 뿐이다. 이런 생각이 깊어지자, 영화 보기를 그만 두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내가 영화를 좋아하던 그 무릅, 영화소년소녀들의 열렬한 우상이었다. 그를 통해 영화를 알게 되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가 지지했던 '달은 ... 해가 꾸는 꿈'의 박찬욱은 세계적인 감독이 되었지만, 그는 이제 영화소년소녀들의 열렬한 우상도 아니고, 그..

조승희 씨 누나의 사과문 전문

KBS 민경욱 미 위싱톤 특파원의 메일링(mailing)를 받고 있다. 가끔 업데이트되지만, 저널에 소개되지 않는 소식이 담겨 있어, 내가 받아보는 그 많은 메일링 중에서도 추천해주고 싶은 메일링 중 하나이다. 얼마 전에 온 메일인데, 여기를 방문하는 이들도 같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여기 그대로 옮긴다. 버지니아공대 사건에 대한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기원을 해본다. 민경욱 특파원의 위싱톤 리포트 http://news.kbs.co.kr/reporter_column/minkw/ 원문의 주소는 아래와 같다. http://news.kbs.co.kr/bbs/exec/ps00404.php?bid=134&id=824&sec= 버지니아 공대에 다녀왔습니다. 단지 워싱턴 지국에서 비교적 가까..

뜬 구름같은 봄날

화창한 봄날의 연속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전에 meeting 하나, 오후에 meeting 하나. 다음 주까지 제안서 하나. 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뜬 구름 같은 내 마음. 뜬 구름 같은 내 사랑. 뜬 구름 같은 내 삶. 너무 뜬 구름 같아서, 뜬 구름 같은 게 끼이는 것이 두렵고 남들은 그 뜬 구름을 뿌리깊은 나무로 잘도 만들던데, 나는 영 재주가 없다는 생각에 두렵고, 두려운 나머지 뜬 구름 보자마자 힘들어 한다.

흰 밤

어제 날이 너무 좋아, 지나가는 말로, 미치기 좋은 날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밤에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잠시 백석의 시를 떠올렸다. 그랬다. 그랬다. 흰밤 백 석 옛성城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 1935년 11월 '朝光'

내 마음의 비

Tacea la notte placida(leonora) - Verdi, Il trovatore 비 오는 날의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 마리아 칼라스. 내 마음의 비를 씻겨 줄 수 있을까. IL TROVATORE - Verdi - Anvil Chorus - Stride la vampa 06:02 "Anvil Chorus" and "Stride la vampa" (Fiorenza Cossotto as Azucena) from Verdi's opera 'Il Trovatore', conducted by Herbert von Karajan. (Vienna, 1978) MARIA CALLAS - D'amor sull'ali rosee - IL TROVATORE - Verdi 09:24 The soprano Ma..

정신 질환과 한국인

버지니아공대 사건으로, 그나마 올라가고 있던 '한국'의 이미지가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원래 좋지 않았기 때문에, 떨어지더라도 별반 달라지 않으려나. 관련 정부부서에서 국가 이미지가 떨어질 것이라고 불안해 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국가 이미지의 기반이 취약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가령 프랑스나 영국이었다면, 국가 이미지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 관련기사: 한국도 충격 외교부 심야 비상회의 `국가 위상 타격 우려` ) 이번 사건의 범인의 행동은 정상적이지 않다. 분명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부모는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성격이 나쁜 아들을 멀리 했었을 것이다. 한인 사회에서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는 건 숨겨야할 종류의 것이었..

화요일 아침

술 한 잔에 외로움을, 술 한 잔에 미래를, 술 한 잔에 희망을, 술 한 잔에 추억을, 술 한 잔에 그리움을, 술 한 잔에 사랑을, 술 한 잔에 그녀를, 술 한 잔에 바램을, 술 한 잔에 상처를, 술 한 잔에 아픔을, 술 한 잔에 슬픔을, 술 한 잔에 안타까움을, 술 한 잔에, 술 한 잔에, 술 한 잔에, ... ... 이런 식으로 쌓아가다보면 알코올 중독자 되는 건 시간 문제겠지. 아마 그럴 거다. 어제 술을 마셨고 저렇게 술 한 잔, 술 한 잔, 쌓아가다 보니, 참, 인생이 난감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길. 거리가, 하늘이, 나무가, 대기가, 옥상이, 그늘이, 그대 얼굴이, 내 마음이 젖어있었다. 내 꿈은 내가 바라는 누군가의 마음 속으로 내 마음이 젖어드는 것. 그렇게 젖어들어 습기 가득한 축축한 계절을 보내는 것. 출근길. 발에 대지가 머금은 물기가 빨려 올라오는 듯하다. (그만큼 난 건조했던가) 사무실에 퍼지는 누구의 누가 연주한 것인지 알듯 모를듯한 음악이 연주되고 뒤이어 들리는 익숙한 라디오 DJ의 목소리. 비가 내려, 그 축축함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모든 소리들은 아름답다. 귀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마음은 적당히 루즈해진다. 뉴욕에서 사는 친구의 메일 끄트머리에 적혀있는 한마디. 'Call me when you're drunk.' 그러고보니, 지난 해 이른 봄 이후 술 마시면서 전화한 적..

인생은 매우 슬픈 익살 - 루이지 피란델로

"생각컨대 인생은 매우 슬픈 익살이다. 왜,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 그 욕망이 어디서 오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우리는 하나의 현실을(저마다 다른 현실을 각자 하나씩) 창조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을 속이려는 욕망을 우리 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따금 이 현실이 헛되고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예술은 자신을 속이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쓰라린 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 연민 뒤에는 반드시 인간을 자기 기만으로 몰아넣는 운명의 잔인한 비웃음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 루이지 피란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