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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책들의 우주/문학 +232


이성적인 화해 Les accommodements raisonnables 

장 폴 뒤부아(지음), 함유선(옮김), 현대문학 





출처: http://lci.tf1.fr/culture/livres/2008-08/le-nouveau-jean-paul-dubois-est-savoureux-4873947.html 




바로 그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를 고려하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또한 집중해서, 현재에 그대로 머무르는 능력이었다. 특히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아닌 걸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육체의 살결도 배의 연한 살도 손가락의 기교도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어느 정도 흥분이 지나가자, 우리의 신체를 연결하는 뼈 마디마디가 모두 별 차이가 없어졌다. (안나든 셀마든) 누구의 육체든. 그렇다. 만일 내가 무엇인가에 이르고 싶다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그런 방식이었다.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부드럽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요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오래 모든 걸 계속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 307쪽 



우울증에서 벗어난 아내와의 섹스. 폴은 '누구의 육체'든, 그렇다며, 자신을 뒤돌아본다. 우리는 이 소설 내내 어떤 궁지에 처한 것으로 보이는 중년의 프랑스 남자를 만나지만, 그가 왜 그 지경에 몰렸는지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변화, 우울증에 걸린 아내, 도망치듯 프랑스를 벗어나 미국으로 온 주인공 폴. 


몇 해 전 나에게 놀라운 감동을 안겨주었던 <<프랑스적인 삶>>과 달리, <<이성적인 화해>>는 밋밋하고 까닭없는 방황이 이미 진행된 채로 소설은 시작했고 시작과 동시에 그 결말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결국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 


스크립터 닥터(script doctor)인 폴의 아버지 스테른, 아내 안나, 그리고 자녀들,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건너간 헐리우드의 휘트먼, 셀마, ... 폴의 주위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들, 폴과의 대화, 교감을 통해 소설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 한국에 사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그렇다고 공감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장 폴 뒤부아는 인물에 대한 사려깊은 태도와 쓸쓸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회고조의 문장으로, 내가 읽었던 <<프랑스적인 삶>>에서처럼 뒤부아만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작 <<프랑스적인 삶>>에 비한다면, 이번 소설을 평이했다. 


도리어 소설보다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도망칠 수 있었던 폴이 부러웠다. (작중 인물의 환경을 부러워하다니!) 툴루즈에서 LA로.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한 채, 스스로 요양소로 들어간 아내 안나. 그 사이 폴은 안나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셀마를 만나 육체적 사랑을 속삭인다. 하지만 안나가 우울증에 빠져있듯, 셀마는 마약에 취해 있고, 파티를 할 때, 섹스를 할 때, 그저 쓸쓸했다. 이성적인 화해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방황 끝에 제 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그런 희망을 꿈꾸는 걸까. 셀마와의 짧은 밀애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안전한 방황인 셈이다. 안나는 미국으로 오지 않았고 셀마는 프랑스로 가지 않는다. 갈등은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우리가 왜 변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변화란 의미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테니 말이다. 


장-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은 권하지만, 이 소설은 권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이미 읽은 이들에겐 이 소설 몇 배의 감동을 <<프랑스적인 삶>>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보수적인 기준에서 권하지 않겠다는 뜻일 뿐, 이 소설은 여느 작가들의 소설들보다는 훨씬 좋다. 






이성적인 화해 - 6점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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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 맨 




아 - 입 벌려요.


너는 마른 휘파람을 불기 위해 입술을 모았고,

나는 그게 지겨웠어.

슈가 맨, 벤츠를 사 줘.


너는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훔쳐 왔지.

꽃집에서 버린 시든 꽃을 주워 왔지.

아울렛에서 싸구려 팬티를 사 왔지.

나는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넣었어. 


슈가 맨, 너한테 없는 것을 줘.

다이아몬드 - 

은빛 배 - 

파리로 날아가는 전용 비행기 - 

번뜩이는 빌라의 지붕 - 

금빛 넘실거리는 전자 오르간 - 


아 - 입 벌려요.


너는 녹아 사라지고,

깊게 썩은 입이 말하기 시작했어. 

가엾은 슈가 맨.

너는 노래방에서 ... ... 


- 장정일, <세계의 문학>, 2015년 여름호 



도서관에서 문학잡지를 읽는다. 밖은 낮아지는 구름, 어두워지는 대기, 사랑을 꿈꾸지 않는 젊음, 어긋나버린 시간들로 채워지고, 나는 흔들리며 가라앉는 마음 끝자락을 꽉 부여잡곤, 오래 전에 잃어버린 내 시간들의 흔적을 더듬거린다. 장정일. 그도 이젠 소년이 아니고 나도 이젠 문학 습작생이 아니다. 


구립 도서관을 채운 사람들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부터 은퇴한 후 책읽기로 시간을 보내는 늙은이까지, 책은 세계의 비밀을 담은 어떤 것이 아니고, 도서관은 숨소리까지 죽인 독서광들의 아지트도 아니다. 그저 형편없어져 가는 도시의 쓸쓸하고 슬픈 뒷골목같은 곳. 


계간지에 실린 시들을 읽으며, 아, 내가 모르는 시인들이 이렇게 많구나, ... 아, 이 시인은 아주 오래 전 술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 ... 시인과 술을 마시지 못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음을 깨닫는다. 하긴 술을 마시며 시에 대해, 문학에 대해, 예술에 대해 이야기해 본 게 몇 년 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겨우겨우 루이지 피란델로의 소설,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을 다 읽으며, 마티아 파스칼의 철부지 같은 모험도 19세기에나 가능한 일임을, 세상의 우연과 신비, 슬픈 가능성마저도 사라졌음을, 식어버린 커피 속에서 첨벙거리며 탄식했다. 


다시 한 주일이 시작되고, 나는 야근에, 스트레스에, 쫓기듯 시간을 보낼 것이다. 빨리 이 가을도 가고, 이 겨울도 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좀 쉴 수 있을 것같다. 그 전까진 최선을, 사력을 다해 끝을 내야 할 목표가 존재하니... 그 전까진 무너지지 말아야지. 십 수년 만에 장정일의 시 읽으며, 늙지 않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늙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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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만이네요 ㅎ

    전 제가 어렸을 때랑 똑같아서 지겨운데 ㅋㅋㅋ 어른처럼 생각하고싶어요.

    • 오랜만!이예요. ^^

      실은 어른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다만 어른처럼 생각한다는 건 주위를 좀 더 신경쓴다고 할까요. 이게 조금 달라질 뿐, 나머진 그대로인 것같아요. 하긴 그 사소한 변화가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오는 것이긴 하지만요. ~...

    • 그 변화가 좋은 건가요 아님 나쁜건가요. 아님 경우에따라 다른 건가요? 제가 요즘 그게 궁금해서요.

      굳이 위 글의 맥락이랑 상관없이 그냥요...

    • 다들 겪는 변화이니,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예요. 좋게 받아들이면서 젊은 시절의 열정이나 가치를 계속 지켜나가는 게 제일 좋겠죠. ~ 힘들긴 하지만요. ~ : )


사랑이라는 건 ... 






나는 너를 만나지 못했으니, 내 산 새며, 내 산 꽃이며, 내가 산 사슬도 보지 못했지. 그리고 너는 나를 영영 만나지 않았지. ...  


진짜는 어렵다. 그게 사랑이든, 문학이든, 삶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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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should have died hereafter;

There would have been a time for such a word.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Creeps in this petty pace from day to day

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The way to dusty death. Out, out, brief candle!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 셰익스피어, <<맥베스>>, 5막 5장 중에서. 맥베스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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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안 살았고 뭐 대단한 업적은 아직 없는 삶에도....
    저런 독백과 조금이라도 걸치는 고민을 했던 날이 있게 됐다는게 놀랍습니다.

    저런 고뇌가 그저 '아프니까 청춘이다' ㅎ 류의 추억으로 희화될 날이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 ㅋㅋㅋ

    저도 나약하니까영 ㅎㅎㅎ ㅠㅠㅠ

    • 저런 독백까진 아니겠지만, 충분히 힘들었던 인생도 돌이켜보면 덜 힘든 것일 수도 있어요. 뭐, 반대일수도 있죠. 하지만 나이가 들면 상처도, 아픔도, 슬픔도, 쓸쓸한 추억이 되기 마련이고, 그렇게 강했던 이들이 속으로는 끝없이 나약했다는 걸 나중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기도 해요. ^^





물 



프랑시스 퐁주 




  나보다 더 낮게, 언제나 나보다 더 낮게 물이 있다. 언

제나 나는 눈을 내리깔아야 물을 본다. 땅바닥처럼, 땅

바닥의 한 부분처럼, 땅바닥의 변형처럼.

  물은 희고 반짝이며, 형태 없고 신선하며, 수동적이라 

못 버리는 한 가지 아집이라면 그것은 중력. 그 아집 못 

버려 온갖 비상수단 다 쓰니 감아 돌고 꿰뚫고 잠식하고 

침투한다.

  그 내면에서도 그 아집은 또한 작용하여 물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순간순간 제 형상을 버리고, 오직 바라는 것은 

저자세, 오체투지의 수도사들처럼 시체가 다 되어 땅바

닥에 배를 깔고 넙죽이 엎드린다. 언제나 더 낮게, 이것이 

물의 좌우명. '향상(向上)'의 반대. 


(역: 김화영)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오랜만에 읽는 이름. 프랑시스 퐁주. 물에 대한 시다. 물은 정말 그렇다. 그렇구나. 



(6월 10일. 어딘가에서) 



하지만 물처럼 살지는 못하리라. 물은 물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별은 별대로. 그렇다면 나는, 나는 어떻게? 


다시 시집을 읽어야겠다. 나이가 들어 다시 시집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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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시몬느, 눈은 그대의 목처럼 희고,

시몬느, 눈은 그대의 무릎처럼 희다.


시몬느, 그대의 손은 눈처럼 차고,

시몬느, 그대의 가슴은 눈처럼 차갑다.


눈은 볼의 키스에만 녹는데,

그대 가슴은 이별의 키스에만 녹는가.


눈은 소나무 가지에서 슬픈데

그대 이마는 밤빛 머리칼 밑에서 슬프구나.


시몬느, 그대의 동생 눈은 정원 속에서 잠들고 있다.

시몬느, 그대는 나의 눈, 나의 사랑. 


- 레미 드 구르몽Remy de Gourmont (1838 ~1915)  

(오증자 옮김, 정우사, 1976년)  






퇴근길, 길가 헌책방엘 들렸다. 알라딘이 아니라 진짜 헌책방. 그리고 이 책을 들고 나왔다. 오증자 교수. 한때 성실했던 프랑스문학 번역가였지만, 지금은 그녀의 번역서는 거의 없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그녀의 번역작인데, 그녀 남편은 유명한 연극연출가 임영웅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출판되고 있는 걸까. 


정말 오랜만에 구르몽의 시를 소리 내어 읽었다. 소리 내어 읽으니, 술 생각이 났다. 나이가 들어도 좋은 시 읽을 때, 술 생각 나는 건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요즘 사람들은 구르몽의 시를 알까. 쓸쓸하기만 한 6월 밤이다. 나라는 엉망이 되었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로 변해간다. 이제 시인도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소문이 들린다. ... ... 나는 어쩌지. 이별의 키스에만 녹는 가슴을 가진 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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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오자키 마리코 진행/정리, 윤상인, 박이진 옮김, 문학과 지성사 



이런 인터뷰집은 감동적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 인터뷰를 위해 그가 냈던 소설들을 다시 읽었고(거의 50여 권에 이르는), 인터뷰를 진행한 오자키 마리코는 질문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은 지 십 수년이 지난 나에게도 이 책은 <<개인적 체험>>, <<동시대 게임>>, <<조용한 생활>>을 읽던 그 때 그 기분에 빠져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도리어 최근 들어 오에 겐자부로를 읽지 않았구나 하는 후회까지 들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목적은 분명해 보인다. 소설가의 일반적인 인터뷰집이라고 하기엔 문학(이론)적이고 다양한 작가들-일본 작가뿐만 아니라 전 세계 작가들-이 등장하고 오에 겐자부로 소설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갖추고 있어야만 제대로 읽을 수 있다. 

그는 한 때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내가 예전에 쓴 글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의견을 인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 때 부정적이었음을 인정했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노벨문학상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나는 <<해변의 카프카>> 이후 하루키를 읽지 않았다.) 


외국어에서 받아들인 것을 일단 메이지 이후의 일본 문장체로 전환하고 그런 후 나의 소설 문장으로 만들어 가지요. 
그런데 바나나 씨나 무라카미 씨는 외국 문학을 자신의 육체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육체로부터 문어체가 아니라 오히려 구어체, 일상 회화와 같은 문체로 자연스럽게 방출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내 소설의 문어체, 즉 쓰기 언어적인 특질이 과거의 것이 되고 그 다음 단계로 살아있는 구어체 문장을 두 작가가 만들기 시작했지요. 더구나 무라카미 씨는 요즘 들어 자신의 구어체를 새로운 문체로 향상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확고히 굳히고 있어서 세계 곳곳에서 작품들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신선한 눈부심은 나로서는 달성 불가능한 것이지요. 
- 264쪽 


문체에 대한 이야기다. 외국문학에서 영향 받았음을 숨기지 않고 외국문학에서 유래한 문장을 일본어 문장으로, 그리고 그만의 독자적인 문체로 만들어나가고 있음을 밝힌다. 그렇다면 한국어 문장이라는 건 뭘까? 


역자가, 예를 들어 엘리엇의 시상 속으로 깊이 집중해 들어가서 엘리엇을 일본어로 자기 안에서 공명시키기 위해서는 이 단어 밖에 없었구나 ... ... 그런 사정을 내가 알 수 있을 정도의 번역을 보면, 그것을 옆에 두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나의 언어가 조금씩 솟아나옵니다. 
- 274쪽 


한국에서는 이제 번역 시집은 팔리지 않고 아예 새로운 시집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독자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 종사자들의 문제가 아닐까. 동시에 세계의 다양한 언어들로부터 영향받아 우아하게 변할 수 있었던 한국어 문장은, 번역 문학의 영향이라는 문제를 도외시한 채로, 정체 불명의 시장(market) 언어로부터 몰락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들은 번역 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번역 문학에 대해, 번역된 문학의 문장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던, 도리어 어떤 소설가의 소설을 두고 번역투의 문장이라며 비난했던. 그러니 좋은 번역문학가가 드물고 좋은 번역에 대한 관심도 없다. 아예 언어에 대한 사랑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어와 문체가 된다. 

소설가로서 살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자신의 문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아닌가. 다른 하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재능이 있는가, 없는가. 
- 52쪽 

 
오에 겐자부로는 그가 영향을 받았던 많은 작가들을 언급한다. 윌리엄 블레이크, 맬컴 라우리, 토마스 엘리엇, 오든 등 그는 많은 외국 문학 작품들과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면서도 일본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동시에 묻어난다. 실은 프랑스어와 영어가 자유로운 것이 그가 세계 문학으로부터 다양한 영향을 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지금 가장 주의하고 계시는 것은? 
"와타나베 가즈오 선생님이 말씀하신 '스스로의 믿음에 빠진 기계가 되는' 것. 노년이란 정말로 그런 방향으로 하락해가는 듯해서요." 
- 416쪽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일본 천황이 주는 문화훈장을 거부했다. 지금도 그는 문학가로서 할 수 있는 바 현실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가 한 때 석방을 위해 노력했던 시인 김지하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한국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모두 '스스로의 믿음에 빠진 기계가 되는' 듯하다. 오에 겐자부로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년의 작품late work'를 자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까. (* 에드워드 사이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마티)


"고향을 잃은 망명자는, 언제까지나 안주하지 않고 중심을 향해 비판하는 힘을 지속한다." - 에드워드 사이드 


아마 올해도 노벨문학상 발표 때가 되면 한국의 몇 명 작가들 집 앞으로 기자들이 몰려갈 것이다. 하지만 몰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 부끄럽다고 여긴다. 한국 사회는 날로 형편없어지는데, 그 사이에 한국 문학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작년 슬픈 사건 때 잠시 들렸을 뿐... ... 그것도 문학계의 원로들은 사라진 자리였다. 오에 겐자부로가 칠순의 몸을 이끌고 나와 원전 반대를 말하던 것과는 사뭇 대비된다. 


마지막으로 오에 겐자부로가 어학 공부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 걸 옮긴다. 영문학과를 다니고 있긴 하지만, 외국어 공부는 참 어렵다. 다시 마음을 잡아야겠다. 


어학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사전을 세심하게 찾아보는 것.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시에서도)은 카드에 옮겨두고 외워버릴 것. 붉은 줄을 그어둔 책을 시간이 지나 몇 번이라도 다시 읽는 것.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시에서도)은 자신의 일본어로 번역해보는 것. 같은 작품을 두 가지 외국어로 읽어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 10점
오에 겐자부로 지음, 윤상인.박이진 옮김, 오자키 마리코 진행.정리/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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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작가에 대한 견해는 항상 보류하는 저이지만...

    마지막에 외국어 공부부분만큼은 정말 최고의 공감력을 이끌어 내는 좋은 조언을 해준 작가이군요 !!!!

    • 오에 겐자부로, 아베 코보, 특히 나쓰메 소세키는 정말 대단한 작가들입니다. 아직 야스나리는 읽지 못했는데, 올해 한 권 정도 읽어볼까 하고 있고요. 몇 명의 일본 작가들은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작가들이 더 분발해야 되는데, 그러기엔 출판 시장이 작고 독자의 층도 너무 얇죠. ㅜㅜ



"예, 그럴 겁니다! 백작은 이른 아침, 정확히 8시 반에 일어났다. ... ... 백작 부인은 목 둘레에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라일락 꽃무늬 드레스를 차려입었다. ... ... 테레지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 ... 루크레지아는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 ... 오, 세상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있습니까? 우리는 한줄기 태양광선을 채찍 삼아 쉼 없이 회전하는 보이지 않는 팽이 위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연유도 모른 채,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하면서, 우리에게 때로는 더위를 때로는 추위를 선사하고, 혹은 쉰 번쯤 혹은 예순 번쯤 회전한 후에는 죽음을 - 대개는 어리석은 짓만 범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 선사하기 위해 그저 그렇게 돌고 도는 데에 재미 붙인 양 미친 듯이 회전하는 모래 알갱이 위에 우리가 놓여 있는 것 아닐까요? 신부님, 코페르니쿠스가, 바로 코페르니스쿠스가 휴머니티를 더는 회복할 수 없을 만치 파괴시켰습니다. 우리가 이룬 그 모든 잘난 발명과 발견들로 인해, 어느덧 우리 자신이 무한히 작은 존재라는 새로운 개념에 서서히 젖어 들었어요. 그러고는 스스로를 우주 속의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자각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들 개개인의 불행뿐 아니라 인류의 총체적인 불행에까지요.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제 한낱 버러지들의 이야기에 불과해요. 앤틸리스 제도의 작은 재난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별거 아닙니다. 그 폴란드 참사회원의 주장대로, 아무런 목적 없이, 돌고 도는 데 진력이 난 가엾은 지구가 다소 인내심을 잃고 급기야 제 몸의 무수한 출구 중 한 곳에서 불꽃을 좀 뿜어내고 말았지요. 대체 무엇이 그토록 지구를 분노케 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지금보다 더 한심한 적이 없었던 인간들의 우매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만두죠. 햇볕에 그을린 무수한 버러지들. 그래도 우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 루이지 피란델로, <나는 故 마티아 파스칼이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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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달력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이제 우울한 벚꽃은 하얗게 썩어버렸다

마차는 덜컹덜컹 먼 곳을 달리고

바다도 시골도 고요한 공기 속에서 잠자고 있다

어쩌면 이다지도 게으른 날일까

운명은 연달아 어두워져 가고

쓸쓸한 우울증은 버드나무 잎 그늘에 흐려져 있다

이제 달력도 없다 기억도 없다

나는 제비처럼 홀로서기를 해, 그리하여 신기한 풍경 끝을 날아가겠다

옛날의 사랑이여 사랑하는 고양이여

나는 하나의 노래를 알고 있다

그리하여 먼 해초를 태우는 하늘에서 짓무르는 것 같은 키스를 던지겠다

아마 이 슬픈 정열 이외는 그 어떤 단어도 알지 못한다



- 하기와라 사쿠타로(지음), 서재곤(옮김), <우울한 고양이>, 지만지 

*   *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 朔太郎, 1886 ~ 1942)의 시를 읽는다. 사쿠타로도 오랜만이구나. '쓸쓸한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읽곤 아, 우울증은 쓸쓸했구나 라며 작은 소리로 되뇌었다. 젊은 시절의 사쿠타로도 꽤 쓸쓸했나 보다, 하는 생각도 잠시, 그의 말년은 일본주의자로 점철되어 있다. '일본 근대시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으나, 한국에 소개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1923년 시집, <우울한 고양이>



1924년의 하기와라 사쿠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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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지음), 김난주(옮김), 바다출판사 




1.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

2. 가족, 이제 해산하자

3.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4.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5.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6. 신 따위, 개나 줘라 

7. 언제까지 멍청하게 앉아만 있을 건가 

8.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9. 청춘, 인생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다 

10.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 이 책의 목차다. 정말 이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을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도 이십 여년이 지났다. 그의 소설, 투명한 서정성이랄까, 그런 느낌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의 산문은 거침없다.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문장과 달라, 다소 의외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런 각오로 소설을 써야 된다는 점에서 도리어 감동적인 면까지 있다. 그런 면이 잘 드러난 산문집은 <소설가의 각오>(김난주 역, 문학동네)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이 산문집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도 거침없다 못해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식상하다고!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나 '가족, 이제 해산하자'는 루소의 <사회계약론> 초반에 언급된 가족 사회, 즉 필요에 의한 계약 관계로만 유지된다는 것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다. 국가가 국민에게 관심 없는 건 다 아는 이야기고 직장인이 노예라는 거나 애절한 사랑에 대한 내용도 다 아는 내용이긴 매 한가지다. 


그런데 이런 식상한 이야기가 마음을 흔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이 아니라, 마치 술자리에서 인생 선배가 말하는 느낌이랄까. 우리들은 종종 '알아, 그래 알고 있다고'라고 습관처럼 말하지만, 알고 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알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전부이지 않은가.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적어도 인생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살아볼 만한 것이 된다는 점을 깨닫기 위해서라도.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 8점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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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루야마 겐지
    라는 이름 잘 기억해 둘께요
    감사합니다.

    • 이 산문집보단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들이 좋습니다. ~ 산문집은 <소설가의 각오>가 이 책보단 나아요. 그의 소설은 참 서정적인데, 그의 산문은 직설적입니다. ~ 너무 직설적이라서 의외라는 느낌을 읽을 때마다 받아요. ㅎㅎ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앤드루 포터 Andrew Porter (지음), 김이선 (옮김), 21세기북스 

http://www.andrewporterwriter.com/ANDREW_PORTER/Andrew_Porter_-_Writer.html




연거푸 영어권 작가들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줌파 라히리, 앨리스 먼로, 그리고 앤드루 포터. 그들에게서,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차이보다 보이지 않는 공통점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사건들과 인물들을 사이에 서서, 그 숱한 감정들에 휩쓸리지 않으며, 쓸쓸한 냉정을 유지하며, 아파하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사랑을, 혹은 미래를 믿으며 살아가는(남는) 것... 어쩌면 21세기 초반 동시대 단편들이 가지는 특징일까.  


그리고 앤드루 포터에게서는, 사건 속에 있지만, 사건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판단내리지도, 결정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과 만나게 된다. 


절망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희망적이지도 않은 모습. 그렇게 그저 사라질 뿐인 우리들의 모습. 한때 마음 속 깊이 사랑했지만(아니면 사랑이 아닌 어떤 사랑인지도 모를), 단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던 불륜의 연인처럼. 



로버트의 와인을 마시면서 거기 어둠 속에 앉아, 결국, 어쩌면 몇 시간 동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결국에 나는 떠나야 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 131쪽 



소설 속에선 아직 추억으로 펼쳐지지만, 끝내 망각될 흔적이다. 


서로에게 입히는, 혹은 스스로 입는 상처에 대해 알지만, 아는 것과 그 상처를 치료하는 것, 그 상처에 반항하고 저항하는 것은 무관하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서로 다르고, 이제 만나지도 않는다. 아는 것은 그저 아는 것일 뿐이고 움직이는 것은 그저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빛과 물질은 다르고, 빛은 물질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빛이 한 번도 가 닿은 적이 없거나 물질이 빛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알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부정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그러나 견디기 힘든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무섭고,이미 떠나버린 그가, 그녀가 내 곁을 떠났음을 공식적으로 알려오는 것이 두려워, 내가 먼저 떠나는 것으로 꾸미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믿지만, 이젠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니다. 포스트모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 조금의 노력으로도 실체를 알 수 있음에도, 그래서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부정하는 것. 사랑 앞에서 사랑을 부정하는 것. 미래 앞에서 과거를 핑계삼아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 앤드루 포터의 소설들은 휴머니즘을 버리지 않지만, 휴머니즘 앞에서 한없이 주춤거린다. 그는 무척 힘들게 이 소설들을 썼을 것이고 지금도 참 고통스럽게 글을 쓰고 있을 게다. 


주춤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21세기의 도시는 우리에게 생의 열정 대신 병든 마음까지 치료한다는 정신의학과 배 고프면 언제든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편의시설들을 가져다 놓았으니,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나, 그걸 알고 있으나, 그것을 모르는(외면한) 상태다. 


끝없이 주춤거리다, 주춤거리다, 죽을 생이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못할 생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8점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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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세계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지음), 황병하(옮김), 민음사 (보르헤스전집1)





리타 기버트: 새로운 세대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보르헤스: 아니요. 그리고 저는 여타의 사람들에게 그 어떤 충고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내 인생조차도 겨우 간신히 꾸려왔으니까요. ... ... 나는 약간 표류하며 나의 삶을 살았지요. 



69세의 보르헤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충고를 할 수 없음,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 ... 


지난 설 연휴 읽었는데, 이제서야 간단하게 리뷰를 올린다. 그 사이 이 소설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보르헤스의 첫 작품집이다. 


직역하면 <오욕의 세계사>라고 부를 수 있는 보르헤스의 첫 작품집 <불한당들의 세계사>는 이후의 그의 소설 세계를 가늠할 많은 특징들이 씨뿌려져 있는 묘판과도 같다. (123쪽) 


역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문학 연구자에게 흥미롭겠지만, 이제 문학을 떠나 있는 나같은 독자에겐 호소력이 없다. 보르헤스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이 소설집은 그다지 재미 없었다. 보르헤스 팬들에겐 의미 있겠으나, 보르헤스의 세계를 제대로 알기엔 <픽션들>이나 <알렙> 같은 다른 소설집이 나아 보인다. 


(간단하게 더 언급하지만, 이 소설집은 일종의 재-쓰기로 이루어진다. 이미 책이나 신문 등으로 알려진 불한당 이야기를 보르헤스는 자신의 관점으로 다시 단편소설로 쓰고 있다. 하지만 첫 작품집이라는 점에서 보르헤스 특유의, '메타-네러티브 Meta-Narrative'의 형식은 흔적으로만 드러날 뿐, 본격적이진 않다. 이 점에서 역자인 故 황병하 교수는 '씨뿌려져 있는 묘판'이라는 표현을 쓴다.)


 





불한당들의 세계사 - 8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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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도정일(지음), 문학동네 





도정일 교수의 산문집을 읽었다. 다소(혹은 매우) 실망이다. 여러 일간지와 저널에, 마치 마감 시간에 쫓겨 쓴 듯한 짧은 글들의 모음이기 때문이고 대부분 지면에 실린 지 꽤 지났다. 다만 저자가 워낙 유명한 지라, 글 읽는 재미가 없다거나 형편없진 않다. 도리어 다른 책들보다 훨씬 낫다. 글들 대부분 짧고 금방 읽힌다. 대신 깊이 있는 통찰을 느끼기엔 글들이 너무 짧고 그 때 그 당시에 읽어야 하는 시평時評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90년대에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떠나 서글픔마저 느끼게 만든다. 옛날 글 읽는 느낌이 이런 걸까. 몇몇 인용문들은 기억해둘 만했고 다소 긴 분량을 가진 몇 편의 글은 충분히 읽을 만했다. 


그러나 도정일 교수의 진면목을 느끼기엔 아쉬움이 많은 책이다. 아니면 나같은 독자가 읽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덧붙이자면, 글들의 편차가 너무 심하고 밋밋한 칼럼들이 많았다. 글을 읽으면서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편집이 아쉽다고 해야 할 것이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8점
도정일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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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앗, 그런가요?
    제목이 참 좋아서 언젠간 읽어야지, 싶었는데 말이죠..

    • 1990년 중반부터 쓴 신문 칼럼 모음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글들이 나쁘다기 보다는 잡지 기고글인지라 지금 읽기엔 철 지난 글들이기도 하고, 사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부드러운 산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담긴 것도 아니고 ... 재미없다고 할 순 없으나, 저자가 워낙 유명한 분인지라, 그 명성에 책은 미치지 못했다고 할까요. ~ ^^; (아니면 제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城 

김화영(지음), 문학동네 






여행은 나의 삶이 남의 삶이나 공간을 만나는 감촉이며 공명(共鳴)이다. - 7쪽 




'예술기행'이라는 부제를 읽곤 프랑스의 여러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대부분 프랑스 문학 작품과 연관된 기행 산문집이다. 예술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미술이나 조각, 음악에 대한 다채로운 내용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기대를 했다. 


김화영, 그는 1974년에 이미 카뮈 연구로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카뮈에 있어선 국내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년 그는 어느 형편없는 출판사의 노이즈 마케팅에 휘말렸다. 그 때 나온 기사들이나 광고를 거의 읽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번역 문제는 늘 있어왔던 것이고 해석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 불어를 한글로 옮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며, 김화영 교수의 번역에 대해 뭐라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는 있기에. 하지만 내가 그 기사들이나 광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예의 없고 버릇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성실한 프랑스 문학 연구자이며 한국 독자들에게 프랑스 문학을 소개해왔으며 카뮈 전집을 한국에서 읽을 수 있게 한 老교수에 대해 '엉터리 번역'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마케팅을 했고, 오래 전부터 자신들의 형편없음을 여러 기사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던 여러 일간지의 기자들마저도 앵무새처럼 '엉터리 번역'이라고 옮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절망적이었던 것은 이런 상황에 독자들은 자신들의 무지몽맹함을 뽐내며, '엉터리 번역'에 동조하며 흥분하고 있었다. 실은 지금도 인터넷 서점 리뷰들을 보면 그 때 올라간 많은 리뷰들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새움출판사의 <<이방인>>은 영어 번역본을 한글로 번역했고 이를 프랑스어 원문과 대조했음이 드러났다. (관련 사항은 엔하위키 미러 - 이방인 항목 참조) 더구나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indifference님 블로그 참조) 하지만 그래서? 일은 이미 벌어졌고 새움출판사는 자랑스레 이 책을 팔았고 지금도 팔고 있다. 세상은 이렇다. 상처는 아물지 않고 상처를 낸 사람은 잘 살아갈 것이다.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서두에 나오는 여러 성들의 모습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성만 남거나 그 성을 가지고 있던 귀족은 없고 그 후손도 없고 관리인만 남아있거나 ... ... 그런데 성마다 남모를 사연들이 있어서 하나하나 놓칠 수 없다. 아마 지금 프랑스에 가서 그 성들을 보는 것과 이 산문집에서 표현된 성들과는 벌써 거의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 책은 젊은 불문학자의 글에서부터 노년에 이른 불문학자의 글이 한 곳에 담긴 것이다. 첫 장 '예술의 성'은 이미 1980년에 열화당을 통해 문고판으로 나온 바 있었지만, 책 후반부의 여행 산문들은 1990년대 이후의 흔적들이다. 


나에게 이 책은 여러 성들의 모습과 이야기가 좋았다. 서양미술사에서 언급되는 성들은 그리 많지 않고 조형적 혁신을 이룬 대표적인 작품 위주이지, 그 성에 담긴 사연 위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몇 명의 작가들, 특히 샤토브리앙을 알게 된 것은!! 이미 샤토브리앙에 대해선 포스팅했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거나 기행 산문집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하지만 우리가 요즘 흔히 접하는 그런 기행 산문집 - 글을 거의 없고 사진들로만 가득찬 - 이 아니다. 보기 좋은 사진들 대신 프랑스 소설가나 시인의, 기억하고 노트해 둘만한 글들이 인용된다. 그러니 이 책의 독자들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이방인>> 번역을 언급한 것은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몇몇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사태가 바로 잡히긴 했지만, 우리가 아는 바 기자나 학자가 아니라 이름 없는 블로거가 실질적인 대응을 했기 때문에 더 안타까웠다.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 자주 접하게 되는 역자들이 있다. 이휘영, 김현, 민희식, 김화영, 이재룡 ... 그들의 노고를 잊지 말자.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城) - 8점
김화영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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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전원시 




지금 이 시간에 

내 안데스의 사랑하는 동심초와 앵두 같은 리타는 뭘 하고 있을까;

비잔티움은 날 질식시키고

내 몸속엔 풀어진 코냑 같은 피가 잠을 청하는데.


하얀 오후에 속죄의 자세로 옷을 다리던

그녀의 손들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 비가, 내 삶의 의욕을 앗아가는 비가,

가없이 내리는데.


그녀의 플란넬 치마랑 무슨 상관일까;

그녀의 열망; 그녀의 걸음새;

달콤한 사탕수수에 바친 노동.


문에 기대어 황혼 한 줄기를 바라보고 있겠지.

마침내 떨며: "이런 ...... 오늘은 정말 춥구나!"

한 마리 야생의 새도 울겠지, 기왓장 위에서. 


- 세자르 바예호 지음, 구광렬 옮김 



세자르 바예호César Vallejo의 시다.  20세기 남미 최고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 독자에겐 생소하다. 나도 십수년 그의 이름을 르네 샤르를 사랑하는 소설가가 쓴 어느 프랑스 소설에서 '세자르 발레조'로 읽었다. 그 이후 잊고 지내다 노트 정리 중에 그를 발견하곤 번역된 시집을 찾았다. 


잠시 집에서 쉬는 어느 아침, 그의 시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내 삶의 의욕을 앗아가는 비가 내리지도 않는데, ... 이미 사랑은 지나가 잊혀졌는데, ... 세상은 이미 어두워져 포기만이 남았는데, ... ... 그런데도 왜 울컥했던 걸까. 


그래, "이런 ... ... 오늘은 정말 춥구나!" 




세자르 바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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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맨즈 독
조지수(지음), 지혜정원 


매우 적절했다. 아니 탁월했다는 표현이 좋을까. 산문집을 좋아하지만, 그건 문장이나 표현 때문인 경우가 많다. 실은 그게 전부다. 하지만 진짜 산문집은 그런 게 아니다. 적절한 유머와 위트, 허를 찌르는 반전, 비판적 허무주의, 혹은 시니컬함, 그러면서도 잃어버리지 않는,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혹은 의지. 그리고 지적이면서 동시에 풍부한 감성으로 물드는 문장. 


<원 맨즈 독>은 그런 산문집이다. 읽으면서 일반 독자들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 인터넷 서점의 리뷰들을 보았는데, 온통 찬사 일색이라 무안해졌다. 


대자적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 인간의 독특한 조건이다. 지성이라고 말해지는 것이 세계와 나를 가른다. 나는 자연에 뿌리 내리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다. 그러고는 나의 존재 의의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자유와 의문은 동전의 양면이다. 선과 악을 알게 되고 낙원에서 나오는 순간 자유가 얻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독립된 존재로서의 나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인간은 독립의 대가로 실존적 고뇌를 겪는다. - 100쪽 


이런 문장은 철학책에서나 나올 법한데... 하긴 이런 문장이 나오는 철학책을 본 적도 없었다. 자신의 산문에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거의 보기 드물 테니 말이다. 


영국이 가장 먼저 근대 국가로 진입하여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동기는 그들에게 정치적 지혜가 있었고 이것은 당시에 영국시민 계급과 귀족들이 상당히 지성적이었던 덕분이었다. 볼테르가 본 바 영국에서는 지붕 수리공도 이미 하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무식하고 무교양하면 어리석게도 양보를 모르고 고집 불통이 되고 만다. 공동체에는 자기와 동일하게 생존과 번성에의 요구를 가진 상대편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만다. - 215쪽 


볼테르의 영국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한국적 상황을 꼬집는다. 좌우를 막론하고(내가 보기엔 좌도 없고 우도 없고, 우왕좌왕만 있는 듯하지만), 무식과 무교양으로 뒤집어쓰고 있는 한국은 17-8세기 영국보다 못한 거다. 책을 읽으면서 연신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지적인 비꼼이라고 할까. 그러면서 유머를 잃지 않는다. 아마 근사한 독서가 될 것이다. 무릇 산문집은 이래야 된다. 



원 맨즈 독 One Man's Dog - 10점
조지수 지음/지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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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내가 이루어진 것도, 내 일생동안 이끌고 다녀온 이 권태에 처음으로 전염된 것도, 나의 고통이요 나의 쾌락인 이 슬픔에 물든 것도 콩부르의 숲에서였다. 그 곳에서 나는 내 가슴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다른 가슴을 찾아헤맸다. 그 그곳에서 나는 내 가족이 모이고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그 곳에 그의 이름이 복권되고 집안의 재산이 쌓이기를 바랐다. 시간과 혁명이 씻어간 또 하나의 악몽. 여섯 형제 중 남은 사람은 셋. 형과 쥘리와 뤼실은 이제 없고, 어머니는 고통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재는 무덤 속에서 파헤쳐졌다."


"혹 나의 작품들이 내 죽은 뒤에 남게 되고 내가 이름을 남기게 된다면 어느 날 <회고록>의 인도를 받아 어떤 여행자는 내가 그린 장소들을 찾아오리라. 그는 성(城)을 알아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거대한 숲은 찾아도 없을 것이다. 내 꿈의 요람은 사라져버렸다. 바위 위에 홀로 서 있는 성탑만이 그 종탑과 사귀고 폭풍으로부터 그를 보호하던 옛 친구들인 거대한 참나무 숲의 죽음을 울고 있으리라. 그 성탑처럼 홀로 남은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해주고 나를 보호해주던 내 가문이 내 곁에서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인생은,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낸 성탑들처럼 견고하게 땅 위에 지어지지 않았다. 인간은 그의 손으로 세운 성만큼 폭풍에 견디지 못한다." 

- 샤토브리앙(Francois-Rene de Chateaubriand) 


* * 


김화영의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에서 인용된 샤토브리앙의 글이다.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대단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샤토브리앙이지만, 다른 나라로의 소개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듯 싶다. 그의 대표작인 <아탈라>, <르네>는 번역되었으나, 현재는 품절이고. 




아딸라 - 르네
샤또브리앙 저/신곽균 역

영역본을 찾아보았으나, 3권 정도 검색되었다.



 

- 샤토브리앙, <Atala / Rene>



- 샤토브리앙, <무덤 너머로의 회상Memoirs from Beyond the Tomb>



읽고 싶은 건 역시, <무덤 너머로의 회상>이다. 학생 시절이었다면 어떻게든 불어로 읽으려고 했을 텐데, 돌이켜보니, 영어라도 제대로 해놓고 불어공부를 할 걸 하는 후회가 앞선다. 지금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영역본을 찾아보고 있으니. 


프랑소와 르네 드 샤토브리앙. <무덤 너머로의 회상>은 30년 걸쳐 씌여진 회고록이다. 소설가이자 외교관이었으며 1786년에 태어나 1848년에 죽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프랑스 귀족의 몰락, 프랑스 대혁명, 왕정복고, 나폴레옹 ... 격변기를 보냈고, 그 이야기들이 <무덤 너머로의 회상>에 담긴 것이다. 이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지금 샤토브리앙을 읽는 독자들은 많지 않다. 


위에서 소개한 책들 말고 국내 번역된 책들이 있으나, 발췌번역이거나 요약본이라 다소 부족해 보인다. 


* *


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 보게 된 정보 하나, 언어 사용인구로 따져, 한국어가 13위였는데, 순위에 민감한 사람들이 한국어의 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읽었는데, 실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어로 된 양질의 정보가 얼마나 많고 이 정보들에의 접근이 얼마나 쉽고 편리한가다. 따져보면 한국어로 구할 수 있는 양질의 정보는 많지 않다(영어와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긴 하나, 비교는 늘 최고와 할 때만 의미를 가진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이 사회에 조금이나 기여한 게 있다면, 한국어로 된 정보에 이 블로그가 조금의 도움이 되었다는 것밖에 없는 듯해 좀 씁쓸해졌다. 


정부 차원에서 한글 번역 - 여기에는 외국 서적에 대한 번역 뿐만 아니라 한문으로 된 국문학 서적에 대한 번역도 포함되어야 한다 - 에 대한 다양한 공적 사업이 진행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늘어나야 한다,고 적어보지만, 그게 가능할까 싶다. 기업은 돈 되는 일에 매진하고 정부는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고 나중에도 돈이 되지 않으나,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기초 사업에 힘을 써야 한다,고 적어보지만, 이 나라 정부 관료나 정치인이 이런 이야기 한 적을 본 적도, 읽은 적도 없다. 


쓸데없이 글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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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Une Rencontre 
밀란 쿤데라(지음),한용택(옮김), 민음사 



1. 
에밀 시오랑(치오란), 아나톨 프랑스, 프란시스 베이컨,  셀린, 필립 로스,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 .... 밀란 쿤데라가 만난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 이 산문집은 편파적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낯선가는 경험해본 이만이 알 수 있으리라. 좋아한다는 그 고백이 다른 이들과 나를 구별짓게 만들고 나를 일반적이지 않은, 평범하지 않은, 결국 기괴한 사람으로 만드는가를.  
 

그리고 치오란은 어떤가! 내가 그를 알게 된 시절부터 그가 한 것이라고는 인생의 황혼기에 블랙리스트에 자리 잡기 위해 이 리스트에서 저 리스트로 돌아다니는 일 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프랑스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징낳아 그의 앞에서 아나톨 프랑스를 언급했을 때, 그는 내 귀에 대고 짖궂게 웃으면서 속삭였다. "여기서는 절대로 그 이름을 큰 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당신을 놀릴 거예요!"라고 말이다. - 71쪽 

  
에밀 시오랑과 아나톨 프랑스를 알고 읽어본 이만이, 그리고 밀란 쿤데라를 알고 있는 이만이 위 문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독자는 한정되어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독자의 수는 줄어들 테지. 


  

- 이 책에서 언급되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인터뷰는 이 책에서 나온 것이다.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인데, 얼마 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 에밀 시오랑의 책은 3권이나 번역되었다. 허무주의적 아포리즘으로 유명한 에밀 시오랑은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로 온 이후 루마니아로 돌아가지 않고 프랑스어로 작품을 활동하다가 죽는다. 20세기 프랑스 문필가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구사한 몇 되지 않는 이로 손꼽히지만, 번역된 책에서는 이를 온전히 느낄 수 없고 다만 그의 도저한 허무주의만 알 수 있을 뿐이다. 



2. 
"한 쪽에는 그 어떤 열정도 생기를 불어넣을 수 없는 무관심한 사람들, 소심한 사람들, 이성적으로 사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감정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논증은 거의 이해할 수 없어 보이며, 감성으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후자들은 늘 유죄를 선고하곤 했다."
- 아나톨 프랑스, <신들은 목마르다> 중에서 

아나톨 프랑스의 장례식이 프랑스 국장(國葬)으로 치러지고 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나톨 프랑스에 대한 기묘한 침묵에 대해, 심지어 아나톨 프랑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시대에 뒤쳐지고 취향이 이상한 사람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 밀란 쿤데라는 아나톨 프랑스를 인용하며, 프랑스 지식인들의 감정적인 비판을 꼬집는다. 

하지만 비단 프랑스 지식인만 그럴까. 위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한국의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들을 떠올렸다(실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마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논증하는 듯 싶지만(왜냐면 현란한 이론가를 인용하거나 뭔가 그럴싸한 주의, 주장으로 언어를 구사하기에), 결국엔 감정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판단내리니까. (그리고 한국의 보수적이라는 지식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한국엔 보수란 없다. 보수적 지식인이라고 하는 이들 대부분 한국에선 진보적이라고 봐야할 수준이다) 


3.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은 위대한 유럽 소설가이다. 그의 예술에 첫 번째로 영감을 준 것은 사회적 또는 역사적 호기심이 아니고, 지리적 호기심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실존적 추구이며 진정한 실존적 치열함이고, 이 덕분에 그의 소설은 (내 생각으로는) 소설의 현대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정중앙에 자리를 잡는다. 

바로 인간은 자신의 나이 속에서만 존재하고, 모든 것은 나이와 함께 변한다는 점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가 지금 먹어가는 나이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나이의 수수께기, 오직 소설만이 밝힐 수 있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다. - 49쪽 


구드베르구르 베르그손(Gudbergur Bergsson)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싫어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의 글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름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가령 크세나키스! 


    

- 베르그손이 표지로 나온 책. 그리고 그의 소설, <백조 The Swan>의 영역본 표지. 




4. 
이 책은 밀란 쿤데라의 산문집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한 글에서 시작해, 그가 아끼는 몇 권의 소설과 소설가들, 아나톨 프랑스가 프랑스 지식인들의 작가 리스트에서 기묘하게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한 조소, 지금은 사라진 체코, 프라하의 봄, 망명한 체코 지식인들에 대한 이야기, 크세나키스, 야나체크와 쇤베르크의 음악, 말라 파르테의 소설에 대해 쓴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즐거운 이유는 바로 아래같은 이유다. 바르트를 좋아하냐는 프랑스 젊은이의 물음에 대해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좋아하죠.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요! 카를 바르트를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부정신학의 창시자 말예요! 천재예요! 바르트가 없었다면 카프카의 작품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걸요!" - 69쪽 

밀란 쿤데라는 그 젊은이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에 대해 묻고 있음을 알지만, 카를 바르트(Karl Barth)를 이야기한다. 카를 바르트를 모를 그 젊은이를 위해 카프카를 살짝 언급하면서 '너랑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어'라며 속내를 비친다. 이 얼마나 현란한 거부인가! 


5. 
고백하건대, 내가 현재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밀란 쿤데라다. 내가 얼마나 그를 좋아하는지, 이 짧은 산문집을 읽으면서 다시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들, 김승옥, 르 클레지오, 뒤라스, 주제 사라마구, 이탈로 칼비노를 지나, 밀란 쿤데라.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밀란 쿤데라는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체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아무리 불어로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에밀 시오랑이 루마니아 사람이듯. 그래서 번번히 후보로만 언급될 뿐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보다 한참 문학성이 떨어지는 모디아노가 받는 그 문학상을 말이다. 일본의 하루키가 받게 된다면, 아, 밀란 쿤데라는 어쩌란 말인가. (내가 알기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는 사무엘 베케트가 유일한 듯 싶다)  하긴 20세기 후반 가장 위대한 소설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도 받지 못했으니. 좀 우습긴 하다. 

 




만남 - 10점
밀란 쿤데라 지음, 한용택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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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의 <가슴 붉은 딱새>(문학동네, 1996년 초판)을 꺼내 읽는다. 그리고 늘 생각나는 시 한 편을 옮긴다. 우리에게는 단종으로 알려진, 노산군이 17세 지은 시(詩)다. 



원통한 새가 되어서 제궁을 나오니

외로운 그림자 산중에 홀로 섰네

밤마다 잠들려 해도 잠 못 이루어

어느 때 되어야 이 한 다 할꼬

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은 밝은데

피눈물 흘러서 봄꽃은 붉다

하늘도 저 애끓는 소리 듣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시름에 찬 내 귀에는 잘도 들리는고

- 노산군(魯山君), <자규시(子規詩)>, 1457년. 



17세의 사내가 지은 시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1996년 이 시를 읽고 한참 울었다. 문득 이 시를 읽으며, 그 때의 상념에 젖는다. 이 시를 짝사랑하던 여대생에게 보내주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무모한 짓이었구나. 시인 오규원 선생님이 작고한 지도 이제 꽤 되었구나....  



17세는, 서툰, 그러나 피가 붉고 가슴이 뜨거운 시인의 나이이다. 더욱 16세기의 17세는 지금과 달라서 자식이 하나쯤 있을 수 있는 나이이며, 과거에 급제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더구나 노산군은 한 나라의 왕이었다가 강봉되어 귀양온 사내다. (... ...) 아, "피눈물 흘러서 봄꽃은 붉다(血流春谷落花紅)"니! 정말 그가 시인이었을까, 아니면 비극이 그의 얼굴을 빌려서 참담하게 아름다운 한 시구를 역사 속에 편입시킨 것일까? 

- 오규원, <가슴 붉은 딱새>, 41쪽에서 





***



자규시 원문


一自寃禽出帝宮 

孤身隻影碧山中 

假眠夜夜眠無假 

窮恨年年恨不窮 

聲斷曉岑殘月白  

血流春谷落花紅 

天聾尙未聞哀訴 

何乃愁人耳獨聰 


출처: http://www.sungyoung.net/oldstory/jagyus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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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푸른 이야기(une histoire de bleu) 
장 미셸 몰푸아(Jean-Michel Maulpoix) 지음, 정선아 옮김, 글빛(이화여대출판부) 






늦가을, 잔잔히 비 내릴 때, 하늘의 흐느낌을 듣고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럴 때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착잡한 눈물을 슬레이트 지붕과 아연 홈통을 두드리는 맑디맑은 빗물에 보태는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부드러운, 거의 평온해진 동작이다. 이 시각, 이 계절에, 우리는 언어를 뒤흔들지 않고, 거기에 우리 자신을 내맡긴다. 이번만큼은 그 적절함이 빗줄기의 속삭임과 유리창의 어둠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확신하며. 그 순간, 뜻이 확실치 않아 오래 전부터 밀쳐두었던 책 몇 장을 다시 읽어보고 싶으리라. 이번에는 그 감동을 되찾고 그 의미를 이해할 거라고 확신하며. 그래서 만일 펜을 들게 된다면, 무엇을 발견하기보다는 기억해내기 위해서이리라. 자신의 얼굴이 비친 수면 위로 마침내 몸을 숙이듯. 
- 144쪽
 

몰푸아의 시집을 읽으면서 작고 낮은 웃음을 천천히 흘러 나왔다. 번역 시집을 읽으며 이런 기분에 빠진 건 정말 오랜만이니, 역자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푸른 바다에 대한 끝없는 무한과 사랑, 그리고 서정성에 대한 시집이다. 감미롭고 부드러우며 읽는 이의 마음을 스다듬는다. 

아주 드물게, 좋은 번역 시집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단어들로만 구성하여 풍부한 시적 풍경을 만들고 그 속에 독자를 안내한다. 이 시집도 여기에 속한다. 아주 드문 번역 시집에. 


청명한 날이면, 난바다는 찬란히 부서진다. 

하얀 기와 얹은 하늘. 낮잠에 취한 바다가 잉크빛 기다란 상처 자국을 수평선의 뺨에 새긴다. 그곳에 돛단배들이 고요한 한길을 내고 새를 키우는 사람의 순백색 사랑을 심는다. 

수풀 넘쳐나는 정원들은 박하, 물망초, 봉숭아 향 날리며 난바다를 향해 더 높이 자란다. 페인트칠한 나무발코니에 뱃사람들의 가슴이 물거품처럼 튀어오르면, 라일락 꽃잎 술렁이는 소리가 바다로 곤두박질친다.

바다의 대기실에서 보낸 어느 여름날 일요일. 드리워진 커튼이 조금 벌어져 있다. 불빛이 깜박인다. 바다의 투명한 물결이 왁스 칠한 가구와 종이 위로 흐르며 잔잔히 흔들린다. 출범을 앞둔 빈약한 함대 한 척. 그리고 물살 위의 배처럼 살랑대는 한 편의 시. 알 수 없는 욕망 하나 눈을 뜬다, 아니 잠든다. 난바다를 향해 문들이 살짝 열리다 이내 다시 닫힌다. 몽상에 젖은 자, 손가락을 푸르름에 적시면 그의 몸은 이윽고 모래가 된다. 
- 16쪽 


시의 제목처럼 첫 문장 하나가 떨어져 나오기도 하고, 아예 없기도 하다.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사적인 테마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짧은 시들이 모여 어떤 지향을 가지긴 하나, 이는 비평가에게 맡길 일이니, 우리는 그저 읽으며 조용해질 뿐

'무한은 인간의 문제'라고 여기는 몰푸아는 이 시집을 통해 자신만의 시론(詩論)을 펼쳤는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론인가! 


http://www.maulpoix.net/ (장 미셸 몰푸아의 홈페이지. 프랑스어로만 구성되어 있음)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인용된 폴 발레리의 문장. 






어떤 푸른 이야기 - 10점
장 미셸 몰푸아 지음, 정선아 옮김/글빛(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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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2009년



* * 


요즘 자주 책을 읽다 사진을 찍는다. 

밀란 쿤데라. 

나는 솔직히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너무 지적(知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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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때 외우고 다녔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이 시집을 꺼내 뒤적인 것도 거의 십 년만인가. 아니면 더 되었나. 


이진명,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1992년. 


시집 첫 머리에 등장하는 짧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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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지음), 서정은(옮김), 뿔 




작년에 읽은 책들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줌파 라히리와 앨리스 먼로를 만난 것을 뜻깊었다고 했다. 앨리스 먼로의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읽은 지 두 달이 다 되어서야 이렇게 짧게나마 글을 올리는, 다소 불성실해 보이긴 한다. 


잔잔하고 섬세하며 부드러운 심리 묘사로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현대인의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 놓는 앨리스 먼로는,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며 누군가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지만, 종종 그 사랑은 얇은 유리잔 처럼 깨지기도 하고 향긋한 봄바람처럼 불어왔다가 거친 태풍처럼 물러나기도 한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태풍은 지나간 후이고 테이블에서 떨어진 유리잔은 다행스럽게도 깨지진 않는다. 그만큼 우리 마음은 강하고 그들의 사랑은 급작스럽게 식진 않는다. 


살아가다보면 위기란 있기 마련이고 위기 때마다 우리는 마음 졸이며 흔들리지만, 그 순간 순간은 어쩌면 생의 짜릿했던 한 순간으로 남지 않을까.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 하나하나는, 우연처럼 시작되어 마음을 흔들지만, 결국엔 일상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이미 시작된 변화에 몸을 맡기거나, 마음에는 큰 변화이나 실제로는 사소한 변화로 거쳐 그저 추억될 뿐이다. 


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이 어디 있으랴. 



나는 거짓말을 했다. 친구를 만날 약속은 없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어디가 됐건 자기 집에 가 있었다. 남자 친구는 내일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타와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코벅의 부모님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기숙사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화를 나누거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그 누구도. 할 일도 전혀 없었다. 


한 시간 이상을 걷고 나서야 문을 연 가게를 발견했다. 나는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사 마셨다. 한 번 내렸다가 다시 데운 커피는 검고 써서 약 비슷한 맛이 났다. 딱 나한테 필요한 맛이었다. 마음은 이미 편안해져 있었지만, 이제는 행복감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혼자 있다는 사실이 주는 그런 행복감. 보도 위로 쏟아지는 늦은 오후의 뜨거운 햇살과 그 위로 흐릿한 그림자를 드리운, 이제 막 새 잎이 돋아나는 가지들. 가게 뒤쪽에서 커피를 따라 준 직원이 듣고 있는 라디오의 야구 중계가 들려왔다. 앨프리다에 대해 나중에 쓰게 될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구체적으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마치 이야기를 쓰는 일 못지않게 허공에서 뭔가를 움켜 잡으려는 시도와도 같았다. 관중들의 외침이 슬픔으로 가득 찬 심장 박동처럼 내게 다가왔다. 인간의 소리가 아닌 것같은. 기쁨이나 탄식의 소리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그 사랑스러운, 형식적 소리의 파동들.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했던 것, 내가 마음을 쏟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내 삶이 바로 그런 것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 <어머니의 가구> 중에서(162쪽 ~ 163쪽) 






출처: http://www.theguardian.com/books/2009/may/27/alice-munro-man-booker-international-prize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저 | 서정은역 | 뿔 | 2007.05.05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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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의 독서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줌파 라히리와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읽었다는 건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다. 또한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다. 2014년 12월에 읽었던  <제 2의 기계 시대>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아직 리뷰를 쓰지 않았지만. 


비즈니스 분야의 책들은 많이 읽지 못했으나, 읽는 책마다 나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 주었다. <린 스타트업>,  <뇌를 훔치는 사람들>,  <전략실행 - CEO의 새로운 도전> ,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등은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전략실행-CEO의 새로운 도전>이 출판되지 않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에선 개정판이 나와 계속 읽히고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한국은 좋은 책이 계속 읽히는 풍토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의 원인은 출판계보다는 독자의 사정 탓인 듯 싶다. 그만큼 책을 읽어 구조화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 아니 습득하는 능력 자체마저 떨어지고 있다고 하면 너무 비약일까. 특히 번역서의 경우, 인문학에서는 번역에 대한 노고에 대한 인정이 없고, 비즈니스 서적이나 실용 서적의 경우에는 굳이 번역서를 읽지 않아도 되는, 즉 영어로 읽을 수 있는 독자의 수가 늘고 있으니, 아예 번역 출판 시장이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특히 e-book 시장이 활성화될 수록 아마존과 같은 웹사이트에서 구매 즉시 바로 읽을 수 있으니, 굳이 번역서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출판 시장의 기형화는 장기적 안목과 비전을 가진 출판 전문가의 부재, 정부나 유관 기관의 형편없는 정책, 독서 교육에 대한 총체적 난국(입시 논술이 아니라!) 등, 그냥 이제 출판은 꽝이요 라고 스스로 선언하는 듯하다. 한국에 이렇지 않은 시장이 어디 있을까. 암울하기만 하다. 한국은 예로부터 근시안적이었던 건 아닐까 싶다. 에효. 


2014년 한 해, 약 50권의 책을 읽었고 소설, 시집, 만화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다양하게 읽었다고 볼 수 있다. 잡지나 도록, 기타 논문들은 포함시키지 않았으니, 실제 읽은 권 수는 더 될 것이다. 신간 서적은 몇 권 되지 않고 구간들이 많고 몇 권은 이미 절판이다. 이런 절판된 책들을 e-book으로 만들어 배포하면 어떨까 싶다. 인디자인이나 쿽으로 전자 출판된 파일이 있다면, 이를 pdf 등으로 변환하여 온라인 서점에 배포하고, 이를 on-demand printing이나 e-book 형태로 판매하는 것도 방법이 될 텐데. 여기에 대해 출판사는 별 생각이 없는 듯 싶다. 아니면 절판된 책에 대한 e-book, 혹은 on-demand printing을 대행해주는 전문 에이전시도 방법이 되겠다. (핫. 이거 비즈니스 모델 아님? 혹시 하시게 된다면 저도 같이..^^) 


인문학 서적은 꾸준히 읽어오는데, 이제서야 제대로 읽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인문학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인문학 다이제스트판 책들을 읽으면서 '아, 인문학 책을 읽었구나'고 위안을 삼는 독자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지만, 제대로 된 인문학 선생을 만난 적 없는 독자들에게, 심지어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는 이들 조차 진정한 인문학 선생을 만나기 어려운 마당에 뭐라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보아온 형편없는 인문학 교수들, 다시 말해 한 분야에 대해 전문적이나 나머지 분야에 대해선 문외한이고 심지어 세상사와는 담을 쌓고 사는 이들이 너무 많아, 그들에게 현 세상에 대해, 인생 살이에 대해 고민을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고민을 이야기해봤자 공허한 이론만을 주절거릴테니, 이를 경험한 이들은 아, 인문학은 아무 쓸모 없구나 하는 잘못된 편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인문학이 탐구하는 분야는 '사랑'이다. 그/그녀에 대한 사랑부터, 부모/형제/자매에 대한 사랑, 마을과 도시에 대한 사랑,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가치와 진리에 대한 사랑, 그래서 철학은 사랑을 그 어원에서부터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학문은 철학에서 시작한다. 우주에 대한 사랑은 천문학이 되고 건물에 대한 사랑은 건축학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을 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아는 이는 알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 공부는 어렵고 힘든 것이다. 그/그녀와의 사랑이 쉬웠던 적이 있는가?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쉽게 읽히는 인문학 책이 있다면 바로 쓰레기 통에 버려라. 그건 거짓말이거나 위선이고 허위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고통스러울 때, 그것이 인문학 책이다. 그렇게 다시 읽고 노트하고 되새기는 책, 그게 인문학 책이다. 


인문학을 4주만에 배운다고?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다고? 세계적인 비즈니스 스쿨에서 MBA를 딴 사람들이 왜 사업을 하면 망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라. 인생살이란 쉽지 않고 사랑은 얻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쉽고 않고 어려운 것이 사랑이고, 인문학이다. 


올해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지 못했고 읽기 시작하기만 했다. 알튀세르를 다시 읽기 시작했고 지오 폰티와 앙토넹 아르토는 나에게 기막힌 즐거움을 선사했다. 조중걸 선생님의 서양예술사 5권 중 3권이 출판되었다. <근대 예술>1권과 2권, <현대 예술>은 서양 예술사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현대 예술>은 이미 읽었으나, 다시 읽을 예정이며, <근대 예술>은 12월부터 읽기 시작했다. 


또한 이우환 화백의 책들을 읽었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여백의 예술>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나로선, 역시 이우환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만남을 찾아서>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그는 어렸을 때 한학을 배웠고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다)와 예술의 미래에 대한 진취적인 고민, 탁월한 방향 제시는 그가 왜 일본에서, 유럽에서, 미국에서 인정받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예술 분야의 책은 거의 읽히지 않는다. 이우환의 <만남을 찾아서>는 독자 리뷰가 거의 없은 상태에서 아예 절판이고, 앙토넹 아르토의 <잔혹연극론>은 품절이다. 케네스 클라크의 <예술과 문명>은 번역이 엉망이긴 했으나, 미술사가의 능력이 어떠한가를 보여준 탁월한 입문서였다. 하지만 이 책 또한 절판이다. 형편없는 입문서들만 뒹굴거리는 곳이 바로 예술 분야 책들이다. 왜냐면 입문서도 겨우 읽을 수 있는 독자들 밖에 없으니까.


이렇게 예술 분야는 출판 시장 뿐만 아니라 예술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보기 드물게 아주 소수의 전문가들로만 돌아가는 이상하고 폐쇄적인 사회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 폐쇄성을 없애려고 하는 순간, 망하거나 쫓겨난다. 


말이 길었다. 2014년 한 해 읽은 책 목록을 제시하며, 추천하는 책들은 별도로 표시하겠다. 그리고 실은 2014년 초에 몇 권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들이 있었는데, 놀라운 쓰레기였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저자의 경제 사정을 나아지게 했다는 점에서 뜻깊지만(나 또한 부러움을 가졌고), 이 책을 읽고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을 느꼈을 독자들을 생각하니, 화가 났다. 아예 목록에서 제외했다. 괜히 넣어 불편함을 만들 필요없을 테니(제외하니, 50권 이하로 읽었군).


책은 몇 권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책을 읽었느냐가 핵심이다. 부언하자면,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는냐'가 중요하다. 어떤 책들은 평생을 두고 읽는다. 성경 말고. 나는 플라톤이나 베르그송을 그렇게 읽고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읽을 때마다 새롭고(하지만 그의 슬픔은 어쩌란 말인가), 베르그송은 언제나 문학적, 철학적 탁월함에 반하고 만다. 그렇다고 나에게 플라톤이나 베르그송에 대해서 묻진 말아달라. 나는 그들의 발가락 끝을 만지작 거리고 있을 뿐이니. 


2015년, 내 독서는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까. 궁금하다. 몇 해 전부터 '정치란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몇 권의 '정치철학' 책들을 사 두었는데,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아마 이 책들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몇 명 저자들의 책을 꾸준히 찾아서 읽을 것이다. 또한 요즘 영시의 매력에 빠진 터라, 영시도 읽을 생각이다. 나에게 다소 버거울 테니, 주석을 구할 수 있는 시집들 위주가 될 테지만. 


 

*** 

 


문학 분야


<원 맨즈 독>, 조지수(지음), 지혜정원

: 인문학 전공자들을 위한 수필집이라고 할까. 아니면 탁월한 지적 위트와 통찰을 즐겁게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은 탁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지음), 서정은(옮김), 뿔 

<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지음), 박상미(옮김), 마음산책

: 앨리스 먼로와 줌파 라히리는 정말 대단한 소설가들이다. 그냥 읽으면 된다. 읽고 난 다음 후회는 절대 없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글/그림, 길찾기 

: 문학의 영역 속에 이제 만화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몇 명의 만화가들이 최근에 보여준 극화나 스토리 역량은 한국의 여느 소설가들 이상이었다. 


<미국의 송어낚시>, 리처드 브라우티건(지음), 김성곤(옮김), 비채

: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예나 지금이나 읽히지 않는다. 그만큼 옮기기도 어렵고 한국 독자의 수도 작고 낮다. 


<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지음), 김진영(옮김), 이순

: 롤랑 바르트의 짧은 글 모음은 여러 책들이 있다. <애도 일기> 뿐만 아니라 <작은 사건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등등. <애도일기>를 읽기 전에 이들 책부터 먼저 읽기를 바란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지음), 한겨레 출판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랭보(지음), 김현(옮김), 민음사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지음), 문학과 지성사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김경주(지음), 문학과 지성사

<멈춰서서>, 이우환(지음), 성혜경(엮음), 현대문학

<사요나라, 갱들이여>, 다카하시 겐이치로(지음), 이상준(옮김), 향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보르헤스(지음), 우석균(옮김), 민음사

<셰익스피어의 기억-보르헤스 전집5>, 보르헤스(지음), 황병하(옮김), 민음사 



예술 분야


<만남을 찾아서 - 현대미술의 시작>, 이우환(지음), 김혜신(옮김), 학고재 

: 1960년대 말 일본 미술 비평의 수준을 경험해보라. 아마 뜨끔할 것이다. 


<명화의 비밀>, 데이비드 호크니(지음), 남경태(옮김), 한길아트

: 데이비드 호크니! 정말 유쾌한 사람이다. 그는 카메라 옵스큐라와 카메라 루시다를 이야기하면서 위대한 미술의 거장들이 탁월한 예술가 이전에 전문적인 기술자였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기술을 기반으로 놀라운 예술 세계를 펼쳐보인 거장들에 대한 경외감이 밑에 깔려 있다. 


<건축예찬>, 지오 폰티(지음), 김원(옮김), 열화당

: 왜 나는 이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을까? 왜 나는 이 책을 그 누구에게서도 추천받지 못했을까? 이 책은 건축 전공 서적이 아니라 우아하고 감동적인 수필이자 건축에 대한, 현대 예술에 대한 사랑 고백이다. 


<다시, 그림이다>, 마틴 게이퍼드(지음), 주은정(옮김), 디자인하우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를 모은 이 책은 왜 데이비드 호크니가 현대의 위대한 예술가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다.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조중걸(지음), 한권의 책 

: 잡지에 실렸던 글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이 책보다는 서양미술사 5권 시리즈가 더 나을 텐데, ... ... 


<예술과 문명>, 케네스 클라크(지음), 최석태(옮김), 문예출판사 

: 절판이다.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미셸 뷔토르(지음), 김치수(옮김), 문학과 지성사 

: 한국에선 거의 읽히지 않는 누보 로망. 그리고 미셸 뷔토르. 그러나 이 책은 현대 소설이 어때야 하는지 말해준다. 이런 측면에서 제대로 된 현대 소설을 우리 문학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까?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로잘린드 크라우스(지음), 최봉림(옮김), 궁리 

: 좋은 책이나, 미술 이론 전공자를 위한 전문 서적이다. 이런 책들을 위한 출판 시장이 없다는 건 정말 절망적이다. 출판사가 자선 단체도 아니고. ㅡ_ㅡ; 이 책은 대림미술관의 지원을 받아 나온 책인데, 이런 식으로 전문 서적에 대한 여러 공공/민간 단체의 지원이 늘어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다.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한글로 된 전문 지식, 정보들은 늘어나야 된다. 


<잔혹연극론>, 앙토넹 아르토(지음), 박형섭(옮김), 현대미학사 

: 이것도 전문 서적이구나. ㅡ_ㅡ;;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시미즈 레이나(지음), 박수지(옮김), 학산문화사

<세계명화 비밀>, 모니카 봄 두첸(지음), 김현우(옮김), 생각의 나무 


인문 분야 


<제 2의 기계 시대>, 에릭 브린욜프슨/앤드루 맥아피(지음), 청림출판 

: 정말 좋은 책이다. 증기 혁명 이후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고 있고 이 혁명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직업이, 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시해주고 있다. 


<나를 지켜낸다는 것>, 팡차오후이(지음), 박찬철(옮김), 위즈덤하우스

: 다시 읽을 책이다. 현대적 관점에서의 중국 사상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유익한 책이다.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김동조(지음), 북돋음 

: 이런 책은 유익하다. 


<짝찾기 경제학>, 폴 오이어(지음), 홍지수(옮김), 청림출판 

: 미시경제학을 쉽게 풀어쓴 책. 미국에선 꽤 주목받았는데, 한국에선 거의 팔리지 않았다. ㅡㅡ;; 시장의 차이인가. 


<어떻게 자유주의에서 벗어날 것인가>, 알랭 투렌(지음), 고원(옮김), 당대

<휴머니즘과 예술철학에 관한 성찰>, T.E.흄(지음), 박상규(옮김), 현대미학사 

<책, 그 살아 있는 역사>, 마틴 라이언스(지음), 서지원(옮김), 21세기북스 

<거짓말의 힘>, 우테 에어하르트/빌헬름 요넨(지음), 청림출판 

<리더가 사라진 세계>, 이언 브레머(지음), 박세연(옮김), 다산북스

 

경제 경영 분야


<린 스타트업>, 애시 모리아(지음), 한빛미디어 

: Lean Start-up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유익한 책. 


<회사는 어떻게 강해지는가>, 이나모리 가즈오(지음), 김정환(옮김), 서돌

: 이나모리 가즈오가 쓴 책은 대부분 읽을 만하다. 또한 사업을 하고 있는 이들에겐 정말 필요한 이야기를 해준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다. 특히 동양인 사업가의 마음가짐, 태도에 대해서 알 수 있어 좋고 유익하다. 이는 서양인 사업가들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전략실행 - CEO의 새로운 도전>, 로렌스 G.히레비니액(지음), 이진원(옮김), 럭스미디어 

: 최근 알게 된 사실, 순수 비즈니스 전략 책은 안 팔린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경영학자의 책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첫 번째 읽기 어렵고 두 번째 전략적인 의사 결정이나 회사/조직을 전반적인 관점에서의 고민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겐 공허한 메아리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정말 좋다! 


<뇌를 훔치는 사람들>, 데이비드 루이스(지음), 홍지수(옮김), 청림출판 

: 뉴로 마케팅? 우습게 여기지 말아라. 정말 위험한 기술이고 어떤 면에서 보면 정말 탁월한 기술이다. 이 책을 읽으면 절반의 흥미진진함, 절반의 공포를 알게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마케팅의 탄생 COD>, 도준웅(지음), 21세기 북스 
: 읽을 만 하다. 특히 한국 기업의 마케팅 실무자, 의사결정권자들에게 추천한다. 솔직히 저자의 견해대로 한국 시장은 정말 로컬스럽다.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브래드 스톤(지음), 야나 마키에이라(옮김), 21세기북스 
: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천재 사장과 천재 부사장이 경영하는 회사가 아마존임을 알게 되었다. 이 회사 앞으로 100년 간다. 

<의미부여의 기술>, 인터브랜드(지음), 엔트리  

<파괴자들>, 손재권(지음), 한스미디어 

<미래 기업의 조건>,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지음), 이진원(옮김) 비즈니스북스 

<그룹드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의 비밀>, 폴 아담스(지음), 이지선(옮김), 에이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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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to-day the struggle."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 구절이라는 생각에 한글로 옮겼다. 역시 영시는 한글로 옮길 수 없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뜻을 통하게 옮길 수 있지만, 영어 고유의 맛을 옮길 순 없었다. 옮긴다면 아예 새로 창작한다는 기분으로 옮겨야 하고, 이럴 땐 번역이 아니다. 


아는 지 모르겠지만, 스페인은 20세기 대부분은 프랑코 독재 정권의 시대였고, 20세기 초반 무수한 유럽 지식인들이 '국제 여단Brigadas Internacionales)'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게 된다. 소설가이자 프랑스 초대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 말로도 이 전쟁에 참여하였고, 오든(W.H.Auden)은 구구절절하게 스페인 내전 참전을 독려하는 시를 적었는데, 바로 아래 <스페인 1937>라는 시다. 


2014년, 한국, 서울 속에서 살면서, 개인적으로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들었고 견디기 어려웠지만, 사회적으로는, 차마 내 개인적 삶이 엉망이 되었어요,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그런데 조용하기만 하다. 

이 기묘한 침묵은 무엇일까?


오든은 이야기한다. '오늘은 투쟁이라네(to-day the struggle)' 

내일은 2015년,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struggle일 것이다. 

분명한 목적이 있고 가치가 있는, 그리고 그것을 향한 전력투구!  



** 




Spain 1937 



                   - W.H.Auden



Yesterday all the past. The language of size

Spreading to China along the trade-routes; the diffusion

Of the counting-frame and the cromlech;

Yesterday the shadow-reckoning in the sunny climates. 


모든 과거가 있었던 어제. 크기를 나타내는 언어는

무역로를 따라 중국으로 퍼져나가고; 확산되는

주판 계산기와 고인돌. 

어제 태양이 비치는 세월 속에 간접계산법이 있었네.



Yesterday the assessment of insurance by cards

The divination of water; yesterday the invention

Of cart-wheels and clocks, the taming of 

Horses. Yesterday the bustling world of the navigators.


어제 서류를 통한 보험이 있었고 

해로를 예측하고; 어제 발명되었네

수레바퀴들과 시계, 길들인

말들. 어제 항해자들로 북적거렸던 세계가 있었지.



Yesterday the abolition of fairies and giants,

The fortress like a motionless eagle eyeing the valley.

The chapel built in the forest; 

Yesterday the carving of angels and alarming gargoyles.


어제 요정들과 거인들이 사라졌고

그 요새는 마치 계곡을 향한 독수리의 움직이지 않는 눈짓 같았지. 

숲 속에 지어진 성당; 

어제 천사들의 조각들과 불안하게 만들던 괴물석상들이 있었네



The trial of heretics among the columns of stones;

Yesterday the theological feuds in the taverns 

And the miraculous cure at the fountain;

Yesterday the Sabbath of witches; but to-day the struggle. 


이단자들의 재판이 돌기둥 가운데서 열리고;

어제 선술집에서 신학에 대한 논쟁이 있었네.

그리고 수원지(水源地)에서의 기적적인 치료

어제 마녀들의 연회가 있었지;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Yesterday the installation of dynmos and turbines,

The construction of railways in the colonial desert;

Yesterday the classic lecture 

On the origin of Mankind. But to-day the struggle. 


어제 발전기와 터빈의 설치가 있었고,

식민지의 사막에 철도 공사가 있었네; 

어제 그 최고의 강의에선

인류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했지;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Yesterday the belief in the absolute value of Greek,

The fall of the curtain upon the death of a hero;

Yesterday the prayer to the sunset,

And the adoration of madmen. But to-day the struggle.


어제 그리스의 고귀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

영웅의 죽음 위로 내려오는 커튼. 

어제 일몰에 대한 기도가 있었네

그리고 미친 자들의 찬미.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As the poet whispers, startled among the pines,

Or, where the loose waterfall sings, compact, or upright 

On the crag by the leaning tower; 

“Oh my vision. O send me the luck of the sailor.” 


시인이 속삭일 때, 소나무들 사이에서 깜짝 놀라,  

또는, 한가한 폭포가 노래하는 곳에서, 긴장해서, 또는 서서 

기울어지는 탑 옆 바위 위에

오 나의 비전이여, 오 나에게 선원의 운명을 다오 



And the investigator peers through his instruments

At the inhuman provinces, the virile bacillus

Or enormous Jupiter finished 

“But the lives of my friends. I inquire. I inquire.”


그리고 탐구자는 그의 기구를 들여다 보며

인간 밖의 영역에서, 강력한 세균, 

또는 이미 탐구가 끝난 거대한 목성 

“그러나 내 벗들의 삶들. 나는 묻는다, 나는 묻는다.”



And the poor in their fireless lodgings, dropping the sheets

Of the evening paper: “Our day is our loss, O show us 

History the operator, the 

Organiser, Time the refreshing river.” 


그리고 가난한 이들은 한 점 불도 없는 셋방에서, 종이 한 장을 떨어뜨리네

석간 신문 속에서: “우리의 날은 우리의 상실, 오, 우리에게 보여주시오 

역사라는 운행자여, 

조직자여, 강물을 끊임없이 정화시키는 시간이여.” 



And the nations combine each cry, invoking the life

That shapes the individual belly and orders

The private nocturnal terror; 

“Did you not found the city state of the sponge,


그리고 민중들은 그들 각자의 비명을 하나로 묶고, 그들의 생명을 불러일으키며 

각자의 배를 만들며 행하네.

한밤 중의 은밀한 테러를

“생명이여, 그대는 해면동물의 도시 국가를 찾았는가?  



Raise the vast military empires of the shark 

And the tiger, establish the robin’s plucky canton?

Intervene. O descend as a dove or 

A furious papa or a mild engineer, but descend.” 


거대한 군사 제국을 성장시켰는가? 상어와 

호랑이의. 세웠는가? 울새의 용기 있는 작은 지역을 

개입하라. 오 비둘기 한 마리처럼 내려가라, 또는

화가 난 교황, 또는 온화한 기술자처럼, 그러나 내려가라.”



And the life, if it answers at all, replies from the heart

And the eyes and the lungs, from the shops and the squares of the city:

"O no, I am not the Mover;

Not to-day; not to you. To you, I'm the


그리고 생명이여, 만약 대답한다면, 대답하거라, 심장으로부터

그리고 눈동자와 허파로부터, 가게들과 그 도시의 광장으로부터: 

“오, 아니구나. 나는 원동력이 아니다;

오늘도 아니고, 네겐 아니다. 너에게, 나는 그저 



Yes-man, the bar-companion, the easily-duped;

I am whatever you do. I am your vow to be

Good, your humorous story.

I am your business voice. I am your marriage.


예스맨이고, 술집 친구이고 쉽게 속는 사람이라네. 

나는 그대가 무엇을 하던지, 나는 당신의 맹세입니다,

좋게 되기 위한. 당신의 유머러스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당신의 사업 목소리이며 당신의 배우자입니다.  



What's your proposal? To build the Just City? I will.

I agree. Or is it the suicide pact, the romantic

Death? Very well, I accept, for

I am your choice, your decision. Yes, I am Spain." 

 

당신의 제안은 무엇인가요? 정의로운 도시를 세우는 것인가요? 나는 할 것입니다.

나는 동의합니다. 또는 동반자살을 하실 건가요? 그 낭만적인

죽음? 정말 그럼, 저는 동의 합니다. 왜냐면

나는 당신의 선택이며, 당신의 결정입니다. 그래요. 저는 스페인입니다.” 



Many have heard it on remote peninsulas,

On sleepy plains, in the aberrant fisherman's islands,

Or the corrupt heart of the city,

Have heard and migrated like gulls or the seeds of a flower.


많은 이들이 머나먼 반도에서 그것을 들었네. 

나른한 평원 위에서, 비정상적인 선원들의 섬나라에서, 

또는 도시의 타락한 심장부에서

갈매기떼나 꽃씨들과 같이 듣고 이주해오는구나. 



They clung like burr to the long expresses that lurch

Through the unjust lands, through the night, through the alpine tunnel;

They floated over the oceans;

They walked the passes. They came to present their lives.


그들은 가시 달린 열매들처럼 달라붙어 있구나, 기나긴 급행열차에 달라붙어 휘청거리며,

정의롭지 못한 땅을 지나며, 밤을 통과하며, 알프스 산맥의 터널을 지나며; 

그들은 대양들을 떠다녔다

그들은 산길을 걸어갔다.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보여주며 갔다. 



On that arid square, that fragment nipped off from hot

Africa, soldered so crudely to inventive Europe,

On that tableland scored by rivers,

Our fever’s menacing shapes are precise and alive.


그 불모의 사각형 위에, 뜨거운 아프리카에서 떼어낸 조각, 

납땜질된, 창의적인 유럽에 대강 납땜질되어 붙은

강줄기에 의해 금이 그인 대지 위에 

우리들의 열병의 위협적인 형체들은 명확하고 생생하다.



To-morrow, perhaps, the future; the research on fatigue

And the movements of packers; the gradual exploring of all the

Octaves of radiation;

To-morrow the enlarging of consciousness by diet and breathing.


내일은, 아마도, 미래가 있겠지; 피곤에 대한 연구가 있고 

짐 꾸린 사람들의 움직임들이 있고; 

빛의 모든 옥타브에 대한 점증적인 탐험이 있고 

내일은 식이요법과 호흡작용에 의한 의식의 확장이 있을 것이네. 



To-morrow the rediscovery of romantic love,

The photographing of ravens; all the fun under

Liberty's masterful shadow;

To-morrow the hour of the pageant-master and the musician,


내일은 낭만적 사랑의 재발견이 있고 

까마귀 떼의 사진촬영이 있고; 모든 즐거운 것들이 

자유의 거대한 그림자 아래 있을 것이라네 

내일은 화려한 무대의 연출자와 음악가의 시간이 있을 것이네. 



To-morrow for the young the poets exploding like bombs,

The walks by the lake, the winter of perfect communion;

To-morrow the bicycle races

Through the suburbs on summer evenings: But to-day the struggle.


내일은 젊은 시인들이 폭탄처럼 터져 시를 쓸 것이라네.

호수를 따라 걸으며, 완전한 결합을 이룬 겨울, 

내일은 자전거 경주가 

여름 저녁 교외를 따라 있을 것이네; 그러나 오늘은 투쟁이라네. 



To-day the inevitable increase in the chances of death;

The conscious acceptance of guilt in the necessary murder;

To-day the expending of powers

On the flat ephemeral pamphlet and the boring meeting.


오늘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확률이 증가하고 있다네.

살인의 필요함, 그 범죄를 알면서 받아들여야 하지.

오늘, 우리의 힘은 빠지고 있지.

맥없고 덧없는 팜플렛과 지루한 회합 위에서



To-day the makeshift consolations: the shared cigarette;

The cards in the candle-lit barn, and the scraping concert,

The masculine jokes; today the

Fumbled and unsatisfactory embrace before hurting.


오늘 일시적인 위안들이 있지; 나누어 피는 담배;

촛불로 밝힌 곳간에서의 카드놀이, 그리고 삐걱대는 음악회,

사내들의 걸쭉한 농담; 오늘은 

전투 앞의 서투르고 불만족스러운 포옹이 있네



The stars are dead; the animals will not look:

We are left alone with our day, and the time is short and

History to the defeated

May say Alas but cannot help nor pardon.


별들은 죽었네; 동물들은 쳐다보지 않겠지.

우리들은 우리들의 시대에 홀로 남겨졌지, 시간은 짧고

역사는 패배한 자들에게 

유감이라곤 하진 않겠지만, 도움도 용서도 없을 테지. 




** 




W. H. Auden(1907~1973)의 시 <Spain 1937>의 번역으로 원문은 아래와 같다. 원시는 1937년 <Spain>으로 발표하였으나, 1940년 Auden이 출판한 <<Another Time>>에서 <Spain 1937>로 제목을 바꾸고 일부 내용을 삭제하고 수정하여 실었다. 위키피디아의 <Spain(Auden)> 항목에 따르면, 후에 그는 작품 선집(his collected editions)에서는 이 작품을, 결코 믿지 않았던(never believed) 정치적 견해가, 그의 생각에는 수사적으로 효과적으로 표현된 “정직하지 못한”(dishonest) 시로 여겨 거부했다고 한다. 


이 시의 원문은 한국방송통신대학(Korea National Open University) 영어영문학과 4학년 전공수업교재인 <<영미시 British and American poetry>>(김문수, 이두진, 이철 공저)에서 옮겼으며, 번역은 교재의 주석, 김문수 교수님의 수업 내용을 참고하여 번역하였다. 



W.H. Auden

by Cecil Beaton

vintage bromide print on white card mount, 1930

9 1/2 in. x 7 5/8 in. (240 mm x 195 mm)

Given by Cecil Beaton, 1968

http://www.npg.org.uk/collections/search/portrait/mw18383/WH-Au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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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좋은 사람 (원제: Unaccustomed Earth 길들여지지 않는 땅)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 





출처: http://www.telegraph.co.uk/culture/books/10304137/The-Lowland-by-Jhumpa-Lahiri-review.html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이 헬레니즘(Hellenism) 시대였으니, 이 시기는 고향을 떠나 바다 건너 도시로, 전 세계가 고향이 되거나 고향이 사라진 때였다.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한다'는 이율배반적 싯구가 역사 최초 등장한 시기였으며, 전쟁으로, 혹은 폭정으로 몰락하는 도시를 뒤로 하고 새로운 도시를 향해 떠나던 시기였다. 젊은 알렉산드로스 3세가 길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고 사랑은 없고 사랑하는 나만 있었던 시대였다. 어디서 왔는지 묻지도 말고 사랑하냐고 좋아하냐고 묻지 말고 그저 하룻밤을 보내던 연인들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시대가 다시 도래했으니, 바로 20세기 후반 이후의 우리 시대다.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 익히기도 어려운 이름을 가진 그녀의 소설을 읽었다. 그녀는 미국인인가, 영국인인가, 인도인인가? 아니면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건가? 깨진 도자기 파편이든지 집터의 흔적이든, 역사적 기록이 가능한 이래, 한 번도 코스모폴리탄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한국 사람들은, 한국 독자들은 줌파 라히리가 던지는 메시지를 알기나 할까? 


나는 이 소설집을 아주 길게, 혹은 띄엄띄엄, 이미 지쳐버린 사무실의 텅빈 점심 시간에, 하루에 꼭 두 번씩 정지했으면 하고 바라는 지하철 안에서, 외로워 마시는 술 한 잔이 목을, 위를, 온 몸을 적실 때마다 더 외로워지는 술자리에서, 나와 피부색이 다른, 아빠나 엄마 한 쪽이 동남아나 아프리카계인 소년, 혹은 소녀가 소설가가 되어 문단의 화려한 조명을 받는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 순간은 언제쯤 올 것인가. 많은 독자들이 열광하며 따르는 시대는 올 것인가. 


가끔 이런 생각을 하면, 한국은 참 절망적인 곳이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들은 단정하고 예의 바르며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다. 어쩌면 모든 위대한 소설이 다 그러할 것이다. 읽으면 아프지만, 다 읽고 나면 '그래, 우리 삶이, 내 삶이 이렇지', 되뇌이게 된다. 


이 단편집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인도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다. 그런데 '이민(immigration)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는다. 인도 출신이라는 사실이 빠진다면, 평범한 미국인들의 가정 이야기다. 그렇다. 어디에서나 살아가는 건 똑같다. 줌파 라히리는 이렇게 보편성을 끄집어 내며,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랑하지만,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헤어짐은 있으나,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이별이거나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최선을 다해 서로를 아낀다. 각자의 방식이 다르겠지만, 다르다는 건 축복이다. 갈등이 있고 오해가 있고 사건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지나가는 바람일 뿐, 서로 마주 잡은 손을 놓치지는 법은 없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같은 땅 위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을 그런 땅 위를 말이다.


오랜만에 참 좋은 소설을 읽었다.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나는 글을 쓰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했다. 계속 노력했다면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그래,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내 인생이나 네 인생이나 똑같아라는 말을 하기 싫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줌파 라히리의 인터뷰는 글을 쓰는 이들에게 많은 것들을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해준다. 




출처: http://blog.naver.com/lesliepak/220067661295 (번역해주신 에게해님께 감사하며)



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저 | 박상미역 | 마음산책 | 2009.09.05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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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베이에서 파는 75센트하는 중고책 구입해서 읽고 있는데요..첫번째 이야기부터 예사롭지 않네요. 첫소설로 퓰리처상 받았다는게 이해가 됩니다.

    • 아, 이베이! 이베이에서도 중고책을 파는군요(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어로 읽으면 더 좋을 것같아요. 뭐랄까 편한 영어를 사용할 것같아요. 이창래의 소설을 영어로 읽으려다 포기한 경험이 있는 저로선. ㅜㅜ;;;
      줌파 라히리의 다른 소설도 읽을 계획인데, 밀린 책들이 너무 많아서 아마 내년 여름은 되어야 할 것같아요. ㅡ_ㅡ;;


멈춰서서 

이우환 시집, 성혜경 옮김, 현대문학 




이우환 Lee Ufan, 대화(Dialogue), 2011 

 



그의 작품들이 좋아서일까, 이 시집은 그의 회화, 조각, 설치 작품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작고 단단한 설명서처럼 읽혀진다. 내가 알기로, 예술가들 중에서 이우환만큼 명징(明澄)한 글을 쓰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옮겨도 다르지 않다. 그는 일본 모노하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이론가이며, 현대 철학과 현대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탁월한 실천력으로 현대 일본 미술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일본 국어 교과서엔 이미 그의 글이 실려있고, 일본어라는 걸 제외하면, 그는 검증 받은 글쟁이이다. 



이우환 Lee Ufan, 대화 Dialogue (2008) 

(사진 출처: artobserved.com)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이우환은 일본과 유럽에 먼저 알려졌고 그런 다음 한국에서 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가끔 한국이 대단한 나라인양 떠드는 사람을 보면,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이러한 태도 밑에 숨은 자신의 부족함이나 태만, 불성실을 감추려는 불순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심지어 잘못된 관행, 정치적 낙후성 등마저도 옹호하려고 한다. 


해외에서 유명해져 국내로 들어오는 경우, 한국 내의 텃세는 만만치 않다. 이는 문화예술계는 더 심해서, 그들의 부족함을 상대의 몰이해, 또는 지역의 차이로 환원시킨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우환에 대한 관심은 국내 미술 시장의 급격한 팽창과 함께 한다(이우환 스스로도 그 곤혹스러움을 토로한 바 있다). 그 전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계 한국 작가였을 뿐이다.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앞으로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들에게 이우환이 구겐하임과 베르사이유 궁에서 전시한 것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이야기해도 그들의 닫힌 귀와 닫힌 마음은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우환의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나왔지만, 식자들에 의해 거론되는 경우을 보지 못했다. 가끔 월간 현대문학에 실렸던 책 소개를 제외하곤. 이와 비슷하게, 무수한 번역된 소설들이 나오지만, 정작 한국의 비평가들이 번역 소설들을 평론하는 경우를 자주 보지 못했다. 문체나 문장을 떠나 어떤 세계관과 태도, 인물과 사건의 구성, 언어 등을 다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을 짧지만, 울림이 크다. 또한 이우환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언어로 안내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예전에도 옮긴 바 있지만, 가령 이런 시 말이다. 





진폭 



자코메티가 모델에게 육박해가면, 동시에 모델 또한 자코메티에게 닥쳐온다. 자코메티는 자꾸자꾸 내쳐가 이윽고 모델 너머까지 나아간다. 그때 모델 또한 점점 돌진해서, 자코메티를 지나 훨씬 이쪽으로까지 전진해버린다. 도전해가는 힘과 덤벼오는 힘이 세차게 겹쳐지는 가운데, 두 개의 대상은 깎여나가, 마침내 하나의 뼈가 되어 남겨진다. 이렇게 해서 생긴 대립의 축은, 자코메티를 넘고 모델을 넘어서 -. 그것은 끊임없이 커다란 진폭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를 공간의 펼쳐짐 속에 숨겨 지운다. 자코메티는 이것을 거리의 절대성이라 일컫었다. 이러한 시선에 따른다면, 본다는 것은 대상과 자신의 치열한 사랑의 운동이 겹치어, 드디어 투명한 여백이 된다는 것인가. 




이우환 Lee Ufan, 대화 Dialogue (2013)

(사진 출처: artobserved.com)



다행히 현대문학에서는 꾸준히 이우환의 책들을 찍어 내고 있다. 이우환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면 좋으리라. 하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십 수년 전 삼성미술관에서 열린 이우환 전을 잊지 못하듯, 그의 진수는 작품들일 것이다.  그리고 베르사이유에서의 이번 전시는 아, 내 처지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정말 느끼고 싶은 전시였는데. 기하학적으로 올려진 정원을 걸어가다가 무심코 마주하는 '조응'이라 ... 


 



멈춰서서

이우환저 | 성혜경역 | 현대문학 | 200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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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폭 



자코메티가 모델에게 육박해가면, 동시에 모델 또한 자코메티에게 닥쳐온다. 자코메티는 자꾸자꾸 내쳐 가 이윽고 모델 너머까지 나아간다. 그때 모델 또한 점점 돌진해서, 자코메티를 지나 훨씬 이쪽으로까지 전진해 버린다. 도전해가는 힘과 덤벼오는 힘이 세차게 겹쳐지는 가운데, 두 개의 대상은 깎여나가, 마침내 하나의 뼈가 되어남겨진다. 이렇게 해서 생긴 대립의 축은, 자코메티를 넘고 모델을 넘어서 -. 그것은 끊임없이 커다란 진폭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를 공간의 펼쳐짐 속에 숨겨 지운다. 자코메티는 이것을 거리의 절대성이라 일컬었다. 이러한 시선을 따른다면, 본다는 것은 대상과 자신의 치열한 사랑의 운동이 겹치어, 드디어 투명한 여백이 된다는 것인가. 



- 이우환, 시집 <멈춰서서> 중에서 




자코메티, Three Men Walking

출처: http://elogedelart.canalblog.com/archives/2009/05/31/139128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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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보르헤스(지음), 우석균(옮김), 민음사 




그의 소설들을 떠올린다면, 보르헤스의 시도 딱딱하고 건조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너무 지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수수께끼처럼 펼쳐지지 않을까 추측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도리어 소설가 보르헤스는 잊고 시인 보르헤스만 기억에 담아두게 될 터이다. 


그렇게 몇 주 보르헤스의 시집을 읽었고 몇몇 시 구절들을 기억하게 된다. 


시집 읽는 사람이 드문 어느 여름날, 세상은 저주스럽고 슬픔은 가시질 않는다. 행동이 필요한 지금, 어쩔 수 없이 반성부터 하게 되는 현실을, 미래보다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게 되는 상황 앞에서 보르헤스가 아르헨티나 사람이라는 것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거리들은

어느덧 내 영혼의 고갱이라네.

분주함과 황망함에 넌덜머리 나는

격정의 거리들이 아니라

나무와 석양으로 온화해진

아라발의 감미로운 거리,

불후의 광대무변에 질려

대평원 그리고 참으로 광활한 하늘이 자아내는

가없는 경관으로 감히 치닫지 못하는

소박한 집들이 있는,

자애로운 나무들마저 무심한 한층 외곽의 거리들.

이런 모든 거리들은 영혼을 탐하는 이들에겐

행복의 약속이라네.

숱한 삶이 집안에만 은거하길 거부하며

거리의 보호 아래 형제애를 나누고 

우리네 희망이 부풀려진 영웅적 의지로

거리를 떠다니기에

깃발처럼 거리가 

사방으로 펼쳐지네

우뚝 솟은 내 시에서

그 깃발이 하늘을 펄럭이기를.

- <거리> 전문 







본질은 언제나 상실되는 것.

영감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법칙이지.

달과의 내 오랜 실랑이에 대한

다음 요약은 피할 수 없을.


나는 달은 어디서 처음 봤는지 모르네.

앞서의 그리스인이 말한 하늘에서였는지,

우물과 무화과나무의

정원으로 기우는 오후에서였는지


유전하는 이 삶은

어찌 되었든 무척 아름다울 수도 있지.

그런 순간에 우리 모두 너를 바라보던

오후가 있었네. 아, 모든 이의 달이여. 

- <달> 중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저 | 우석균역 | 민음사 | 201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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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갱들이여 [개정판]

다카하시 겐이치로저 | 이상준역 | 향연 | 2011.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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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의 다카하시 겐이치로다! 하지만 십수년만에 읽는 그의 소설은 ... 아, 이런 표현은 심하다고 여겨지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읽는 건 시간낭비다. 전혀 유머스럽지 않다. 작명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 세계에 대한 반체제적인 알레고리라고 여겨지지만, 그래서 뭘? 


너무 쉽게 읽히고 깊이감이 없다. 두서 없고 이야기는 흩어지고 등장인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본어로 읽었을 때는 어떤지 모르겠다. 현재 일본 문학계 내에서 그의 위치를 알지 못하고 그의 일본어 문장이 어떤지 모르는 탓에, 내 평가절하가 조심스럽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그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를 최고의 소설로 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으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사요나라 갱들이여>를 추천하지 않는다. 하긴 소설을 추천하는 경우가 드물어지는 요즘이다. 최근 들어 읽은 소설도 거의 없지만, 추천할 만한 것도 없었다. 






우아하고감상적인일본야구-개정판

다카하시겐이치로저 | 박혜성역 | 웅진씽크빅 | 2005.07.07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1999년에 읽고 리뷰를 적었나? 그 전에 읽은 것같은데 말이다. 



1999/02/05 - [책들의 우주/문학] -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다카하시 겐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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