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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책들의 우주/문학 +229



저지대 - 8점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문학동네



저지대 

헤르타 뮐러(지음), 김인순(옮김), 문학동네




참 오래 이 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오래 읽은 만큼 여운이 남을 진 모르겠다. 번역 탓으로 보기엔 뮐러는 너무 멀리 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그녀의 양식이 낯설다. 자주 만나게 되는 탁월한 묘사와 은유는, 도리어 그녀의 처지를 짐작케 해주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떻게든 하기 위해, 그녀는 의미의 망 - 단어들을 중첩시키고 시각적 이미지를 사건 속에 밀어넣어 사건을 애매하게 만들었으며, 상처 입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인물들 마저도 꿈과 현실 사이에 위치시켰다. 


이러한 그녀의 작법은 시적이며 함축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답답하고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얼굴의 모든 낱말은

악순환에 대해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다. 


사물들이 물질을 통해 속이고, 감정들이 몸짓을 통해 속이기 때문에, 낱말의 소리는 자신 역시 속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물질의 속임과 몸짓의 속임이 마주치는 접점에서, 말의 소리는 자신이 꾸며낸 진실을 가지고 둥지를 틉니다. 글을 쓸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느냐 보다는 거짓이 얼마만큼 성실하느냐 입니다. 

- 262쪽 - 263쪽

'모든 낱말은 악순환에 대해 알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연설 중에서 



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대단히 매력적이며, 한 번은 읽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대신 이 소설을 읽을 땐 한 번에 다 읽는 것이 좋을 지도. 나는 너무 띄엄띄엄 읽은 탓에, 제대로 읽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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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도널드 바셀미의 백설공주Snow White를 꺼냈다. 번역본을 조금보다 이건 아니다 싶어 원서를 꺼냈다. 아, 이런! 내가 영어를 잘 하는 것도, 번역을 잘 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건 좀 심했다. 도널드 바셀미는 미니멀리스트다. 그의 짧은 영어 문장은 감미롭고 압축적이며 시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번역문은 길어지고 아무렇게나 선택된 한글 어들은 도널드 바셀미의 진면목을 느끼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첫 두 페이지에서 인용한 문장들이다.

She is a tall dark beauty containing a great many beauty spots: one above the breast, one above the belly, ... (중략) 

번역: 그녀는 늘씬한 몸매에 무언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듯한 매력적인 여자다. 그녀의 몸은 온통 점투성이다. 젖가슴에 하나, 배꼽에 하나, ..(중략) 




We speculate that he doesn't want to be involved in human situations any more. A withdrawal. Withdrawal is one of the four modes of dealing with anxiety. 

번역: 어쩌면 이제 속세를 떠나고 싶은 모양이다. 일종의 대인기피증이다. 대인 기피증은 불안 심리의 네 가지 증상 가운데 하나다. 
 

번역본은 숙대 김상률 교수의 번역으로 2004년 책세상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비전문가이지만 내가 한 번 옮겨본 것은 아래와 같다. 

번역 수정: 큰 키의,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는 상당히 많은 아름다운 점들이 있었다. 젖가슴 위에 하나, 배꼽 위에 하나, ...  

번역 수정: 그는 더이상 인간적인 상황 속에 엮이고 싶지 않다. 어떤 내적 침잠. 이 내적 침잠은 불안을 다루는 네 가지 형태의 하나다.     

(withdrawal을 '내적 침잠'으로 번역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면 바셀미는 어려운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고민해봐야 겠다.)




거의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대학시절, 문학계간지에 실린 도널드 바셀미의 몇몇 단편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 그 때 대학도서관에서 빌려 복사해놓은 바셀미의 'Snow White'. 몇 해 전 바셀미의 소설이 번역되었음을 서점에 가서야 알았고 바로 구입했지만, 역시 번역본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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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 - 10점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문예출판사


구토 La Nause'e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이휘영(옮김), 삼성출판사, 1982년(현재 구할 수 있는 번역본으로는 문예출판사 번역본이 좋을 듯싶다.) 




그냥 우연히 책을 집어 들었다. 이휘영 교수의 번역으로 수십 년 전 출판된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이다. 헌책방에서 외국 문학들만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적이 있었고, 그 때 사두었던 낡은 책이다. 요즘에도 좋은 소설들이 번역되지만, 과거에도 그랬다. 단지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없을 뿐. 그래서 과거에 번역되었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소설들도 꽤 존재한다.

장 폴 사르트르다! 그는 20세기 최대의 프랑스 철학자들 중의 한 명이다. 실은 앙리 베르그송이 아니었다면, 그는 최고가 되었을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소설가적 문장 구사와 궁지에 몰린 철학의 돌파구로서의 새로운 단어 만들기에 여념 없었던 사상가들의 책보다는 도리어 우리 존재와 일상의 무의미함, 고독,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자유를 이야기한 사르트르가, 어쩌면 우리 미래를 꾸리는 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소설이라고 구분되는 이 작품 ‘구토’는, 글쎄 읽기를 권하기 망설여지는 작품이긴 하다.

나는 주위를 불안한 눈초리로 돌아보았다. 현재 뿐이었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현재 속에 들어박힌 가볍고 단단한 가구며, 탁자며, 침대며, 거울이 달린 양복장 - 그리고 나 자신. 현재의 진실한 본성이 드러나 있었다. 존재하는 것 그것이 현재였다. 그리고 그 현재가 아닌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나의 과거가 나에게서 빠져나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중략) 사물이란 순전히 보이는 그대로의 것일 뿐이다. 그 <뒤>에는 ... ... 아무 것도 없다.
- 128쪽



실은 자신을 ‘여분의 존재’라고 여기는 주인공 로깡땡을 소개시켜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데카르트를 거부하고 존재를 부정한다. 더 정확히 말해 ‘존재의 의미 자체’를 부정한다. 그건 그냥 ‘없는 것’다. 아니면 ‘없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함으로 인해 끊임없이 견딜 수 없는 <구토>를 느낀다.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왜 나는 생각하는가? 나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존재한다. 생각한다. 나는 ... ... 왜냐하면 ... ... 으윽! 나는 도망친다.
- 133쪽



 

존재는 물렁물렁하다. (중략) 존재는 떨어진 전락이다. (중략) 존재는 불완전한 것이다.
- 134쪽



 

존재는 기억이 없는 것들, 사라져 버린 것들이며, 존재는 아무 것도 - 추억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 172쪽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주인공의 관찰과 사색이 대부분이고, 사건도 거의 없다. 몇 명의 인물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생각이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 과거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안니의 역할도 제한적이다(아무런 영향력이 없고 소설의 중요한 구성도 아닌 셈이다).

결국 이 작품은 사르트르의 실존적 철학을 향한 일종의 관문이라고 할까. 그 정도로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 작품을 소설로 인정하는 순간, 이 소설은 의식의 흐름 속에서 관찰과 사색을 통해 끊임없는 형이상학적 탐구를 계속하는 실험적 작품이 된다. 소설적 구성이 복잡하거나 난해한 것도 아니고, 일기를 통한 서술과 관찰과 사색으로 이루어지는 소설적 내용 또한 잘 어울리지만, 이런 류의 소설은 꽤 드물다. 더구나 존재와 자유에 대한 탐구라니.


나는 자유롭다.나는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내가 애써 찾아낸 모든 이유들은 사라지고 다른 이유는 이미 생각할 수가 없다. (중략) 나는 마당과 마당 사이의 길 속에서 고독하다. 고독과 자유, 그러나 이 자유는 어딘지 죽음과 비슷하다.
- 200쪽



사르트르는 문학에서 시작해 철학과 실천으로 향했지만, 그의 프랑스 철학계 후배들은 실천적 철학에서 시작해 문학적 글쓰기와 예술적 가상(또는 개념)에 빠져들었다는 점은 꽤나 흥미롭다(20세기 전반부와 후반부는 이렇게 나누어지는데, 이는 철학 뿐만 아니라 예술이나 다른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운 독서의 경험을 선물할 테지만, 일반 독자에게 추천하기에는 이 소설은 꽤나 지루하거나 너무 심각할테니, 고전이라고 무작정 추천하기 망설여진다.



프랑스 갈리마르사에서 나온 사르트르의 '구토' 표지. 사르트르는 1936년 32세의 나이로 '구토' 원고를 갈리마르사로 보내 출판을 의뢰하지만, 거절당한다. 그 다음해 갈리마르사가 출판하기로 결정하고 1938년에 출판되어, 무명의 사르트르는 일약 프랑스 문단의 신예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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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지음, <마사 퀘스트Martha Quest>, 나영균 옮김, 민음사, 1981년 초판

마사 퀘스트 - 10점
도리스 레싱 지음, 나영균 옮김/민음사

 


1981년도에 출판된 책이라, 노랗게 변한 책만 펼치면 종이가 세월 먹는 향이 코 끝에 닿는다. 요즘에는 보기 드물게 책의 뒷 표지에는 레싱의 옆얼굴 사진이 크게 인쇄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어디에서 구한 것일까.) 지금은 구할 수 없는 민음사 이데아 총서의 세 번째 권. 오래 전에 번역된 소설들이 최근 번역되는 소설들, 가령 파올로 코엘류의 작품들이나 <다빈치 코드>같은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시작은 꽤 흥미진진한 문장들로 시작한다. 가령 이런 문장들.


그러는 동안에도 마사는 불행한 사춘기의 고통을 맛보며 나무밑 긴 풀밭에 누워서 ‘어머니가 지겹다. 모든 늙은 여자는 지겹다. 그들의 대인관계는 하나같이 거짓말과 회피와 타협으로 뭉친 끔찍한 것이다.’라고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녀는 젊은이 특유의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경과 본능을 다해 갈망하는 충실한 삶을 환경이 그들에게서부터 빼앗아간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고통이었다.
- 22쪽



 

그녀는 사춘기에 있었으므로 불행할 수 밖에 없었고, 영국인이었으므로 불안하고 반항적일 수 밖에 없었고, 이십세기의 사십년대에 살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인종,계급,여성의 문제와 당면할 수 밖에 없었고 과거의 얽매인 여자들을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
- 24쪽




이런 문장들이 풍기는 분위기가 이 소설 1부 전체를 물들인다. 하지만 나머지는 이에 비하면 매우 맥 빠지고 1부에서 그토록 반항적이면서 당돌하고 매력적인 마사는 도회지에 나와 방탕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몇 명의 남자를 거치고 난 다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더글라스와 결혼을 해버린다. 그리고 이 결혼식에 대한 서술로 이 소설은 끝나버린다. 꽤 황당한 결말이다. 가령 1부에 읽을 수 있는 이런 대화.

‘넌 인종간의 장벽을 부인하니?’
‘물론이야’
‘물론이지’ 그는 비꼬듯이 말했다.
‘넌 반 유태주의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인종적 편견을 싫어하니?’
‘당연하지’ - 이 말엔 답답하다는 어조가 있었다.
‘넌 무신론자야?’
‘내가 그렇다는 건 네가 잘 알면서’
‘사회주의를 신봉해?’
‘말할 것도 없지 않어’ 그녀는 열내어 말하고 나서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심각한 인간으로서의 자기가 몰락을 했나보다 하는 우스꽝스런 의식에서였다. 조스는 마사의 웃음에 상을 찡그릴 뿐이었다. 그는 정통적 유태인 가족에서 태어난 열아홉살의 유태인 소년과 그보다 더 고루하게 키워진 사춘기의 영국 소녀가 이 대화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위험천만한 이단으로 받아들일 사람들로 꽉 찬 마을의 가게 뒷방에서 이런 자명한 이치에 서로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도 엉뚱하다는 의식이 없음이 분명했다.
- 86쪽에서 87쪽




이런 식의 대화는 이 책에 나오는 거의 유일한 경우이고 나머지는 마사의 자의식 강한 태도가 부딪히는 경우이거나 그 외의 영국 식민지 시절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흔하디 흔한 인종적 편견을 드러내는 경우이거나 시시콜콜한 연애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의 황당함이란, 굳이 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추측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소설은 5부작으로 씌어진 소설의 첫 번째 권에 해당되고 나머지 4권을 통해 마사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역자의 해설을 읽고 난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마사 퀘스트Martha Quest>도 마사의 환멸의 교육을 내용으로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의 이름 퀘스트는 영어로 탐색이란 뜻이 있으며 이것은 명백히 의도적으로 그녀의 인생탐헙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1952년에 출판된 이 작품은 그러나 독립된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 <폭력의 아이들 Children of Violence>라는 총괄적 제목으로 불리우는 5부작 중의 첫째권이다. 나머지 네 작품은 <어울리는 결혼 A Proper Marriage>(1954), <폭풍의 여파 A Ripple from the Storm>(1958), <육지에 갇혀서Landlocked>(1965), <네 개의 문이 있는 도시 The Four Gated City>(1969)이다. 다섯 개의 작품은 마사 퀘스트의 탐험과 환멸과 실험과 도전과 이상의 모색을 그 내용으로 한다.
- 461쪽


마사 퀘스트. 실은 이 책을 서점에서 구할 수 없고 도서관에서도 이 책을 빌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책이 새로 출판될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나머지 네 권과 함께 여성문학을 전공하는 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출판된다면 모를까.

여유가 된다면 마사 퀘스트가 나오는 나머지 네 권도 구해 읽어봐야겠다. 남아프리카 끄트머리에서 자라난 한 반항적이고 자의식 강한 사춘기 소녀가 공산당원이 되고 자신의 모험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마 도리스 레싱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페르시아 지방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의 로디지아라는 곳에서 자라났고 열네살 이후론 학교라는 곳을 다니지도 않은 한 여자아이가 20세기 후반 최고의 여성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종류의 일이니 말이다.

이 소설의 첫 장에 인쇄되어 있는 문장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너무도 지쳐 있고 미래가 오기도 전에 미래에도 지쳐 있다.
- 올리브 슈라이너


* 도리스 레싱의 자서전 표지다. '식민지 출신'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요즘,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조금은 궁금해진다. 위 리뷰는 꽤나 오래 전에 쓴 글인데, 이제서야 여기다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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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최근에야 처음으로 읽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생각보다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 작품이 적은 것이 놀랐고요. 잘 읽었습니다.

    • 한국은 '특이하게도' 영어에 대한 관심과는 반대로 영미 현대 문학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떨어집니다. 현대 영미 문학 중에 주목할 만한 소설가들이 참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진짜 소설 읽기는 10대 읽는 것보다 20대 중후반, 그리고 30대, 40대 접어들수록 더 재미있는 것같아요. 어렸을 때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


서쪽 부두 Quai Quest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지음), 유효숙(옮김), 연극과 인간


서쪽 부두 - 10점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지음, 유효숙 옮김/연극과인간




 

이 희곡은 공연을 위해서도 씌여졌지만 동시에 읽히기 위해서도 씌여졌다.
- 163쪽



 

이 연극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감정적으로 연기하는 것이며, 이는 좋지 않은 선택이다. 이 연극의 어떤 장면도 사랑의 장면처럼 해석되어져서는 안 된다. 그 어떠한 장면에서도 사랑의 장면이라는 가정 하에 쓰여진 장면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장면들은 거래, 교환, 암거래를 나타내는 장면들이며, 이런 장면들로 공연되어야 한다. 거래를 할 때 부드러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169쪽


 
 
1989년 에이즈로, 40대 초반의 나이로 사망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es)의 희곡이다. 사무엘 베케트 이후 최대의 불어권 희곡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콜테스는, 대부분의 낭만적 천재 작가들처럼 살아있을 때보다 죽고 난 후 생전에 누려보지 못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할까. 하지만 작품은 어둡고 절망적이며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우린 벽으로 가로 막혔어요, 선생님. 더 이상 갈 수 없어요. 이제 뭘 해야 할 지 말씀해 보세요. 우리가 어느 구멍으로 떨어지기를 원하시는 말씀해 보시라구요.' - 모니카, 11쪽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었고 알 수 없는 무대를 상상했고 무겁게 단어들을 입에 올리며 어색하고 낯선 몸짓의 배우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과연 그런 무대 였을까.

이 희곡은 1985년도 작품으로 국내에는 2004년에 번역 출판되었다. 작품은 뉴욕의 어느 버려진 부두가를 배경으로 가난한 이민자 가족, 세실, 샤를르, 클레르 등의 인물들과 종교 단체의 자금을 관리하다 돈을 다 탕진하고 자살을 위해 온 콕과 그를 따라온 모니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연극을 목적으로 씌어진 이 작품은 동시에 읽히기 위한 작품이기도 하며, 막과 장의 구분이 없으며, 몇몇 배우들에겐 곤혹스러울 정도로 대사가 장황하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부두임으로 종종 배 소리,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가 들릴 것이고 멀리 뉴욕의 번잡스러운 불빛도 비칠 것이다. 그래서 무대는 극단적 대비와 황폐한 분위기를 자아낼 것이고 길게 이어지는 대사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지루한 절망감을 안겨줄 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은 그 곳에서 저지른 범죄의 냄새로 오욕과 침묵과 너희들이 숨기는 그 모든 것들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 거야. 아버지도 없고, 엄마도 없고, 근본도 없고, 언어도 없고, 이름도, 종교도, 비자도 없는 너희들이 이 곳에 온 후 모두에게 불행이 닥쳤어. 너희들 때문에 우리도 불행해졌다구. 불행이 슬그머니 계단을 올라와 우리 문을 걷어차고 들어와서 빛과 태양이 필요할 때, 비참, 돈 한 푼 없는 생활이 시작되었지.' - 세실,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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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지음), 이경덕(옮김), 사계절



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비가 온 뒤 땅은 굳어지는 왜일까.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진 다음에서야 우리는 왜 사랑에 대해 (철저하리만큼) 숙고하고 보잘 것없이 여겼던 연애의 기술을 반성하는 것일까. 거친 홍수처럼 세차게 밀려들었던 후회와 끔찍한 반성의 세월을 술과 함께 보내며, 나는 얼마나 많이 ‘철 들지 않는 나’를 괴롭혔던가. (그리고 결국 ‘철이 든다는 것’을 지나가는 세월과 함께 포기했지만)

이 책을 읽게 될 청춘들에게 자이니치(재일한국인) 강상중은 힘들었던 자신의 이야기 너머로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등장시킨다. 이미 베버와 소세키가 죽었던 그 나이보다 더 살고 있으면서(그래서 그는 이 책의 말미에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강상중 교수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인용하면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는 건 의외의 일이긴 하다. 허나 막스 베버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문학에서 나쓰메 소세키 같은 작가가 있다는 건 정말 기적적인 일이 아닌가!(한국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하지만 ‘인간의 마음 자체는 사고하고 성찰하는 데 부적합한 것’(1)일 지도 모르니,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 나쓰메 소세키는 세계문학전집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의 작가이고, 막스 베버는 전공자들에게나 읽히는 사회학자 쯤으로 여겨지는 요즘에, 강상중 교수의 이 책이 이렇게나 많이 팔리고 읽혔다는 건 참 낯선 일이다(그리하여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더 많이 읽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삐딱하기만 한 내 눈엔, 저자는 진실한 마음으로 ‘고민하는 힘’을 이야기했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에겐 ‘고민하는 힘을 읽은 위안’만 전해준 것은 아닐까. 몸으로 부딪히며 고민하라는 저자의 조언 대신.

현대, 즉 모던(Modern)과 그 이후에 있어서 자신의 문제는 자기에게로 돌아온다(자기반영성의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 이후의 우리에게 ‘자아의식(self-consciousness)은 결국 신경쇠약을 낳는다. 신경쇠약은 20세기의 모두가 공유하는 병’(나쓰메 소세키)이 되어, 우리는 그 정신병과 싸우거나, 반대로 그까짓 것 하는 심정으로 ‘본 투 비 와일드(Born to be Wild)’가 되어야 할 것이다(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채 거대한 세상에 끌려 다니다 죽을 수도 있겠지).

강상중의 이 짧은 책은 독자에게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끔 요청하지만, 책은 너무 간략하고 강상중 교수의 문장은 종종 넋두리 같이 들렸으니, 이는 결국 살아가야 하는 건 나이거나 독자이고, 저자인 강상중 교수도 그렇게 살아왔다는 걸까. 

자살을 생각하는 한 여인을 앞에 두고, “죽지 말고 살아야해”라는 소세키의 조언 다음에 나오는 ‘죽음은 삶보다 귀하다’라는 독백은 우리 인생이 어떤 대지 위에 서 있는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 이 책 속에서나 밖에서나 삶(인생)의 문제란, 근대(Modern)의 문제이고, 청춘의 문제이며, 젊음의 문제였다. 

그래서 스물 살 때의 고민이나 스물 다섯이나 서른 다섯, 혹은 쉰 다섯이라고 해서 그 고민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자기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나 질문이 달라지지도 않을 게다. 고민하는 시간이 오래 되었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그 고민이나 의문에 대한 답이 나온 것도 아닐 것이고. 단지 고민과 의문에 답을 구하는 자신의 태도가 달라져 있을 뿐.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고민이나 의문이 아니라 그 고민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될 것이니,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대하게 될 비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고, 잔인한 슬픔을 동반한 헤어짐 뒤에, 새로 만나게 되는 연인에 대해선 과거 자신이 했던 행동과는 다른 태도로 연인을 대하게 될 것이니, 인생은 관객은 없고 오직 주인공만 혼자 이리저리 부딪히고 힘들어하는, 한 편의 잔인한 드라마는 아닐까.(2)

그저 인생은 원래 쓸쓸했고, (주위의 조력자) 없이 고민하는 나로 인해 세상은 조금이나마 살만한 곳이 될 터이니,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에 대한 공허한 위로만이 저 차가운 대기를 채운다.

이 책을 감히 추천하기에는, 이 책을 번역한 역자도 나쓰메 소세키를 번역하면서 읽었다고 하니, 과연 이 책이 얼마나 깊은 호소력을 가지게 될 지는 미지수다. 그나저나 막스 베버의 책은 서가 어디에 있는 걸까. 오래 전에 읽었으니,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다 읽고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읽기를!)



1)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Black Swan’(동녁사이언스) 중에서
2) 하긴 이런 경우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의 99%는 돈으로 해결 가능한 것이다’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는 부자가 되었다.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1%의 문제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파멸을 향해 달려갈 테지만, 이 얼마나 현실적인 답변인가! (출처: 잭 트라우트, 알 리스, '마이 포지셔닝My Postioning'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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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에 책이 있다.
안치운(지음), 마음산책



시냇물에 책이 있다 - 8점
안치운 지음/마음산책



언제부터 프랑스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고등학교 때 배웠던 불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나 르 끌레지오? 하지만 그 때 내가 열심히 읽었던 소설가는 헤르만 헤세였는데. … 아니면 먼 훗날의 필립 솔레르스, 로베르 데스노스, … 기억은 꼬리를 물고 빙빙 돌아, 몇 해 전 갔던 파리 하늘 아래로 모여든다.

지하철을 오가며 안치운의 산문집을 읽었다. 웬만한 문학 비평가들보다, 웬만한 소설가보다 뛰어난 산문을 가진 그는 연극평론가이다. 중앙대에서 연극을 공부하고(그는 예술대 선배다),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하였다(뜬금없이 고백하건대, 마음 깊이 모교 교수를 하였으면 했던 이가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이 안치운이었고, 나머지 한 명이 남진우였다).

생각은 계속 진전되어, 프랑스 쪽에서 공부를 한 이들이 대체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문장이 서정적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불문학 전공자들 중 뛰어난 문학 평론가들이 많고 작가도 많고 .... (다른 문학 전공자들보다. 아니면 내가 너무 친-프랑스적이여서 그런 걸까)


책은 쉽고 편안하게 읽혔다. 하지만 예전만한 감동이나 몰입을 일어나지 않았다. 안치운의 글은 부드러웠고 적당히 쓸쓸했으며, 어디에서 읽어도 그 공간의 소란스러움을 잠재우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 독서는 예전만 못했다. 어느새 내 독서 행위의 표면 위로 굳은 살이 덮인 것일 게다. 그렇게 세상의 먼지가 내 영혼의 세포 사이 사이로 밀려들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은 이런 책을 읽을 때 알 수 있다.

침묵, 그것은 낯선 길이라는 타인과 친해지는 내밀한 상태이며, 귀 기울이는 일이며, 자신의 몸을 낮추는 일이며, 그 길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다. 그리하여 배우는 일이다. - 118쪽



하지만 이 산문집은 누구에게나 추천해도 좋다. 적당히 쓸쓸한 현대적 삶, 혹은 얇게 쌓인 눈이 한밤의 추위로 얼어 붙은 인도 위의 행인에게 이 책은 적절한 여유를 줄 것이고, 가령 키에로프스키를 좋아한다든지, 아니면 슈베르트, 파스칼 키냐르, 혹은 파트릭 모디아노를 기억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근사한 선물이 될 것이다.

Les objets parlent plus que les mot
사물은 낱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 키에로프스키, ‘베로니카의 이중 생활’



이 책 속에서 연극을 이야기할 때의 안치운은 행복하나, 어딘가 쓸쓸해 보이고, 종종 힘겨워 보이는 것은 실제 세상-계량적 가치와 돈으로만 움직이는-과 너무 멀리 떨어진 탓이리라. 그리고 그런 쓸쓸함은 파리 풍경 속으로 사라지고 …

몇 해 전 파리, 생 제르맹 거리가 눈 앞에 선하니, 나는 다시 언제 파리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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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고 있는 산문집에서 그리운 이름 하나를 발견하고 기뻤다. 그 이름은 파트릭 모디아노. 프랑스의 대중적인 소설가(?), 라고 하면 그런가. 다른 이들 - 미셸 투르니에, 르 끌레지오 등 - 과 비교해 어떤 문학성으로 승부한다기 보다는 서정성, 분위기 등으로 독자를 사로잡는다고 할까.


내가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던 때 언제였는지 아련하다. 고등학교 때부터였나. 그리고 대학시절까지 그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지금 스토리가 기억나진 않지만, ... 지금 그의 소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번역된 그의 소설 몇 권을 리스팅해본다. (예전 내가 읽었던 소설들은 이제 품절이거나 절판이다. 이런..)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화영 역

도라 브루더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운비 역




팔월의 일요일들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화영 옮김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파트릭 모디아노 저/김화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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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세니예프의 생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지음), 이희원(옮김), 작가정신, 2006년



아르세니예프의 생 - 10점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지음, 이희원 옮김/작가정신
 

 
1.
‘그래, 그랬지. 나는 지금 이 순간 늙어가고 있고, 지나간 일 따윈 돌이킬 수 없지. 하지만 밀려드는 슬픔은 왜일까’라는 말을 하기 위해 나는 이 소설을 6개월 동안 가슴 조이며 읽었다. 6년에 걸쳐 번역한 소설을 나는 6개월에 걸쳐 읽으며, 한 장 한 장마다 러시아의 차가운 서정(敍情)을 느꼈고 거친 대지의 순수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며, 한 영혼이 어떻게 서글픔에 잠긴 채 과거를 되새길 수 있는가를 보았다. 

나는 목격자이며, 방관자였고, 공범이 되었다. 지금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지나쳐 버린 세월에 대해, 무채색으로 흐려져만 가는 추억에 대해, 그리고 시들지 않는 사랑의 기억에 대해. 그 때 나는 최선을 다했으나,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밀려드는 건 그나 나나 똑 같은 것이리라. 

2.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러시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러시아로 돌아가지 못한 채, 1953년 파리에서 죽었다. 몰락한 귀족 집안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 이 두꺼운 소설은 그의 자전적 성격이 강하게 묻어난다. 

이 소설은 한 젊은이가 태어나 성장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질풍노도와 같은 방황도, 자신의 생을 파멸로 이끄는 사랑도,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열정도 없다. 소설은 마치 순백의 눈이 쌓인 러시아 중부 평원 가운데를 지나는 강물을 담아 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쬐는 햇살의 각도에 따라, 계절마다 방향을 바꾸며 부는 바람, 혹은 시시때때로 자신의 모양을 바꾸는 구름들로 인해 끊임없이 변모하는 말 없는 강물처럼, 소설은 잔잔하게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러시아적 삶과 자연을 노래한다. 

우리의 삶이 시간 위에서 유한함의 비극을 가지고 있듯이, 소설 전체를 물들이는 것은 바로 지나간 추억에 대한 쓸쓸한 반추다. 그 위로 러시아의 건조하고 차가운 풍경이 겹친다. 

3.
 

내 삶의 첫 기억은 미심쩍은 정도로 무언가 좀 하찮은 구석이 있다. 초가을 햇살이 비쳐 드는 커다란 방, 그리고 그 방의 창을 통해 남쪽으로 보이는 산비탈 위로 빛나는 가을 태양의 건조한 섬광 …… . 오로지 그 단 한순간!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 그 순간이 아무런 이유 없이, 기억이 가능해진 후의 내 삶에 있어 첫 기억으로 그토록 선명하게 나의 의식을 사로잡은 것일까? 그리고 그 순간 이후로는 왜 또다시 오랜 기억의 공백이 있는 것일까?
나의 유년기는 슬프게 기억된다. 모든 유년기는 서글픈 것이다. 아직 온전한 삶으로 깨어나지 못한 무료한 생활과,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여리고 겁먹은 영혼이 고요한 세상 속에 흐릿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 11쪽 



문장은 유려하고 아름답고, 정처 없는 젊은 영혼이 머무는 곳은 가족이거나 문학, 또는 소녀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으로 향하는 젊은이는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었던 갈망으로 그 사랑을 놓친다. 이 소설이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그저 노년이 된 어떤 사람의 고백처럼 읽히는 건, 지나간 추억에 대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소설 전반을 물들이기 때문이다. 

4.
 

육지의 가장자리, 칠흑 같은 어둠, 짙은 안개와 차가운 파도는 거세게 몰아쳤고, 파도소리는 잦아들다가 커지면서 야생침엽수가 내는 소리처럼 솟구쳐 오르기도 했다 …… . 밤의 심연은 앞을 볼 수 없이 캄캄하고 불안했고, 요람에서부터 시작된 고통스럽고 적대적이고 무의미한 삶을 말하는 것 같았다. 
- 302쪽



청춘은 캄캄하고 불안하고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구원처럼 나타나는 것은 문학이 아니라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어떤 것. 삶의 비극은 그 비극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우리 영혼의 병은 심해져만 가고, 그 사이 우리 사랑도 우리 곁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그 해 봄에 나는 그녀가 폐렴에 걸려 집으로 돌아갔고, 그리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가능한 한 오랫동안 내게 그 사실을 숨기게 한 것도 그녀의 뜻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495쪽 



이 소설을 통틀어 가장 멋없는 몇 개의 문장들로 수놓아진 이 작품의 끝은,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은 끊임없이 되새겨지지만, 그 밑에 흐르는 슬픔은 어쩌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6. 
소설은 구성은 아래와 같다. 

1부 카멘카, 삶의 시작 
2부 나의 조국 러시아
3부 숭고한 사명, 문학
4부 청춘, 그 찬란한 이름
5부 사랑, 시들지 않는 기억 

번역된 것으로는 작가정신(출판사)를 통해 이희원 번역으로 나온 것과 나남출판사를 통해 이항재 번역으로 나온 것이 있다. 후자의 책은 읽지 않았지만, 지금 구할 수 있는 것은 이 책뿐이다. 


7. 
6년에 걸쳐 이 소설을 번역한 이희원 선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출판사에서도 이 책의 재발간을 검토해보았으면 좋겠다. 이번 겨울, 이 소설은 지친 우리들에게 충분한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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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친구들도 유미리를 읽을까. 유미리를 읽지 않는다면, 누구를 읽을까.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그녀. 해질녁 공원 계단에서 죽은 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그녀.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 


도서관에 빌린 강상중의 책 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 발언 때문에 강연회를 할 때마다 극우파의 공격에 대비해 배에 신문지를 넣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는 강상중 교수의 책을 보자, 문득 유미리가 떠올랐다. 서재에 이미 그녀의 책은 다른 책들로 인해 밀려밀려 어디로 사라지고 ... 도서관에 가서 그녀의 책을 빌려 읽어야겠다.

그녀의 트윗을 팔로워했는데(일본어를 할 줄 모르면서), 그녀의 딸인가 싶다. 혼자 딸을 키우고 살아가는 작가 유미리... (주제 넘은 생각이지만) 가끔 행복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녀도 거기에 속한다.

- 2011. 12. 18에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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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2004. 08. 29에 적었다.


유미리(지음), 한성례(옮김), <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 문학동네, 2002(1판 1쇄) 


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 - 8점
유미리 지음, 한성례 옮김/문학동네





그녀는 늘 나는 외롭지도, 힘들지도, 슬프지도 않다고 어금니를 꽉 물고는 너무 외롭고, 너무 힘들고, 무척 슬프다고 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녀의 몇몇 문장은 매우 좋지만, 대부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선명한 아픔을 느끼게 하여 불편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소설이라는 허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유미리라는 여인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고 유미리라는 한 인물을 궁금하게 여기게 된다. 소설 속으로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 산문집을 굳이 사서 읽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썩 좋은 산문집은 아니다. 그러나 독자가 여성이고 나는 너무 외롭고 너무 힘들며 너무 슬프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이 한시라도 떠나지 않는다면 유미리의 소설이나 산문집을 사서 읽는 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녀도 그러하니깐.

 
“양선생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보폭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달릴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 달린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견뎌내는 것이다.”

 
사회주의자이면서 손기정 선수와 버금갈 정도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던, 그러나 전쟁으로 동경올림픽에 참여하지 못한 채 일본에서 살아가게 된 어느 남자의 외손녀. 그리고 그는 한국에 돌아와 죽고 그 손녀는 외할아버지의 흔적을 쫓아 한국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녀가 만나는 건 할아버지의 과거가 아니라 그녀의 현재이고 그녀의 아픔이며 그녀가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였다.

 
아마 유미리의 외할아버지가 남겼다는 말.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고 달린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견뎌내는 것. 아마 그녀는 그녀의 인생 전체, 그녀의 문학 전체로 그것을 보여주고 싶은 건 아닐까.

 
잠시 옥상에 올라가 8월의 하늘을 보았는데, 어느 하늘은 높았고 어느 하늘은 낮았다. 어느 곳은 여름이었고 어느 곳은 겨울이듯이. 보이는 것, 느끼는 것, 아는 것들이 우리의 감각을 속이고 우리 생을 배반할 때, 우리의 분노가, 우리의 펜이 향하는 곳은 우리 자신이다. 유미리, 그녀는 지금 그녀 자신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 자신과 싸워 이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설가 유미리씨(왼쪽)와 고 손기정옹의 손녀 은경씨가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그녀의 웹사이트
http://www.yu-mi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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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리스(Jean Rhys),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Wild Sargasso Sea)
윤정길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38권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 6점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그래, 이제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전진과 후퇴도, 의심도 주저도, 좋든 나쁘든 간에, 어쨌든 모든 것은 끝이 난 거다. 우리는 세찬 비를 피하느라 커다란 망고나무 밑에 서있었다. 나, 내 아내, 그리고 혼혈 하인 아멜리. 우리의 짐은 굵은 마직포를 덮은 패 다른 나무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99쪽



소설은 짧고, 고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맥이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마치 19세기 에밀 졸라의 실험소설들과 20세기 초 의식의 흐름 소설을 묶어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풍경을 뒤로 하여 감수성 예민한 미모의 여성과 예의 바른 신사의, 사랑 없는 결혼에 대한, 밋밋한 풍경화인 이 소설은 앙투아네트의 인생 속으로 끼어든 로체스터를 통해 식민 시대의 폭력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시대에 대한 통찰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여자와 남자의 설득력 없는 독백들과 서정적인 식민 풍경 묘사가 전부다. 이 독백들은 의식의 흐름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한계는 무엇인가. 실은 이 시대의 식민지 태생의 여성과 본토 출신의 남성 간의 결혼이 야기하는 문제는 이 소설이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니 스토리의 특별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별하게 부각되어야 할 것은 왜 그들은 서로 마음의 문을 닫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속하게 되는가에 맞추어 져야 할 것이다.

그녀는 이 장소를 사랑한다고 말했지. 그래, 이것이 그녀가 이 장소를 마지막으로 보는 기회가 되게 해주지. 그녀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을 쳐다 보겠어. 눈물 한 방울. 나는 그 텅 비어 증오만 남은 광녀의 얼굴을 보지 않을 거다. 그녀가 안녕을 고하겠지. 그 소리를 들어야지. - 233쪽



 

나는 산들도 언덕들도 강들도 비도 증오하고, 그 색깔들이 무엇이든 간에, 황혼도 증오한다. 나는 이 곳의 아름다움도 마력도 그리고 내가 결코 알아낼 수 없는 비밀도 증오한다. 나는 이 곳이 보여주는 아름다움 속에 내재한 무관심도 잔인성도 증오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 여자를 증오한다. 왜냐하면 이 여자는 그 마력과 그 아름다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목마른 상태로 남겨 놓았다. 내 온 인생은, 발견하기도 전에 이미 상실한 것을 그리워하고 목말라하는 그런 인생이 될 것이다. - 242쪽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설 후반부에 급박하게 전개되는 여러 독백들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에밀 졸라가 어떤 특정한 환경(실험실) 속에 인물들(실험소재)를 집어넣어 현실 비판적이며, 시대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였다면, 진 리스는 제국주의 시대가 무너져가고 노예가 해방되고 흑인과 백인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었던 어느 시대에(실험실), 뭇 남성들이 좋아할, 재산이 있는 미모의 여성을 등장시키고, 그 당시 평범한, 예의바른 영국 신사와의 결혼이라는 사건(실험소재와 실험 내용)을 통해 시대의 본질 따윈 드러낼 시도 따윈 하지 않고(안타깝게도 그건 진 리스를 둘러싼 여성주의 비평가들의 몫인 듯), 조이스나 울프에서 영향받은 의식의 흐름을 구사하려고 하였으나, 변덕스럽고 급작스러운 감정 변화와 현실감 떨어지는 갈등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인기 많았던 어느 여성 소설가의 시대 비판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반 독자에게 권할 만한, 그래서 고전으로 남을 그런 소설은 아니었다.


* 리뷰를 올리고 난 다음, 찾아보니 이 소설은 TIME이 선정한 100대 영어권 소설(1923년 이후 출판된)에 랭크되어 있었다. 다소 놀라운 평가이다. 아마 이 소설의 문제성 - 제인 에어에 대한 Hommage(?), 여성주의 소설 등이 높은 평가를 받은 건 아닐까.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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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정기구독해서 읽고 있는 동아비즈니스리뷰 82호에 흥미로운 인터뷰가 실렸다. 영국의 종이잡지 모노클(Monocle)의 대표이자 편집장인 타일러 브륄레와의 대담. 

브륄레는 이렇게 말한다.


“모노클은 성장하는 프린트 제품(print product)이다. 우리는 저널리즘에 투자하고, 시장에 도전(challenge market)한다” - 타일러 브륄레



잡지, 아니 종이 콘텐츠 시장의 거대한 흐름 -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향해가는 - 을 거슬러는 듯한 그의 인터뷰는 디지털적 삶 속에서 아날로그적 취향을 가진 나를 자극했다. 활자는 종이로 읽어야 제 맛이라고 믿는 나로선 타일러 브륄레의 인터뷰을 읽는 내내, '맞아, 맞아, 이래야 해' 라며 공감했다. 


 

“생동감 있게 콘텐츠를 전달하는 디지털과 싸워 이기려면, 종이 매체를 통한 경험(print experience)을 선사해야 한다. 즉 넘겨읽는 손맛이 느껴지고(tactible), 재미있고(exciting), 수집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collectible) 한다.” - 타일러 브륄레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종이 매체와 디지털 매체의 대립각을 세우고, 종이 매체는 죽고 디지털 매체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는 덜 떨어진 디지털주의자와 논쟁을 벌일 생각은 전혀 없다. 왜냐면 종이 매체가 주는 경험과 디지털 매체가 주는 경험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종이 매체가 좋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종이 매체는 공간적 존재다.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또한 그것은 시간 속의 매체이다. 세월이 지나간다는 것을 손 때 묻은 페이지와 구겨진 종이, 그리고 그 특유의 종이 썩는 냄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디지털 매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며, 가질려고 하지도 않을 속성이다.

종이 매체는 디지털 매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속성,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다른 매체다. 마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소설과 영화를 경쟁 구도로 파악하고 소설의 죽음을 이야기했던 덜 떨어진 문학 평론가들처럼 되지 말자. (솔직히 나는 아직까지도 이들의 덜 떨어진 견해로 인해 한국 문학은 최소 10년 이상 퇴보했다는 이상한 편견에 휩싸여 있다.) 

결국 디지털 매체는 접근 용이성과 생산 용이성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 아래, 넘쳐나는 자극적이고 쓰레기 같은 콘텐츠들 속에서 스스로의 방향을 잃지 않을까. 디지털 매체로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면, 매우 신중해져야만 할 것이다. 디지털 매체로 전환한다고 해서 잡지 생산 비용이 눈에 띌 정도로 절감되지 않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콘텐츠 생산에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고 디지털 매체로 전환하는 경우, 디지털 매체에 맞는 또다른 방식의 인터페이스(UI) 개발에 예상치 못한 금액이 나가게 될 것이다. 결국 종이냐, 디지털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잡지냐의 문제다.

여튼, 모노클의 타일러 브륄레의 인터뷰를 읽고 모노클을 주문했다. 그리고 어제 주문한 모노클(Monocle) 10월호가 오늘 아침에 왔다.


 

“양질의 퀄리티로 사람들이 수집할 만한(collectible) 매거진을 펴내면 사람들은 그 매거진을 집어들 것”
- 타일러 브륄레


대학 시절 잡지를 만들었고, 얼마 전에도 잡지를 만들었던 나는 아직도 잡지 욕심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에 잡지 고민을 심각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젊은 필진들을 모을 수 있는 단계까지 갔으나, 역시 생산비는 ...

그렇다면 모노클 10월호는 나에게 어떤 자극을 줄 수 있을까. 흥미롭다.





잡지를 펼치면 위와 같다. 저 빽빽한 활자들을 보라. 마치 1980년대 잡지를 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런 잡지가 한국에도 있었다. '샘이 깊은 물'... 하지만, 지금은 나오지 않고...

모노클 10월호. 정기구독 신청을 하기 전에 미리 한 권만 주문했다. 안 그래도 읽을 페이지들이 쌓여있는데, 이 잡지까지 들어오면 직장 생활 이 외의 나머지 시간은 읽는 데에만 보내야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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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상 주 흐름이 있으면 그 흐름을 거스르는 역트렌드가 등장하는 것 같아요. 물론 라디오나 tv가 나올 때부터 종이책에 대한 종말론은 계속되어왔지만, 만질 수 있고, 소장할 수 있는 정제된 것이라면 종이잡지만큼 좋은 미디어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디지털잡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열어두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은 있습니다만. ^^

    • 종이잡지가 좋죠. ~ ^^ iPad로 보는 잡지도 좋아요. 대신 종이를 버리고 디지털로 변환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여기는 디지털주의자들에게 모노클은 무척 흥미로운 잡지인 것같아요. 여튼 재미있는 잡지입니다. 모노클 - 글로벌 댄디 잡지입니다. ㅎㅎ

  • CD를 지나 SACD까지 그리고 바로 다운로드해서 음원을 구입할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LP를 즐기고 또 구준히 LP를 생산해내는 것을 보면 종이책이나 종이잡지가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모노클 흥미로운 잡지네요. 아마존에 찾아보니 없네요. 회사에서 직접 구매해야하나 봅니다.

  • 그레이트 2011.11.16 20:13 신고

    파운드라는잡지가있어뇨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 10점
강상구 지음/흐름출판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강상구 (지음), 흐름출판



출판사 담당자에게 이 책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다음, 바로 서평을 쓰지 못했다. 쓰지 못한 이유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이제 내 나이도 마흔이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이라는 책 제목도, 마흔에 꺼낸 ‘손자병법’에 대한 저자의 머리말도,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다.

<<손자병법 孫子兵法>>을 처음 읽은 건 20대를 마치고 30대를 준비할 때였다. 패기만만하고,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보이던 그때, 내게 <<손자병법>>은 ‘싸움의 기술’이었고 '승리의 비법‘이었다.
‘싸움은 속임수다’(兵者詭道병자궤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정 이기는 것이다’(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부전이굴이지병 선지선자야) 같은 단편적인 문장들이 마치 마법사의 주문처럼 나를 매료시켰다.
(중략)
<<손자병법>>을 다시 꺼낸 건 나이 마흔을 맞이하면서였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은 예전보다 훨씬 커졌고 나는 부쩍 작아져 있었다. 사회에서의 지위는 높아졌지만 말은 조심스러워졌다. 어릴 적 그토록 쉽게 거부했던 또는 당당하게 논쟁을 벌였던 상사의 지시에 더 이상 토달지 않게 됐고, 후배들에게 지시보다는 부탁을 하게 됐다. 마침 입사 이래 처음으로 내근을 경험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읽어나간 <<손자병법>>의 느낌은 10여년 전과는 사뭇 달랐다. 톡톡 튀는 경구가 아니라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 비로소 보였다.
- 머리말 ‘손자병법, 비겁의 철학’ 중에서



손자병법, 마지막으로 손에 들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동양고전을 읽지 않았던 내 독서 태도 탓이다. 그렇다면 다른 것이라도? 그런데 저자는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 손자병법을 읽었고 자신의 시각으로 손자병법에 대한 책 한 권을 써 세상에 내보였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솔직하다. 손자병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예시를 제공하여 손자병법 원문의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는 손자병법을 읽어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행간 사이사이에 드러낸다. 스스로를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책을 써가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손자병법’을 ‘비겁의 철학’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시무시한 살육이 자행되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연전연패한다. 그렇게 살아,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어느새 나이 마흔이 되고 손자병법을 손에 들었지만, 어디서 전투가 일어나고 어디에서 상처 입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적들로 둘러싸여 그 어떤 움직임도, 그 어떤 소리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 분투할 뿐이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은 우리 짧은 인생의 은유이면서 삶의 지침이며 변명처럼 읽히다. 읽어가며 무수한 밑줄을 그었지만, 이 짧은 서평에 인용하지 못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손자병법을 다시 읽을 생각이다. 그 위로 내 삶을 올려볼까 한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다른 일상에서 내 삶의 태도, 언행을 다시 되새기면서 전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 서평을 읽을 이에게, 이 가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바라보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를 조금이나마 반성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지도. (어쩌면 내 나이가 마흔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목차는 아래와 같다. 목차에서 느끼는 것과 달리, 책은 딱딱하지 않고 많은 예시로 쉽게 읽을 수 있다.

목차

1. 始計 시계 - 전쟁이란 무엇인가
2. 作戰 작전 - 전쟁, 오래 끌면 헛장사다
3. 謨攻 모공 -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정한 승리다
4. 軍形 군형 - 이기는 싸움만 한다
5. 兵勢 병세 - 계란으로 바위치기? 바위로 계란치기!
6. 虛實 허실 - 선택과 집중
7. 軍爭 군쟁 - 지름길은 없다
8. 九變 구변 - 장수의 조건
9. 行軍 행군 - 본질은 숨어있다
10. 地形 지형 - 패전의 이유
11. 九地 구지 - 본심을 들키면 진다
12. 火攻 화공 - 얻는 게 없으면 나서지 않는다
13. 用間 용간 - 아는 게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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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우 마리코의 <입국>이라는 시집에 있는 시다. 민음사에서 나왔는데, 지금도 구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집 책장 어딘가에 꽂혀있을 텐데, 이 시집 보지 못한 지, 몇 해는 족히 된 듯 싶다. 한 번쯤 만나, 이야기 해 보고 싶은 그런 시인이었는데, 지금은 일본에서 뭘 하고 있는지. (2004. 12. 1)

1993년에 이 시집이 나왔으니, 이제 2년만 더 있으면 20년이 되는 셈이다. 그 사이 세상 많이 변한 것같지도 않은데 ... 때때로 기억은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추억은 가슴은 아프게 한다. 과거는 현재의 짐이 되고 미래를 오지 않게 하기도 한다. 그렇게 다시 현재는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된다. 우리는 한 발 한 발 앞으로 가는 것이라 믿지만, 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태양 아래 초록 식물은 광합성을 하고, 이 지구의 생명들은 영원한 신비를 가진 에너지로 시간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것이다. (2011. 9. 7)




                           光合成



            한국에 오기 전에 나는 모든 책을 다 팔아버렸
          다.  헌책방 할아버지가 내 방에 와 내가 십 년
          동안 간직하며 이사할 때마다 질질 끌어온 글자
          의 떼를 모조리 데리고 가셨다.  잘 가요, 내 책
          들아. 그것은 무척 무거웠다. <책이란 참 무겁군
          요>  내가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럼
          요. 아무래도 원래는 나무였으니까요>
            그리고 나는 책 한 권 안 가지고 여기에 왔다.


            일본말로  나무는  KI라고 하며  한국말로는
          NAMU라고 한다. 십 년 전에  처음 한국말을 배
          웠을 때 <나무>란 낱말이 나의 가슴속으로 뿌리
          를 박았었다.  한국에 온 지 두 달 동안 줄곧 아
          래만 보면서 돌아다녔는데 유월이 되고 처음으로
          눈을 들어 봤더니  그들이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서 있었다.  그들을 <나무> 하고 부르면 내 속에
          서 <나무>가 답례했다.  십 년 공들여 간신히 푸
          르게 자란 잎사귀들이 눈부시게 펄럭이면서.


            <한국에 유학 가기로 했어요.  이 년이나 지나
          야 돌아올 거예요> 내가 그렇게 했더니 할아버지
          는 책에 쌓인 먼지를 닦으면서 말했다. <그 무렵
          에 나는 살아 있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꾸린 책
          을 헌 트럭에 싣고 나갔다. <잘 가시오, 열심히
          공부하세요> 하면서. 그가 평생 동안 얼마나 책
          을 사랑하며 살아왔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할
          아버지가 전에도 책을 사러 내 방에 왔을 때 한
          사회심리학 책을 들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
          다. <이 책은요 삼 년 전만 해도 잘 팔렸는데 요
          즘은 통 안 나가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안 팔기
          로 할게요. 사실은 저도 아직 안 읽어봤거든요>
          <그게 좋을 거예요. 한번 읽어보시면 아주 좋을
          거예요>
            그래도 끝내 그 책은 읽지 않은 채 나는 떠나
          게 됐지만.


            여기 와서 나는 또 많은 책을 샀다. 나무 밑에
          서 책을 읽으면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볕 모양
          대로 생각이 흩어져 간다. 한 권의 책은 많은 나
          뭇잎들의 역사로 가득 차 있다.  말을 잃어버릴
          때야  침묵은 어느 나라 말도  아니며 어느 나라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한 券의 말이 한 그루 나무의 삶과 어울릴 줄
          안다면 어느 나라 말이라도 좋다.
            말이 한 그루 나무의 내력을 지켜줄 줄 알고
          그 나무를 키웠던 지하수 한 방울 한 방울까지도
          엎지르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삼켜낼 줄 안다면.


            다른 나무들이 다 벌거벗게 된 다음에도 푸른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서 있는 가로수 한 그루.
          그것은 끝까지  눈물이 마르지 않는 눈과 같다.
          또는 눈뜬 사람들 속에서 홀로 瞑目하는 사람 같
          다.  나무들이 가장 싱싱하게 살아 있어 보이던
          그 유월에는 다른 어느 나무와도 다름이 없게 보
          였던 그 나무.  그리고 다음 날 내가 본 것은 그
          나뭇잎사귀  사이사이에 모여 앉아 지저귀고 있
          는 참새들.  설레는 가슴처럼 들끓으며 서 있는
          가로수 단 한 그루. 마치 말이 되기도 전에 사상
          을 달래는 꿈과 같이.




입국
작가 : 사이토우 마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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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자, 철이 들자, 결혼 생각을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집은 내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 먼 바다로 흘러들었다. 한동안 육지 생활만 했다. 거친 흙바람 사이로, 붕붕 거리는 검은 자동차들 사이로, 수직성의 공학적 규율로 세워진 빌딩들 사이로, 거대한 거짓말로 세워진 정치적 일상 속에서 시는 없었고 시집은 죽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여름이 왔다, 갔다.

외로움이 낙엽이 되고 흙이 되고, 몇 해의 시간이 지나자 사랑이 되어 꽃이 피고 나무가 자랐다. 먼 바다로 나갔던 시집은 지친 기색도 없이 이름 모를 바다 해변가로 밀려들었고 그제서야 나는 육지 생활에서 한 숨 돌릴 수 있는 무모함을 가지게 되었다.

시집을 샀다, 놓았다, 펼쳤다.

심보선은 2011년의 대세다. 몇 년이 지난 그의 시집을 서가에서 꺼내 읽는다. 읽는 내내 이름 모를 바닷가 내음이 밀려들었다. 공상의 냄새이자, 상상의 향기였다. 그렇게 내 거친 일상이 무너졌다.

어느 여름날 나는 시집을 읽었다. 마흔을 갓 넘은 어느 사내의 시집을 마흔이 될 사내가 읽었다. 시집은 그저 시집일 뿐이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 - 10점
심보선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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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넷서점의 파워블로그 혜택을 받게 되었다. 꾸준히 포스팅을 하고 트위터에 글을 보내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월 5만원 상당의 포인트는 꽤 좋은 혜택이다. 포스팅이야 꾸준히 하는 것이고 트위터에 글을 보내, 이 블로그로의 유입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 내 블로그로 오는 이들은 꾸준히 방문하는 일부의 단골 손님들과 검색 엔진 통해서 들어왔다가 바로 나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크게 신경쓸 건 없는 듯하다. 

여하튼 며칠 전 인터넷서점 블로그에 올린 글인데, 오늘 퇴근 전에 여기에다 올려놓는다. 요즘 소설 잡으면 몇 달 동안 읽는다. 좋은 소설을 잡은 탓이기도 하지만, 실은 네 다섯 시간 이상 집중할 여유와 새벽까지 지탱할 건강이 사라진 탓이다. 독서가의 입장에선 참으로 절망적인 일이다. 다행인 것은 절망적인 일임을 알게 되었으니, 해결책을 찾을 것이다. 아암.~.

---

긴 회의를 끝내자, 잠시 머리가 멍해진다. 이 작고 거친 틈새를 타고, 몇 권의 소설을 이야기해본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필독이다.

김승옥은 한국 근대 문학에 서구에서 이해하는 바의 모더니즘(modernism)이 있었다면, 그 모더니즘의 절정이다. (김승옥의 소설집이 집에 있는데, 다시 꺼내 읽어야 겠다. 몇 개의 단편은 정말 좋은데..) 
 

무진기행
김승옥


우리가 실존주의적 문학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르트르, 앙드레 말로, 카뮈, .. 또는 베케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동양에도 그런 소설가가 있으나, 그는 단연코 아베 코보가 될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여러 작가들이 선보였던 실존주의적 절망과 자포자기가 동양에서는, 특히 일본에서는 어떻게 이해되고 소화되는지는 극적으로 보여준다. (2003/01/27 - [책들의 우주/문학] -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저/김난주


한국에도 한 때 후일담 문학이 유행했다. 80년대 운동권 세대들의 경험, 도전, 후회, 자기 반성들로 이루어진 이 문학들은 대체로 그 작품성이 낮고 완성도도 떨어졌다. 그래서 관계된 사람들이나 읽는 소설들 중의 하나가 되었고, 이제는 읽지 않는 소설들이다. 나는 후일담 문학에 대해서 입에 침을 바르지 않고 찬사를 해대던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기억난다. 그들의 형편없는 심미안이란!

하지만 장 폴 뒤부아의 이 소설은 읽다면, 후일담 문학이라는 것도 이렇게 우아하고 근사하며 문학적 완성도를 이룰 수 있구나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후일담 문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2008/02/01 - [책들의 우주/문학] - 프랑스적인 삶, 장 폴 뒤부아 )



프랑스적인 삶
장 폴 뒤부아 저/함유선

몇 권의 소설을 추천했다. 다음에도 이런 틈새가 생긴다면, 한 번 정리해서 올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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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시집 한 권을 챙겨 나섰다. 지하철 안에서 시집을 읽는 건 너무 낯설어서, 꺼내지도 못했다. 이는 사무실 안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시집을 읽기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로만 했다. 어쩌면 모든 시는 위기의식으로 만들어지듯, 모든 시 읽기는 현대적 공간에선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시를 읽는 나는 물신적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21세기 현대적 공간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 같았다.

한 때 내 모든 것이었던 시는 이제 시 읽기조차도 어색해진 상황이 되었으니, …

그런 내가 들고 나온 시집은 에우제니오 몬탈레의 ‘오징어뼈’였다. 이탈리아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그의 시는 번득이는 슬픈 유머와 깊은 통찰, 그리고 나와 너, 자연을 아우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의 시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존재를 하나의 공간으로 수렴하고 이를 다시 배열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얇게 웃기도 하고 얇게 울기도 한다.


삶의 불행


나는 때때로 삶의 불행을 만났다.
그것은 꼬록꼬록 숨 막히는 개천이었고,
말라비틀어진 잎사귀를 포장하는 것이었으며
넘어지는 말(馬)과 같았다.

신의 무관심을 슬며시 열어주는

경탄스러운 일 이외, 나는 아무것도
잘 알지 못했는데, 그것은 한낮의
잠에 취한 조각상, 구름, 높이 솟은 사냥매였다.




삶의 불행을 노래(?)한 시지만, 끝없이 슬프지 않다. 삶의 불행과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그는 그 불행으로 야기된 결과에 대해선 접어둔다. 그래서 불행으로 야기될 슬픔, 아픔과의 거리를 두고 ‘한낮의 잠에 취한 조각상, 구름, 높이 솟은 사냥매’로 불행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행복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아래 시를 읽어보면, 행복과의 만남을 이야기하며 행복 오기 전의 불행을 되새기며 경계하려는 듯 읽힌다.


행복


찾아온 행복이여, 그대를 향해
우리, 칼날 위를 걷고 있다.
눈에 비친 그대는 깜박이는 불꽃,
발에 깨어져 부닥치는 얼음이어라.
그래, 그댈 더 사랑하는 자, 그댈 다치지 말아야지.

그대 슬픔에 짓눌린 영혼에
이르러 밝게 해주면, 그대의 아침은
달콤하여 새들의 둥우리인 듯 설렌다.
그러나 집 사이로 달아나는 풍선 때문에
울부짖는 아이의 마음, 아무것도 달래지 못한다.




몬탈레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그 시의 깊이에 감동받는다. 그의 언어는 사소한 것으로 시작해 확장해나간다.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자기 바깥의 사물과 존재에 투영시킬 수 있고 이를 다시 자신의 시어로 표상화한다.

‘지중해’는 마치 바다를 노래하는 듯 읽히지만, 실은 바다로 대변되는 사람들 사이의 만남, 대화, 우정을 노래하고 있다.


지중해


옛 친구여 나는 취했다오
푸른 종(鍾) 같은 그대의 입술에서
열렸다 다시 오므라져
터져 나오는 소리에.
흘러간 여름마다 살던 내 집이
그래, 그래, 그대 가까이 있소.
태양이 작열하고
모기가 하늘에 구름 이루는 곳에
바다여, 그때처럼 오늘도
그대 앞에 무감각해지는 나.
나 어찌 받을 수가 있을지
그대 호흡이 주는 숭고한 충고를.
내 마음의 미세한 고동일랑
한 순간의 그대 숨결에 그친다고 ……
준엄한 그대 율법이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니
폭넓고 다양하고 견고하게 하라며 … …
그대가 심연에 있는 온갖 쓰레기를
바닷가 불가사리, 코르크 조각, 해초 속으로
내리치듯 나 역시 모든 불결 씻어버리라고 ……
그대가 맨 처음 나에게 일러주었소.




마지막으로 시 한 편을 더 인용하며, 오랜만에 시집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이 시집을 추천한다.


번민


당신의 손은 건반을 두드렸고
당신의 눈은 알 수 없는 부호들을
종이 위에서 읽고 있었으니,
음악은 온통 고뇌의 소리처럼 들렸다오.

사방의 사물, 짓눌려 무기를 잃고서
제 언어에도 무지한 당신을 보고
유순해지고 있음을 내 알았다오.
말간 바닷물이 덜 닫힌 창 너머로 철렁댔다오.

나비가 도망치듯 추는 춤 파란 사각형 속을 지나쳤고
잎사귀 하나 해님 속에 펄럭였소.
이웃의 어느 것도 제 언어를 못 찾았으니,
당신의 달콤한 무지는 나의 것, 아니 우리의 것.


 

오징어 뼈 - 10점
유제니오 몬탈레 지음, 한형곤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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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메테오 페리코니



보르헤스 씨의 정원

부에노스 아이레스, 레꼴레타 인근의 어느 집에는 이중의 특권을 가진 창문이 있다. 그 창문에서는 한 눈에 하늘이 들어오고, 이웃한 집들과의 벽을 따라 굽이쳐 흐르며, 마치 계절들의 여행처럼 보이는 색채들을 가진 식물들, 나무들, 덩굴들로 가득한 넓은 공간, 여기에선 여기에선 pulmon de manzana로 알려진 - 글자 그대로 한 블록의 허파 - 안쪽 정원이 한눈에 보였다. 덧붙이자면, 그 창문은 작고한 내 남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서재를 피난처처럼 보호하고 있다. 그 서재는 오래된 책들로 채워진, 진짜 바벨의 도서관이며, 그 책들의 종이들에는 내 남편의 작은 손으로 거칠게 씌어진 메모들이 있었다.

한낮 정오가 지나고 나는 창문을 내다보기 위해 내 업무로부터 눈을 떼고, 봄철로부터 나는 무너질 것이다. 아니면 만약 여름이라면, 자스민 향기, 혹은 오렌지꽃 향이 보르헤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던 책의 종이들와 가죽 냄새들과 뒤섞였을 것이다.

그 창문은 또 하나의 경이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 창문으로부터 보르헤스가 한 때 살았고,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단편들 중의 하나인 ‘원형의 폐허’(The Circular Ruins)를 썼던 집의 정원을 볼 수 있다. 나는 여기에서 두 세계를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다. 때때로 나는 보르헤스가 죽은 후에 한 때 멀리 있는 보르헤스에 속했던 그 집의 그 창문을 통해 보는, 오후의 장려함 속으로, 혹은 석양의 부드럽게 타는 듯한 빛깔 속으로 몸이 잠기는 세계가 진짜로 존재하는가 의아해지곤 한다. 아니면 바벨의 도서관의 세계, 책들로 가득한 책장들이 과연 그의 손에 닿았던가?

- 마리아 코다마


* 뉴욕타임즈 2011년 1월 1일에 실린 글을 형편없이 번역했습니다. 원문은 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11/01/02/opinion/20110102_Windows.html 를 보시면 됩니다. 스페인어로 씌어진 글을 에스더 앨런이 영어로 옮겼으며, 이를 다시 한글로 옮겼습니다. 번역이라곤 해본 적 없기에 오역이 많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양해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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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라 기억이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지음), 오정미(옮김), 플래닛


오래, 이 책을 잡고 놓지 못했다. 아는 이(나는 이 분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에게서 소개받은 이 책은, 역시 나보코프라는 찬사를 지나, 작은 기억, 혹은 그 흔적에서 시작되어 재구성되고, 형상화되며, 눈 앞에서 벌어지는 듯한 생생함, 그리고 그 뒤에 표현되는 숨겨진 의미와 고백, 또는 독백으로 이루어져, 문장은 느리게 읽히고, 자주 호흡을 가다듬게 만들었다. 그래, 이 책은 내 놀라움과 동경으로 축조된 오래된 성(城)과 같았다.


요람은 심연 위에서 흔들거린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건대, 우리는 단지 영원이라는 두 어둠 사이 잠시 갈라진 틈을 통해 새어나오는 빛과 같은 존재다.(19쪽)



나보코프는 러시아 태생으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난 고국을 뒤로 하고 유럽과 미국을 떠돌다 스위스 로잔에서 자신의 생을 내려놓는다. 무명의 시절을 보낸 이 언어의 천재는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로 글을 써, 20세기 후반 영미문학사에서 최고의 소설가로 인정받았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의 문장은 10대 소녀와 사랑에 빠진 가여운 험버트를 순수한 사랑의 노예로 변호하였다.

‘말하라 기억이여’는 그런 나보코프의 자서전이다. 하지만 시간은 뒤섞이고 기억의 한계 속에서 언어는 창백한 별빛 아래에서 슬픈 표정을 짓는다.


누군가 음악에 대해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하지만 침묵 역시 아름다울 수 있겠죠’라며 거품을 물었다. “뭐, 어느 날 저녁, 알프스의 황량한 골짜기에서 정말로 침묵을 들었거든요.” 이와 같이 그녀가 돌발적인 발언들을 하거나 특히 심해지는 귀먹음 증상으로 인해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질문에 답할 때면 고통스러운 침묵이 생겨났고, 누구도 기운차게 이야기의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없었다. (140쪽)



과연 자서전일까. 나보코프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자신의 문학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가치판단’을 배제한다. 그는 보여줄 뿐이다. 각각의 챕터는 서로 연결고리가 없다. 병렬적으로 구성되어, 마치 아무런 관련 없는 여러 장의 사진을 보는 듯한, 각기 다른 스토리를 가진 단편 영화 여러 편을 읽는 기분을 선사한다. 그러나 나보코프는 그 어느 화가보다도 뛰어나게 표현하고 사건의 세부적인 영역, 인물의 사소한 습관까지 드러내면서 자신의 기억, 추억과 연결 짓는다.


박물관과 영화관에 들어갈 수는 없고 아직 밤이 되기엔 일렀을 때, 우린 어쩔 수 없이 세상에서 가장 수척하고 불가해한 도시의 황량함을 탐험하게 되었다. 고독한 거리의 등은 우리의 눈썹에 붙은 얼음 조각들의 습기로 인해 무지갯빛 등뼈를 지닌 바다 생물체로 변신했다. 광활한 광장을 가로질러 갈 때면, 어디선가 갑작스레 소리도 없이 나타난 다양한 건축학의 환영들이 우리 앞에 솟아올랐다. 우리는 대개 높이가 아닌 깊이와 관련하여 차가운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즉, 우리의 발을 향해 열려 있는 심연에 관한 것이었다. (289쪽)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어디에서부터 끝나는지 이 책 속에서는 알 수 없다. 기억이란 시간의 압축이자, 시간의 병렬적 구성이다. 현재는 순서대로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순간을 지나쳐 기억의 혼돈 속으로 말려들어간다. 인과적 배열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하나가 아니면 둘이고 있었거나 아예 없던 것이다. 자서전이란 그런 것이다. 있지만, 없는 것이므로, 현재의 순간, 글을 쓰는 순간 순간마다 재창조되는 책이 자서전이다. 기억에 의존해 씌어지지만, 기억은 시간과 공간의 상상적 파편이고 단지 영혼 속에 존재하는 상상체이다. 그래서 나보코프는 ‘말하라, 기억이여’라고 이름 붙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지난 과거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세계 속으로 진입했음을 깨달았다. 나보코프와 같은 위대한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내 철없는 상상력과 빈약한 인내력의 언어들, 무책임함과 무모함 사이에서 내 인생은 어떤 낭떠러지 앞에서 밀렸고 그 때의 시도란, 망각과 포기다. 아니면 모든 지나간 것들을 상상의 기억 속에 밀어 넣고, 그 입구를 또 다른 세계의 표지로 닫는 것이든가.

책 표지를 덮지만, 책은 끝나는 법이 없다.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나보코프는, 내가 가게 될 그 세상 어딘가에 앉아 자신의 언어로 아름다운 마법을 부리고 있을 것이다. 화려한 날개를 자랑하는 나비들과 함께.


꿈 속에서 죽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들은 늘 조용히 근심스럽고 이상하게 침울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모습은 다정하고 밝았던 그들 본래의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나는 그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내 친구의 집 같은 곳, 그들이 생전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놀라지도 않으며 그들을 알아본다. 그들은 마치 죽음이라는 것이 어두운 흔적 내지는 부끄러운 가족의 비밀이라도 되는 양, 얼굴을 찌푸린 채 서로에게서 떨어져 마루에 앉아 있다. 죽을 운명의 자가 돛대로부터, 과거로부터, 제 성벽의 탑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어 볼 수 있는 때는, 분명 이 같은 꿈 속이 아니라 그가 완전히 깨어있는 순간이다. 이는 강건한 기쁨과 성취의 순간으로, 그는 의식의 가장 높은 테라스와도 같은 장소에 존재하고 있다. 비록 안개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을지언정, 어떻게든 바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더 없이 행복한 느낌이 그 곳에 있다. (58쪽)

 

말하라, 기억이여 - 10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오정미 옮김/플래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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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느사람 2011.06.01 04:25 신고

    저도 나보코프 젤 사랑해요 덕후에여 삼년전에 처음 읽자마자 뙇!!!!!그리고 제 모든게 변했어요
    혹시 님도 나보코프만 떠올리면 눈물이 또르르...?? 아니에여?ㅋㅋㅋ농담이에욬ㅋㅋ
    참 이 책 p106에 나보코프 아가때 사진이 있잖아요 동생 손 잡고 찍은
    거기서 나보코프 표정 제 아가때 표정이랑 똑같아요 동생 손 잡고있는 것도 왠지 모르게 진짜 펑펑 울었어요 만약 제가 나보코프랑 동시대에 살았다면 스토커가 됐을꺼에요ㅋㅋㅋ

    • 나보코프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소설가 중의 한 명이예요. 나보코프의 책은 모두 다 읽어도 될 만큼 좋답니다. ^^~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1 - 10점
마지 피어시 지음, 변용란 옮김/민음사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Woman on the Edge of Time 1권, 2권
마지 피어시 Marge Piercy 지음, 변용란 옮김
민음사 모던 클래식 031, 032


1.
이 책은 민음사 홍보기획부의 정은년 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그것이 작년 여름(8월)이니, 벌써 몇 달이 지난 것인가! 책은 완독한 것은 올해 2월이었다. 책을 받고 몇 달은 밀린 책 읽기에 여념 없었고 그 이후에도 이 소설 읽기는 어수선한 일상의 삶에 의해 방해 받았다. 겨우 소설을 다 읽었지만, 그 이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이렇게 서평을 올린다. 이 소설에 대한 서평은 자신 없고 깊이를 가지기엔 내가 아는 지식도 부족하고 여러 문헌을 뒤져가며 연구할 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이 작은 글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2.
소설을 다 읽었지만, 이 '투박한'(*) 소설은 너무 현실적(realistic)이었고 여성적(feministic)이었으며, 혼성 장르였으며, 정신분열적이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놀라운 소설들의 부류에 속했다. 그러나 이는 소설적 재미와 무관한 것이다. 마치 마지 피어시라는 작가의 약력처럼.


1936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자랐다. 가족 중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은 그녀는 미시건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했다. 촉망받는 대학생 작가에게 수여하는 홉우드 상을 여러 번 받았고 훗날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비서, 계산원, 강사 등 여성 임시직 노동자의 생활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 간 그녀는 계급과 여성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며,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 연합’ 뉴욕 지부장을 맡아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한편으로 ‘빠른 몰락’(1969), ‘독수리를 춤춰 잠들게 하라’(1970)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1년에 케이프코드로 이주한 이후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관심을 기울였고, 오랫동안 동료로 지낸 아이라 우드와 1982년에 결혼했다. 희곡 ‘마지막 백인 계급’(1979)을 공동 집필했던 두 사람은 소설 ‘폭풍의 물결’(1998) 역시 함께 작업했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였던 ‘입대’(1988)을 비롯하여 ‘한줄기로 땋은 삶’(1982), ‘여자의 갈망’(1994) 등 여러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회상록 ‘고양이와의 동침’(2002) 역시 호평을 받았다. ‘그, 그녀, 그것’(1991)으로 최고의 과학소설에 수여하는 아서 C. 클락 상을 받기도 했다.
피어시는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정치적 작가로 자신을 정의한다. 지금까지 소설 열일곱 권과 시집 열일곱 권을 발표한 그녀는 여전히 열렬한 사회운동가이자 작가로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 위의 글에서 '투박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소설의 극적 재미나 사건의 진행이 독자의 몰입을 위해 구성된 것이기 보다는 현실과 이상의 대비를 위해, 그 대비 사이에 여백(코니의 환상으로 여기게 하게끔)을 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극적 소설에 비교한다면 소설적 재미는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투박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투박함은 마지 피어시의 여성주의(페미니즘) 소설이 가지는 또다른 매력은 아닐까.




3.
19세기 후반 Elizabeth Stuart Phelps와 Mary E. Bradleydhk 같은 작가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유토피아 세계관을 가진 소설을 발표하였다. 이는 20세기 초 Charlotte Perkins Gilman에게로 이어진다. 그리고 1960년대와 70년대, 일군의 페미니즘 소설가들이 등장하는데, 마지 피어시, 르 귄 Ursula K. Le Guin, 사무엘 드레니 Samuel Delany, 조안나 루스 Joanna Russ 등이었다. (여기에서 인용된 작가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준비해볼 생각이다. 마지 피어시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의외로 주목할만한 여성주의 소설가들, 특히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풍부한 표현들로 채워나간 작가들이 꽤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현실 비판적인 경향의 소설들은 그 소설이 지닌 경향성으로 인해 디스토피아를 드러내든지(조지 오웰의 1984), 유토피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페미니즘 소설가들에게서는 유토피아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 경향은 20세기 후반으로 올수록 디스토피아적 색채를 띠게 되는데, 마지 피어시의 작품도 여기에 속한다.

4.
여 주인공 코니는 사회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정부의 복지 정책마저도 그녀의 일상과 삶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녀에게는 그 어떤 안전망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루시엔테일 것이다. 먼 미래에서 온 루시엔테는 소설 속에서 그것이 실제 사실인지, 아니면 코니의 환상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매우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묘사로 인해 그것의 사실성이 드러나지만, 우리는 그것을 환상이라고 단정할 수 없듯이, 똑같이 현실이라고 믿을 수도 없다.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미래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드러내는 것은 경향주의 소설이 자주 취하는 방식이지만, 그 방식의 상투성으로 인해 소설이 지닌 힘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이 방식은 정신병이라는 교묘한 장치에 숨겨지고 먼 미래와의 교감이라는 점에서 소설은 SF적 색채를 띤다. 하지만, 루시엔테가 사는 미래에도 전쟁이란 존재하고 그 곳에서 코니는 고통을 받는다. 코니의 시선은 그녀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과 끊임없이 어긋나고, 독자는 외부의 공간에서 코니를 지켜볼 뿐이다.

소설은 환상과 현실, 현재와 미래를 오가고 페미니즘과 SF 소설을 넘나든다. 장르적 한계를 넘어 성적 한계마저도 뛰어넘는다. 소설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듯하지만, 마지 피어시가 취하는 전략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쓸쓸해지고 슬퍼지는 이유는 변두리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을 우리는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5.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때때로 무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현실을 드러내는 일도 고통스럽지만, 현실로 드러난 소설을 읽는 독자도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의 독자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고 타인의 일로 치부하며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읽으려 한다. 고통은 탈색된 채 TV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위를 떠돌고, 고통은 언급되지 않은 채 사라지는 침묵의 바다에 속하게 되었다.

마지 피어시의 작품이 문학적인 가치를 지닌다면, 그것은 현실을 드러내고 싸우는 문학적 방식의 탁월함에 있을 것이며, 고전의 지위를 얻게 된다면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소설 읽기는 고통스럽고 재미없으며 종종 지루해지기 까지 하다. 하지만 현실을 이야기하는 현대적 방식의 소설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라도 이 소설은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2 - 10점
마지 피어시 지음, 변용란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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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 10점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정영란 옮김/민음사



조르즈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Joural d'un cure' de compagne』, 
안응렬 옮김, 삼성출판사, 1988.




H. S. 휴즈가 쓴 『현대 프랑스 지성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소설가를, 모리스 삐알라의 영화인 『사탄의 태양 아래』의 원작자로,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의 유명한 영화인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의 원작이 바로 이 소설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들의 문화적 편식은 꽤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위의 사실들은 그의 명성을 빌어 내 감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잔 수작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길 바란다. 우리가 아주 가끔 말할 수 없는 떨림과 흐느낌, 영혼의 고통을 느낀 다음 그것을 표현할 말들을 찾기에 실패한 순간, 매우 어리석게도 객관적 사실만으로 그것을 빗대어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니 이 유명한 소설을 모른단 말이야’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명성은 독자의 감동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신이 사라진 시대에 신을 믿는 자들의 믿음이란 때때로 정당화하기 힘들고 그들마저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신을 향해 가는 한 발 한 발이 고통스러운 것이다. 믿음이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지닌 자로서 살아가는 것 또한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거리에 네온사인 십자가가 늘어날수록 도시가 피폐해지고 황량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범하다는 것은 하나의 죄악이며 마귀의 함정이다. 그들은 신을 믿는다라고 말만 할 뿐,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이 젊은 신부는 자신의 본당(카톨릭 교회의 행정구분의 제일 작은 단위) 마을에서 자신의 고독과 우울을 써나간다. 하지만 신을 믿는 자의 행동이란 이방인의 것이고 끊임없는 오해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하지만 그 오해 속에서도, 자신의 몸이 죽어가고 있는 속에서도, 자신의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참으로 이 세상을 조금도 모른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127쪽)

(사족이지만 난 이 소설 속 젊은 신부의 눈빛을 보면서 울고 말았다는 사실을 말해 둔다. 작은 꼬마여자아이 세라피따 뒤무셸이 앙큼한 표정으로 한 말-“그건 신부님 눈이 하도 예뻐서 그래요”-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감동을 표현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 언어가 내 인생만큼 어리석고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1990년대 후반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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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28. Mon.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가 번역되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소설이 되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에선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내가 이 소설을 읽었을 때의 흥분과 떨림을 잊을 수 없다. 지금 읽어도 그럴까. 아마 그럴 것이다. 조르주 베르나노스를 알고, 그의 글을 읽으며 감동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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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10점
조영래 지음/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전태일 평전
조영래(지음), 아름다운전태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전태일 평전을 읽었던 십 수년 전, 그 시절이. 그 때나 지금이나 첨예한 현실 한가운데 놓여있는 문제적 텍스트.

무수한 사람들에 의해 읽혀졌으나, 우리의 현실은 그 때나 지금이나.

아마 누군가(들)는 나아졌다고 이야기하겠지만, 예전의 그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그대로 남아있고, 변하는 세월 속에 그 문제에서 파생된 새로운 문제들은 끊임없이 생겨나, 나아졌다고 이야기할 때의 그 ‘나아지다’라는 동사의 의미에 대해 계속 되묻게 되는 2010년의 가을.

실은 우리에게 마르크스주의도 필요 없고,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 사상 따위도 필요 없다.
그런 건 그 다음의 문제다.
그냥 인간답게 사는 것. 그리고 서로를 배려해주며 앞으로 가는 것. 그런데 그런,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마저도 지켜지지 않을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분신 자살한 날이다.
그러니까 오늘이 40년 된 날이다.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책의 저자 조영래 변호사로 밝혀진 이후 읽은 첫 세대구나. 이 책도 금서 목록 중 하나였는데. 길 가다 불심검문에 걸려 이 책 나오면 바로 끌려가는…

읽지 않은 이가 있다면 무조건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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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태양 아래 - 10점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윤진 옮김/문학과지성사




사탄의 태양 아래 Sous le soleil de Satan
조르주 베르나노스 지음, 윤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폴 장 툴레가 좋아하던 저녁 시간이다. 이맘때면 지평선이 흐릿해진다. 상아색의 구름 한 떼가 지는 해를 감싸면서 하늘 꼭대기에서 땅 밑까지 노을이 가득 차고, 거대한 고독이 이미 식어버린 채 퍼져나가는 시간이다. 액체성의 침묵으로 가득 찬 지평선 … … 시인이 마음 속에서 삶을 증류하여 은밀한 비밀, 향기롭지만 독을 간직한 비밀을 추출해내던 시간이다.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팔과 입을 가진 사람들이 어렴풋한 어둠 속에서 무리 지어 움직이고 있다. 큰 길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여기저기 불빛이 비친다. 시인은 대리석 탁자에 팔꿈치를 괸 채 이 밤이, 마치 한 송이 백합처럼, 조금씩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 11쪽




솔직히 이 소설을 추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과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에 대해 진지한 사람이라면, 베르나노스는 한 번쯤 읽어야 할 소설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소설은 깊고 우아하며, 그러면서 처절하고 고통스럽다. 이 소설도 그 고통 속에서 시작한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서사는 사라지고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생의 굴레, 신의 존재, 자신의 믿음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갈등, 그로 인한 환각과 맹목, 죽어가는 시간과 자신의 영혼뿐이다.

그리고 소설은 지평선이 흐릿해진 저녁 시간에서 시작해 아침을 기다리는 것으로 끝이난다(어쩌면 아침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이야기는 내내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 있는 것이다(마치 우리들의 현대적 삶처럼).


“아! 아! … …” 울 수도 없고 기도할 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이 말을 되풀이했다.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볼 때처럼, 매 순간이 돌이킬 수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아무리 짧은 밤이라 해도, 아침은 언제나 너무 늦게 찾아온다. 셀러멘은 어느새 입술 연지를 발랐고, 주정뱅이들은 술에서 깨어났다. 밤의 향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마녀는 뜨겁게 달아오른 몸이 아직 식지 않은 채 하얀 시트 속으로 숨어든다. … … 아침은 언제나 너무 늦게 온다. … …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곳에 유일한 정의(正義)가 불현듯 찾아올 것이다.
(* 셀러멘: 몰리에르의 극에 등장하는 여인으로, 많은 남성들의 연모의 대상이다. 남자들의 환심을 사려는 여자를 말한다: 옮긴이)
- 274쪽




프랑스와 모리악은 베르나노스에 비하면 너무 밋밋하고 평면적이다. 하지만 베르나노스는 단순한 표면 밑의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끊임없이 갈등하는 인간의 심리를 보여주며, 그 고뇌하는 정신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래서 맞이하게 되는 것이 어떤 죽임일지라도 말이다.

죽음을 각오한 신앙, 혹은 믿음.


그러나 종교적 열정이나 신앙마저도 인스턴트 음식이거나 자신의 건강을 지속시켜주는 영양제처럼 변해버린 요즘,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이 소설은 너무 낯설고 정신적이다. 마치 중세의 어느 시대를 거쳐가는 것처럼, 어둡고 축축하며 고통스러운 종교적 환각과 환청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베르나노스의 인물들은 그 속을 꼿꼿하게 선 채 지나가며 울부짖는다. 휴즈의 말대로 ‘인간의 위대성에 대한 그의 생각은 고통스럽고 중세적이며 기사도적이었다.’(H.S.휴즈, 현대프랑스지성사, 문학과지성사, 135쪽)

베르나노스의 주인공들이 주로 신부이지만, 엄밀히 말해 그의 소설은 종교 소설이 아니다. 그의 소설이 가치있는 것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서, 인간의 영혼이 현대의 물신주의 속에서 소외당하고 버림받으며, 심지어 분열되어 자신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고 할 때, 분명한 목소리로 세계를 향해 나는 살아있고 고통받지만 앞으로 나갈 것이고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내 삶, 내 신념, 내 확신, 내 믿음의 존재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지 묻고 그것을 실행하는 데에 있다. 마치 현대라는 강물이 바다를 향해 시류에 휩쓸려 바다로 흘러갈 때, 그의 인물들은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통스러워하며 절규한다. 심지어 그의 편에 서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고귀한 신마저도 그의 옆에 없음을 직감했을 때조차도.




모리스 삐알라 감독이 연출한 '사탄의 태양 아래'(1987) 트레일러. (* 한국에서도 비디오로 출시되었으나, 오래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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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 10점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장영은 외 옮김/자연사랑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슈테판 츠바이크(지음), 장영은/원당희(옮김), 자연사랑



20세기 최고의 전기 작가를 들라면, 주저하지 않고 나는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를 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몇 달 전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며, 츠바이크가 쓴 한 권의 번역서를 읽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서. 하지만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츠바이크가 서술하였다면, 또는 사람으로 붐비는 토요일 오후의 서점 한 구석에서 아무렇게나 펼친 책의 문장이 아래와 같다면.


모든 그의 인물들이 파놓은 갱도는 지상의 마성적 심연 속으로 향하고 있다. 작품의 모든 벽 및 개개 인물의 모습 뒤에는 영원한 밤이 있으며, 영원의 빛이 반짝인다. 왜냐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삶을 규정하고 운명을 형상화함으로써 존재가 안고 있는 모든 신비와 철저하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세계는 죽음과 광기, 꿈과 불보듯 분명한 현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 개인 문제는 오히려 인류의 수수께기에 가깝다. 즉 한 인간으로서, 시인으로서, 러시아인으로서, 정치가로서 그리고 예언자로서, 각기 조명된 그의 개개 단면들은 영원을 나타낸다.

영원한 존재인 그는 곳곳에서 빛나고 있다. 종말로 치닫는 길은 하나도 없으며, 어떠한 질문도 가장 깊은 그의 가슴속 심연에 닿지 못한다. 감격만이 그와 가까워질 수 있으며, 그 감각마저도 얼굴을 붉히는 겸손한 마음이어야 한다. 이 또한 도스토예프스키 스스로 애착을 갖던, 인간의 신비에 대한 경외심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것이다. (161)


이 책의 장점은 단연코 심장을 찌르는 듯한 문체의 힘이다. 츠바이크의 문학성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늘 새롭고 힘에 넘친다.

사물들은 방금까지도 충만하던 감정 상태에서 시들고 무가치하게 변모한다. 명성은 바람을 잡으려는 헛손질이 되고, 예술은 바보 장난이, 돈은 누런 휴지가, 건강하게 호흡하는 육체는 벌레들의 거주지가 되어 버린다. 모든 가치들의 수액과 단맛을 어둠의 보이지 않는 검은 입술이 무섭게 빨아 없앤다. (9)



이 작은 책이 가진 힘은 읽는 이가 한 번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고, 아니, 설사 그 두 명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도리어 사나운 추위가 뼛 속까지 아리게 하는 러시아를 지탱하는 영혼들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20세기가 어떤 고비 끝에 탄생하는가를 우리는 이 두 명의 정신을 보면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츠바이크는 객관적 사실에 충실한 전기 작가라기 보다는 그 스스로의 문학적 열정과 상상력으로 마치 지금이라도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 그 강인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두 명의 인물을 창조해내고 있다. 그는 사소한 사실들은 다 없애버리고 이 두 정신이 어떤 모양으로 자신들만의 우주를, 은하를 생성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여행이 이 세계의 어떤 신비로움과 관련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기 문학의 정수, 아니 전기 소설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 슈테판 츠바이크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작가들 중의 한 명이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품절인 관계로, 아래의 책을 권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라스무스 평전 - 10점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아롬미디어

위 책에 대한 서평은 http://intempus.tistory.com/64 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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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Out of Days (Hardcover) - 10점
Shepard, Sam/Random House Inc


샘 셰퍼드의 신작 소설 ‘Day out of Days’ 리뷰 기사를 읽는다. 뉴욕타임즈 웹사이트에서. 그는 우리에게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뛰어난 희곡 작가이면서 소설가이다. 그는 1979년 희곡 매장된 아이 Buried Child’로 퓰리처 상을 받기도 했다.

 

 

These routes, which for some writers promise liberation – an escape into unbounded freedom and possibility – are, for Shepard, roads of no return. Laid out north and south and east and west, they all lead in the same direction: down

- Walter Kirn, ‘Sam Shepard: The Highwayman’ 중에서


 

이번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미국 사회 밑바닥 인생들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들어 그런 인물들이 나오는 한국 소설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His crackpot vagabonds, working-class survivors and footloose fellow wanderers have been with us always and probably always will be. Their names may change over time but not their souls, which eventually from the ground we’re forced to cover us as we fan out to seek our fates. But their moans are still audible over our engine noise – if we only slow down enough to hear them in the way that Shepard does.  

- Walter Kirn, ‘Sam Shepard: The Highwayman’ 중에서

 

 

꽤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의 연속일 듯 싶다. 아마존 위시리스트에 올려두긴 했으나, 언제 구입해서 읽을지는.

 


그가 나온 영화 중에 'Voyage'라는 영화가 있다. 막스 프리쉬의 '호모 파베르'라는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그냥 비디오로 나와 그냥 사라졌다. 제목은 '사랑과 슬픔의 여로'

 

줄리 델피와 함께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슬픈 사랑이야기의 마지막엔 그 둘이 아버지와 딸 사이로 밝혀지고, 파국을 맞는다. 영화는 끊임없이 남자의 젊은 시절을 플래쉬백하면서, 현재의 사랑(줄리 델피)와 과거의 사랑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암시하지만, 그것을 알아차리긴 어렵다.

 

 



그건 그렇고, 몇 달 째 진도를 못나가고 있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나 빨리 읽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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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올바른 낭만주의의 이해를 위하여’(『세계의 문학』, 2002년 겨울호)
-「지금 우리에게 낭만주의란 무엇인가?―문학적 절대」, 필립 라쿠 라바르트, 장뤽 낭시
-「소설에 관한 편지」, 쉴레겔



김진수,『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 책세상





앙리 뻬르는 그의 책 <고전주의란 무엇인가>에서 ‘고전주의는 불안정하며 일시적인 ‘평형상태’이며, 곧 뒤이어 무질서와 불안이 뒤따르고 있으며 고전주의 자체도 혼란과 무질서의 시기에 뒤이어 온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즉 그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낭만주의는 혼란과 무질서의 시기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의 미적 태도들을 통칭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고전주의의 입장에서 본 것일 뿐, 낭만주의 내에서 본다면 혼란과 무질서가 만들어내는 ‘이상’, 또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거나 혼란과 무질서를 관통해 지나가는 어떤 질서나 원칙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이 경우 낭만주의 내에서 어떤 고전주의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낭만주의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전주의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계간 <세계의 문학>에서 이야기하는 낭만주의라는 단어는 초기 낭만주의, 즉 노발리스와 쉴레겔이 주도했던 운동에만 국한시켜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라는 소개글에서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어 읽는 이 스스로 그 사실을 파악해내야만 한다.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김진수의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를 읽을 필요가 있겠다. 그는 낭만주의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이면서 예술의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어져온 어떤 태도를 뜻하며 하나는 표현적이고 상징적인 예술관의 정초로서의, 노발리스와 쉴레겔이 주도했던 초기 낭만주의로 나눈다. 그리고 김진수의 책이나 세계의 문학에 실린 두 편의 글은 이 초기 낭만주의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초기 낭만주의에 대한 논의는 발터 벤야민의 견해대로 낭만주의라는 단어가 초기 낭만주의에서만 개념의 혼란없이 다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며 필립 라쿠 라바르트와 장 뤽 낭시 또한 이 초기 낭만주의를 ‘이론적 낭만주의’라고 칭하면서 벤야민의 견해를 수용한다. 하지만 이 낭만주의는 예술의 역사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낭만주의와는 본질적으로 틀리지 않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따라서 이 두 낭만주의가 서로 상이하거나 확연히 틀린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이 글은 그러한 바탕 위에서 씌어진 글이다.

<세계의 문학> 2002년 겨울호에 실린 필립 라쿠 라바르트와 장 뤽 낭시의 글은 그들의 책, <문학적 절대>의 서문에 해당하는 글이다. 그들은 이 서문에서, <‘문학적 장르’에 대한 사유는 그러므로 문학적 사물‘의’ 생산이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에서 생산 ‘그 자체’에 관련되어 있다. 낭만주의 시는 포이에시스의 본질을 꿰뚫고자 하며 문학적 사물은 여기서 생산의 진리 그 자체를 생산해내며, 이 책의 뒷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 ‘자기 자신의’ 생산, 일종의 자기 생산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자기 생산이 사변적 절대의 궁극적 단계이자 완성을 이룬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낭만주의적 사유에서의 문학의 절대 뿐만 아니라 절대로서의 문학을 인정해야 한다. 낭만주의는 ‘문학적 절대’의 옹립이다>(*)라고 하면서 이는 낭만주의에 대한 통상적인 이미지와 전적으로 구분된다고 말한다. 이 통상적인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아마 김진수의 견해와 비슷하리라 생각되는데, 그도 그의 책 서문에 <애수에 찬 회고적인 취향과 꿈결 같은 몽상적 분위기로 특징지어지는 ‘낭만주의의 보수성’ 내지 ‘낭만적 보수주의’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불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낭만성과 낭만주의는, 내가 알고 있는 한, 이 운동을 주창한 누구에 의해서도 주장된 바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낭만주의는 그 문학적, 예술적 프로그램을 한층 진보적이고 근대적인 것의 핵심적인 특성으로 파악하고자 했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하고 있다.

필립 라쿠 라바르트와 장 뤽 낭시의 글만 읽어서는 낭만주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내리기 어렵다. 차라리 그 다음에 실린 쉴레겔의 글이 독자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쉴레겔은 ‘낭만적이란 바로 우리에게 감성적 소재를 환상적인 형식으로 서술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감성적이란, ‘그것은 감정이 지배하는 곳에서, 더욱이 감각적인 감정이 아니라 정신적인 감정이 지배하는 곳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감각적 흥분의 근원이자 영혼은 바로 사랑이며, 낭만적 포에지에서는 그러한 사랑의 정신이 도처에서 보이지 않는 모습과 보이는 모습을 동시에 지녀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쉴레겔의 언급은 김진수의 책을 통해 보다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낭만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세계의 문학에 실린 특집을 읽을 필요 없이 김진수의 책을 먼저 읽는 편이 좋다. 초기 낭만주의를 이해하는데 있어 김진수의 책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김진수는 낭만주의가 지니고 있는 반이성적이며 반계몽적인 특성에 주목한다. 그는 ‘낭만주의는 삶을 이성의 빛으로 조명하고자 하는데 반대한다. 오히려 낭만주의는 문학과 예술에 대한 삶을 신화로 만들고자 한다’고 평가한다. 즉 미적 근대성 프로젝트가 예술 자체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낭만주의는 그 극점에서 서 있는 운동이었고 이것은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근대성보다는 탈근대성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진수는 낭만주의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예술적 차원이 아닌 정치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보급되고 통용되는가에 대해선 깊이 있는 통찰이나 견해를 제시해주지 못한다. 도리어 이 둘을 엄밀하게 구분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낭만주의의 혁명성은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 오로지 미적 측면에만 놓여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의 논의는 미적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으로 확대되고 만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낭만주의적 태도가 어떤 극점에 다다르면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와 연결된다. 즉 우리의 삶을 상상력과 환상으로만 채우려고 할 때, 정치적으로는 매우 관심해지며 삶을 개선시키고자하는 실천적인 과제에서 멀어진다. 김진수의 책이 낭만주의에 대해선 매우 잘 정리되어있는 책이지만, 거리 위에서 건물 속에서, 혹은 논밭이나 공장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의 삶을 상상력과 환상으로 채우려고 했던 쉴레겔과 노발리스는 매혹적이긴 하나, 우리의 고단한 삶을 실제로 구원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진수가 언급했던 낭만주의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낭만주의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낭만주의 연구자로서 김진수는 낭만주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벗겨내는데 노력을 해야겠지만, 낭만주의가 지니고 있는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진수가 인용한 만프레드 프랑크의 견해는 귀담아들을 만 하다. “사변이 성찰을 통해 절대적인 것에 이르려는 요청을 포기하는 철학을, 그리고 이러한 결핍을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보충하려는 철학을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 낭만주의 예술론은 예술을, 미적 직관을 중심으로 세계를 해명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문학적 절대’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낭만주의 속의 어떤 이상주의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김진수의 언급 : ‘미적 직관을 절대화함으로써 야기되는 미와 예술의 절대성에 관한 이론이 낭만주의의 (미적) 근대성을 특징짓는다’와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예술의 자율성을 넘어서 예술의 절대성을 추구했던 초기 낭만주의자들의 이념에 대한 것이다. 이 경우 두 명의 프랑스 저자들은 이러한 절대성 추구에 많은 의미를 부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2010.01.28) 요즘 키신(Kissin)이 연주하는 쇼팽을 들으면서, 자주 낭만주의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 전에 낭만주의에 올렸던 포스팅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업데이트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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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민음사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처음부터 어떤 계획을 세워서 자연을 억지로라도 자기의 계획에 맞추려드는 고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연이란 인간이 세운 그 어떤 계획보다도 위대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가 자연을 거역하고 자기 계획을 고집하게 된다면, 그건 버림받은 아내가 이혼장을 방패 삼아 부부 관계를 증명하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 228

 


모든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된다. 적어도 다이스케에게 있어선 그랬다. 그는 자연의 이치대로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무 일도 기획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으며 그냥 조용히 외부 세계와는 무관한 듯 그렇게.

 

 

다이스케는 책상 위의 책을 덮고 일어섰다. 약간 열려있는 툇마루의 유리문 사이로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와 화분에 심은 색비름의 빨간 꽃잎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큰 꽃 위에 햇살이 가득했다. 다이스케는 허리를 굽혀 꽃 속을 들여다 보았다. 이윽고 가늘고 긴 수술 끝에서 꽃가루를 따다가 암술 끝으로 가져가서 정성스레 발랐다.

- 58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아무 일도 못 하리라 여겨지진 않았다. 많은 책을 읽었고 부드러웠으며 신중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의 하루 일상은 단조로웠지만, 지식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런 종류였다. 그는 매일 차를 마셨고 책을 읽었으며 다양한 화초가 자라는 정원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와 달리, 자연을 따르기로 한 다이스케에게 있어 '자연'이란, 이 외부세계의 어떤 거대한 흐름 이전에 정처 없이 떠도는, 자기자신에게마저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자신의 마음이었다. 사람의 마음, 나무의 마음, 구름의 마음, 식물의 마음이 모여 이 거대한 자연을 이루듯, 그 시작에는 다이스케의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솔직해진다는 것의 무모함이란, 자기 마음의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가져다 주는가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21세기 초반의 TV 드라마들 대부분은 이 마음의 자유가 가져오는 통속적 비극에 대한 것들뿐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이여, 자신에게 솔직해지지 말고 어른이, 이 세계가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생각하고 움직여라)

 

요즈음 마음이 쓸쓸하니 자주 와주세요.”라는 미치요의 말에 다이스케는 휘청거리며 100미터 정도를 걸었다.’ 마음 가는 대로 친구의 여동생인 미치요와 친구인 히라오카와의 결혼을 주선하였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 마음 가는 대로 친구의 부인인 미치요를 잊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은 이렇듯 우리에게 비극을 선물한다. 우리 비극의 원인은 바로 자연이다.)


 

왜 저를 버렸지요?”

라고 말하고는 다시 손수건을 얼굴에 갖다 대고 또 울었다.

- 286

 

 

미치요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면서 띄엄띄엄 한 마디씩 말하고 있었다. ‘너무하세요’, ‘잔혹해요라고 말하며, 지나간, 이미 버림받은 사랑을 되새기고 있었다. 친구의 아내가 된 미치요 앞에서 19세기 후반의 다이스케는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용납하지 못할 어떤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없어요?”

라고 물었다.

그런 건 없어요. 뭐든지 당신 뜻에 따르겠어요.”

떠돌이 생활 …….”

떠돌이 생활을 해도 좋아요. 죽으라고 말씀하시면 죽겠어요.”

다이스케는 또 한번 전율을 느꼈다.

- 316

 

 

이 흥미로운 소설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사랑이야기라고 하기엔 사랑에 대해선 별 내용이 없다. ‘그 후이라는 소설의 잔인한 제목처럼, 현대적 비극은 막이 내려간 다음 이루어지고 그 누구도 그 비극의 원인에 대해서 묻지 않는다는 데에 나쓰메 소세키는 의문을 갖는다.

 

다이스케는 19세기 후반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못한 나약한 일본 지식인을 떠오르게 하며, 미치요는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않고 순종적으로 살아가는 일본 여성을 보여준다. 결국 둘의 사랑은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다이스케와 같은 지식인 류의 고백이란 늘 한 발 늦기 마련이고, 어떤 상황은 종료되고 현장은 깨끗이 치워진 이후다. 그리고 자신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질서에 순종하며 늘 자기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하다며, 이미 끝난 사랑의 옷자락 끄트머리를 붙잡곤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봐달라고 해대는 것이다.

 

 

잘 알았습니다.”

라고 다이스케는 간단히 대답했다.

너는 바보 천치다.”

라고 형이 크게 소리쳤다. 다이스케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들지 않았다.

얼간이 녀석.”하고 형이 또 말했다.

평소에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입심이 센 놈이 정작 이런 때는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잠자코 있구나. 그리고 뒤에서는 부모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나쁜 짓이나 하고 말이야. 이제까지 무엇 때문에 교육을 받은 거냐?”

- 348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나고 그 후 아무도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사랑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아무렇게나 그 둘은 슬픈 풍경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고 지병이 있었던 미치요는 갑자기 무능력해진 다이스케의 손을 잡으며 죽었을 것이다. 자연의 질서란 언제나 잔인하게 공평한 것이다.


그 후 - 10점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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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기 2009.12.30 21:07 신고

    몇해 전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 싶으면서도 또 스산한 감흥을 가지고 덮었던 책인데
    어제 집에 들어갔더니 엄마가 이 책을 꺼내놓고 계시더군요. 이상하게 <그 후>와 거푸 마주치게 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란 인사를 하러 왔어요.
    새해에는 함 만나서 수다떨 기회라도 있길 바래요. :)

    • 소세키의 소설은 19세기말, 20세기초의 분위기스럽지 않게 스산하더군요. 아니면 우리는 스산하지 않았던 때 없었던 건지. ㅡ_ㅡ;;;
      수다~! 너무 좋아해요.. ㅎㅎ 딸기님두 건강하시고요. ^^ 새해에는 수다를 기필코.. : )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사랑의 피부에 미끄러지는 사랑의 말처럼

 

수련꽃 무더기 사이로

수많은 물고기들의 비늘처럼 요동치는

수없이 미끄러지는 햇빛들

 

어떤 애절한 심정이

저렇듯 반짝이며 미끄러지기만 할까?

 

영원히 만나지 않을 듯

물과 빛은 서로를 섞지 않는데,

푸른 물 위에 수련은 섬광처럼 희다


 

 

 

토요일 오전 서재 청소를 하면서 읽은 또 한 편의 시다. 2002년도에 나온 시집이니, 벌써 7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나에게도 몇 번의 사랑이 있었듯 싶지만, 이젠 흔적마저 없는 폐허일 뿐이다. 채호기의 시집은 사랑에 빠졌을 때, 적당한데, 나에게도 그러한 호사가 올까? 호사스러운 겨울이 오고 파아란 새 잎 돋는 봄이 오면, 내 마음의 폐허에도 따스한 온기로 넘쳐날 수 있을까. 아니면 물과 빛이 서로 섞지 않듯, 희게 미끄러지기만 할까. 내 사랑의 언어들처럼.

 

새벽,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둠을 두리번거리다 말고 채호기의 수련이라는 시집을 만진다.

 



수련 - 8점
채호기 지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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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서재 정리를 하면서 방바닥에 뒹구는 시집 한 권을 펼쳐 들어, 몇 편 읽었다. 승호 1991년도 시집이다. 이 때 시집 가격은 2,500. 하긴 그 때 학교 앞 식당에서 김치볶음밥 가격이 1,800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 나는 한 끼 굶고 시집을 샀다. 요즘엔 새 시집을 거의 사지도, 읽지도 않지만. 확실히 현대란, 서사시의 시대이지, 서정시의 시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대 문학을 보면 서사시도, 서정시도 드물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포스트모더니즘 때문일까, 아니면 그만큼 불투명하고 모호해진 현대 세계 때문일까.

 

최승호세속도시의 즐거움’(세계사, 1991)에 실린 시다. 마치 정권 바뀐 후의 우리 일상을 보여주는 듯해, 마음이 아리다.

 

 

 

 

광고판이 붙은 버스

 

 

운전사는 왕, 뽕짝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달린다, 폭군처럼 달려간다. 브레이크를 느닷없이, 계엄령처럼 다급히 밟을 때마다

거꾸로 내리박히고 나뒹굴고 엎어져 기지 않으려고, 무수한 나는, 무수한 중심을, 무수한 손잡이를 잡아야 했다. 선채로 흔들리는 객()들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다음은 고목나무 앞입니다그 다음은 망우리묘지 종점입니다, 라고 스피커가 앵무새 소리로, 늙음 뒤 뼈의 길과 망우(忘憂)의 길을 종알거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벌써 긴 세월을 새우처럼 갇힌 채 호송돼 온 느낌이었다.

그러자 새우깡 광고판이 붙은 버스가, 황혼에 물든 큰 거품 속으로, 속력을 내며 굴러가는 것이었다.

 

- 최승호, 1990년  




 

세속도시의 즐거움 - 8점
최승호 지음/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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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라토 칸타빌레 - 10점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문학과지성사

 


모데라토 칸타빌레 Moderato Cantabile
마르그리트 뒤라스




뒤라스의 세기도 있었다.

모든 이들에게 그의, 그녀의 세기가 있었듯이, 뒤라스에게도 그녀만의 세기가 있었다. 그녀가 죽음에 다다랐을 무렵, 그녀 옆엔 늘 서른 다섯 살 연하의 젊은 연인이 주름진 뒤라스의 손을 잡고 그녀의 볼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며 살며시 웃고 있었다. 그녀의 유작 ‘C’est Tout그게 다예요’는 마치 젊은 날의 그녀가 찾아 헤매던 언어와 사랑의 완결판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 얇은 책 위로 젊은 연인의 얼굴이 겹쳐지곤 하던 시기도 있었다.

1914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현재의 베트남)에서 태어난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알베르 카뮈와 같이, 식민지령 출신이었다(알베르 카뮈는 북아프리카 태생의 혼혈이었다). 그리고 누보 로망의 시대를 관통하며, 누보 로망과는 전혀 다른 글쓰기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완성한 여류 작가로서 그 위치를 명확히 했다. ‘내 사랑 히로시마’로 알랭 레네와 같이 영화 작업하였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도 피터 브룩에 의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피터 브룩 감독, 잔 모로, 장 폴 벨몽도 주연.



모데라토 칸타빌레라는 이 소설은 뒤라스의 비밀스런 일기장과도 같은 작품이다. 짧은 순간 스쳐가듯 어느 여인의 사소한 방황을 다루고 있는 소설은, 실은 그 속엔 여인의 내밀하고 농염한, 어쩔 수 없이 갇혀 지낼 수 밖에 없는 상류층 여인의 억압된 욕정과 솔직한 애정 결핍이 뒤범벅되어 끝 간 데 없이 끈적끈적한 외로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작품이다.


사이렌이 떠나갈 듯 크게 울렸다. 그 소리는 시내 구석구석은 물론, 바닷바람에 실려 저 멀리 변두리와 주변 도시에까지 우렁차게 들렸다. 황갈색이 더욱 짙어진 석양빛이 홀벽을 쓸어갔다. 황혼 무렵이면 종종 그렇듯, 하늘이 오히려 고요하게 부푼 구름 속에 머무르고, 구름을 벗어난 태양은 마지막 불길을 사르며 빛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사이렌은 그칠 줄 몰랐다. 그렇지만 다른 날 저녁처럼 결국 그치고 말았다.
“전 두려워요.” 안 데바레드가 속삭였다.
- 118쪽



하지만 뒤라스의 글쓰기는 언제나 가볍고 스쳐가는 듯한 언어의 운율에,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인물과 사건의 표면만을 훑고 지나간다. 마치 건조한 인상주의 작품처럼.

 

“처음으로 밝히는 것인데, ‘모데라토 칸타빌레’에서 나는 비밀스레 겪어낸 개인적 체험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외설적이라는 평을 받을까 두려워 이 경험 주변에 벽을 쌓고 거울로 둘러놓았지요. 경험이 격렬했던 만큼 더욱 엄격한 형식을 택한 것이랍니다. 이 작품 속에는 내가 숨어 있어요. 다른 어느 작품에서보다 더욱더 말입니다.”
- 129쪽

 

편지를 읽고 있는 뒤라스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뒤라스의 저 문장들은, 이 작품을 접하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읽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주인공 안 데바레드와 뒤라스가 겹쳐져고, ... ... 어느 순간, 안 데바레드 자리에 뒤라스가, 그리고 그녀는 우리들의 비밀스러운, 쓸쓸하고 외로운 연인이 된다. 


이처럼 인물들은 특권적 관찰자에 의해 내부로부터 조명되지 않으며, 감정이 명료하게 드러나는 대신 조심스럽게 추측될 뿐이다. 따라서 내면의 격정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문체기법이 사용된다. 단어들은 필연적인 위치에서 엄격하게 통제되고 지각 작용과 문체가 일체화되어 절제와 암시, 간접화의 문체 기법들은 표현효과를 높여주는 것은 물론 구조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기능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뒤라스의 글쓰기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작품으로서 새로운 언어 기업의 지평을 열어 보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역자해설 중에서, 133쪽








하지만 이는 ‘모데라토 칸타빌레’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그녀의 초기 소설 몇 편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이러한 문장, 글쓰기,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동어반복적 양식이 아니라, 늘 새롭게 읽히는, 마치 변덕스러운 여성의 마음을 닮은 듯 우리에게 읽힌다. 그녀의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녀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이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창조한 인물의 마음을, 그들을 둘러싼 사건과 풍경을, 그저 스쳐가듯, 표면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녀는 깊은 곳에 숨겨진 어떤 것들을 끄집어낸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 여자는 이번에도 그것을 알고 있다. 가슴 사이에 꽂은 목련 꽃은 완전히 시들어 버렸다. 한 시간 만에 한 여름을 겪어낸 것이다. 사내는 곧 정원을 지나쳐 더 멀리 갈 것이다. 그가 지나갔다. 안 데바레드는 가슴에 꽂은 꽃은 비틀어대는 끝없는 몸짓을 계속 하고 있다.
- 109쪽


 

안 데바레드의 방황이 ‘제 자리 뛰기’와도 같은 궤적을 그리지만,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심난한 여정임을 뒤라스는 특유의 감수성과 표현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향한 우리의 마음, 우리 영혼의 제 자리 뛰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여행인가를 뒤라스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그녀의 연인 얀 안드레아.


 그리고 그녀가 얀을 위해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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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 noi 2010.04.08 17:15 신고

    몇 주 전 뒤라스가 각본을 쓴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답니다. 물론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든 것도 있겠지만 대사가 어쩜 그렇게 매혹적이던지.. [모데라토 칸타빌레]도 책이든 영화든 꼭 접해보고 싶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 안 그래도 안부 남기려고 했는데.. ㅎㅎ .. 최근에는 너무 바빠서 책도 못 읽고 집중해서 글도 못 쓰고 있어요. (뭐, 그닥 글같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니지만) 적당하게 바쁘기도 하고 여유롭기도 한 삶이 좋은데 말이죠. 너무 바쁘네요. 벌써 4월이라니.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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