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932

Art History, Dana Arnold

Art History - a very short introduction Dana Arnold, Oxford, 2004 그러고 보니, 원서를 통독한 것은 참 오랜만이다. 그만큼 읽기 쉬운 평이한 문장으로 되어있기도 하고 책 제목 그대로 introduction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거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 책의 장점은 다양한 관점에서 미술사(art history)를 조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사와 예술 비평에 대한 비교나 예술작품감정(Connoisseurship)에 대한 언급도 있으며, 신미술사(New art history)나 철학사의 영역에서 바라보는 예술작품, 또는 예술사도 포함시키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설명들이 명확하고 단순하게 언급되어 있다는 ..

벌거벗은 CEO, 케빈 켈리

벌거벗은 CEO (CEO: The Low Down on the Top Job)케빈 켈리(지음), 이건(옮김), 세종서적, 2010년 일반적인 궤도를 그린 직장 생활이라기 보다는 중구난방으로 부딪히며 이 일 저 일 해온 탓에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가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마음을 접었다. 나만의 사업을 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종류의 일임을 새삼 깨닫은 탓이기도 하고 살짝 포기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류의 책이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탑 레벨에서의 의사결정 구조나 리더십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만 조직 생활이 가능하고 중간 관리자로서의 모범을 보일 수 있다. 글로벌 헤드헌팅 회사의 CEO인 케빈 켈리는 자신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CEO들을 바탕으로 한 권의 책을 쓴다..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 김석철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김석철(지음), 창작과비평사, 1997년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책이라니, 새삼스러웠다. 그러나 이 책에 소개된 건축물들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이야기들도 변하지 않았으니, 좀 오래된 책이라고 그 재미와 감동은 그대로일 것이다. 또한 건축가인 저자의 글솜씨도 나쁘지 않고 내용은 어렵지 않으며 짧은 분량으로 상당히 많은 건축물들과 건축 공간을 이야기하고 있어 여행을 좋아하거나 건축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겐 상당히 실용적이기도 하다. 나름 건축물들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는 나 또한 이 책을 통해 간과했던 몇 개의 건축물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세신궁이나 자금성 같은. 이세 지역의 신궁은 일본의 신성함과 국가의 단일성을 과시하기 위해 기원전 1세기경에 계획되었다. (... ...) 그 옛..

생각의 한계, 로버트 버튼

생각의 한계 On Being Certain 로버트 버튼(지음), 김미선(옮김), 더좋은책 사고는 항상 더 어둡고, 더 공허하고, 더 단순한 우리 감각의 그림자이다. - 니체 책을 읽으면서 노트를 하고 노트된 것을 한 번 되집은 후 책 리뷰를 쓰면 좋은데, 이 책 는 완독한 지 몇 달이 지났고 노트를 거의 하지 못했으며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탓에 정리하기 쉽지 않았다. 특히 종교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땐 꽤 흥분하면서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로버트 버튼도 우리의 기억이 변화하고 조작된다는 사실을 이 책 초반에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명확하다. 우리가 안다라고 할 때, 그것은 감각적인, 일종의 느낌일 뿐이지, 흔히 말하는 바 논리적인 것이거나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최초의 모험, 헤르만 헤세

최초의 모험헤르만 헤세(지음), 이인웅(옮김), 올재클래식스, 2018년 "나는 작가의 역할이란 무엇보다도 회상시켜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를 통해 무상하게 사라져 갈 일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며, 말을 걸어 불러내고 사랑에 찬 서술을 함으로써 지난 과거의 일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옛날의 관념론적 전통에 따라 작가의 임무에는 어느 정도 선생님이나 경고해주는 사람이나 설교자로서의 기능이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교훈을 준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언제나 우리 인생에 혼을 불어넣기 위한 독려의 의미로 생각하고 있다." "사물을 관조하는 일이란 연구하거나 비평하는 것이 아니다. 관조란 바로 사랑이다. 관조한다는 것은 우리 영혼의 가장 고귀하고 가장 소망할 만한 상태로서, 아무런 욕구가 없..

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브로크백 마운틴 Close Range: Wyoming Stories 애니 프루Edna Annie Proulx(지음), 조동섭(옮김), media 2.0,2006년 잭이 말했다. "이 생각을 해봐. 나도 이번 한 번만 말하겠어. 있지. 우리는 같이 잘 살 수도 있었어, 진짜 좆나게 잘. 에니스, 네가 안 하려고 했어.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브로크백 마운틴 산 뿐이야. 거기 몽땅 다 있어. 우리가 가진 건 그것 뿐이야. 씹할 그것 뿐이라고.(...)" - 345쪽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은 앞서 읽었던 거칠고 고통스러우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끝까지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 사람들의 군상들과 겹쳐져, 위 문장 쯤에선 눈물이 나올 정도다.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라니! 아마 한국에서 특정 지역을 소재로 ..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의 . 소설을 읽는 내내, 루시디가 추천하는 몇 권의 책 안에 들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하지만, 다 읽고 난 다음 그가 왜 이 소설을 왜 추천했는지 알게 된다. 몇몇 이들은 이 소설을 영국의 아동법 등의 여러 법률에 근거한 법과 종교의 문제로 해석하지만, 그건 잘못된 해석이다. 판사가 나오고 소설의 많은 장면들이 법정이거나 법과 관계된 사람들로, 혹은 종교와 관계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이를 법과 종교의 문제, 그 갈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모든 이들이 탁월한 소설 비평가가 될 것이다. 결국 읽는 이에 따라 소설에 대..

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책이 되어버린 남자 Das Buch알폰스 슈바이거르트(지음), 남문희(옮김), 비채, 2001 원제는 '그 책'이고 내용은 번역본 제목 그대로 책이 되어버린 비블리 씨에 대한 것이다. 정말로 책이 된다. 책이 되어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고 서가에 꽂히기도 하며 읽히기도 하고 땅 속에 파묻히기도 한다. 그러나 책이나 독서에 대한 깊은 사색이 묻어나오지 않으며 그저 책이 된 채 떠도는 이야기이다. 독특하기는 하나 깊이는 없다. 책은 짧고 금방 읽힌다. 그리고 왜 읽었을까 하고 반문하게 만든다. 그래서 책 앞에 인용된 독일 저널들의 찬사는 어색하고 난감하다. 왜냐면 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닌가, 내 감식안이 형편없는 건 아닌가 하고. 제목은 사람의 시선을 끌지만, 시간 내어 이 책을 읽진 말자. (그래서 독일 아..

지적 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 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지음), 이정환(옮김), 민음사 처음 읽을 땐 꽤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읽을 때 금방 읽었다. 그러나 처음이나 두번째나 이 책을 읽기 잘했다는 생각은 똑같았다. 도리어 늘 고객가치라는 단어를 듣고 읽지만, 정작 실무에선 그걸 잊어버린다는 걸,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깨달았다. 고객 가치를 우선하라. 세계 최초를 추구하는 일의 공허함 (12쪽) 우리는 고객 중심이라는 이야기를 떠들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하며 오랜 기간의 관찰과 설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도 정작 놓치는 것이 고객 가치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실현하기 어려운 게 고객 가치다. 어쩌면 고객 가치를 추구하는 많은 기업들은 고객 가치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지음), 양윤옥(옮김), 현대문학 소설 쓰는 게 영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 소설 쓰는 법에 관심을 기울인 듯 싶다. 실은 소설 쓰는 법 따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소설 쓰는 법을 배우고 소설가가 되는 경우보다, 그냥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우연히 소설가가 되고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쌓은 후, 몇몇 작가들은 소설 쓰는 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그 작법 이야기를 읽거나 듣는다. 결국 내가 소설 쓰는 법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소설 쓰기와는 무관하게, 소설 쓰기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리고 소설 쓰는 법을 이야기할 정도로 수준 있는 소설가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내 동경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일지도. 젊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