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936

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 유미리

요즘 친구들도 유미리를 읽을까. 유미리를 읽지 않는다면, 누구를 읽을까.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그녀. 해질녁 공원 계단에서 죽은 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그녀.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 도서관에 빌린 강상중의 책 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 발언 때문에 강연회를 할 때마다 극우파의 공격에 대비해 배에 신문지를 넣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는 강상중 교수의 책을 보자, 문득 유미리가 떠올랐다. 서재에 이미 그녀의 책은 다른 책들로 인해 밀려밀려 어디로 사라지고 ... 도서관에 가서 그녀의 책을 빌려 읽어야겠다. 그녀의 트윗을 팔로워했는데(일본어를 할 줄 모르면서), 그녀의 딸인가 싶다. 혼자 딸을 키우고 살아가는 작가 유미리... (주제 넘은 생각이지만) 가끔..

스펜트 Spent - Sex, Evolution, and Consumer Behavior

스펜트 Spent - Sex, Evolution, and Consumer Behavior 제프리 밀러(지음), 김명주(옮김), 동녘사이언스 스펜트 - 제프리 밀러 지음, 김명주 옮김/동녘사이언스 진화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 서적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소비 행위에 대한 진화심리학자의 해석서? 여하튼 책은 무척 재미있다. 책 표지에 적힌 말대로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은 다윈’일 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요약하자면, 현대의 소비주의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해석은 '과시적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이는 다시 '짝짓기의 열망'으로 이어진다(짝짓기의 보이지 않는 열망이 인간의 ‘과시적 행위’를 불러일으키고 현대 사회의 소비 밑바닥에는 이러한 것이 숨겨져 있다는 것). 마치 공작의 꼬리가 살아가는..

진 리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Wild Sargasso Sea

진 리스(Jean Rhys),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Wild Sargasso Sea) 윤정길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38권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그래, 이제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전진과 후퇴도, 의심도 주저도, 좋든 나쁘든 간에, 어쨌든 모든 것은 끝이 난 거다. 우리는 세찬 비를 피하느라 커다란 망고나무 밑에 서있었다. 나, 내 아내, 그리고 혼혈 하인 아멜리. 우리의 짐은 굵은 마직포를 덮은 패 다른 나무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99쪽 소설은 짧고, 고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맥이 떨어지는 작품이었다. 마치 19세기 에밀 졸라의 실험소설들과 20세기 초 의식의 흐름 소설을 묶어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풍경을 뒤로 하..

'빨갱이'의 탄생, 그 단어의 유래.

요즘 '빨갱이'라는 단어가 유행입니다. 아직도 이 단어를 쓰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 단어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정치권과 주류 미디어의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반성하지 않겠지만요) 이 단어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단어이며, 무수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외국으로 내 몰았고, 많은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내었던 단어입니다. 그러니 이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좌파, 우파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까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한국의 대다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좌파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아래 도표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한겨레21에서 작년 초봄에 실시한 조사 결과입니다. 저는 이 도표를 보고 난 다음, 해방 직후 미 군정이 실시한..

폴 드 만 Paul de Man과 텍스트 Text

얼마 전 흥미로운 trackback이 달렸다. 나로선 무척 반갑고 흥미로운 일이다. 가끔 인문학적 배경을 두고 저널에 글을 기고하기도 하지만, 글쎄, 학문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교수들이나 비평가들과 비교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적 이슈에 대한 trackback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Trackback을 해주신 balbutier님께 감사를 표하며, 폴 드 만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인다. 텍스트와 컨텍스트 인문학자들의 세계를 거칠게 이등분하자면, 텍스트중심주의자들과 컨텍스트중심주의자들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마치 마르크시즘 진영에서 보는 관념론자과 유물론자의 대비처럼). 한 쪽은 텍스트적 문제 속에 컨텍스트적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으니, 텍스트 연구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이진경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 이진경 지음/푸른숲 아직도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높나? 새로운 개정판을 읽지 않았으니, 아래 글은 정확한 서평이 아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서양 예술 형식에 대한 탐구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 책은 '근대적 시, 공간의 탄생'이라는 매우 거창한 제목과 비교해 아주 허술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더구나 아래 서평에서도 지적했듯이 잘못된 내용들도 포함하고 있다. 이를 하나하나 지적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시간도 가치도 못 느끼겠다. 혹시라도 살 생각이 있다면 사지 말기를 바란다. 흥미로운 소재를 취했으나, 소화하기 힘든 소재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개정판이 나와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면 내 지적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 기회가 닿는다면, 근대적..

삶에 대한 그리스적 태도 - 인간과 고전주의

오래된 문고판 책을 꺼내 읽는다. 한창 공부를 할 때다. 1990년대 후반, 이 책은 지방의 작은 서점에서 - 지금은 없어졌을 - 구했다. 짧지만, 내용은 탄탄하고 전문적이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에 대해 짧지만, 매우 정확한 언급이 담겨있다. '오뒷세이아'는 같은 10년이란 긴 세월동안의 표류와 귀국을 41일 속에 압축한다. 사건은 극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진행된다. 호메로스의 말은 유창하면서 단순하고 기교적이면서도 그 기교를 느끼게 하지 않고, 자유로이, 미끄러히, 장대히 흘러간다. 장려한, 인간을 초월한 광휘 속에 절절한 애조를 띠며 말해진다. 어떠한 용사라 할지라도 인간의 아들로서 태어난 자의 힘의 한계와 세상의 덧없음을 알고 있다. 이것이 다만 강하기만 한 영웅을 만들지 않고 강함과 애처로움이 ..

The Rise and Fall of Strategic Planning

The Rise and Fall of Strategic Planning Henry Mintzberg 전략 계획의 부흥과 몰락? 번역이 다소 좀 어색하지만, ... 캐나다 맥길대의 헨리 민츠버그(Henry Mintzberg)교수는 세계적인 경영학자이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위 책도 검색해보니, 번역되지 않는 듯하다. 그의 책 중 번역된 것은 Managers not MBA(MBA가 회사를 망친다)가 유일하다.) 나 또한 오늘 읽은 이동현 교수(카톨릭대 경영학부)의 글에서 민츠버그를 알게 되었다. 찾아보니, 월스트릿저널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학자 20인 중에서 민츠버그 교수는 9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민츠버그의 의견들 중 귀담을 만한 것들 있어, 이동현 교수의 소개 글에서 ..

독서모임 빡센BaakSen에서 읽어온 책들의 기록

제가 속해있는 독서모임입니다. 제가 까페 운영자이기도 하고요. 벌써 2년을 향해가네요~. 인원도 적고 읽는 책들마다 한숨 소리만 나오는 것들이라 한달에 한 번 모이는 자리에 나오는 사람은 10명이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많으면 7명.. 그것도 매달 바뀌니.. ㅋㅋ 하지만 아래 책들을 보니, 뿌듯해지네요. 저도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지 못했을 책들입니다. 직장생활도 하고 집에 일찍 들어가기도 해야 하고 .. 제 블로그에 독서모임 빡센(http://cafe.naver.com/spacewine)을 한 번 올려봅니다. ~ 책과 세계 강유원 저 책이라는 텍스트는 본래 세계라는 맥락에서 생겨났다. 인류가 남긴 고전의 중요성은 바로 우리가 가볼 수 없는 세계를 글자라는 매개를 통해서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는 ..

책들의 우주 2011.10.18

서울미술산책가이드, 류동원/심정원

 서울 미술산책 가이드 류동현,심정원 공저, 마로니에북스 "발을 내딛는 순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세상에는 그런 매혹적인 길이 있다. 한 번 내딛으면 나도 모르는 새 푹 빠져 드는 그런 길. '미술'이라는 길이 바로 그렇다. 이 책은 미술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미술 현장으로 이끌기 위해 쓴 가이드북이다." 저자들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말미술여행'을 운영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미술 전시에는 관심있으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 없을까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 한 권을 서점에서 샀습니다. 책은 무척 좋습니다. 문장은 평이하면서도 미술 전문가들이 일반 관람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다 적고 있었습니다. 주요 미술관, 갤러리들 뿐만 아니라 미술 감상법에 대해서도 적고 있는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