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37

2021년 10월, 작은 생각

몇 주 전부터 알람 시간을 새벽 3시로 맞추어놓았지만, 한 번도 제 때 일어나지 못했다. 실은 겨우 출근 시간에 맞추어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려고 집에 오자마자 씻고 오후 9시나 10시에 바로 눕는데도, 하루 두 세 차례의 회의와 업무 긴장감, 순간순간 엄습해오는 초조함과 압박으로 인해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고 하루 일곱시간 수면도 부족하다고 할까. 그 마저도 스트레스로 깊은 잠을 자기 어려우니. 선잠을 자고 내일 일과를 생각하면 피곤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잠자리는 끝없이 불편해진다. 그래도 끝나지 않는 일들은 나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알람 시간에 기대게 하고, 내 불안과 근심은 결국 불가능한 기상 시간과 불편한 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일까, 일상일까. 내가 원했던 삶은 이런..

일요일 오후 노들섬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은 소리 없이 다가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내 정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종일 책상에 앉아있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그저 불안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번 생은 어딘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만 떠오른다. 불안에 대해서 최악의 처방전만 있다. 그것은 고개 돌리기, 외면하기, 회피하기, 도망가기, 망각하기. 서울시 따릉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 근처로 나왔다. 가을 저녁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들은 연신 브레이크를 잡으며 자신의 자전거 타기 실력을 뽐내고 한강대교까지 가는 동안 동네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다. 이 근처에서 산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구나. 보통은 여의도 한강 시민 공원까지 가든지, 동작대교를 지나 반포대교 남단까지 갔다..

가을 하늘, 때 늦은 단상.

외출도 예전만 못하다. 풍경은 마음을 비켜나가고 바람은 내 곁으로 오지 않는다. 언어는 애초 예정된 방향과 다르게 나아가고 결국 지면에 닿지 못한 채 흩어진다. 과거와 현재, 오늘과 미래는 서로 단절되어 부서진 채 오해만 쌓아가고, 결국 시작하지 않았던 것이 좋았을려나. 에밀 시오랑이 태어남 그 자체를 저주했듯이. (그게 내 뜻대로 되었다면 ... ) 자기 전 몇 권의 책을 뒤적거리며(그 중에는 교황 요한 23세의 일기 도 있었구나), 프린트해 놓은 영어 아티클들을 정리하였다. 이것도 읽고 싶고 저것도 알고 싶고. 하지만 나는 두렵다. 내가 상처 입는 것이, 내가 못할 것이, 결국 실패로 끝나지나 않을까 하고. 그래서 정해지지 않은 내일을 두려워하며, 이미 정해진 오늘이 가는 것을 자지 않음으로 막고 있..

성당 풍경

마음이 스산하고 몸은 피곤하다. 꿈은 외롭고 발걸음은 정해진 궤도만 오간다. 나무와 본당 건물 사이의 전선만 없으면 어느 유럽 도시 풍경처럼 보일텐데. 저 풍경 사이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싶다. 그리곤 나오지 말아야지. 그렇게 사라진 몇몇 사람들은 나는 알고, 그들은 나를 모른다. 그렇게 사라진 그녀를 나는 알고, 그녀는 나를 잊었다. 가을 오는 소리에 살짝 놀라 궤도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모든 것들은 정해진 대로 갈 뿐이다. 벗어난 그 곳마저도 예정된 궤도 위라는 걸. 그걸 알았다면, ... ...

가을을 준비하는 어느 일요일, 그리고

바람은 선선하고 하늘은 높고 파랗다. 이번 여름은 사무실과 집만 오갔다. 그 사이 한일갈등은 극에 다달았고, 언젠가는 이런 국면이 펼쳐지리라 예상되었으니, 우리의 일상은 평온하면서 현대적 자본주의의 스트레스로 지쳐만 갔다. 그 스트레스 속으로 한일갈등은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한국의 언론은 우리가 그들을 향해 기대하는 기능의 절반 이하로 언론의 참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한일갈등도 그러한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채 20%도 되지 않을 듯 싶다. 저 정도의 호들갑이라니. 박근혜 정권 때 저렇게 해주었으면 나라가 지금보단 훨씬 더 나아져 있었을 것이다. 이번 사태의 시작은 지난 정권에서의 잘못된 외교 관계와 여러 협약 때문이다. 아베 정권의 극우적 태도는 이미 다 ..

늦여름 속 추석을 보내고

나이가 들수록 명절 보내기가 더 어려워진다. 내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는지 모르겠지만. 과거는 화석이 되어 이젠 향기마저 풍기지 않고 미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끝도 보이지 않는 계곡 사이로 이어진다. 중년이라 그런 건가. 돌파구는 늘 위기에 있다지만, 우리 인생은 늘 위기 위에 있다. 올웨이즈 리스크 모드라고 해야 하나. 음악을 들었지만, 예전같은 감동을 찾기 어려웠다.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가을이 왔다고들 말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끔찍했던 여름이 이어져, 계속 지치고 땀이 나고 흔들거린다. 그래도, 기어이 가을은 올 것이고, 그래도 나는 나이가 계속 들어갈 것이고, 그래도 내 아이는 계속 자라날 것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푸른 곰팡이, 이문재

푸른 곰팡이 -산책시 1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 이문제, 중에서 이문재의 (민음사)가 있는데, 서가를 찾아보니 없다. 정리되지 않는 서가, 정리할 시간도 없는 서가, 이젠 책 읽을 시간과 여유마저 사라지고, 이 시도 읽었으나 이젠 기억나지 않아, 신문에서 읽은 다음, 출처를 찾아본 다음에서야 시집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문재를 읽던 시간도 이젠 드물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