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13

지역 도심을 살리는 예술 마을 프로젝트 - 마산 창동예술촌

기억 속의 물리적 공간, 혹은 거리와 면적은 언제나 넓고 길다. 마치 지나온 시간 만큼, 쌓여진 추억들만큼, 기억 속에서 공간들은 소리 없이 확장한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무렵의 마산의 중심가는 창동과 불종거리였다. 그 곳에서의 사춘기 나에겐 무수한 일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늘 현재를 살기에, 단지 많은 일이 있었다는 것만 짐작할 뿐, 추억의 상세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힘들고 아슬아슬하기만 했던 올 여름의 휴가 마지막 날, 아내와 나는 마산 창동에 갔다. 한 때 극장과 서점, 까페, 옷가게들로 융성했던 거리는 이제 쇠락해가는 구 도심일 뿐이었다. 화요일 점심 때가 가까워져 오자, 사람이 한 두 사람 느는 듯했지만, 서울과 비교해 인적은 뜸했다. 이 곳을 가게 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창동 예술..

나 취했노라

고대의 길과 근대의 길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양재역 사거리에서 강남역 사거리 사이의 길들은 곧지만, 늘 막혀 있다. 느리고 뚝뚝 끊어지는 경적 소리와 숨 넘어 가는 엔진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고대의 길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익히 아는 사람들로 가득 차지만, 근대의 길엔 늘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곧지만 호흡하기 힘든 분위기로 내 삶을 옥죄는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6월 3일 금요일 밤 10시. 무릎엔 아무런 상처도 없지만, 실은 영혼의 무릎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도망가지도 못하도록 나를 몰아 붙였지만, 실은 늘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이 때까지 나온 시집의 첫 장 중에서 가장 멋지고 우아한, 그러면서도 한없이 슬픈 것은 장정일의 시집이다. 늘 도망 중이라는. 발 한 쪽을 앞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