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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위의 봄

계단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어딘가 올라간다는 것은 언젠간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람이 불었다. 궁궐 건물 아치형 입구 옆으로 살짝 비켜 불어들어온 바람은 실내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따가운 햇살에 푸석푸석해진 머리칼을 스다듬어 올렸다. 이마 살갗이 거친 손바닥에 밀렸다. 따끔거렸다. 환상은 쓸쓸함 사이에 깃들고 공상은 한 잔 술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은 잡을 수 없는 파도였고 내 곁에 머무는 모든 것들의 존재는 느낄 순 있었으나, 소유할 순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먼 미래를 회상해본다. 앞으로 다가올 것이지만, 이미 경험했던 어떤 것들의 변형이거나 알레고리에 가까울 것이다. 어느 새 봄은 왔고 내 육체는 봄 향기에 지쳐 쉽게 피로해지고 있었다.

3월 저녁의 스산함

앙리 마티스의 젊은 시절, 지붕 밑 아틀리에를 그린 작품이다. 마티스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품 속의 아틀리에 안은 창 밖 밝은 세계와 대비되어, 어둡고 쓸쓸하며 심지어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색깔들이 어우러지면서 그토록 많은 슬프고 우울한 감정을 보는 이로 하여금 자아내게 만든다는 사실은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지만, 이 색깔들이 자신의 인생 한 복판에서 어우러진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직 서울에서 봄이 오는 풍경을 보지 못했고 그저 봄 바람이 전해주고 간 저녁 공기의 스산함만을 느꼈을 뿐이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아무렇게 집어든 클래식 시디에서 귓가에 와닿아 마음을 흔드는 노래 한 곡의 제목이 '봄의 신앙'(Fruhlingsglaube, Faith in Spring)이라니. 봄이 오기는..

misc - 2006. 04. 16

마산 창동거리에서 어시장 쪽으로 내려오는 길, 동성동인가, 남성동 어디쯤 있었던 레코드점에 들어가 구한 음반이 쳇 베이커였다. 그게 94년 가을이거나 그 이듬해 봄이었을 게다. 그 때 우연히 구한 LP로 인해 나는 재즈에 빠져들고 있었고 수중에 조금의 돈이라도 들어오면 곧장 음반가게로 가선 음반을 사곤 했다. 어제 종일 쳇 베이커 시디를 틀어놓고 방 안을 뒹굴었다. 뒹굴거리면서 스물두 살이 되기 전 세 번 정도 손목을 그었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삶의 치열함이라든가 진정성 같은 거라든가. 스무살 가득 나를 아프게 했던 이들 탓일까. 아직까지 인생이 어떤 무늬와 질감을 가지고 있는지 도통 아무 것도 모르겠다. 문학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집트 예술가의 진정성과 현대 예술가의 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