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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이렇게 비 올 땐 쇼팽이구나. 

쇼팽의 녹턴만 들으면 왜 고등학교 때 가끔 주말마다 가던 창원 도립 도서관 생각이 나는지 몰라. 

노오란 색인표를 뒤져가며 책을 찾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고 

혼자 온 나를 사이에 두고 앞서 책을 빌리던 아저씨는 무슨 책을 빌렸나 뒤에 빌린 그 소녀는 무슨 책을 빌렸나 궁금해 했지. 

아무 말 없이 서서 물끄러미 창 밖을 보며 아주 잠시 내 미래를 생각했어. 

그 옆을 지키던 네모난 색인표를 넣어두던 서랍장과 책들 사이로 지나는 서늘하고 무거운 공기들 사이로 계단이 이어지고 

해가 살짝 기울어, 도서관 앞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할 때쯤 나들이 나선 여학생들의 깔깔거리던 소리들과 ... 

지금도 그 자리에, 그 도립도서관은 그대로 있을려나. 

내가 타고 다니던 그 시내버스도 그대로 있을려나. 

그렇게 내가 짝사랑하던 그녀, 그녀의 흔적들도 그대로, 그 곳 어딘가 숨겨져 있으려나. 남아 있으려나. 

이렇게 비 올 땐 쇼팽이구나. 

얇고 슬프지만, 단단한 피아노 소리가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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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다. 우산을 챙겼다. 우산 밖으로 나온 가방, 신발, 입은 옷들의 끝자락들, 그리고 내 마음과 이름 모를 이들로 가득한 거리는 비에 젖었다. 


비 내리는 풍경이 좋았다. 내 일상은 좋지 않지만, 비 속에 갇힌 거리의 시간은 음미할 만 했다. 아주 가끔 있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글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 술이나 마셔야 하나. 

(그러기엔 너무 일이 많구나)



비 오는 그림을 좀 찾아봤는데, 거의 없다. 비 내리는 풍경이 회화의 소재로 나온 것도 이제 고작 1세기 남짓 지났으니.. 


Gustave Caillebotte  (1848-1894)

Paris Street; Rainy Day, 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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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까페 하나가 생겼다. 몇 번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그 까페 한 쪽 면의 창문들은 어두워지면 저 멀리 63빌딩이 보이고 강변북로를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처럼 수놓는 자동차 불빛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야경을 가졌다. 사무실의 술자리를 줄이니, 동네 술자리가 늘어났다. 동네 술자리가 마음 편하다. 술을 많이 마실 염려도 없고 많이 마시더라도 걸어서 집에 가니 걱정 없다. 


비가 많이 내렸다. 내린 비만큼 내 치아와 잇몸 상태도 엉망이었음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매주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걸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안다. 우리는 나이 드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 늘 상투적으로 말한다. "몸은 늙었으나, 마음만은 이팔청춘이야"라고. 


그런데 저 상투적 표현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우리 마음과 몸을 병들이는가에 대해선 주목하지 않는다. 청춘의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험해본 이는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무수한 도전과 실패로 얼룩져 중년의 몸과 마음까지 영향을 주는 그 이팔청춘! 이팔청춘이 뭐가 좋다고. 


그래, 이팔청춘 시절 그대의 사랑은 행복했나요? 그대의 학창 시절은 즐겁고 유익했나요? 그대의 대학 시절은 바람직했나요?  


제대로 된 사회는 그 나이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제대로 된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 없이 오직 대학 입학만을 준비한다. 사춘기의 철없지만 향기롭게 들뜬 사랑에 대해서도 그 어떤 조언도 받지 못하고, 머리 가득하게 퍼지는 성적 유혹에 대해서도 온 몸으로 부딪히며 아파할 뿐이다. 그렇다고 대학이 딱히 나은 것도 아니어서,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성적 방종이거나 자유, 혹은 학문 탐구에 대한 무책임함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갑자기 괴롭히는 것이 생기는데, 그건 취업 준비다. 



이팔청춘이 한참 지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와인을 마셨다. 비는 쉴새없이 내렸고 투명한 유리잔은 채워졌다가 비워지길 반복했다. 말은 끊겼다가 이어졌고 시간은 쉼없이 흘렀다. 어느 새 나이가 들어 이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적게 남은 우리들에게 청춘이란 무엇일까. 늙어간다는 건 무얼까. 인생은, ... ... 


그저 의미없이 지나갈 뿐이다. 아. 다행이다, 까뮈와 베케트를 읽어둔 것은. 까뮈와 베케트는 내가 젊었던 시절, 이 생이 아무 의미 없음을 알려주었기에, 나는 어떻게든 살아있는 것이다.


치과 치료가 있는 날이면 아련한 고통에 정신이 없다. 진통제를 먹어야 하나. 그나저나 목요일 통영에 가는데, 가서 뭘하지. 회의를 끝내고 뭘하지. 혹시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통영에 사는 이가 없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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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내 마음에, 그대 가슴에, 온 우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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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내린 비는 아침이 되자, 더 세차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비에 젖으면, ... 내 발이, 내 몸이, 내 얼굴이, 내 가슴이 젖으면 안 될 것같아, 운동화를 꺼내 신고, 큰 우산을 찾아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출근하는 목요일 아침, 길바닥에 고인 빗물들이 나를 향해 날아올랐다. 


땅에서 허공으로, 대기로, 하늘로, 우주로 날아오르는 빗물 방울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는 또다른 빗줄기에 갇혀 마음의 자유를 잃어갔다. 2014년 여름. 


출근하자 마자, 전날의 최종 매출을 확인하고, 퇴근할 때 그 날의 최종 매출을 예측하며 사무실을 나간다. 대구에 출마한 김부겸 전 의원이 "출마해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지지율 1%를 올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라고 이야기했듯이 하루 평균 매출 1% 올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변명하고 싶지만, 변명은 리더의 몫이 아니다. 


변명하지 않는 책임. 이게 리더이고 가장의 몫이다. 


 그렇게 나는 나이가 들었고 출근하는 동안 무슨 일이 또 생긴 건지, 지하철 역에 내리자 비는 더욱 세차졌다. 계속 세차져, 내 마음보다 큰 우산을 흔들고 어느 새 짙은 갈색 유화물감을 칠해놓은 듯 투명한 물기로 미끌거리는 길에는 내 가슴보다 깊은 빗물웅덩이가 생겼다. 


이쪽 웅덩이에 운동화 한 번 담그고, 저쪽 웅덩이에 운동화 한 번 담그고, 바로 앞 웅덩이에는 내 손 한 번 담그고, 저기 먼 웅덩이에는 내 마음 한 번 담그고, ... ... 그렇게 담그고, 담그고, 담그고, ... ... 2014년 여름, 나는 가라앉고 있었다. 빗물웅덩이 속으로. 




** 


비 오기 전 어느 새벽 퇴근길. 세상은 나쁘게 변하고 나는 비에, 안개에, 슬픈 물웅덩이에 둘러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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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내리자 마자 비가 와락!! 다 젖었다. .. 그리고 이문재의 시집이 떠올랐다. 오늘 해가 뜰려나. 오후는 내내 외근인데..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이 문재 


그는 두꺼운 그늘로 옷을 짓는다
아침에 내가 입고 햇빛의 문 안으로 들어설 때
해가 바라보는 나의 초록빛 옷은 그가 만들어준 것이다
나의 커다란 옷은 주머니가 작다

그는 나보다 옷부터 미리 만들어놓았다
그러므로 내가 아닌 그 누가 생겨났다 하더라도
그는 서슴지 않고 이 초록빛 옷을 입히며
말 한마디 없이 아침에는
햇빛의 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저녁에 나의 초록빛 옷은 바래진다
그러면 나는 초록빛 옷을 저무는 해에게 보여주는데
그는 소리없이 햇빛의 문을 잠가버린다

어두운 곳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것들은 나를 좋아하는 경우가 드물고
설령 있다고 해도 나의 초록빛 옷에서
이상한 빛이 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나의 초록빛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두꺼운 그늘의 섬유로 옷을 만든다
그는 커다란 그늘 위에서 산다
그는 말이 없다

그는 나보다 먼저 옷을 지어놓았다
그렇다고 나를 기다린 것도 아니어서
나의 초록빛 옷은 주머니가 작으며
아주 무겁다

극히 드문 일이지만 어떤 이들은 나의 이상한
눈빛은 초록빛 옷에서 기인한다고도 말하고
눈빛이 초록빛이라고도 말하는데
나와 오래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두꺼운 그늘을 먹고 산다
그는 무거운 그늘과 잠들고
아침마다 햇빛의 문을 열며 나에게 초록빛 옷을
입힌다 아침마다 그는






지구 여행 중인 갈색 구두를 사무실 한 쪽 벽에 비스듬이 세워두고 선풍기와 건조해지는 마음과 양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7월의 어느 목요일은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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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시간이 사라졌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니 말이다. 주말 집 근처 공원을 산책했고 늦봄 꽃 향기에 취했다. 그 향긋한 내음 사이로 아이는 웃고 뛰었다. 


그리고 월요일이다. 주말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채, 다시 월요일을 시작한다. 지난 금요일에 면접을 봤던 웹 개발자는 출근하지 않겠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 문자에 대해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꽤 상심했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된다. 혼자 고민해야 될 문제는 아니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에만 신경 쓰기도 바쁜데 말이지. 


다시 월요일이다. 그리고 비가 온다. 비를 맞으며 출근 했다. 팻 메쓰니의 음반을 뮤직 사이트에서 찾아보았으나, 없다. 비오는 날, 나는 팻 메쓰니의 New Chautauqua를 즐겨 들었다. 캘리포니아 어딘가의 지명이다. 하지만 가고 싶진 않다. 너무 쓸쓸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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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두 번이나 내려 마시곤 결국 레드불을 사서 먹는다. 온 몸이 카페인화되고 심장 박동수는 빨라지고 피부가 팽창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내가 원했던 집중력 향상은 적응되지 않는 신체의 변화로 인해 도리어 산만해지고 말았다. 


회사를 옮기고 나는 자주 밤샘을 하고 있다. 주로 고객사에 Web Strategy를 제안하기 위해서다. Contents를 어떻게 창조하여 보여줄 것인지, User Interface나 User Experience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리고 이를 위해 어떤 Technology를 사용할 것인가를 구성한다. 


중요한 것은 고객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인데, 그러다보니, 매번 제안서마다 새로운 내용이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내용에 대한 가치를 설득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 


이번 주에만 2개의 제안이 있고 다음 주에도 2개의 제안이 기다리고 있다. 팀원 한 명을 구한다는 공고를 내었는데, 좋은 지원자가 드물다. 


오늘도 세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왔다. 집에서 나올 땐 흐리기만 했는데, 지금은 얇은 눈알갱이가 날린다, 날렸다. 하늘은 낮고 내 마음도 낮아진다.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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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에서 만든 금연 캠페인 홍보물이다. 하나는 백설공주가 나쁜 마녀한테서 사과 대신 담배를 건네 받는 그림이고 하나는 피터팬이 담배를 피우다 할아버지가 된 그림이다.

그런데 피터팬 그림은 이래저래 심금을 울린다. 그건 담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얼마나 안 좋아졌으면 피터팬으로 하여금 담배를 피우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다가 늙은 것이 아니라 세상이 이미 피터팬에 많은 상처와 고통을 주었고 늙지 않는다는 피터팬도 천천히 늙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담배를 피우면서 신세한탄조의 표정으로 물끄러미 먼 산을 쳐다본다.

그러고 보면 힘든 세상, 벗이 되는 건 술과 담배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 너무 위험한 생각인가. 크)

- 2005년 8월 19일


토요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상념에 잠긴다. 그리고 불현듯 저 위 피터팬 사진을 그냥 넘길 수 없다고 확신한다. 어제 밤 안철수 교수와 박경철 원장가 나온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한 어투로 이야기했다고 여겼다. 아침에 일어나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시청율 이야기, 그 TV 프로그램의 시청율이 같은 시각 다른 예능프로그램보다 높았다는 사실... 당연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고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 높은 시청율은 ... 마치 이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어떻게 된 것이지,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없어, 누군가 당연한 이야기를 하면 제법 큰 호소력을 가지는 신기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안철수 교수의 말대로 '역사를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니까 그런 거다. 심지어 이 나라는 불과 10년 전의 일도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건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제 인터넷 신문에 우면산 옆 대모산 아래의 구룡 마을의 침수 피해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7496 ) 기사 내용은 너무 황당했다. 무허가라서 침수 피해 지원이 안 된다고 한다. 서초구에는 뻔질나게 들어가던 정치인 한 명도 안 오고, 군인들도, 공무원들도 오지 않았고 한다. (이게 비상식적인 일이 아닌가!)

이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옆 나라 일본에서 지진 피해에 대해서는 난리 법석이 피우지만, 가난한 무허가 건물들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의 침수 피해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비가 왔을 때 강남에서 물에 빠진 자동차 대수를 세어 손해보험액까지 추정해 발표하는 것과는 달리 ... 구룡 마을 침수 피해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실은 그 곳은 대한민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곳은 다른 나라다. 그러면 그 나라에는 누가 갈 것인가. 아마 머지 않아 우리 대다수가 그 나라로 가지 않을까.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다 무너지고 비용 절감으로 짤린 노동자 가족이거나 벤처 사업을 하다 망해 재기하지 못한 이라든가 교통사고나 다른 이유로 무너지고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 ... 그리고 그들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과거에 성실했고 전도 유망했으며 자신감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흙 속에 파묻혀 썩어버린 지 오래, 우리들이 보는 것은 오직 불성실하고 매일 술 퍼 마시며 자괴감에 빠진 현재 모습일 뿐이다.

누가 우리에게 담배를 피우게 하고 술을 마시게 하는가. 우리들로 하여금,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게 해놓고 담배와 술로 생긴 병은 우리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시키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이고 이 사회다. 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너무나도 낯설고 신기해서,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었구나'라는 격정적인 심정으로 보게 만드는 나라. 


글을 적다 보니, 너무 씁쓸해진다. 실은 내 잘못이고 우리 잘못이다. 누군가가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은 잘못된 거야, 누군가가 비상식적인 행동을 할 때 그건 옳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어야만 했고 내 스스로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그런 행동을 먼저 보였어야만 했던 것이다.

저 피터팬 사진, ... 다시 보면 볼수록 우리들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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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철길 너머 맞은 산등성이를 바라 보았다. 낮게 내려온 흰 구름은 금방까지 내렸던 굵은 빗줄기를 알려주고 있었다. 창원에 내려갔다 왔다. 주말에 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올라오고 난 뒤, 제사라고 해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토요일 아침에 내려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그러는 동안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나는 멈춰 있고, 주위의 모든 것들은 변하는 것 같다. 에고이스트여서 그런 걸까.

아내는 시댁 분위기에 한결 적응한 모습이었고, 어머니께선 며느리가 마음에 드시는 듯하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고 여동생 내외가 간밤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나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에 동참했다. 그 이야기 사이로 언어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찔아찔하던 감정적 혼란도 한결 줄어들었다.

하지만 감정적인 어떤 것들은 소화되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쌓이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세상은 강요된 평화스러운 침묵과 가까워져 있고 나도 그런 침묵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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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하늘 너머, 마치 어떤 이가 황금빛 바가지 가득 물을 담아 아래로 붓는 듯, 세차게 긴 비가 내렸다. 2011년, 미지의 칠월이다. 끝없이 모래의 대지가 펼쳐진 서남아시아에서 넘어와, 어떤 우여곡절 끝에 검고 딱딱하게 변한 아스팔트는 단단했고 중국 어느 공장에서 만들어져 서울까지 운반된 우산은 튼튼했다.

방송통신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공부란 늘 그렇듯 끊김 없는 시간과 여유로운 집중을 요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장인 내가 이것이라도 하고 있음이리라.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객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 과연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다.)

세차게 비가 내렸다. 남청 색 신발이 빗물에 젖었다. 빗소리에 가려, 차소리, 걸음소리, 숨소리, … … 모든 일상의 소리가 묻혔다.

비 속에서 수지 개블릭의 ‘르네 마그리트’를 꺼냈다. 그리고 필립 글라스의 ‘Forgetting’을 들었다. Forgetting, Forgetting, …


“…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의미를 찾게 된다. … 사람들은 편안해지기 위하여 의지할 만한 것을 원한다. 안전하게 매달릴 만한 것을 원하고 그렇게 하여 공허함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다.”
- 르네 마그리트



비 속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기는 어느 남자.
지하철 7호선 보라매역 근처, 젖은 도로 위, 혹은 얇은 수면 위.

마그리트의 말대로, 우리는 의지하기 위해 의미를 찾는다. 기대기 위해 의미를 구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그 어떤 독립성도 없는 것일까.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의미를 구하지 말고, 의미에게서 멀리 달아나야 하는 것일까.

세차게 비가 내렸다. 2011년, 미지의 칠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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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식물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최초는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했을 것이고 몇 번은 아파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말 없는 식물이 침묵과 쓸쓸함 속에서 잘 자라주었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 것이다.


사무실 책상 한 켠에 화분을 놓아두고 그 옆엔 낡은, 자신의 노년을 겨우 지탱해나가는 캔우드 리시버 앰프를 놓아두었다. 화분은 소란스럽고 건조한 사무실을 잘 견디었고, 오래된 캔우드 리시버 앰프는 몇 명의 주인을 거쳐간 다음, 나에게 왔지만, 가끔 자신의 처지를 슬프하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도 했다.

오늘은 화분을 들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 얇게 내리는 비와 계절과 계절 사이의 바람 속에 놓아 두었다.

비와 바람은 옛날 이야기를 내 귀에 속삭였지만, 모던 사회에선 과거는 잊혀져야할 것들의 리스트에 속했고 내일 떠오르게 될 태양 이야기만으로도 내 일상은 여유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그렇게 하루가, 하루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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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요일이었나, 아니면 월요일이었나... 봄비가 내리는 서울역 맞은편 카페에 잠시 앉아 있었다. 어수선한 거리 분위기와 달리 카페 안은 조용했다. 창 밖 우산의 색이 밝고 화사하게 보여, 불투명한 우리 삶과는 대비되어 보이는 오후였다.

지난 십년 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끊임없이 부족함을 느꼈던 삼십대였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글을 쓰지만, 그건 내 주업이 아니고 그림을 보고 글을 쓰지만, 그것도 이젠 주업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대로 뭔가 가치 있는, 특히 예술계에세 기여할 수 있는 어떤 사업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긴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나, 정작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2. 
요즘 심하게 현기증을 느끼고 있다. 결국 이빈후과를 갔다. 나는 어느 새 몸의 균형, 육체의 수평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일주일이나 이주일 이상의 요양과도 같은 휴식이 요구되었다. 

어느새 토요일이고 어느새 나는 마흔을 향해 있었다. 

커피 한 잔과 작은 노트북. 근사하지 못한 내 일상을 증명하는 기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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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를 본 지도 벌써 20여년이 흘렀다. 로드 무비Road Movie의 대명사였으며, 롱 테이크의 교과서와도 같은 장면들이 나온다. 이 영화의 OST는 컬렉터의 표적이 된 음반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영화 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작 오래된 영화나 뒤져 다시 보는 정도다.

회사에 남아 일을 하는 월요일 밤. 내일 중요한 고객사와의 미팅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 ... 올해 초 한 번 다운된 기분은 쉽게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벌써 몇 달째 이르는 듯 싶다. 이번 주중엔 하루 정도 휴가를 내서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 와야 겠다.

나스타샤 킨스키도 이제 40대인가. 아니면 50대인가. ... ... 젊음이 사라지는 자리에 삶의 안락이 깃들어야 하는데, 그러기가 참 어려운 일인 것같다. 4월 중순, 비가 내리자 유라시아 대륙의 어느 사막 먼지 냄새가 풍겼다. 타클라마칸...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의미였던가... 마치 우리들의 젊음 같은 이름이지 않은가.

('파리, 텍사스'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 중간에 깔리는 음악은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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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안경을 끼고 있던 친구들이 부러웠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 눈이 나빠졌다는 듯이, 그들 대부분은 반장이거나 부반장이었다. 안경과 은밀한 비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뭔가 있어보인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억지로 눈을 나쁘게 만들기로 했다. 내 최초의, 자기 파괴적인 경향의 나쁜 마음이었다. 초등학교 때였다. 하지만 그 시도는 (다행스럽게도)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나 사오년이 지난 후, 나는 결국 안경을 쓰게 되었다. 깨알 같은 글자의 소설책들(세로쓰기로 된 책들까지)과 음란한 영상을 보여주는 심야의 유선 방송 탓이였다.


안경, 내 몸의 연장

늘 몸에 붙어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익숙해져버린 낯선 물체. 내 두 눈이 외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동안엔 언제나 눈 앞에 앉아 외부 세계를 확실하게 보여주게 해주는 존재. 옷은 벗은 상태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안경을 벗은 상태에선 글을 쓸 순 있으나, 책은 겨우겨우 읽을 수 밖에 없는. 꽤나 곤란한 내 일상의 파트너.

내구성이 약한, 마치 감정의 연약함처럼.

따지고 보면, 안경을 집어 던진 적이 있었던가.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슬픔의 아침 샤워 때, 욕실 타일 바닥 위로 사뿐히 떨어진 안경이 깨진 경우는 여러 번.

나는 욕을 했다. 떨어져 깨진 안경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욕실을 걸어나와, 집 곳곳에 물기를 흩뿌리며,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깨진 안경알 조각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내 마음도 함께 버리며, 욕실 바닥과 함께 다시 샤워를 했다. 그렇게 여러 번의 슬픔이 지나갔다.

소설가의 안경.

몇 년 전 쓰다만 소설을 다시 꺼내보지만, 엄두가 나질 않는다. 늘 어떤 이야기, 어떤 인물, 어떤 상처 앞에선 무섭고 두렵다. 문장이 어렵고 단어가 힘들다. 근사한 안경 이미지를 찾다가 발견한 헤르만 헤세의 안경. 나도 저런 동그란 안경을 쓰고 싶은데, 동그란 안경테를 파는 안경점이 의외로 없다는 것.

어둡고 깊은 복도를 가진 도서관에서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던 18살의 봄이 기억난다. 쓸쓸하던 사춘기 끝자락의 봄에, 나는 헤르만 헤세를 읽었다.

- 헤르만 헤세의 안경 -
출처: www.zocalopublicsquar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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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온다. 점심 식사를 하고 비를 맞으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안경에 빗방울들이 묻었다. 옷이 젖었다. 외장 하드디스크에서 몇 장의 사진을 보았다. 적당히 쓸쓸한 여름이다.

남부 독일의 어느 마을 옆

남부 독일의 어느 호텔 창. 밤새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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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바쁘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책 두 권 읽고 리포트를 하나 써야 하고, 모짜르트의 대관미사(KV 317)을 무려 10번은 듣고 가야 한다. 외워오라고 시키지 않은 것만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을 정도니.

내일까진 여름에 있는 아트페어를 위한 몇 개의 원고를 써야 하고, 회사에서 PM을 맡은 다른 프로젝트에 몇 개의 다른 업무가 추가될 듯 하다.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개인적 일엔 무관심해져 버렸다.

그러다가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요즘 내 사는 모습이 딱히 좋아보이지 않아 보인다. 쓸데없는 자기 반성이랄까. 근처에 사는 친구라도 있으면 소주라도 한 잔 하면 딱 좋은 밤이다.

사무실 근처에서 사온, 브랜딩된 원두 커피 향이 좋다. 오디오에 모짜르트의 대관 미사 CD를 올려놓고 멀뚱멀뚱 천정을 바라본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에서 가장 행복한 녀석들은 금붕어 2마리다. 어쨋든 저 녀석들은 내 옆에서 2년이라는 세월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오늘 밤 금붕어 2마리가 부럽기만 하다.



모짜르트, 대관미사 - Agnus D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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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이 글을 보면 그리고 지금까지 올리신 글을 보면 지하련님이 뭐 하시는 분인지 정말 오리무중이네요. 미술 관련 일을 하시는 줄 알았는데, 음악 듣는 숙제가 있고, 프로젝트 관리도 하시고요... ^^

    너무 바쁘신가 봅니다. 그리고 옆에 누군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구요... 어쨋든 음악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너무 많은 일을 하지만, 제법 실속도 없다는.. 하핫. 이젠 실속도 좀 차리려고 했더니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네요. ㅋ~. 일도 그렇고 연애도 그렇고 .. ㅋㅋ


사진 정리를 거의 못하고 있었다. 급한 일 하나를 끝내고 사진 정리를 한다.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다. 지난 기억들이 떠올라, 마음이 흔들, 흔들 거린다.


갤러리 프레드릭 모아상의 입구. 17세에 지어진 건물 1층에 자리잡은 갤러리다.




갤러리 입구에서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의 풍경.



비가 왔다. 차창으로 카메라 렌즈를 고정시키고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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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프로젝트)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어떻게든 해주면 무조건 감사를 받을 수 있는 일,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일, 딱 노력한 만큼만 대가를 받는 일, 노력해도 본전치기이거나 도리어 욕먹을 일 등등.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구분할 능력도, 구분할 생각도 없이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몸은 늘 피곤하고 마음은 항상 가난한 것인가.

어제는 종일 두통에 시달렸고,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비 탓인지, 매우 우울하고 기운 빠지거나 기분만 상하던 날이라, 양재동 갤러리를 잠시 들른 후, 곧장 신촌으로 가 맥주 3병을 마셨다. 급하게 마신 탓인지 취기가 금세 올라, 카페에 들어간 지 한 시간 남짓 흐른 후 일어나 집으로 왔다.

그리고
자정이 되기 전 잠자리에 들었으며, 오전 6시에 잠자리에 일어났다.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마시며, 아주 오래 전 사연을 지닌 쇼팽의 녹턴을 듣고 있다. 그 사이 새벽의 어둠은 사라지고 지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아침이 왔다. 잠시 티브이를 틀어 뉴스를 보았으나, 사건 사고로만 가득한 세상과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부와 정치 뉴스뿐이었다. 내 삶이 다소 건조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약간, 혹은 매우 슬퍼졌다.

북마크가 된 어느 일본 갤러리에 들렸더니, 베를린에서 귄터 워커(Gunther Uecker) 전시를 내년 초까지 하였다. 올해 만났던 작가들 중에서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들었던 작가였다. 그의 캔버스 위에 촘촘히 박힌 못은, (그의 생각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마치 내 가슴을 파고 드는 듯, 아팠다.

 
 
Gunther Uecker
Grosser Wald (Large Forest)
1988/1991
seven parts, wood and nailsheight
110-170 x diameter 80 cm
이미지 출처: http://www.akiraikedagallery.com/berlin.htm 


다행이다. 지치고 아프더라도 사람은 늘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거친 세상의 방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몇 통의 메일을 보내고 운동을 하고 종일 집에 있을 생각이다. 상처입지 않기 위해 무수한 노력과 주의를 기울이지만, 놀랍게도 상처 입는 건 나 혼자 뿐이더라.

요즘 글 한 편 쓰고 있는데, '눈 속에 갇힌 남자 이야기'다. 그런데 이 남자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이 남자 생각만 하면 안타깝고 화 나고 아플 뿐이다. 그래서 내가 픽션을 쓰지 못하는 것이리라.




Yundi Li plays Chopin Nocturne Op. 9 N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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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확실성, 지나가버린 일들에 대한 후회나 상심, 식어버린 열정에 대한 그리움으로 종종 발을 헛딛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다. 소설을 쓰기 위해 몸부터 만들었던 마루야마 겐지처럼.

점심식사 시간에 사무실 근처 피트니스클럽에 나가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남짓 빠듯한 시간이긴 하지만, 집 근처에 있는 곳은 시설이 너무 열악했고 퇴근 후에 가자니, 운동을 끝내고 집에 가면 아홉시, 열 시가 되어버려, 점심 시간을 활용하였다. 상수역 옆에 있는 곳인데, 시설이 나쁘지 않다. 대신 직장인을 위한 할인 프로그램이 없다는 게 아쉬울 뿐~.

비가 온다. (상쾌한 봄비를 기대했지만,) 뿌연 먼지를 머금은 채로 아래로 천.천.히. 떨어지는 비를 보면서, 뿌옇게 변해가는 세상사람들 마음도 함께 깨끗하게 씻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내리는 비를 보며 투덜대는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마냥 쏴아~ 하고 뿌려댔으면 세차할 필요도 없고 좋으련만. 도리어 뿌연 우리 마음에 얼룩만 남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Chick Corea와 Return To Forever가 1972년 ECM을 통해 발표한 앨범 Light as A Feather A면 첫 번째 곡을 올린다. 이런 날, 적절히 상쾌해지기 위한 노력의 상징으로 꽤나 좋을 법한 노래인 듯하다. 그리고 조금은 상쾌해지지 않을까. (이 앨범을 LP로 가지고 있다.)
 
You're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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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비가 내리고 내 머리칼이 비에 젖고 내 옷이, 내 가방이, 내 다리가, 내 손가락이, 내 눈동자가, 내 입술이 젖어들어갈 때, 그 아파트의 불빛은 아직 켜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 사무실의 불빛도 켜지지 않았고 그 다락방의 초도 켜지지 않은 터였다.
 
탁탁거리며 지나가는 자동차들 사이로 지나가면서 연신 두리번거리며 비가 내리지 않는 공간을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피하고 싶은 인생들이 있었는데, 내 인생도 그런 종류들 중의 하나였다.
 
종일 방안에 앉아 요즘 하고 있는 프로젝트 상황 정리하고 책 읽고 친한 선배 개인전을 위한 글 궁리하고 담배는 딱 한 개비만 피고 더위에 지친 화분들을 옥상에 올려놓고 신나는 음악을 조금 틀다가 ... 그렇게 지쳐 쓰러져 오후 늦게 눈을 감았는데, 어느 새 늦은 밤이 되어버렸다.
 
조금은 덜 쓸쓸하고 조금은 덜 외롭고 조금은 덜 지쳤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난 엄살이 너무 심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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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이를 먹고 난 다음 창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은 낮고 소리는 세밀해진다. 비에 거추장스러운 인생이 젖는다. 젖은 인생을 창 틀에다 걸어 말리면서 음악 하나 허공으로 던져 여름 바람의 활으로 연주되는 풍경을 듣고 싶지만, ... 그렇다, 여기는 도시다. 도시에선 멍멍이를 먹고 나 다음, 할 일이라곤 주섬주섬 몇 단어 엮어 몸을 흔들어 뛰어갈 수 밖에 없다. 비에 젖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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