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14

빠스꾸알 두아르떼의 가정, 카밀로 호세 셀라

빠스꾸알 두아르떼의 가정 카밀로 호세 셀라(Camilo Jose Cela) 지음, 김충식 옮김, 예지각, 1989년 초판.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만 유독 되지 않는다는 기분이, 그런 경험이 계속 쌓여져갈 때,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세상에 대한 불만과 증오가 쌓여져갈 때, 그것을 ‘운명’ 탓으로, ‘팔자’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건 얼마나 축복받을 일인가. 이제 ‘운명’대로, ‘팔자’대로 살면 그 뿐이다. 헛된 희망을 꾸지 말고 그저 원래 나는 불행하게 태어났으며 되는 일이란 없으니, 그저 그렇게 살면 그 뿐이다. 그리고 저 멀리서 ‘운명’와 ‘팔자’를 다스리고 있다는 초월적 실체에 대한 경배를 시작하면 된다. 점쟁이 집에 자주 가고 부적 붙이고 굿도 하고 안..

햄릿, 세익스피어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지음), 김재남(옮김), 하서 시청률의 노예가 되고 하나의 광고라도 더 받아야 하는, 처량한 TV 드라마의 시대에, 몇 세기가 지난 영국 작가의 희곡을 읽는 건, 참으로 터무니없어 보인다. 우리의 일상은 셰익스피어를 읽을 만큼, 고상하지도 않고 더구나 여유롭거나 한가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한다면, 그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끝까지 살아남아 이 비극의 전말을 후세에 남기게 될 호레이쇼에 대해 햄릿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햄릿 여보게 호레이쇼, 나는 스스로 영혼 속에 분별력이 생겨서 인간의 선과 악을 가릴 줄 알게 된 때부터 자네를 영혼의 벗으로 꼭 정해놓고 있네. 자네만은 인생의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뿐더러, 운명의 신의 상과 벌을 똑같이 감..

우울한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울'을 창조적인 사람들의 특징으로 보았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꼴리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맞닿아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우울'은 병든 자의 몫이다. 사회적 질병이 되어버린 '우울증'은 약물 치료와 정기적인 정신과 방문을 요구한다. 요 며칠 우울하다. 내부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외부적인 영향도 크다. 도로 한 복판에서 길을 잃어버린 어린 강아지와 그 강아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강아지 바로 앞에서 멈추는 마을버스며, 소형 트럭이며, 자동차들이 낸 키익키익 소리가 내 귀에서 점점 멀어지는 풍경이며, 6호선 공덕역에서 역 안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로 몸을 던지는 젊은 사내며, 다리 하나가 없는 슈나우저가 인사동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며, ... 나를 어둡게 했다. 하나의 이..

완벽에의 충동, 정진홍

, 정진홍(지음), 21세기북스 성공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위기와 고난을 극복하고 끝내 성공하고 만 사람들의, 딱 그 때의 스토리만 모아서 묶은 책이다. 에센스만 모아 책으로 엮어내었으니,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반드시 읽어야 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반드시, 결국에는 성공하고 마리라고 다짐, 다짐, 또 다짐해야만 된다. 하지만 비극적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 편의 비극이다. 도대체 세상이 너무, 무지막지하게, 비합리적으로 거대한 탓에 태어날 때부터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시대에 이 책은 한 편의 허무한 우스운 자작극이자, 코메디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리고 무수한 성공가이드 책들 리스트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