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그림자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3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자의 운명. 그/그녀는 현대에 속하지 않고 고대에 속한다. 그/그녀는 현존하지 않고 오직 그림자로 왔다가 그림자로 사라진다. 침묵 속에 있으면서 수다스럽게 자신의 육체를 숨긴다. 한 곳에 머물러 있으나, 실은 그/그녀는 끊임없이 여행 중이다. 우아한 몸짓으로 시간 속으로. 오래된 시간 속으로. 소설은 이제 스토리도, 플롯도 지니지 못한 채, 소설의 운명, 책의 운명, 독서의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죽음의 문턱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고대에 속하는 것들이 가지는 이 때, 이런 책이 읽힌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실은 이 소설은 거짓말이다. 사라지는 것이다. 먼지가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