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66

일요일 출근

1. 봄날이 간다. 여름이 온다. 비가 온다는 예보 뒤로 자동차들이 한산한 주말의 거리를 달리고 수줍은 소년은 저 먼 발치에서 소녀의 그림자를 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그 사이로 커피향이 올라오고 내 어깨에 매달린 가방의 무게를 잰다. 내 나이를 잰다. 내 남은 하루, 하루들을 세다가 만다. 포기한다. 2.포기해도 별 수 없는 탓에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게 된다. 포기해도 된다면, 포기가 좋다. 내려놓든가, 아니면 그냥 믿는다. 포기를 해도 남겨진 삶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포기는 그저 단어일 뿐, 행동은 아니다. 3. 비가 내리는 날 저녁 황급히 들어간 카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저녁 식사의 수선스러움을 기억한다.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일상. 그런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필소굿 Feels so good

척 맨지오니의 저 LP가 어디 있는가 찾다가 그만 두었다, 술에 취해. 몇 해 전 일이다. 혹시 결혼 전 일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술에 취한 채 이 LP를 찾았는데,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사이 나이가 든 탓에 찾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도 있다'는 서술어이 가지는 느낌은, 젊었을 때는 '가능성'이었으나, 나이가 들면 무너진 터널 앞에 서 있는 기차같다. '수도 있다'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무모하게 시도했다는 의미다. 가령, '그녀와 키스할 수 있었는데', '그녀에게 고백할 수 있었는데', 혹은 '사랑하던 그를 붙잡을 수 있었는데' 따위의 표현들과 밀접한 연관를 갖는다. 결국 생명이란 생명의 지속과 연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그 시작은 작은 만남과 사랑으로 포장..

음악 소비는 이제 스트리밍이 대세

* 기사 출처: 비즈니스인사이더 뉴스레터를 보다, 이제 스트리밍은 음악 소비의 미래가 아니라 그냥 이제 다 스트리밍으로 소비한다(is the new normal)는 분석 기사를 읽었다. 하긴 나도 유튜브로 스트리밍으로 듣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편하게 느낀다. 하드웨어와 통신 인프라의 발전은 자연스럽게 음악 유통의 모습까지 변화시킨다. 유튜브의 새로운 서비스 '유튜브레드'도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유통/소비 형태의 변화는 본질적으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콘텐츠의 질과 성격까지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콘텐츠 창작자들이 주목해야 될 부분은 여기다. 1.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음악 영상의 유통이 늘어날 것이다. (단순히 음원만 스트리밍하는 것보다) 2. 기존 오프라인 유통 시장은 계속 줄어들다가 하이엔..

나의 서양음악순례, 서경식

나의 서양음악순례 서경식(지음), 한승동(옮김), 창비 한국과 일본은 참 멀리 있구나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서경식 교수의 유년시절과 내 유년시절을 비교해 보며, 문화적 토양이 이토록 차이 났을까 싶었다, 일본과 한국이. 내가 살았던 시골, 혹은 지방 소도시의 유년은, 쓸쓸한 오후의 먼지 묻은 햇살과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바다 풍경이 전부였다. 책 속에서 이야기되었던 윤이상 선생의 통영에서의 유년 시절은 내가 겪었던 유년 시절과도 달랐다. 그가 통영에서 살았던 당시(20세기 중반) 보고 들었을 전통 문화라는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서양 신식 문화랄 것도 내 유년시절에는 없었다. 전통 문화와 신식 문화 사이에서 길게 획일화된 공교육과 책을 읽으면 안 되는 자율학습과 텔레비전, 라디오, 팝송이 있었다(..

디어 클래식, 김순배

디어 클래식 Dear Classic 김순배(지음), 책읽는수요일 저자는 피아니스트다. 그런데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그녀처럼 쉽고 재미있게 글 쓰는 재주는 없는 것같다. 책을 펼치자마자 금세 빨려들어가, 책 중반을 읽고 있는 나를 보며, 클래식 음악을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내는 저자가 부러웠다(그녀의 아버지는 김현승 시인이다. 시인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닌지..). 내가 모르는 작곡가들과 그들의 음악, 그리고 내가 알고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이들의 음악에 대해 저자는 부드러운 어조로, 깊이 있는 내용까지 언급하며 독자를 안내한다. (내가 얼마 전에 올린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도 이 책에서 읽은 바를 옮긴 것이다) 1966년 초연된 이 작품은 펜데레츠키 특유의 극단적인 실험기법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모차르트: 차이데; 아리아, Ruhe Sanft - 펠리시티 롯/ 모차르트: 레퀴엠, K626 - 아카데미 합창단/ 라즐로 헬타이 집에 있는 아마데우스 OST LP를 듣지 않은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예전, 2장의 레코드판으로 된 이 앨범을 꺼내 D면 첫 번째로 나오는 이 아리아를 즐겨 들었다. 모차르트는 그냥 천재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르의 질투이 주 테마다. 그 위로 수놓아지는 음악들. 이 영화의 힘은 대단해서, 많은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살리에르가 독살했다거나, 혹은 살리에르의 모차르트에 대한 질투와 증오가 하늘을 찌를듯했다고 믿을 지도 모르겠다. 이 스토리는 애초에 소문으로만 떠돌던(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으나) 독살설을 푸쉬킨의 라는 짧은 극시로 시작해 피터 쉐퍼(영화 아마데우스..

영어공부 추천 앱APP - Public Radio & Podcast

일상 생활에서 영어를 쓸 일이 없다보니, 영어 실력은 늘 제 자리 걸음이다. 방통대 영문과도 휴학 상태이고. 겨우 영문을 읽는 속도만 조금 빨라진 것같다. 이제서야 영어 표현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니. 그 동안 시간 허비를 한 셈이다. 아니면 이 정도의 시간이 걸려야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든가. 요즘 잠시 쉬는 틈을 활용에 하루에 1시간 이상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아졌더라. 외국어는 무조건 많이 들어야 하는데, 예전에는 들을 수 없었다. 고작 AFKN(주한미군방송)이었는데, 이것도 주파수가 잡히는 지역에서나 가능한 일, 나머지는 그저 어학 테잎만 주구장천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엔 들어가면 온통 다 영어다. 커뮤니티에 들어가 영어로 댓글을 달거나 게시물..

이스트반 케르테츠(Istvan Kertesz)의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Ottorino Respighi - The Pines of Rome (Pini di Roma)- The Birds (Gli uccelli)- Fountains of Rome (Fontane di Roma) London Symphony Orchestra Istvan Kertesz 이스트반 케르테츠 박스 세트에서 시디 한 장을 꺼내 듣는다. 어디선가 들어본 선율이라 여겼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다만 무척 극적(dramatic)이다라는 느낌. 부드러우면서도 굵은 선율의 흐름이 지나가며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아마존의 어떤 이는 그 스스로 레스피기의 팬이라면서, 이 앨범이 최고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하긴 나는 레스피기를 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바로 이 음반에 빠져 며칠 째 이 음악만 듣고 있으니까. 데카..

벨앤세바스티안의 사랑

벨앤세바스티안... the boy with the arab strap. ... 그들의 신보 나오는 것도 신경쓰지 못할만큼 늙었다. 둔해졌다. 흘렀다. 조용해졌고 약해졌다. 뜸해졌고 사라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기타소리는, 드럼소리는, 시디 음반 안에서 시간 정지 중이었는데... 나는, 그는, 그녀는, 우리는 한 번 마주쳤던 따스한 눈길을 두 번 다시 마주하지 못했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사랑도 식상해지기 마련인 어느 7월 여름밤... 문득 시디 속에 갇혀있던 사랑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