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66

음악은 사회적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은 사회적이다 -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박홍규.최유준 옮김/이다미디어 음악은 사회적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지음), 박홍규, 최유준(옮김), 이다미디어 클래식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것이 채 몇 년 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니, 내가 알고 있는 이들이라고 해봤자 몇 명 되지 않는 작곡가와 연주가들 뿐이다.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으니, 음악에 대한 내 지식은 보잘 것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귀라는 존재가 흥미로운 것인지, 좋은 연주을 곧잘 인지하는 것이다. 심지어 남들은 잠 오는 음악, 혹은 소음이라고 평가하는 음악(현대 음악)을 곧잘 듣고 심지어 감동까지 받는 지경이니,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를 지경이다. 좋은 말로 하자면, 음악에 대해서..

미켈란젤리와 첼리비다케

짧은 휴식 만으로 내 영혼은 평정을 되찾는다. 오래되고 낡은 스피커에선 쉬지 않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의 손이 그리울 때가 된 책들의 신음 소리가 방 안의 사물들을 스치고 지나간다. 건조하고 두터운 대기를 출렁이게 하는 바람은 쉴 새 없이 창 밖을 울린다. 한 해가 지났다. 한 해가 왔다. 그 사이 내 언어는 지나간 시간만큼 얇아졌고 내 정신의 힘은 늘어난 피부의 주름만큼 허약해졌다. “음악이 없다면, 삶은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니체)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느 새 불편해진 활자나, 직업처럼 변해버린 그림이 아니라, … 공기를 울려서 만들어내는 음악이 아직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예르벤퍼 숲 속 나무들의 낮은 속삭임

예르벤퍼 숲 속 나무들의 낮은 속삭임 - 시벨리우스, 작품 75번 - 다섯 개의 피아노곡 조금의 미동(微動)도 없이 투명한 유리창 너머 우두커니 서, 사각의 방 안을 매섭게 노려보기를 몇 주째, 여름날의 대기는 포기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 같다. 어디에서 저런 열기를 가지고 오는 것인지, 쉴 새 없이 내 육체를, 내 영혼을 끝없이 높은 여름 하늘의 노예로 만들며, 날 곤혹스럽게 하고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 끄트머리에 어색하게 튀어나온 동아시아의, 온대성 기후에서 아열대성 기후로 변해가는 작은 반도 가운데 위치한 거대 도시의 여름을 견디게 하는 것은 대륙의 반대편, 대지의 대부분이 산과 숲, 호수로 이루어진 나라 사람의 100년 전, 작은 피아노 음악들이었다. 빵과 버터를 위한 음악 언제부터였을까. ‘예술가..

하프시코드

틀어놓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온 하시프코드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깊이 잠든 도시의 한 모퉁이를 하나둘 천천히 채워나가기 시작한다. 이런 날 새벽은 때로 공포스럽고 때로 두려우며 때로 슬프다. 잠 자는 것이 두렵다. 논리적으로 따져묻기 시작해보면, 삶이란 것도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삶이 아는 것처럼 흘러가지 못하듯... 내 공포도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곳에서 시작해 내 주위를 가득 메운다. 한 몇 주일 정도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살고 싶다.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고.

1963년, 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

사라 본Sarah Vaughan의 낡은 테잎을 선배가 하는 까페에 주고 난 다음, 난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그녀의 앨범을 샀다. 영화 때문에 나온 '2 for 1' 모 음집. 예전부터 들어왔던 음악이 영화나 광고 때문에 유명해지 면 기분이 나빠지기 일쑤다. 누군가에게 음악을 추천하면 대체 로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똑같은 음악이 영화나 광고에 서 유명해지면 내가 권했다는 사실을 잊고선 그 음반을 사선, 이 음악 좋지 않냐고 내게 말한다. 이건 소설이나 책 따위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하면 잘 듣지도 않다가 교수나 유명한 작 가가 이 책 좋으니 읽어보라고 하면 바로 산다. * * '1963년에 이파네마 아가씨는 이런 식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1982년의 이파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