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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생각의 한계 On Being Certain 

로버트 버튼(지음), 김미선(옮김), 더좋은책 




사고는 항상 더 어둡고, 더 공허하고, 더 단순한 우리 감각의 그림자이다. 

- 니체 



책을 읽으면서 노트를 하고 노트된 것을 한 번 되집은 후 책 리뷰를 쓰면 좋은데, 이 책 <<생각의 한계>>는 완독한 지 몇 달이 지났고 노트를 거의 하지 못했으며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탓에 정리하기 쉽지 않았다. 특히 종교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땐 꽤 흥분하면서 읽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하긴 로버트 버튼도 우리의 기억이 변화하고 조작된다는 사실을 이 책 초반에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명확하다. 우리가 안다라고 할 때, 그것은 감각적인, 일종의 느낌일 뿐이지, 흔히 말하는 바 논리적인 것이거나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느낌feel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편의상 나는 거의 동류에 속하는 확신certainty, 옳음rightness, 신념conviction, 맞음correctness의 느낌들을 한 덩어리로 모아 '안다는 느낌feeling of knowing'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로 했다. (19쪽) 


도대체 우리가 안다고 할 때 아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알아서 어떤 행동을 할까? 논리적 추론이라든가, 분석, 혹은 이성적 행동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일컬어 지는 사고나 행동도 실은 시시각각 변하는 감각적 경험에 의한, 일종의 경향일 뿐임을 알게 된다. 


프로야구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속도는 시속 130에서 160킬로미터에 달한다. 공이 떠나는 순간부터 본루를 지나는 순간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0.380에서 0.460밀리초이다. 공이 떠나는 상이 망막에 도달하는 순간부터 스윙이 시작하는 순간까지 최소 반응 시간은 대략 200밀리초이다. 스윙에는 160에서 190밀리초가 더 걸린다. 반응시간과 스윙시간을 합친 시간은 대략 속구가 마운드를 떠나 본루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과 맞먹는다.(107쪽)


생각할 틈이 없다. 그냥 무턱대로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거다. 일종의 본능적이거나 감각적인 것이다. 


저자 로버트 버튼은 다양한 관점에서, 많은 이들의 견해들을 인용하면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우리가 안다고 할 때의 그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출간된 후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이 책은 우리의 믿음이나 확신, 소위 '이성'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말한다. 


이성은 전통적으로 대개 생각하듯이 몸에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뇌, 몸, 그리고 신체적 경험의 본질에서 일어난다. ... ... 우리로 하여금 지각하고 돌아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것과 똑같은 신경 기제와 인지 기제들이 우리의 개념 체계와 이성의 양식들도 만들어낸다. 이성을 이해하려면, 우리의 시각계, 운동계, 그리고 신경결합에 바탕이 되는 일반적 기제들의 세부사항을 이해해야 한다. 이성은 우주의, 또는 신체에서 분리된 마음의 초월적 특성이 아니다. 그것은 결정적으로 우리 인체의 특색에 의해 우리 뇌가 가진 신경 구조의 놀라운 세부 사항들에 의해, 우리가 세계 속에서 날마다 하는 특정한 움직임에 의해 형성된다. 

몸에서 분리된 사고는 생리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 정신적 감각과 지각에서 자유로운, 순수하게 이성적인 마음도 마찬가지다. 

- 조지 라코프George Lakoff, 마크 존슨Mark Johnson, <<실물로 본 철학: 체화된 마음과 서구 사상에의 도전 Philosophy in the Flesh: The Embodied Mind and its Challenge to Western Thought>> 중에서 


결국 우리는 매사에 조심해야 된다. 신중해야 하며 끝없는 회의주의적 태도를 견지해야 된다. 그러나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을 전혀 알지 못하기에 그것을 고려한 채 조심스러운 회의주의적 삶을 살아야 된다. 


"나쁜 소식은 우리 자신을 알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제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단숨에 결론까지 도달하는 뇌의 영역인 적응 무의식adaptive unconscious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있는 길은 전혀 없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 대부분 의식 밖에서 작동하도록 진화해왔고 ... ... 그러므로 무의식의 정신작용에 직접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대개 우리의 자발적인 행동들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일으키는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 티모시 윌슨Timothy Wilson, <<나는 내가 낯설다 Strangers to Ourselves>> 중에서 


아마 종교나 신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아무리 신앙이나 믿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지에서 공격하더라도 ... 


"공간과 시간이 경계가 없는 닫힌 곡면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또 우주의 문제에서 차지하는 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깊은 관련을 가지게 된다. ... ... 우주에 시작이 있는 한, 우리는 우주의 창조가가 있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우주가 실제로 안전히 자급자족하고 경계나 끝이 없는 것이라면, 우주에는 시초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주는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창조자가 존재할 자리는 어디일까?" - 스티븐 호킹 (282쪽) 



저자 로버트 버튼의 홈페이지: http://www.rburton.com/






생각의 한계 - 10점
로버트 버튼 지음, 김미선 옮김/더좋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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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night, Death and Devil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Albrecht Dürer 알브레히트 뒤러 

1513, Copperplate 동판화

 

 

기사 옆으로 죽음과 악마가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한다. 이 명료한 동판화는 르네상스 시기의 신념을 보여준다고 할까. 인간이 가는 길을 과거의 유물들 - 죽음, 악마 - 이 훼방 놓으며 가지 못하게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종종 후기 고딕적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 만큼은 근대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기사는 도상학적으로 진리를 수호하는 자로 해석된다. 과거 종교인이 가졌던 역할을 이제 기사가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극적인 변화는 르네상스 시기를 문예부흥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시기가 아니라, 급속하게 변화하는 혼돈기였음을 짐작케한다. 결국 고딕적 신앙이 뒤로 물러나고 기하학적 이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본격적으로 서구의 근대(modern)이 시작되고, 그 이후 거친 풍랑 속에서도 이성을 버리지 않는다. 


거의 1세기 후에야 철학에서 근대적 이성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예술에서의 이러한 선취(先取)는 놀랍기만 하다. 이는 예술의 역사를 통해 자주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예술사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대 예술을 유심히 살펴보다 보면, 앞으로 펼쳐질 세계를 짐작하고 예견할 수 있다. 


까뮈의 <이방인>이 나왔을 때, 그 충격은 대단했다. 심지어 프랑스에선 이 소설을 도덕 교과서로 읽히곤 한다. 이유없는 살인은 용서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유없는 살인을 너무 자주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 까뮈도 자신의 '뫼르소'가 그토록 많이, 현실 속에 등장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만. 


양식(style) 상, 뒤러의 모든 작품들이 근대적이진 않다. 그는 양식적으로는 후기 고딕과 하이 르네상스(르네상스 고전주의)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그가 외부 세계와 마주했던 태도는 르네상스 시기 그 어느 예술가들보다도 근대적이고 이성적이었다. 뒤러가 끊임없이 연구되며 후대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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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딱딱하고 무거운 책을 끝까지 읽기도, 힘겹게 다 읽는다고 하더라도, 과연 제대로 읽었는지, 다른 이들은 혹시 다르게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아리송할 때가 많다. 이것이 독서 모임 빡센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첫 책으로 강유원의 책과 세계’(살림)를 선정했다. 책은 얇다. 두 번째 책으로 선정된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16세기 문화혁명’(동아시아)가 무려 90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인데 비해, 첫 번째 책은 두 번째 책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얇고 가볍다고 하여 읽기 만만한 책은 절대 아니다. 도리어 무겁고 두 세 번에 걸쳐 완독해야 할 책에 가깝다.

모인 이들은 책을 즐겨 읽으나, 독서 모임에 경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나 또한 독서 모임에 익숙하지 않았으며, 오고 간 이야기는 두서 없었다. 그리고 두서 없는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긴 주제는 '쓸쓸함'이었다.


책의 시작부터 '쓸쓸한 세계'가 시작된다. 
 

 

쓸쓸한 세계: ‘길가메시 서사시

사람의 삶은 고되다. 고됨은 여가를 용납하지 않는다.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학문이 본래 여가라는 뜻을 가졌듯이, 여가가 없는 이들은 텍스트를 읽을 틈이 없다.
-
6



그리고 왜 쓸쓸해지는가에 대해 짧은 설명이 이어진다.  



참으로 덧없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고통스러운 세상, 쓸쓸한 인생. 유행가 가사 같은 정조는 이렇게 오랜 옛날부터 인류 곁에 있었다.

후대에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는 이렇게 말한다.

길가메시여, 그대가 찾는 것은 결코 찾을 수 없으리라. 신들이 인간을 창조할 때 죽음을 인간의 숙명으로 안겨주고 영생의 삶을 거두었기 때문이오. 그대가 살아있는 시간을 즐겁고 충만하게 보내오. 그대와 손을 잡는 어린아이를 사랑하오. 그대의 아내를 품에 즐겁게 해주오. 기껏해야 이런 것들만이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것이 때문이오.

인간은 이렇게 읊으면서도 끊임없이 신의 자리를 탐냈다. 만족되지 않는 욕구의 좌절. 사랑만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수메르에는 사랑 노래가 드물다. 수천을 헤아리는 수메르 점토판 중에서 사랑을 다룬 시는 딱 두 편뿐이었다.

- 8쪽에서 9쪽까지



쓸쓸한 고대 세계에서 시작되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그 당시의 시대상을 언급하면서 책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먼 옛날의 서사시들은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인식 없이도 세계가 쓸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또다시 같은 것을 알아차리는 건 너무 허망하다. 쓰라린 것이다.

- 91



하지만 행복한 시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행복한 시대의 지식인은 처세와 개인의 안락을 위한 저작을 남긴다. 키케로의 우정론은 웅변, , 서한, 철학을 망라하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라틴어 문학의 백미로 간주되는 글이다. 행복한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저작에는 삶의 긴장보다는 문체의 다채로움을 위한 노고가 깊게 배어 있고, 또 그것으로써 평가받는다.
- 48

 


그런데 행복한 시대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우호적이지는 않는 듯 읽힌다. 

 

로마적 세계가 실용적이라 함은 달리 말해서 합리성의 극단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기서 합리성을 가치가 포함된 것이나, 독일의 관념론자들이 말하는 사변적 합리성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성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ratio’의 본래의 뜻, 계산으로 파악해야 한다. 로마는 이성적이었으므로 계산이 분명한 사회였다.

- 43



독서 모임 내내 현대 지식인의 쓸쓸한 세계 인식, 고대 세계와 현대, 로마 시대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임 중간중간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아래는 두서 없었던 내 의견의 일부다.

1. 인류가 이성을 가지는 순간, 쓸쓸하다는 감정은 운명처럼 깃든다. 이성이란 내가 아닌 나 밖의 외부 세계를 인식을 한다는 것을 뜻하며, 나와 외부 타자를 경계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이 지성을 가지는 순간부터, 인간은 나 밖으로 펼쳐진 자연을 객관화시킬 수 있고 질서를 부여하게 되었으며, 나와 타자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런데 이 지성(문명)의 시작은 '나'를 홀로 있게 한다. 쓸쓸한 자아는 이렇게 시작된다.

결국은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존재(데카르트적 자아의 붕괴)가 되며, 그것으로 인해 외부 세계마저도 붕괴되는 현대로 이르게 된다. 마치 길가메시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듯, 인간의 이성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채 '이성의 붕괴'를 이야기하는 이성으로 전락하게 되는 포스트 모던에 이르게 되는...

2. 로마와 현대
역사적으로 현대와 가장 유사한 시대가 있었다면, 그것은 헬레니즘을 지나쳐가는 후기 로마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세계가 천천히 무너지고 사람들이 가상의 놀이문화에 빠져들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교육 제도가 붕괴되며 모든 일상 생활이 계약 관계로 성립되던 시기가 후기 로마였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깊이 없는(천박한) ratio에 기반해 있다. 현대도 이와 비슷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여러 학자들이 비판하는 도구적 이성의 본격적 시작도 이 로마 시대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영원한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로마적 행복의 귀결이 중세적 세계라면 과연 그것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가?   

로마 시대에 대한 탁월한 해설서는 제롬 카르코피노의 저서다. 보기 드물게 탁월한 역사책이다.

고대 로마의 일상 생활, 제롬 카르코피노 지음(우물이 있는 집)
http://intempus.tistory.com/889


2번째 독서 모임 '빡센'은 8월 첫번째 토요일 오후에 열린다. 혹시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책 '16세기 문화 혁명'을 읽고 참가하면 된다. 두서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이야기할 거리를 가지고 와야할 것이다. (독서 모임에 대한 안내는 본 블로그 공지사항을 확인하거나 검색)



빡센의 첫 번째 책.

책과 세계 - 10점
강유원 지음/살림


빡센의 두 번째 책.

16세기 문화혁명 - 10점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남윤호 옮김/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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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세알 2010.07.19 09:43 신고

    이렇게 정리된 걸 읽으니 또 새롭네요. 근데 '16세기 문화혁명'에 별다섯개네요. 저는 읽으면서 제가 손을 잘 못 든 것이 아닌가 슬~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근대에 대해 확실한 개념을 잡고 싶었고 지금도 그 주변 언저리에 있는 학자들, 현대 자본주의의 아버지인 학자들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 16세기라는 한정된 범위, 전환적 17세기 문앞을 확인해 두자는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너무 병렬적이라 학술서로서는 가치가 있겠으나 일반인들이 읽고 토론하기엔 좀 그렇지 않은가 싶기는해요. 그래도 항상 뚜껑을 열어보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기도 하는 것이 토론의 재미이니까 기대해 봅니다. 책과 세계에서 제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듯이...

    • 저도 읽기 시작했는데, 다들 읽으면서 어려워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인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근대를 이해하는 시기로 16세기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확실히 16세기는 과도기입니다. 12세기가 한 번의 과도기였다면(중세에서 근대로의 계단), 16세기는 중세와의 연결고리가 확실히 끊어지는 시기입니다(15세기가 아니라!). 그리고 17세기는 본격 근대의 시기입니다. 아마 8월 초 모임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같습니다. ^^


 

 

 

질서는 언제나 선행하는 무질서를 가진다. 그리고 그 질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다시 무질서가 도래한다. 우리가 이성(reason)이라고 부른 것의 역사는 고작 몇 백 년도 되지 않으며, 그 이성대로 살았던 적은, 그 이성의 빛이 전 세계에 고루 비쳤던 적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데카르트 시대에 이미 반-데카르트주의자가 있었다. 현대의 반-데카르트주의는 일군의 영국 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길에 편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수선한 마음이 지나자,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어수선해졌다. 어수선한 마음이 지나자, 어수선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든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갈 뿐이지만, 누군가는 교통 정리를 해줘야만 한다. 마치 이성처럼. 칸트가 열광했듯이, 뉴튼이 그런 일을 했다. 그는 놀랍게도 우주의 별들까지 교통 정리했다. 근대적이고 도구적이며 계량적인 이성의 역할이었다. 신을 대체한 이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느 곳에서는 진실이지만, 어느 곳에선 거짓임을 안다.

 

그런데 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세상을 경험할수록, 알아갈수록, 세상은 미로가 되고, 미궁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연애를 시도할수록 내가 연애에는 아무런 재능도 지니지 못했음을 자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는 이성의 그림자가 드리운 시대다. 이성이 비추지 못하는 자신의 그림자. 현대는 현상학적 방법으로 그림자로 둘러쳐진 이성의 주위만 빙빙 돌 뿐이다. 그리고 결국엔 절망만을 구할 뿐이다. 세상에 대해서 안다고 했으나, 1%도 되지 않는 세상의 일부라는 절망. 마치 사랑을 갈구했으나, 정작 사랑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끔찍스러움처럼 말이다.

 

문득 남겨진 내 인생의 궤도가 궁금해졌다. 잠을 자면 좀 행복해지려나.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사탄의 태양 아래에서를 다 읽고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클래식 연주회 티켓을 끊어, 연주회를 보러 갈 생각이다. 그 동안 나는 쫓기는 삶을 살았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아무런 열쇠도 나는 쥐고 있지 않으면서, 마치 열쇠가 있는 것처럼 행동해왔던 것이다.

 

 



역시 오래된 노래가 좋다. 산타나가 다시 한국에 올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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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레토릭 - 8점
미셜 메이에르 지음, 전성기 옮김/고려대학교출판부




지금에서야 ‘열정passion’이라는 단어에 대해 우리는 부정적인 의미보다 긍정적인, 보다 자연스럽게 읽히고 들리게 되었지만, 실은 채 이 백년도 되지 않았다. 마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라는 태도가 17~8세기에서야 비로서 등장했던 것처럼. 하나의 개념, 혹은 개념어에 대한 우리 삶의, 정신의 태도가 변화하고 혹은 새로 생기는 것도 역사의 일부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열정’이라는 것에 대해 현대의 우리가 가지는 느낌도 보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대의 일시적인 산물이며, 먼 미래에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를 일이라는 것. 그러므로 이 책은 ‘열정’에 대한 현대의 일반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로마시대의 키케로는 열정을 정신이 흐트러진 경우들로 이해했으며, 기독교인들에서는 열정을 죄와 악의 현현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열정을 따른다는 것은 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며, 추악한 인간 본성에 자신을 내맡기는, 일종의 타락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열정passion이라는 단어는 patir(괴로움을 겪다)에서 나온 것도.

미셸 메이에르의 이 짧은 책은 열정에 대한 변호로 이루어져 있다. 열정에 대해 중세 사람들, 그리고 종교인들이 가지는 편견에 대항하면서, 열정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것임을, 우리 자신의 존재 근거임을 드러낸다. 그는 ‘열정들은 인간들의 차이를 반영합니다. 열정은 타자에 대한 답, 타자가 나에 대해 갖는 이미지에 대한 답이며, 나에 대한 그 이미에 대해 내가 갖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며, ‘열정들은 하나의 구성된 자유에 답하려는, 즉, 그 자유를 누리려는 여러 가지 방식들을 표상’한다고 적는다. 즉 차이를 드러내며, 타인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적, 정치적 삶에 있어서 열정은 가치 있는 행위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인 셈이다.






[덧붙임]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열정들의 짧은 역사
- 열정들의 심리-열정들에 논리가 있는가?
- 정치에 대한 열정, 정치에서의 열정
- 스펙터클 열정

거창한 의도를 가지고 씌여진 책이라기 보다는 다소 소박한 의도 - 열정에 대한 현대적 변호 - 에 충실한 책이다. 깊이 있는 학문적 성찰이 전개되기 보다는 일반 독자들이 열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편견을 중화시키기 위한 목적이 더 큰 책이며, 따라서 책은 매우 얇고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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