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45

한 달째 아침마다 코피...

나이가 들면 기본적인 저항력이나 재생력이 떨어지나보다. 한 달째 아침마다 세수를 하면서 코피를 흘리고 있다. 뭔가 대단한 병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코피는 금방 멎었다. 코피를 멈추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히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예전에는 다 이랬는데...). 콧등을 눌러 지혈을 해야 한다. 스트레스와 과로 탓이다. 그러나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성과가 거의 없어, 스트레스가 극에 다다랐다. 이럴 때 도시를 벗어나야 된다. 커가는 아들도 이제 캠핑에 따라나서는 모습이 다소 부자연스러웠고, 아내는 진즉 캠핑을 가지 않는다. 아직 초록 빛깔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마 올해부턴 한 두 차례 혼자 다녀와야 할 듯 싶다. 코피를 한 달째 흘리고 있다고 하니, 다들 병원 가라고 한다. 나는 세..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피터 자이한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Disunited Nations 피터 자이한 Peter Zeihan (지음), 홍지수(옮김), 김앤김북스 돌이켜보건대, 젊은 시절 나는 확실히 세상살이를 좀 안일하게 생각했다. 아니면 너무 비관적으로 해석하여 포기의 마음이 한 켠에 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후자에 가까워 보이긴 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 사정이 딱히 달라진 건 아니라서 지금도 가끔 모든 걸 내려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피터 자이한의 책을 읽다보면, 내가 너무 한 쪽 분야의 책들만 읽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나름 서양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있고 철학이나 예술에 대해서도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자이한이 가지는 동시대에 대한 정보는 남다른 데가 있..

근대 조선과 일본, 조경달

근대 조선과 일본 조경달(지음), 최덕수(옮김), 열린책들 은 전설이 되었다. (149쪽) 정조 이후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배우지 못한 듯 싶다. 이후는 세도정치 시기였는데, 이 부분을 이야기해봤자 가슴 아픈 이야기 밖에 나오지 않으니(그야말로 조선 왕조가 가장 무능했던 시기, 어쩌면 임진왜란 시기보다 더 심했을 지도), 그냥 역사 교과서에서도 자세히 다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수십 년 전 버전이니, 지금 역사 교과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가끔 한국도 일본처럼 서구 문물을 빨리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해서도 상황은 동일했을 듯 싶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경우 그것은 유교적 민본주의, 즉 일군만민(一君萬民)의 정치문화였다. (16쪽) 조선의 성과이면서 한계..

영웅

영웅 윤제균 감독, 정성화, 김고은 주연, 2022년 12월 개봉 뮤지컬을 거의 보지 않는다. 실은 좋아하지 않는다. 뮤지컬 음악이 좋다고는 하나, 따라 부르기도 쉽지 않고 일반 가요나 팝만큼 대중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고전 오페라처럼 대단한 음악성을 가진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아서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들과의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엔 요즘 내 문화 생활은 몇 달에 한 번 전시 보러가는 경우가 전부라, 뭐라 말하기 부끄럽기도 하다. 아들과 함께 을 보았다. 악극이라는 사실은 영화 첫 시작에서야 알았다. 배우들의 연기나 노래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다만 영화라는 점이 다소 아쉬웠을 뿐. 뮤지컬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영화를 조금 지루했고 어딘가 다소 과잉된 듯한 느낌..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지음), 강방화(옮김), 소미미디어, 2021 이불에서 팔만 꺼내 시계를 얼굴 가까이 대어 보니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환갑 기념으로 아내 세쓰코와 딸 요코가 센다이에서 사다 준 세이코 손목시계였다. (154쪽) 최근 소설가 유미리의 근작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없었다. 마치 사라진 듯, 한국의 서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헌책으론 구할 수 있지만, 그녀의 존재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에 다소 안타까웠다. 재일한국인 여류 소설가. 아쿠타가와상 수상 때부터 갖은 논란의 중심에 섰던 소설가. 재일한국인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자신의 중간자적 존재를 무기 삼아 싸우던 소설가. 그녀의 소설들은 어느 순간 번역되지 않았고 그녀도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녀, 어..

처음 만난 오키나와, 기시 마사히코

처음 만난 오키나와 기시 마사히코(지음), 심정명(옮김), 한뼘책상 기시 마사히코의 책은 몇 해 전 읽었다. , 사회학 이론서만 읽다가 제대로 사회학을 읽었다는 느낌을 주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골랐는데, 과연 그런 책일까 싶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아마도 류큐 왕국을 1609년에 무력으로 제압했을 때부터 일본인에게는 오키나와에 대한 식민주의적인 감각이 있어왔다. (235쪽) 일본과 오키나와의 관계는 한 마디로 말해 차별적 관계다. 우리는 오키나와를 차별하고 있다. (24쪽) 차별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벽을 쌓고 거리를 둔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쪽 편과 저쪽 편의 구별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여기서..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

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지음), 휴머니스트 에드벌룬이 착륙한 뒤의 긴자(銀座) 하늘에는 신의 사려에 의하여 별도 반짝이련만, 이미 이 '카인의 말예(末裔)'는 별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 이상, , 1936년 1. 결국 예상했던 바대로 흘러가 끝나는 이 책은 전체적으로 볼 땐 자료집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개개인의 인물들이 가진 스토리는 비장하며 고통스럽거나 치욕스러운 것들이다. 어떤 이는 지주집 자제로, 일본 식민지의 귀족의 자제로 일본에 있는 제국대학을 가기도 하였으나, 어떤 이는 가난한 배경을 극복하고 가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제국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반일 운동으로 옥사하기도 하였으나, 이떤 이는 총독부 관료로, 해방 후 정부 관료나 판검사로 그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도 하였다..

Grasshopper and Iris, Katsushika Hokusai 호쿠사이

Grasshopper and IrisKatsushika Hokusai (Japanese, Tokyo (Edo) 1760 - 1849 Tokyo (Edo))Edo period (1615 - 1868)late 1820sWoodblock print; ink and color on paperDimensions:Overall: 9 3/4 x 14 3/16in. (24.8 x 36 cm) 출처: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37192 한참을 찾는다. 메뚜기를. 붓꽃 사이에 숨어있다. 방금 전까지 산들바람이 불다가 잠시 멈추었다. 에도시대. 현대 일본을 만든 배경이 된 시대. 청나라와 조선이 변화하는 세계를 무시하고 과거에 기대고 있을 때, 에도 시대의 일본은..

혼돈의 기원, 로버트 브레너

혼돈의 기원 - 세계 경제 위기의 역사 1950 - 1998 (Turbulence in the World Economy) 로버트 브레너Robert Brenner(지음), 전용복, 백승은(옮김), 이후, 2001 갑자기 바빠진 탓에 책을 거의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읽어야지 하면서 책을 읽는다(최근 감이 떨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불성실한 책읽기와도 관련 있는 것 같고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하고 너무 빨리 변한다. 제대로 된 시각으로 똑바로 살아가야 되는데.). 오래된 경제학 서적이라 약간 듬성듬성 읽은 감이 없진 않으나, 책을 읽는 동안, 예전에 장하성 교수와 경실련이 주도했던 소액주주운동을 떠올리며 씁쓸해지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천천히 진행된 경제 위기를..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서경식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서경식(지음), 한승동(옮김), 나무연필, 2017년 '일장기'라고 불리는 히노마루와 천황을 찬미하는 의례곡인 기미가요는 원래 일본의 공식국기와 국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학교를 비롯한 여러 기관의 각종 공식 행사에 쓰였고 1999년 8월 9일 이들이 일본의 국기와 국가로 법제화된다. (14쪽, 각주에서 인용) 일본의 우경화를 먼 나라 이야기라 여겼던 걸까, 아니면 꽤 많은 일본 소설들과 지식인들의 책들을 읽었다고, 그리고 영화나 최근의 일본 여행으로 정치외교 분야의 갈등을 우리가 겪는 일상과는 다른 층위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키하바라 역 앞에서 연설하던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를 에워싸고 일장기를 휘날리며 환호하던 '시민'들이 반중, 협한, 재일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