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29

봄 하늘 아래 워크샵

일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일까? 지난 주 주간 업무를 리뷰하면서, 팀 업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반성을 하였다. 즉 일이 많다는 건 좋지 않다. 그만큼 빨리 지치기 마련이고 할 수 있다는 의욕이나 열정과, 실제 할 수 있는 일 사이의 거리는 상당하기 때문이다.그리고 회사 워크샵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내 낡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 회사는 그 사이 직원 수가 늘어 이제 관광버스를 타고 움직일 수준이 되었다. 회사의 이런 성장 앞에서 내 모습은 그대로이니,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봄 하늘은 너무 좋았다. 그 하늘을 느낄 만한 여유가 없었지만. 이번에 간 곳은 문경 자연휴양림이었다. 꽤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사진 찍기가 겁난다. 이제 내 나이도 제법 되었으니, 저 귀에 낀 이어폰..

화요일을 견디기

명동의 어느 까페 2층에서 바라보는 외부 세계 속 남자들은 한결같이 봄과 어울리지 않는 딱딱하고 어둡고 건조한 색상의 자켓을 입고 있었고, 드물게 지나는 여자들은 지나온 과거처럼, 그렇게 다가올 내일도 힘들고 희망없을 지도 모른다는 어떤 두려움에 윗니로 아래 입술을 살짝 깨물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 날, 나는 하루 종일 회의를 했고 하루 종일 뭔가에 대해 떠들었다. 그 언어들은 낯설었지만, 아직 나는 낯선 세상을 즐기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직. 아직. 아직.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를 읽고 있는데,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준까진 아닌 듯하다. 이런 식으로 쓰는 뛰어난 소설가들은 그녀 말고도 여럿 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건축 - 상권, 나카무라 요시후미

내 마음의 건축 - 상 -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다빈치 정통 현대건축의 금욕적인 표현에 건축가들이 이제 더는 주눅들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순수한 것'보다는 이것저것 뒤섞인 혼성품이, '정확하고 깔끔한' 것보다는 적절히 타협한 것이, '쉽고 단순한' 것보다는 한 번 비튼 것이, '분명하게 표현된' 것보다는 애매한 것이, (... ...)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보다는 관습적인 평범한 것이, 배제하는 것보다는 수용하는 것이, 혁신적이면서도 남겨진 흔적을 지닌 것이, 직접적이고 명쾌한 것보다는 모순에 가득 차 있으며 불분명한 것이 좋다. 나는 명확한 통일감보다는 너저분해도 생동감 있는 것을 중시한다. 나는 불합리성을 인정하고 이중성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나는 의미가 명료한 것보다는 의미..

일상의 여행

 명동 하늘 위에서 오전 내내 고객사에서 회의를 했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집에서 걸어나와 버스를 타고 명동으로 ... 가는 내내, 산타나를 다운로드하여 들었다. 좋았다. 추억의 밴드가 되어버린 산타나였다. 맥주와 데킬라 생각이 자연스럽게 버스를 물들였다. 행인들의 얼굴로 레몬이 흘러갔다. 레몬이 담긴 코로나 병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산타나를 들었다. 회의를 끝내고 사무실로 오는 동안, IT Governance, IT Outsourcing, Service Strategy, SNS Marketing, Social Commerce 등 갖가지 단어들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활짝 개인 봄 하늘이다. 오늘, 암스테르담 스키풀 공항은 어떤 모습일까. 며칠 전 예전에 찍었던 사진..

Coldplay의 Trouble을 들으며

해야 할 일도 많고 정리해야 할 것도 많고 인터넷 강의도 들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 ... 그리고 술도 마셔야 하고 ... ... 사무실에서 회의가 끝나고 난 다음 Competitive Strategy와 Strategic Innovation에 대해 팀원들에게 설명하면서 매우 우울해져 버렸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 전략 실행과 조직 관리, 또는 리더십... 무수한 고민들이 장기판 위로 떨어져 내리는데, 그 어느 것 하나 뾰족하게 나에게 해답을 주지 못한다. 돌아돌아 다시 제 자리로 온 느낌이랄까. 그나마 조금 성장한 것같으니, 그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아본다. 요즘은 밤 10시만 되면 졸린다. 그리고 잠을 청한다. 내일은 좋은 일이, 다음 달에는 좋은 일이, 내년에는 좋..

삶의 비즈니스

2012년이 시작되었고 하루하루 지났다. 세상은 각자의 관점 속에서 완성될 것이고 라이프니츠가 말했듯 그것은 모나드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모나드는 동일하지 않아서 어떤 이들의 모나드는 덩치가 있거나 어떤 이의 모나드는 금이 가 있거나 하는 식일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이를 '모나드'monad로 명명하면 안 되겠지. 흄의 문제(귀납법적 문제) 앞에서 경험되는 정보를 무한대로 쌓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론(진리, 혹은 이데아)의 근사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1000일 동안의 우호적인 세상 속에서 우리는 결코 1001일 째 되는 날의 비우호적인 세상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IMF 이전과 IMF 이후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이 비극적인 블랙 스완 앞에서 무수한 ..

벨라 바르톡의 일요일 아침

지난 일요일 오전에 적다가 ... 이런저런 일상들로 인해 이제서야 정리해 올리는 글. 어제(토요일) 읽다가 펼쳐놓은 책, 정확하게 378페이지를 가리키고 있다. 그 페이지의 한 구절은 이렇다. '여러 의사결정에 집단의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실패의 원인을 규정하는 것에도 집단적인 거리낌이 있다. 조직들은 지난 일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회피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제프리 페퍼Jeffrery Pfeffer의 1992년도 저서, Managing with Power: Politics and Influence in Organizations를 번역한 이 책의 제목은 '권력의 경영', 내가 이번 주 내내 들고 있는 책이다. 어제 내려 놓은 이디오피아 모카하라 드립커피는 식은 채 책상 한 모서리에 위치..

멀리 돌아온 커피 한 잔과 함께

보이지 않았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밖으로 나가자, 먼저 만난 이는 도시를 흐르는 대기의 흐름이었다. 가을 아침 바람. 강남구청역 1번 출구. 내가 아침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오는 곳. 이리저리 흔들리는 공기 틈새로 비가 내렸다. 하지만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굳어버린 중년의 감각 세포들. 거리는 어수선한 지난 밤 속을 헤매는 듯 보였고, 상기된 표정의 행인들은 가져온 우산을 힘없게 펼쳤다. 그 때 마침 문을 연 커피숍에선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았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참 멀리 걸었다. 걸으면서 낡은 영화, 로스트 하이웨이, 데이비드 린치, 스매싱 펌킨스의 EYE를 떠올렸다. 기억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으로 향해 달려가고 ... 내 몸도 따라 휘말려 들었다. 여기는 어디지? 어디까..

휴식, 또는 디폴트 네트워크

특히 '디폴트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는 무척 흥미롭습니다. 미국의 두뇌 연구가 마커스 라이클은 실험 참가자 문제 풀이에 집중하자 뇌의 특정 영역의 활동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문제 풀기를 멈추자 이 영역의 활동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멍'한 상태에 있거나 잡념에 빠졌을 때 극도로 활발해지는 뇌의 영역은 디폴트 네트워크로 명명됐습니다. 이란 책의 저자는 울리히 슈나벨은 신경세포인 뉴런들을 새롭게 정비하고 기억을 분류하며 배운 것을 처리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디폴트 네트워크가 활성화한다고 분석했습니다. 특정 과업에서 벗어나 별 생각 없이 있는 게 우리의 정신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외부의 자극이 없어도 내면의 지식, 오래 전에 갖고 있던 지식, 잠시 스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