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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화를 보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글쎄. 그냥 보지 않을 뿐이다. 아직까지 장 뤽 고다르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사랑하며, 영화라는 이름을 우정을 믿고 싶어하지만, 이 거친 자본주의 앞에서 우정은 늘 그렇듯 믿을 수 없는 이정표와도 같다. 1년 동안 수 백 편의 영화를 기억했고 틈나는 대로 영화를 보던 시절이 있기도 했다. 유명하다는 영화를 어떻게든 챙겨서 보았고 습작 삼아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으며 영화 평을 기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땐 영화에 대한 신기루만 보았을 뿐, 진짜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
며칠 전 정성일의 영화 평론집이 나왔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책이었던가! 서점에서 바로 구입했다. 편집자의 기준에 의해 선정된 글들로 한 권의 책이 되었지만, 내가 좋아했던 그의 글 몇 편은 실리지 않았다.
한때 영화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영역이었다. 컬트 영화를 찾아보고 너도 나도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를 배웠듯이 나도 비디오 가게에서 반 년 가까이 일을 했고 비디오 데크를 두 개를 붙여놓고 구하기 힘든 영화를 카피하느라 한 계절을 보내기도 했다. 문학을 하던 친구들마저도 영화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소설과 영화가 어떻게 다른가를 탐구하느라 바보같은 문학평론가들이 얼마 되지 않던 지면을 낭비하던 시절이었다. 자신의 형편없는 문학성을 변호하기 위해 뻔뻔하게도 '소설은 영화와 경쟁한다'라고 떠들던 소설가들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짜 문학평론가나 소설가는 한국에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결국은 영화도 예술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만드는 구조물이 아니었고 협업의 과정과 부단한 협상과 금전적 거래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러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배우는 웃고 우는 기계가 되어갔으며, 감독은 영화 제작자 앞에서 목소리가 줄어 들어갔다. 가끔 보기 드물게 큰 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기도 했지만, 그건 소수의 몫이었고 대중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국의 소설은 그 위대한 산문의 전통 속에서 형편없는 대중문화와 경쟁하느라 자신의 위대함을 잊고 말았다)
결국 어느 세계에나 있는 구분이 영화를 뒤덮었고, 영화를 그렇게 사라졌다. 젊은 날의 묘비처럼 정성일의 낡은 책이 세상에 나왔고 미래에는 없고 과거에 있었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오랜만에 정성일의 오래된 글을 찾아 읽는다.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Highway Revisited
http://php.chol.com/~dorati/web/roadshow/road9209.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