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삶에 대한 그리스적 태도 - 인간과 고전주의

지하련 2011. 10. 23. 21:47





오래된 문고판 책을 꺼내 읽는다. 한창 공부를 할 때다. 1990년대 후반, 이 책은 지방의 작은 서점에서 - 지금은 없어졌을 - 구했다. 짧지만, 내용은 탄탄하고 전문적이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에 대해 짧지만, 매우 정확한 언급이 담겨있다.

'오뒷세이아'는 같은 10년이란 긴 세월동안의 표류와 귀국을 41일 속에 압축한다. 사건은 극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진행된다. 호메로스의 말은 유창하면서 단순하고 기교적이면서도 그 기교를 느끼게 하지 않고, 자유로이, 미끄러히, 장대히 흘러간다. 장려한, 인간을 초월한 광휘 속에 절절한 애조를 띠며 말해진다. 어떠한 용사라 할지라도 인간의 아들로서 태어난 자의 힘의 한계와 세상의 덧없음을 알고 있다. 이것이 다만 강하기만 한 영웅을 만들지 않고 강함과 애처로움이 상접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결코 체념이나 미신의 세계가 아니다. 지극히 밝은 것이다. 이윽고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한 인간은 신들의 행운을 얻지 못할지라도 절망에는 빠지지 않는다. 아니, 반대로 그러하기에 노력을 쌓아 영원불멸의 이름을 얻으려 한다. 이것이 그리이스 문학, 아니 그리이스인 전체의 하나의 특징이다. 그들은 인간의 아들인 것의 한계를 뼛 속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중요한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 중에 인간만큼 덧없는 것은 없다. 그리이스 문학에서 되풀이 강조되는 이러한 생각과, 이것을 어떻게 해서든 밀쳐 버리려는 분투와 노력, 거기에 그리이스 인간성의 하나의 유래가 있다.
- 코우즈 하게시루 & 사이토 닌즈이 지음, '그리이스 로마의 고전문학', 이재호 옮김, 43쪽, 탐구당, 1982년



그리스의 고전 문학이 아직도 호소력이 있고 가슴 절절한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가질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질문-우리는 누구이고, 왜 살아가는가?-에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세의 작가들은 여기에서 배워, 인간이기에 자신의 영혼과 생의 고결함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적 비극 상황 속에서 살아내는 어떤 생명력 - 베르그송이 찬탄했던 엘랑 비탈과 같은 - 을 그려내게 된 것이다.

위대한 고전주의는 그리스 문학에서 그려졌던 바의, 그런 인간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조형적 대응물은 '슬픔에 잠긴 아테나(Mourning Athena)'가 될 것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등장했던 아테나. 이 여신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 도시의 운명에 대한 아테나의 숙고를 만나게 된다.




'슬픔에 잠긴 아테나'는 파르테논의 조각에 비하면 거의 소품에 지나지 않으나 완전한 의기소침 상태를 완벽하게 통어된 형식으로써 표현하고 있는 점이라든가, 일체의 무리하고 경련적이고 무절제한 느낌을 말끔히 극복하고 있다는 점, 그 자유롭고 경쾌하면서도 침착하고 의젓한 점 등에서 그리스 고전주의의 예술 이외에서는 이에 비견할 작품이 없을 정도이다. - 아놀드 하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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