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구스타프 김의 슬픈 바다

지하련 2000. 1. 6. 21:36
<구스타프 김의 슬픈 바다> - 문화일보 2000년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읽고 난 다음 커피를 끓이고 있는 동안, 그 짧은 동안 이 소설에 대한 나의 평가는 달라졌다. 아니 그것보다는 막상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이나마 짧게 기록해두기 위해 자리에 앉는 순간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읽고 난 다음에는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생각했으나 지금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은 무엇보다도 재미있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대중소설들의 '표피적 재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표피적 재미로 따지자면 엄청난 자본력으로 만들어지는 할리우드 영화가 가장 재미있을 것이며 매일 저녁마다 집집의 티브이 브라운관을 채우는 오락 프로그램들도 표피적 재미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것이다. 그래서 소설이 이런 뉴의 문화들과 대결하고자 하는 순간 소설의 자신의 자리를 잃고 그간 지켜왔던 문학의 자리를 상실할 것이다. 가끔 소설가들이나 문학평론가들이 모여 대담을 하는 자리에서 ‘대중들에게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는 문학이 나와야 된다’라는 등의 말이 오고 가지만, 정말로 그렇게 해야만 될까? 언제나 대중들이 옳은 것일까? 나는 문학의 엘리트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약간만 정직하게 우리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살펴본다면 그런 류의 말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사건의 결과부터 먼저 제시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또한 망명한 북의 외교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독자의 눈을 쉽게 잡아끈다. 왜냐면 이것은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사건의 추리는 등장하지 않고 약간 지루해 보이는 작중 화자의 회상이 주를 이룬다. 또한 이 소설의 낭만주의는 서툴고 사소해 보이기까지 않다. 그러나 신춘문예란 말 그대로 신인들의 무대이고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이 소설가가 얼마만큼 가능성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장이라는 이유로 이 소설은 그 만큼의 가능성은 가지고 있다라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낯선 소재를 끌고 나가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서툰 낭만주의이지만 인물들의 심리를 정직하게 드러내었고 자칫 무거운 분위기로 나갈 수 있는 사건의 무게를 잘 조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