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우울氏의 一日

지하련 2006. 4. 1. 18:25
비가 온다고 하더니, 하늘은 흐리기만 할 뿐 기척이 없다. 하루 사무실에서 엎드려 잠을 잤더니 몸 여기저기가 쑤시는 듯 하다. 세수를 하고 진한 커피 한 잔을 해 마신다. 그리고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3곡을 무한 반복시켜 놓고 4월 1일 토요일의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젠 술이 고파,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예전에 많던 그 친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며칠 전 교보문고에 가서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를 샀다. 그리고 오늘 책들이 쌓여있는 구석에서 함민복의 '우울氏의 一日'을 꺼낸다. 1990년 10월 초판, 1991년 1월 2쇄. 이 때만 해도 시집이 잘 나갔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얇게 웃는다.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 확 펼쳐
사랑 한번 못 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 수 있나
어쩌면 틀렸을 지도 모를 질문의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 한번 확 펼쳐보지 못한 날들이
우산처럼 가슴 한번 확 펼쳐보는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발목으로
비가 싫어 우산을 쓴 것이 아닌 사람들 사이를
걷고 또 걸으며 우산 속으로도 비 소리는 내린다.

  - 함민복, '우산 속으로도 비소리는 내린다', 3연과 4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