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이가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가 없냐고 물었다. 그대
는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말했다. 난 좋아하는 작가가 있
지만, 그들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 있다고 보
기 힘들다 말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고민에 잠겼다. 과연
나에게 그런 작가는 없었나 하고 말이다.
볼프강 보르헤르트.
그는 침울하고 지친 표정으로 앙상한 손을 내밀었다. 그
는 나에게 한 마디 인사도 하지 않고, 창백한 눈빛으로 "이
번 겨울엔 쓸쓸하게 술을 마시지 말게나"하고 말했다. 이미
죽은 자의 손을 마주 잡고 난 한참을 서있었다. "그래야 겠
지. 하지만 여자들은 날 좋아하지 않는다네. 그러니 어쩌겠
나." 보르헤르트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정 술을 마시고 싶
으면 날 부르게. 아마 별빛들 사이에서 내가 술잔을 내밀고
있을 것이네." 그리곤 그는 조용히 누렇게 변해가는 책 속으
로 걸어들어갔다.
그는 한동안 내가 가지 않던 그 곳에 앉아 있었다. 병들
고 지치고 서른이 되기도 전에 죽은 사내. 유일하게 내가 좋
아하는 작가. 그를 잊고 있었다니!
볼프강 보르헤르트. 1921년 5월 12일 함부르크 출생.
1947년 11월 20일 바젤 사망.
(* 민음사에서 나온 『이별없는 세대』가 낫다. 최근 보
르헤르트전집이 나왔으나, 민음사의 번역문장이 낫다. )
* *
돈을 벌 것이냐,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꿈꿀 것인
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과 돈
이 무관할 때 상황은 달라진다. 난 단지 하고 싶은 일을 택
했을 뿐이다. 돈이 중심이 되는 세상에서 난 돈을 중심에 놓
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
다. 그걸 벗어나는 방법은 외딴섬이나 두메산골에 올라가 혼
자 농사지으며 사는 것뿐이리라. 글이 늘어질려 한다.
한 달에 이십만원씩만 준다면, 죽을 때까지 책 읽으며 소
설을 쓰겠다는 소설가 형이 생각난다. 누군가는 하루에 식사
로 이십만원씩 꼬박꼬박 사용할 것이다. 세상은 말이 되는
곳이 아니라 말이 안 되는 곳이다. 말이 안 되는 곳에서 살
기 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
리라.
* *
9월의 첫번째 주, 엉망으로 보내고 말았다. 정신은 갑자
기 피곤해졌고, 육체는 갑자기 축 늘어졌다. 하늘은 높았지
만, 햇살은 8월의 그것과 똑같았고, 가을바람은 그 햇살과
싸워 패배하고 있다. 패배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난 죽을 때
까지 패배할 각오를 다지고 있는 셈이다. 왜냐면, 말 안되는
세상에서 말 되게 사는 것은 바로 패배를 자초하는 일임으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