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달의 그리움

지하련 2003. 4. 5. 16:49




오늘 햇살이 좋았다. 근처 공원엔 들뜬 사람들로 가득했다. 피곤한 인생에 여기저기 주름이 잡히고 때가 묻은 양복을 세탁소에 맡기고 오면서 잠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파랬다. 내가 아주 오래전 태어났을 때에도 저 빛깔이었을 게다.

내 방에 앉아 그리그(Edvard Grieg)의 페르귄트(Peer Gynt)를 들었고 무소르그스키(Mussorgsky)의 가곡을 들었다. The Nursery, Sunless, Songs and Dances of Death를.

보들레르의 <<벌거벗은 내 마음>>을 읽었다. 이 글을 읽을 사람을 위해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언제나 두 가지 갈망이 있는데, 하나는 신을 향한 것, 다른 하나는 악마를 향한 것이다. 신 또는 정신적인 것에의 기원은 상승하려는 욕망이요, 악마 또는 동물성에의 기원은 하강하는 쾌감이다. 여인들에 대한 사랑과 개, 고양이 등 동물들과의 은밀한 대화가 관련된 것은 바로 이 후자이다.
이런 두 종류의 사랑에서 파생하는 기쁨들은 그것들 각자의 성격에 꼭 들어맞는다.'

저녁엔 영등포역 롯데백화점에서 흰색 셔츠를 샀다. 마음에 들었다. 바람이 차가웠다. 아마 지금쯤 태양이 비치지 않는 달의 지면은 영하 몇 백도일 것이다. 태양이 비치지 않는 달 뒤편에 서서 노래를 부르면 참 좋을 것이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오히려 눈에 띌까 다시 걸어도 되오면 그 자리에 서졌다고. 그렇게 영하 몇 백도의 땅에 서서 얼어가며 그리움의 노래를 부르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