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고목탄, 나카가미 겐지

지하련 2008. 11. 17. 21:32

고목탄 - 10점
나카가미 겐지 지음, 허호 옮김/문학동네


고목탄(枯木灘)
나카가미 겐지(지음), 허호(옮김), 문학동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이복동생 히데오를 돌로 내리쳐 죽이고 감옥에서 살다가 나온 아키유키가 어떻게 되었는지 나카가미 겐지는 알고 있을까? 하긴 알든 모르든 내 삶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런 류의 소설은 좋지 않다. 누군가의 비밀스럽고 슬프고 고통스런 삶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이런 소설은, 일본의 신화에서 기인한 스토리라는 평자의 의견을 무색하게 만들며, 결국 뒤죽박죽인 가계도에서 벌어지기 마련인 갑작스런 파국을 소설의 말미에 배치함으로써 희망이란 피묻은 현실을 극복해야 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강요하듯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에 나온 모든 사람들이 싫다. 그들은 엉망인 가계(家系)도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간다. 서로의 비밀을 숨겨주며, 내일을 향해 살아간다. 종종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러는 사이 몇 명이 죽기도 하지만, 내일 해는 떠오를 것이며, 그들은 그 해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우리가 개척해 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주어진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세상 속의 인생은 심술궂은 파멸의 여신이 되어 종종 우리 앞을 가로막기도 하고 우리의 걸음을 방해하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의 소문이 되기도 하고 진실한 사랑의 훼방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여신은 우리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피해자가 된 채 서 있을 뿐이다. 언제부터 피해자가 되었는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내일의 해를 기다릴 뿐이다.

나카가미 겐지가 강요하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연의 일부로 그냥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 소설이 잔인하면서도 슬픈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결국은 모든 이가 공범인 세상임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