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11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 헬레나 로젠블랫

자유주의의 잃어버린 역사헬레나 로젠블랫(지음), 김승진(옮김), 니케북스   1.독서모임 '빡센'에서 선정해 읽은 책이다.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들 중 하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들과 관련없는 책이 선정되고 강제적으로 읽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독서모임에서 읽은 하이에크의 >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유감스럽게도 '자유주의'였다. 자유주의를 영어로 옮기면 리버럴리즘(liberalism)이며, 미국에서 리버럴은 진보 성향을 의미하는데, 하이에크가 '리버럴'인가 하는 의문을 이어졌다. 그런데 한국에선 '자유주의'라고 하면 보수 우파를 연상시킨다. 가령 '자유총연맹'같은 조직을 떠올리게 한다고 할까. 도대체 '자유주의'란 무엇일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이 책이 선정되었고 이번에 읽었다. (메이너드 케인스에겐..

전쟁일기, 올가 그레벤니크

전쟁일기올가 그레벤니크(지음, 글/그림), 정소은(옮김), 이야기장수   전쟁의 끔찍함을 말해서 뭐할까. 얼마 전 봤던 짧은 동영상이 떠오른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했었던 시절,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를 가정한 시나리오를 브리핑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다 듣고 난 노 대통령은 자신의 임무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  https://youtube.com/shorts/LQq5RkL1egc?si=zIB81u1yWoy8QKxX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반, 나는 우크라이나 정치 상황을 한 번 훑어본 적이 있었다. 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2014년부터 간헐적으로 반복되어져 왔고, 그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우호적인 관..

리처드 세라

도심 광장에 있던 것만 보다가 넓은 풀밭 위에 놓인 세라의 작품을 보니, 색다르다. 예술작품은 주변 풍경을 변화시키고 낯설게 하여 다시 한 번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종종 무언가 뚫어지게 바라보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의 본질을 깨우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을 벗어나, 그것의 밖에서, 혹은 그것을 벗어나 바라볼 수 있었을 때, 그것을 알게 된다. 마치 헤어진 다음에서야 알게 되는 어떤 사랑처럼.    ... 하지만 누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질까. 지금 이 사랑스럽고 정적인 풍경을, 오늘의 저 별빛이 내일도 뜰 것임을, 지금 곁의 사랑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 존재할 것임을, 그래서 최선을 다해 현재에 집중할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무너져내릴 것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만약 우리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건 절망에 빠져 있기 때문이죠. 만약 우리 스스로 중요한 모순을 잊어버린다면, 또 끊임없이 이 모순 속에서 살지 않는다면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어요. 한낱 이야기꾼은 될 수 있을 겁니다. 모순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어요. 안이함에서 오는 역겨움만 있을 뿐이지요." - 마르그리트 뒤라스 (* 알랭 비르통들레의 > 중에서)

마을 이장과 싸운 주민 C씨

얼마 전 마을 이장과 주민 C씨가 싸웠다. 주민C씨는 마을 이장과 몇 차례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그냥 마을을 나가버렸다. 그 때도 바로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몰랐고 관심도 없었으며, 말 많은 사람들이 주민 C씨를 대놓고 비난하였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 대다수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을 이장과 싸웠다고 집을 버리고 마을을 나가나.."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실은 마을 주민들은 주민 C씨가 마을을 나갈 만큼 사안이 중대하다는 걸 알지 못했고 마을의 분위기를 만드는 수다스러운 사람들로 인해 그냥 그렬리니 하고 넘겨 버렸다.  그런데 가을이 오고 여기저기 농작물이나 과일을 수확할 철이 되자,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민 C씨는 마을의 여러 농기..

얀 가바렉Jan Garbarek, 오피시움Officium

클래식음악인지, 재즈음악인지 알 턱 없다. 하지만 들으면 와! 하고 놀라고 마는 음반이다.  서재 구석에 있던 시디들 속에서 어둠과 먼지를 먹고 있던 얀 가바렉과 힐리어드앙상블의 '오피시움'. 쓸쓸하던 마음을 위로해 주는구나. 9월 어느 일요일 오후의 바람이 창 틈에 머무는 순간, 놀이터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나쁘지 않은 대기 속으로 오래된 음악이 흐른다.  '중세의 가을'일까. 무너져가는 지구의 기후 속에서 몰락의 징후를 알아차린 몇 명만이 경고를 하고 있는 대도시의 어느 일요일 오후의 한가로움이란.. (* 오피시움에 실린 음악들은 모두 중세의 음악들이다. 중세음악을 바탕으로 편곡했다.)

피노 돈셀 PINO DONCEL 12 Meses

피노 돈셀 Pino Doncell 12 Meses후미야 Jumilla, 스페인    스페인 후미야 지역 레드와인이다. 무척 평판이 좋다. 그러나 나에겐 좀 평범했다고 할까. 대단한 느낌은 아니었다. 상쾌한 느낌의 와인이었다. 충분한 디켄팅으로 풍미는 더 오를 것으로 보이지만, 나에겐 그냥 부드러운 산미가 적절하게 있는 와인인 정도였다. Vivino의 높은 4점대 평가는 좀 과장되지 않았나 싶다.   예전엔 Vivino 사용자가 없었는데, 요즘엔 다 Vivino을 사용하는 듯하다. 초반에는 사진 올리면, 다음 날 등록되기도 하고 와인 정보가 없어서 올린 사진을 직접 보고는 "네가 마신 와인이 이 와인이니?"라고 묻는 메일도 오곤 했는데...요즘엔 판매까지 하는 모양이다. 한국에선 판매를 할 수 없어서 그렇..

위대한 사상들, 윌 듀란트

위대한 사상들윌 듀란트(지음), 김승욱(옮김), 민음사   바로 뻔뻔한 영웅 숭배. 모든 것을 평준화하고 아무것도 우러러보지 않는 시대에 나는 빅토리아 시대 사람인 토머스 칼라일과 같은 자리에 서서, 플라톤의 그림 앞에 선 조반니 미란돌라(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철학자)처럼 위인들의 신전에서 촛불을 켠다. (17쪽)  이 문장을 읽으며 웃었다. 뻔뻔하긴 하다. 보통선거의 시대. 모든 이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시대. 아무리 불평등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과거 어느 시대와 비교하더라도 평준화되고 아무것도 우러러보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그래서 영웅이 사라지는 시대인가. 아니면 그 영웅의 자리에 팝 가수나 배우들이 자리잡은 시대인가.  이런 역사관에 누구보다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바로 카를 마르크스다. ..

어떤 종류의 슬픔은 언제나 늘 우리 곁에 ...

"There is a kind of sadness that comes from knowing too much, from seeing the world as it truly is. It is the sadness of understanding that life is not a grand adventure, but a series of small, insignificant moments, that love is not a fairy tale, but a fragile, fleeting emotion, that happiness is not a permanent state, but a rare, fleeting glimpse of something we can never hold onto. And in tha..

면접의 어려움

언제나 구성원을 채용하기 위한 면접이 제일 힘든 것 같다.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보았는데, 몇 번 사기 치는 면접자에게 당한 후 더 그런 듯하다. (* 여기서 '사기'라 함은 자신의 성과가 아닌 작업물로 어필하고 무조건 잘한다고, 질문에 대해서 교과서적인 답을 한 후 입사 후 막상 일하는 걸보면 면접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행위) 하긴,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조직에서 최고의 성과자도 내가 채용한 사람이고 최저 성과자도 내가 뽑았다. 지금에서야 내가 문제구나 하면서 반성 중이지만, 그 땐 정말 면접이 정말 싫었다. 계속 고민한 탓에 내 문제가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면접 동안 나는 입사지원자를 최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