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 445

옥타비오 파스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을 획득하자마자 자연의 세계에서 분리되었고 자신의 내부에서 타자가 되었다. 말이 지시하는 실재와 말이 동일하지 않은 것은 인간과 사물들 사이에 - 그리고 더욱 심층적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존재 사이에 - 자신에 대한 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말은 다리이며 이 다리를 통하여 인간은 자신의 외부세계와 분리시키는 거리를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러한 거리는 인간성의 일부를 구성한다. 거리를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은 인간됨을 포기하고 자연의 세계로 돌아거가나 인간됨의 한계를 초월하여야 한다.- 옥타비오 파스, 1972년(* 역자: 김은중. 1996년 가을호에서 옮김) --- 오래된 메모를 다시 꺼내 읽는다.

슈베르트, 8번 미완성 교향곡

슈베르트 8번 미완성 교향곡의 시작은 우아하면서도 격조있는 애잔함으로 시작한다. 참 오래만에 듣는다. 잊고 있었던 선율을 다시 들었을 때의 감동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구나. 바렌보임의 지휘 대신 첼리비다케의 지휘 음향을 공유한다. 바렌보임의 지휘보다 좀 더 긴장감이 더 있다고 할까. 그런데 슈베르트스럽지 못한 느낌이다. 낭만주의적이어야 하는데, 첼리비다케는 각이 잡혀 있는 고전적인 스타일이다. 다행히 바렌보임은 그렇지 않다. 어느새 책도 예전만큼 읽지 못하고 음악도 예전만큼 듣지 못하는 시절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변화시키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시절이 나에게 닥쳤고 그럴 만한 나이가 되었을 뿐이다. 오늘 오후와 저녁은 슈베르트와 함께 보내야겠다. 찾아보니, 이런 게..

우리 수명의 한계가 바로 우리 문명의 깊이

똑같은 책을 10대 읽을 때, 20대 읽을 때, 30대 읽을 때, 40대 읽을 때... 다르게 읽는다. 읽으면서 깨닫는 게 다르다. 이것 참 큰 일이다. 만약 그 책을 60대 읽을 때, 70대 읽을 때, ... 140대 읽을 때, 150대에 읽을 때 나는 어떤 걸 다시 알게 될까? 우리 문명은 딱 우리 수명만큼 그 깊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머리로 알지만 몸으로는 실천하지 못하고 지식은 쌓아가지만 지혜를 쌓지 못하는 것이다. 딱 우리 수명만큼이다. (너무 비관적인가) Let things age by Celeste

아시아 미술에 대한 고민

오랜만에 읽은 미술 잡지에서 우리의 현재에 대해서 다시 고민하고 되새겨볼 만한 문장들을 읽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옮겼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발적이며 능동적이고 탈식민화된 예술적 실천이다. 그런데 나도, 우리도 그걸 자주 잊는다. 다시 이 블로그가 거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겠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현명하다. 이 때 현실이란 혼종성, 디아스포라, 그리고 상호교환적인 네트워크가 점차 강해지는 상황이 영속화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전체 구조를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이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가 자기 자신과 사회, 현실을 위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쟁력 있는 기관을 설립해야 하고, 가치 중심적 시스템 하에 더 많은 ..

에드워드 호퍼, <여름실내>

Edward Hopper Summer Interior 1909, Oil on canvas, 24 x 29 inches,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따갑고 건조한 여름 햇살이 방 한 가운데로 내리꽂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울 정신적 의지는 지난 밤에 사라져버렸다. 꿈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환상이거나. 만일의 경우 그것은 최악의 현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이며 앞으로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다. 너무 가지런한 실내가 도리어 비현실적이다. 뜨거운 여름날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비현실적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자신에게 오래 전부터 빈혈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

그리스, 로마의 미술

그리스 고전주의 플라톤이 인간 존재를 완전한 세계(존재의 세계)에서 불완전한 세계(생성의 세계)로 추방된 존재라고 말했을 때, 그 속에는 존재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와 생성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하는 플라톤 철학의 의도가 담겨져 있으며 동시에 불완전한 세계에서 완전한 세계로 향해 가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고전주의의 절정기가 막 끝나가는 무렵을 살았던 플라톤 철학은 종종 그리스 고전주의의 철학적 반영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것은 그가 이데아를 상정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그보다 ‘완전으로부터 불완전이 나왔으며 이 불완전은 영원히 완전을 향하여 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플라톤 철학이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에서 기인된 것이다. 플라톤 철학이 그러했..

알튀세르의 눈으로 본 19세기의 철학적 사생아들

"내가 알기로는 19세기에 두세 명의 어린 아이가 태어났다. 사람들이 예기치 못했던 그들은 맑스와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다. 그들은 자연(la nature)이 풍습과 도의, 도덕, 그리고 예법(savoir-vivre)을 해친다는 의미에서는 '사생'아들(enfants naturels)이다. 자연(nature)은 위반된 규칙이고 미혼모이고, 따라서 합법적인 아버지의 부재인 것이다. 서구의 이성은 아버지 없는 아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한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였다. 맑스, 니체, 프로이트는 때로는 잔혹하기까지 한 생존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 대가는 배척, 비난, 모욕, 가난, 배고픔과 죽음, 혹은 광기로 기재되어 있다. 나는 지금 그들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색깔, 소리 혹은 시 속에서 사형선고를 체험했던..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대선이 끝나자마자 몇 명의 노동자가 자살했다. 부끄럽다. 슬프다. 노동운동이 치열했던 시기에도 이렇게 많은 노동자가 자살했을까. 한 때 문학이, 예술이 열성적으로 '현실 참여'를 부르짖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언제였는지 아련하기만 하다. 실은 지금 더 필요한데 ... ... 아내의 사촌 동생(그는 사진을 전공하고 있다)으로부터 아래의 달력을 받았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달력은 콜트 악기 부평 공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업주의 입장과 노동자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겠지만, IMF를 지나고 어느 새 우리 사회는 기업주의 입장만 대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본주의화는 심화되었고 우리에겐 반성할 여지..

오쿠이 엔위저의 '앤드로 모더니티 andromodernity'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는 광주비엔날레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큐레이터이다. 그는 지난 2009년 니콜라스 부리요Nicolas Bourriaud가 기획한 '얼터 모던 Altermodern' 전(영국 런던 테이트미술관)의 카탈로그에서 네 개의 모더니티를 제안하였고 그 내용을 오늘 읽은 '시선의 반격' 도록에서 김현진의 글에서 확인했다. 간단하게 인용하자면 이렇다. 오쿠이 엔위저는 모더니티를 서구 1세계의 supermodernity, 아시아의 고속개발국가들의 andromodernity, 이슬람권의 speciousmodernity, 아프리카의 aftermodernity로 분류.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는 자신의 글에서 네 개의 서로 다른 모더니티의 모델을 규정하면서 한국, 중국, 인도와 같은 나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