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 449

눈물을 흘리는 여인(Weeping Woman), 피카소, 1937년 작

Weeping Woman (눈물을 흘리는 여인) Pable Picasso. 1937년도 작. 그 유명한 '게르니카'도 1937년도 작품이고 이 작품은 '게르니카' 이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도라 마르(Dora Maar)로, 1930년대 중반부터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이다. 이 그림은 '눈물 흘리는 성모 마리아(Mater Dolorosa)' 도상의 현대적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예수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성모 마리아. 한 여인이 게르니카에서 일었던 참극에 대한 소식을 듣고, 혹은 그 참극을 보면서 오열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저 오열 자체도 일종의 참극처럼 보이는 건 무슨 까닭일까. 슬픔을 참지 못..

이중섭 미술상, 20년의 발자취 - 역대 수상작가 20인展

이중섭미술상, 20년의 발자취 - 역대 수상작가 20인 전 2008. 12. 19 - 2008. 12. 31. 조선일보 미술관 주최. 조선일보사 주관. 갤러리 현대 언제부터 '조중동'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일까? 90년대초만 하더라도 '동아일보'는 속해 있지 않았다(원래 사주는 친일파로 알려져있으나, 일선 기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진보적이거나 민주적이었다). '중앙일보'는 원래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조선일보'는 너무 오랜 역사와 과오들과 우여곡절을 가지고 있었다. 동아일보사에 속해 있는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뛰어난 전시나 조선일보사에서 운영하는 '이중섭미술상'은 꽤 아찔해 보인다. 예술(혹은 예술가들)이 모두 정치적일 필요는 없지만, 정치적으로 해석될 필요는 있다. 지난 12월 조선일보 미술관..

미술을 위한 Online Market?

SK브로드밴드의 IPTV에서 TV갤러리를 한다는 기사를 오늘 아침 읽었다. '아트폴리'와 제휴해서 진행될 모양인데, 이미 '아트폴리'에서 대해선 종종 들리는 미술 투자 관련 카페에서 그 정보를 이미 접한 터였다. 그런데 이 곳을 운영하는 곳이 '이노무브그룹'?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회사였다. 이 곳은 '롱테일법칙'과 관련된 책/아티클을 생산, 보급하고 관련 강의나 컨설팅을 하는 회사였다. 좀 관련없는 회사에서 미술 관련 비즈니스를 시작한 셈이다. 한 번이라도 미술전시을 유심히 살펴본 이라면, 온라인 갤러리가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절대로 온라인(컴퓨터 모니터나 TV모니터)로는 작품이 가지는 생명력이나 디테일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그걸 제대로 전달하려면, 작품 설명자와 여러 각도에..

한스 하케와 정치

Hans Haacke at Paula Cooper, New York (Jan 2008) (2008년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이 작품이 전시되었다.) 예술은 반드시 정치적이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아니다'이다. 하지만 모든 예술은 정치적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해석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어떤 작가가 '정치적 해석'을 거부한다면, 그 작가는 '정치'라는 단어가 가지는 함의과 그 광범위한 적용 범위나, 예술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작가일 것이다. 현실 정치에 대해 자주, 직접적으로 발언하는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예술가들도 있다. 그런데 이는 그들의 행동일 뿐, 그들의 예술은 그 태생에서부터 우리의 삶과 일상, 정치, 그리고 권력과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어왔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슬픔의 성모'(Stabat Mater), 페르골레지

어느새 2008년의 마지막 날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 가는 게 빠르다는 생각을 곧잘 하게 된다. 올 한 해 안 좋았던 일도 많았고 좋았던 일도 여럿 있었다. 되새겨보면, 결국, 참 힘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 만났던 어떤 이는, 나이가 들수록 클래식 음악이 좋아진다고 했다. 나도 그랬던 걸까. 그렇다고 해서 재즈를 듣지 않는 것도, 가요를 듣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가지는 미묘한 깊이가 날 감동시키곤 한다. 최근 들어 더욱 더 그렇다. 그 중에서도 페르골레지는 언제나 날 울린다. 지오바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는 26살에 죽은 비운의 작곡가였다. 대중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도 그럴..

冬.中.之.情 - 민병권 展, 갤러리 갈라

冬.中.之.情 - 민병권 展 갤러리 갈라_GALLERY GALA 2008. 12. 17 ~ 12. 30 민병권, 백제송(百濟松), 한지에 수묵담채, 99×76cm, 2008 서가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소리 내어 읽는다. 에서는 ‘소나무 가운데 큰 것은 둘레가 몇 아름이고, 높이는 십여 길이다. 돌을 쌓은 것같이 마디가 많고 껍질은 매우 거칠고 두꺼워 용의 비늘과 같다. 뿌리는 굽어 있고 가지는 늘어져 있다. 사계절 푸르러 가지와 잎의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봄 2~3월에 싹이 트고 꽃이 필어 열매를 맺는다. 여러 품종 가운데 잎이 세 개인 것은 고자송(枯子松)이고, 다섯 개인 것은 산송자송(山松子松)이다. 송진은 쓴데, 땅 속에서 천년을 묵으면 복령(茯笭)이 되고 또 천 년을 보내면 호박(琥珀)이 된다...

제프 쿤스와 베르사이유

나에게 엄청난 돈이 있어(세계 탑 100위 정도의 갑부 수준으로) 미술 작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제프 쿤스의 작품을 살 생각은 없다.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접근한다면 구입할 의향도 있다. 미술에 대해서 조금 떠벌려야 하는 비즈니스가 있다면, 대단한 사람들을 초대해 뭔가 과시해야될 필요가 있다면, 한 점 정도는 구입해볼 생각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그리고 결국 알만한 다른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겠지만). 나는 제프 쿤스가 현대미술이 요구하는 바의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정반대다. 그는 주체하지 못하는 재능으로 현대미술을 망쳐놓고 있는 몇 되지 않는 예술가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타당할 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약국' 데미안 허스트가 '삶과 죽음'이라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박진아(Park, Jina)와 회화의 쓸쓸한 여유

박진아_마지막 한 입-everybody's leaving_캔버스에 유채_225×155cm_2008 술집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고 그녀도 자리를 떠나려던 차에, 마지막으로 한 입 먹는다. 적당하게 오른 취기와 추운 새벽의 허전함을 텅빈 테이블 위의 남겨진 안주가 조금의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막상 되돌아 생각해보면, 꼭 그럴 때마다 드라이크리닝까지 해서 입고 간 외투에 뭔가 떨어뜨리기 일쑤다. 다음 날 오전, 술자리를 후회하게 만드는 '마지막 한 입'인 셈이다. 작가는 일기를 쓰듯, 자신의 주변을 기록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회화의 본질은 주술이면서 기록이었다. 뭔가 바라는 마음으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두운 동굴 벽에 벽화를 그렸고 근대 사람들은 자..

호쿠사이와 히로시게, 우키요에 속 풍경화

호쿠사이와 히로시게, 우키요에 속 풍경화 2008.6.4 - 7.4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광화문 흥국생명빌딩) 내가 읽는 책이며, 보는 전시며, 듣는 음악을 다 리뷰한다면, 나는 종일 리뷰만 써야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리뷰 쓰는 것이 일종의 습관처럼 되어버린 터라, 쓰지 않으면 뭔가 찝찝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어 적기는 하지만, 일종의 소모적인 자기방어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전시도 벌써 반 년이 지난 후에야 글을 적는다. 내가 우키요에를 기억하는 건 마네 때문이다.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은 직접적으로 오키요에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이 근대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거의 최초로 원근법을 극복하고 평면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시켰다는 점이며, 이 ..

Inside Nostalghia 전 - 타라 맥퍼슨

Inside Nostalghia, by DCG and Jonathan LeVine Gallery October 31st - December 30th 2008 http://www.dorothycircusgallery.com/ 이젠 정말 예술가 천지인 것같다. 이 말은 그만큼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수한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 독창적인 세계를 서로 닮아있으며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종종 한국 작가들에게 느끼는 실망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보여주어야 해도 모자랄 판국에,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품을 갤러리에서 보게 되었을 경우의 당황스러움이란 때론 화가 나기도 하고 때론 슬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