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 449

아트페어 준비

이제 2주만 있으면 아트페어 오픈이다. 작년보다 더 잘하려고 했는데, 후원 부분에서는 다소 모자란다. 실은 내가 좀더 많은 시간을 내어 움직였다면 좀 나았을 거란 생각을 해보지만,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는 구조였다. 어젠 회의를 끝내고 집에 오니, 새벽 4시였다. 심하게 허기를 느꼈지만, 참았다. 일요일 아침, 몽롱한 상태에서 쳇 베이커의 보컬을 듣고 있다. 오랜만이다. 익숙하고 정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맥주 생각이 나는 무슨 까닭일까. 누구의 말대로, 까페를 하는 것이 나에게 맞는 일일까. 스폰서 알아 보고 까페 할까. 하긴 갤러리 까페하면서 내 요리에 와인 팔고 좋은 음악 틀면... 이런 철부지 같은 공상은 종종 지친 몸과 마음에 잠깐의 도피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전시장 부스 구성이 나왔다. ..

전환과 확장 - 제5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오쿠이 엔위저가 감독한 제 7회 광주비엔날레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어수선한 전시 분위기와 작품에 몰입하기 어려운 공간은 마치 낯설고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실망스럽기만 하던 그 광주비엔날레가 계속 생각나는 이유는, 그 연출이 의도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섣부른 사견이겠지만, 앞으로 대형 기획 전시의 경향은 오쿠이 엔위저가 제시한 바의 그런 형태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렇게나 진열해놓은 듯한 작품들과 그 작품들 사이의 불협화음, 그 속에서 문맥을 찾아 헤매는 관객들. 마치 브레히트가 관객을 향해 조롱하듯. (오쿠이 엔위저의 큐레이팅에 대해선 현재까지는 '평가 유보'다. 실제 보았을 때의 느낌은 매우 낯설었으며 당시에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연출의 흥미로움을 느끼고 ..

루브르의 그뢰즈

로코코 시대의 성적인 메타포가 가득찬 작품을 어수선한 루브르 미술관 안에서 보았을 때, 대단한 감동이 밀려들진 않았다. 다만 책에서 보던 어떤 작품을 실제 보았다는 것 뿐. 장 밥티스트 그뢰즈는 18세기 시민-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한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충실히 18세기 로코코적 여성들을 그렸다. 볼은 홍조를 띄고 창백한 피부와 마른 듯한 몸매에 성적인 분위기를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현실적인(정치-경제적인) 고통과 육체적 쾌락을 대비시켰다. 하지만 루브르에서 위 작품을 보고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걸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소녀는 깨진 항아리 탓에 치마 가득 꽃을 들고 있다. 이 흥미로운 배치로 인해, 이 작품은 노골적인 로코코적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요..

Star Wars - Episode II, UNC갤러리

Star Wars - Episode II - The Phantom Menace - UNC갤러리, 2009.2.12 - 3.12 눈이 환해지는 전시가 있다. 그런 전시를 만나면, 그 전시 기획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을 유심히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전시를 만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늦은 겨울, 오랜만에 들른 사간동 UNC 갤러리에서 나는 그런 전시를 만났다. 건조한 늦겨울 바람이 불었고 피부는 딱딱해지고 눈은 침침해지는 2월 중순, 바쁜 일상 속에 전시를 보기 위해 시간을 내는 건 꽤 큰 투자다. 늘 누군가와 함께 전시를 보러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지만, 나를 따라 나서는 전시 관람이란, 그 누군가에게도 꽤 큰 고역이 될 것임에. 늦은 오전, 안국역에서 내려 정독도서관..

조우: 더블린, 리스본, 홍콩, 그리고 서울 - 2009 현대미술국제교류전, 국제교류재단

5호선 충정로역에서 내려 중앙일보사 빌딩까지 걸어갔다. 늦겨울 햇살은 따스했고 찬 바람은 없었다. 군데군데 녹다만 눈들이 도시의 그늘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혼자 정해진 모험을 하듯, 마땅히 해야할 일을 보듯, 가방에 작은 노트와 읽던 책 한 권을 넣고 전시를 보러 간다. 보통 최소 10개 이상의 전시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아는 작가를 만나면 인사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젠 누군가와 함께 보러 가는 것이 되레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조우 - 더블린, 리스본, 홍콩, 그리고 서울'은 전시된 작품들의 수준으로만 보자면, 올해 기억에 남은 몇몇 기획전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지만, 너무 평면적으로 펼쳐져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아쉬운 전시였다. 설득력 있는 주제가..

마유카 야마모토(Mayuka Yamamoto), 갤러리SP

Mayuka Yamamoto 2008. 12. 4 ~ 12. 27 갤러리SP 마유카의 작품은 평창동 서울옥션(Seoul Auction)에서 처음 보았다. 그녀의 작품은 두드러져 보였다. 부드러운 색채와 누구나 한 번쯤 지나왔을 소년 시절. 조용한 그녀의 작품은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Mayuka Yamamoto, Pool, oil on canvas, 162 x 162 cm, 2006 그리고 키아프(KIAF)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확연히 구별되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마유카의 작품들. 묘한 매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은 갤러리 SP에서의 전시에서 다소 수정되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마유카 요시모토의 작품들로만 채워진 공간은 이상하게도 서울 옥션 ..

소외된 인간 - 오치균 展, 갤러리 현대

내 마음 전부를 향기나는 솜털 이불같은 흰 구름 위에 가볍게 놓아두고 싶지만, 올해 들어서 그랬던 적이 언제였는가 싶다. 어쩌다가, 올해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던 것같다. 즐거운 마음으로 보러 가던 전시마저도, 이젠 작가들의 작품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전체를 이해해야만 된다는 강박증을 가지게 되었고, 내가 그들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내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새, 인생은 쓸쓸한 꿈 같은 것이고, 사랑은 떠나갈 어떤 것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기분이 서른 후반의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가끔은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후회를 하곤 한다. 그 후회의 힘으로 몇 주간 디오니소스의 유혹에 자신을 지키곤 했다. 요즘의 나를 지탱하는 건 과거의 실패와 아픔들이..

39(2), 아트선재센터

39(2) 아트선재센터, 2008.12.6 - 2009. 2. 15 헌법 2장, 39조 2항에는 "누구든지 병역의 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 한다"는 문항이 있다. 지난 2월에 끝난 이 전시의 제목은 위 문항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 국가에 사는 국민으로, 군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터널 속에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9(2)”는 동시대 한국사진전시로 한국사회에 깊이 파고 들어있는 군사문화와 전쟁의 흔적들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5명의 사진가들로 구성되었다. 김규식, 노순택, 백승우, 이용훈, 전재홍 등 5명의 사진작가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한국 사회에서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군사문화와 전쟁의 이미..

Always Somewhere - 김현정展

Always Somewhere - 김현정展 2009년 1월 21일 ~ 2월 5일, GALLERY 175 김현정, 세상 끝까지(To the ends of the earth), 캔버스에 유채, 80.3×116.3cm, 2008 얇고 사소한 감정들이 잔물결처럼 밀려들었다. 소란스런 도심 한 복판의 건물 지하의 갤러리는 고요하기만 했다. 작품들 속 풍경은 익숙한 장면들이었지만,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거칠고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는 듯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너무나도 쉽게 지쳐버리는 대도시의 일상 속에서, 아직 나에겐 지칠 순간이 오지 않았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김현정, 끝장난 사랑을 잊기 위해 우리는 춤을 춘다(We dance to forget the love that is over), 캔버..

역사 속의 종이부인 - 정종미 展

역사속의 종이부인 - 정종미展 2009년 2월 6일 ~ 2009년 3월 1일 금호미술관 정종미, 황진이, 한지, 비단, 모시, 안료, 염료, 콩즙, 193.5×520cm, 2008, 부분 정종미를 떠오를 때면, 언제나 종이의 여성을 떠올린다. 종이와 여성은 그녀가 사용하는 소재이고 대상이다. 그녀는 종이를 직접 만들어,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다듬어 윤기나고 매끄럽게 만들며, '그림의 바탕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이미지가 태어나게 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바르는 안료와 아교도 직접 만들고, 종이와 안료가 결합되어 종이와 ‘부인’이 하나가 되어 ‘종이 부인’이 태어나도록 콩즙도 만들어 수차례 올린다.' 이러한 고되고 반복된 작품 제작 과정은 마치 제의를 준비하고 시행하는, 일종의 주술적 과정처럼 느껴진다. 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