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 449

이집트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 벽화인지는 모르겠다. 우연찮게 이집트 미술 하고 검색해보았더니, 이 그림이 보였다. 혹시 서양미술사 시간에 이집트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떨어져서 저런 그림을 그렸다고 배운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은 정면성의 원리로 밖에 그리지 못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배웠다면 그건 잘못 배운 것이다. (* 정면성의 원리란 사람을 그릴 때 정면에서 보이는 대로만 그리는 데에서 따온 단어이다. 위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위 그림에서 위를 보면 새 그림이 나올 것이다. 이 도판에선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이집트 벽화에서는 사람을 그릴 땐 정면성를 지키지만, 새나 동물을 그릴 땐 지키지 않는다. 또한 사람의 지위에 따라서도 정면성이 확고하게 지켜지는 경우와 약간 느..

Chaim Soutine의 자화상

Chaim Soutine (시암 쑤띤)의 자화상이다. 1916년에 그려진 작품이다. 꽤 심각할 정도로 자기 자신에 대한 증오, 내지는 혐오를 가지고 있었나 보다. 추상 표현주의의 윌렘 드 쿠닝은 시암 쑤띤을 열광적으로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시암 쑤띤의 첫 번째 대형 전시를 뉴욕에서, 그것도 그가 죽고 난 10년 정도가 흐른 뒤에 열렸고 이 때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가던 무렵이라는 걸 떠올려보면 무척 재미있다. 잭슨 폴록이 현대 미술계의 스타로 떠올랐고 파리에서는 이에 질세라 타피에스, 뒤뷔페를 중심으로 한 앵포르멜이 유행하고 있었다. 쑤띤 작품은 세계에 대한 혐오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추상 표현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그의 생애가 두 개의 전쟁 속에 있었고 유태인이..

계몽주의 시대의 미학

제 7 장 계몽주의 시대: 데카르트적 합리주의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선 데카르트의 태도만 알아도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그만큼 중요하다. 17세기 바로크 예술이나 그 전 르네상스 고전주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데카르트 철학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종종 미학과 예술이 서로 평행을 유지하며 나란히 가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도리어 미학과 예술이 무관한 경우도 더 많다. 개인적으로 미학은 예술 이해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사상사적 맥락이나 철학사적 맥락을 그 시대의 예술 양식과 서로 연관 지어 이해하는 것은 예술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미학의 역사를 이해하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비어즐리는 데카르트는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데카..

르네상스 시대의 미학

(* 비어즐리의 미학사(이론과실천)을 읽고 요약한 글입니다. 오래된 글이네요.) 제 6장 르네상스 비어즐리는 르네상스를 15세기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의 탄생부터 16세기말 지오다노 브루노의 사망까지로 잡는다. 매우 의미심장한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쿠자누스는 철학사에서는 중세 말기의 철학자로 구분되나, 실제 그가 살았던 시대는 고딕 후기, 또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여기에서 고딕과 르네상스의 시대 구분이 문제로 떠오르는데, 지역적으로 그 사정이 틀리다. 이탈리아의 경우 15세기면 르네상스 중기이고 북유럽의 경우에는 고딕 후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학자들마다 어느 것에 무게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 구분이 제각각이며 읽는 이가 알아서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예술이나 사상에 있어서 시대 구분은 몇 ..

대중과 카라바지오

바로크 예술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되는 양식이다. 이는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천동설을 버리고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믿으며 무한한 우주에 보잘 것 없는 인간임을 인정하는 순간 시작되는 예술이다. 이 인정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한 번민과 불안, 걱정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실존주의 이후의 현대 양식), 무한한 신이 만들었다는 이 지구와 우주에 대한 기하학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자랑과 자만으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이제 인간적인 것은 신적인 것으로 대체되었으며 인간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나타났다. 17세기 해부학이 인기 학문이 된 이유의 배경에는 이러한 태도의 변화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한순간 일어나는 것이 아..

조지 시걸, '커튼'

The Curtain George Segal 1974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그녀는 무엇을 보는 걸까. 하얀 그녀. 온 몸이 하얗게 변해, 하나의 색으로 변해, 그녀의 영혼까지 하얗게, 하나의 색으로 변해... 하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 세상은 그대로야. 왜 그녀는 하얗게 변했을까. 무엇 때문에. 왜 세상에서 멀어지는 걸까. 벽처럼, 단절되어지는 걸까. 하얀 그녀. 하얀 그녀. 커튼을 옆으로 조금 제치곤 무얼 그렇게 보는 걸까.

고딕 성당

흔히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을 거의 비슷한 유형으로 정리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틀린 방식이다. 시기적으로나 시대적으로, 혹은 종교미술이라는 점에서 양식상 유사성을 가지지만, 그 예술의욕(Kunstwollen)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깊은 단절이 존재한다. 성 에티엔느 성당 (St. Etienne, Bourges. Begun mid 1190s) Ste. Chapelle, Paris, France. 1243-48 고딕 양식의 첫 번째 특징은 수직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의 세계를, 그리고 신을 향한 그들의 열정적인 믿음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Ste. Chapelle, Paris 놀랍도록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는 고딕 양식의 특징이다. 아마 서양의 중세를 생각하면 이러한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스 후기 고전주의

Statue of Eirene (personification of peace), ca. 14–68 A.D.; Julio-Claudian Roman copy of a Greek bronze statue by Kephisodotos, ca. 375/374–360/359 B.C. Marble; H. without plinth 69 3/4 in. (177.17 cm) Rogers Fund, 1906 (06.311) 그리스 후기 고전주의 시대(4세기 중후반무렵)의 조각상이다. 하지만 실제 그 때 제작된 것은 아니고 로마 시대 때 복제된 것이라고 한다. 남아있는 그리스 시대 조각들의 대부분은 로마 시대 때에 복제된 것이다. 빙켈만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로마 시대에 초상 조각 이 외에 이렇다할..

휘슬러

"Symphony in White, No. 1: The White Girl", 1862 James McNeill Whistler 지금 보면 무척 낡고 고루하며 시대에 뒤쳐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이 발표되었던 19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이 정도 분위기의 그림이 보수적인 계층의 비난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유명세를 치루었다. 휘슬러는 인상주의 친구들과 친했지만, 그의 화풍은 인상주의보다는 더 과거적이며, 그런 의미에서 분명 그의 고향, 미국적이다. (* 우리는 이 때위싱턴이 신고전주의적인 건물들로 이루어져있음을 떠올려야할 것이다. 19세기 초 미국은 신고전주의 열풍으로 떠들썩했다.) 여하튼 휘슬러는 적당하게 19세기 중반적이었다. 이후의 혁명적인 양식에 속하지도 못했으며 차라리 지금의 눈으로 보면 이전의 ..

후기 비잔틴

The prayer of Christ Wall-painting depicting Christ at prayer, by Michael Astrapas and Eutychios, 1295, Ochrid, Peribleptos church. Michael Astrapas와 Eutychios의 벽화이다. 성 클레멘트 교회라고도 불리는 St. Mary Peribleptos교회에 있는 것인데, 13세기 말에 그려진 것이다. 놀랍게도 이 벽화 속에 두 화가의 서명이 들어가있다고 한다. 연대를 비교해보니, 지오토와 거의 비슷한 연대이다. 이 벽화는 비잔틴 후기 양식이지만, 인물들의 포즈나 옷 주름의 처리에서 후기 고딕이나 초기 르네상스와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자연주의를 보여준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은 비잔틴 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