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 437

하루키, 또는 현대적 삶

하루키, 또는 현대적 삶 모든 것은 지나쳐간다.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붙잡을 수는 없다. 우리들은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다시 말해서, 개인주의의 어두운 면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의 초점 이동에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높낮이 없이] 덤덤하게 되고 협소해진다. 우리의 삶은 갈수록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우리는 타인의 삶이나 사회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진다. - 찰스 테일러, 1. 하루키 신드롬 아직도 하루키 신드롬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하루키는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있으니 말이다. 꽤 오래 전엔 매우 시끄러웠다. 여기저기 저널에서, 문학잡지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루키를 표절했다느니, 패러디했다느니 하는 등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렸고 서로 ..

위대한 회화의 시대 -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위대한 회화의 시대 -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The Age of Rembrandt - 17th Century Dutch Painting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의 마우리츠하위스 왕립미술관에서 대여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이 미술관의 소장품은 비록 1천여점에 불과하지만, 렘브란트, 베르미르, 루벤스, 반 다이크 등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유럽의 손꼽히는 미술관이다. 작품의 수준에 걸맞는 작품관리와 보존의 원칙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그림 수송과정으로 이어졌다. 또한 조도 역시 회화 전시의 통상적인 기준보다 더 낮은 150룩스 이하로 설정되었고 온도와 습도는 하루 24시간 내내 체크되어 매우 헤이그로 보고되고 있다.” - Art in Culture, 2003.9. 64쪽 하지만 너무 ..

YES YOKO ONO, 로댕갤러리

YES YOKO ONO, 로댕갤러리 전시 #1 젊은 예술가에게 결혼은 생의 급변, 또는 파국을 뜻한다. 그러므로 결혼한 예술가에게 남는 건 파탄이거나 사라짐이다. 그러나 결혼에 대한 사회적 압박은 집단 무의식에 기반해 있는 듯하다. 이것을 벗어나기 위한 행위를 사회교과서에서는 ‘일탈’로 표현한다. 추석 당일 밤 기차로 서울에 왔고 그 주 토요일 로댕갤러리에 갔다. 오후 4시... 소란스러운 실내.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관람객. 이번이 마지막 전시 관람인 남녀 대학생. 실내에서 버젓이 사진을 찍는 이들까지. 순간 역겨움과 구토가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왔다. 중간까지 가지도 못한 채 몇 분 만에 그냥 휙 한 바퀴 돌고 나왔다. 나올 때쯤 등에서 땀이 났고 손이 약간 떨렸으며 속은 메스꺼워 견딜 수가 없었다. ..

밀레의 여정Le Chemin de Millet 1814-1875

밀레의 여정Le Chemin de Millet 1814-1875 서울시립미술관. 1. 흔히 ‘천재들의 세기’로 기억되는 19세기는 격변의 시대였다. 근대의 정점을 지나 산업 혁명과 기계문명에 대한 찬탄과 희망으로 들떤 시대였으며 부르조아 계급이 귀족을 몰아내면서 새로운 질서를 주장하던 시대였으며 니체가, 칼 마르크스가, 찰스 다윈이 근대의 허상을 폭로하기 시작하였으며 위대한 인상주의자들에 의해 근대적 예술이 무너지고 있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19세기는 희망과 절망이 끊임없이 교차하던 시대로 기억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장 프랑소와 밀레(Jean-Francois Millet, 1814-1875)는 예외적인 인물이다. 프랑스 화단에서도, 바르비종 화파 내에서도 그러하다. 다른 바르비종의 화가들, 테오도르 루..

아라키 노부요시 개인전

아라키 노부요시 개인전 - 소설 서울, 이야기 도쿄 Novel Seoul, Story Tokyo 20021115-20030223, 일민미술관 사랑이 없는 시대에 사랑을 노래하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슬픈 일도 없다. 사라져 가는 시대에 사라져 가는 것들을 붙잡는 시도만큼 처절한 것도 없다. 에로티시즘이란 생에 대한 열망이다. 그것은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고귀한 것이지만, 이성적이고 체계적이길 원하는 문명의 관점에서는 되도록 숨기고 있는 원시의 유산이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작업은 전적으로 사랑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은 한 곳으로 쏠려있거나 파헤쳐져 있다. 새디즘이나 매저키즘도 우리의 문명이 만들어놓고 어떤 구획선을 제거해버릴 경우에 사랑의 감정, 또는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들..

나의 즐거운 일기, 난니 모레티

나의 즐거운 일기 감독 : 난니 모레티 주연 : 난니 모레티, 제니퍼 빌즈 장르 : 코미디, 제작년도 : 1994년 1. 하얀 종이마다 누런 개미가 한 마리씩 눌려 죽어있었다. 사무실에서 프린터 해 온 난니 모레티가 프랑스 영화잡지인 Positif와 한 인터뷰 기사 위에. '개미가 눌려있는 인터뷰' 실은 집에 개미가 너무 많다. 오늘 아침엔 늦게 일어나 택시를 잡아탔는데, 가방에 개미가 붙어서 기어가고 있었다. 그냥 무심히 넘어갔지만, 객관적으로 개미가 너무 많다. (나에게도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존재했던가) 2. 우리 집에 개미가 많다고 해서 세상에 종말이 오거나 몇 년 동안 구름에 갇혀 해를 보지 못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내가 죽인 개미 ..

예술사를 통해서본 여자

1. 오래 전에 번역되어 많이 읽히지도 못하고 사라진 소설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자. 아마 영화를 본 사람은 있을 것이다. 빠스깔 레네의 .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하층 계급의 여자와 상류층의 남자가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에 드러난 것이고 그 이면에는 하층 계급의 여자, 뽐므라는 이름을 가졌고 투명한 영혼을 지닌, 그녀가 거리를 걸어가면 주위의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어떤 매력을 지닌 여자와 파리 고문서 학교를 다니며 미래의 파리 박물관 관장이 될, 미래에 대한 야망과 꿈을 가진, 에므리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의 서로 메워줄 수 없는 어떤 거리를 꼬집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에므리의 편이 아니라 뽐므의 편을 들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면 뽐므는 여자..

2000년: 새로운 세계 속으로

1. 2000년 서울, 그리고 우리 오늘날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시드니 올림픽을 볼 수 있다. 어느 순간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속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라는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움직이는 곳마다 감시장치가 있고 주인공은 그 감시를 한 순간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이것을 두고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이라며 몇몇 사람들은 떠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런 끔찍한 세계는 시간적으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IMT2000(IMT2000 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 2000)이라고 해서 국가간 무선통신 서비스, 화상통신서비스 등을 위한 단일 주파수, 단일 기술 표준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그러면 핸드폰마다 ..

엿보기의 비밀

1. 얼마 전 ***의 포르노가 돌았을 때, 우리 시대가 불순한 관음증으로 도배된 사회라는 것을 또다시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잘못인가? 정말 우리 시대의 잘못일까? 노출증과 관음증. 이 단어는 후대의 역사가나 예술사가들이 우리 시대를 정의 내릴 때 사용하게 될 몇 안 되는 단어들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제프 쿤스는 노골적으로 스스로를 노출증 환자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Dirty - Jeff on Top, 1991 Jeff Koons. 제프 쿤스는 대담하게, 그리고 매우 친절하게 자신의 성행위를 보여준다. 이 대담한 예술가는 왜 사람들이 타인의 성행위에 관심을 가지는가에 대해 반문하면서 미술관 전체를 한 권의 포르노 잡지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는다. '과연 내 성행위..

음모이론 넘어서기

음모이론 넘어서기 - 서사구조와 그 한계 1. 몇 년전 '내가 네 엄마로 보이니?'라는 말로 듣는 사람을 갑자기 소름 돋게 만든 이야기가 있었다. 승강기 안에서 들리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엄마로 변신한 귀신의 아찔한 대화. 하지만 이 이야기를 그저 그런 공포담으로 받아넘기기엔 어딘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어머니마저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순간 우리들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대신 귀신을 등장시키는 이 공포이야기는 '가정'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믿음이나 가치가 상실되었고, '부모들'에 대한 아이들의 숨겨진 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안쓰러운 이야기 속에서 요즘의 우리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