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난니 모레띠의 영화

갑자기 졸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사무실은 조용하고 거리에서 들려오는 차소리만 귀를 때린다. 난 지금 세상 속에 있는 것이다. 어제 난니 모레띠의 를 보았다. 예전에 정성일이 질 들뢰즈로 를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 어떤 내용이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성일이 책을 낸다면 구입할 의향이 있는데, 이 사람은 그동안 썼던 잡글을 모아 책을 낼 생각이 없는 것일까. 난니 모레띠의 , 무척 재미있다. 트로츠키주의자 요리사 이야기나 빛나는 사십대, TV 중독증에 걸린 율리시즈 연구자 친구는 정말 웃기다. 이러한 시니컬함을 가진 난니가 무척 마음에 든다.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라는 노래가 있다. 빛과 소금 몇 집인지 몰라도, 비 오는 날이면 창을 열어놓고 카세트로 이 노래를 몇 번이고 듣고 했다. 그 때가 스물 두 세살이었던 것같은데. 사람이 과거를 추억하기 시작할 때부터 늙기 시작한다고 믿고 있는데, 요즘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많아졌다. 늙는 것만큼 참혹한 일도 없다. 청춘은 아니지만, 내 가슴 속 은빛 총알 하나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영화 '하나비'에서 처럼. 그렇게 내가 죽어갈, 그런 총알 하나 말이다.

하루

하루. 참 기인 시간이지. 기인 것들 중 매력적이거나 참혹한 것들은 계단을 가지고 있어. 높이 솟은 건물이나 성, 또는 뾰족탑 같은 것들은 어김없이 계단을 가지고 있어. 하루에도 계단이 있어. 꼭 인생에 계단이 있는 것처럼. 택시 기사가 건넨 담배에도 계단이 있었어. 그는 담배를 피워 물었어. 찬 밤 바람 사이로 담배의 계단이 사라져갔지. 하얀 연기와 소스라치는 밤 영혼들 사이로. 검은 자동차들이 일렬로 지나갔고 그가 모는 택시는 그 행렬을 가로지르며 나아갔어. 아주 짧은 행렬이었지. 속이 텅 비어있거나 기만적인 것들은 짧아. 그가 내 쉬는 호흡들 사이로 하얀 담배 연기가 밀려나와 택시의 몸을 감싸 돌았어. 계단들로 이루어진 택시 하나, 새벽 도시를 질주했지. 하루. 참 기인 시간이지. 기인 것들 중 매..

바람의 노래

갑자기 뜨거운 바람의 그 열기를 잃어버렸다. 꼭 사랑에 빠져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을 지나가던 한 소녀가 몇 개의 계절을 보내고 난 다음 화사함은 다 사라지고 투명한 어두움, 생의 어떤 깊이를 가진 미소를 지어보일 때, 문득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듯이, 새벽 택시에서 내려 열기를 잃어버린 바람의 노래를 보면서, 잠시 쓸쓸함을 느꼈다. 찬 바람이 분다. 이 지구 위에 살아가는 젊음들이 어디에 가서 부딪히고 어디에 가서 우는가와는 아무런 관계 없는 바람이. 그저 한 쪽 방향에서 한 쪽 방향으로. 때로 빙빙 돌면서 불기도 한다. 도시의 빌딩들이 지하보다는 하늘을 향해 더 높이 올라가듯이, 내 눈물은 하늘을 향하기 보다는 땅바닥을 향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도시의 빌딩이 위로 향하는 것과 내 눈..

5 : 30 A.M.

1. 집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에 전자파가 꽤나 많이 나오는 모양이다. 복권 당첨 되면 LCD로 바꾸어야할 것같다. 그런데 전자파 어떻게 아느냐구? 컴 조금만 하면 졸리고 몸이 뜨거워진다. ㅡ_ㅡ 2. 요새 집 근처에서 고양이 자주 울어댄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영낙없는 애기들 울음 소리라서, 첨 들으면 등골이 오싹해지지만, 나야 워낙 많이 들어서 짜증만 난다. 3. 고양이 울음 소리 때문인가. 5시 반쯤에 자리에서 일어나 빈둥대면서 책을 읽었다. 몇 권의 책을 번갈아 읽었는데, 역시 철학책이 제일 어려웠다. 무슨 말이 적혀있는 건지. 철학과 현실사에서 나온 '미학 개론'이라는 책인데, 첫 페이지부터 예술은 개념의 지배를 벗어나 있다고 적혀있다. 이렇게 어려운 말을 처음부터 적혀있는 걸 보니, 저자는 여기에..

일과 능력의 한계

어떤 꿈을 꾸고 새벽 5시 반에 잠을 깼다. 그리고 차가운 물을 마시고 의자에 앉아 몇 분을 졸았다. 다시 잠을 잤다. 몇 번 눈을 뜨곤 했는데, 무척 졸렸다. 눈을 뜨니, 10시였다. 허겁지겁 출근을 감행했으나 성난 비들로 인해 도로는 여기저기 작은 물 웅덩이들을 만들었고 어느 도로의 경우에는 도로 밑바닥에서 올라온 물들로 가득차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까지 가서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 택시비가 이만원이 나왔다. 배가 아프고 머리가 무겁다. 세월은 빠르고 세상은 허무라는 이름을 껌을 깨작깨작 씹는 얼굴을 하고 날 쳐다보는 듯 하다. 뭐, 그런 들 어떠니. 일은 많고 언제나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