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92

아침

아침 Anycall 핸드폰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하는 8시부터 시작된다. 얼마 전까지는 7시에 커지는 TV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TV는 아직도 어김없이 7시에 켜지고 있지만, 지친 어둠의 그림자, 한때 뮤즈들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부드러운 살결이였던 그 그림자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서른 살의 힘없는 청년을 벗어나게 하기엔 TV는 이미 그 능력을 상실했다. 실은 아침이라는 시간 위의 존재는 세상의 모든 알람들이 울릴 때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예전 닭이 울었던 일을 자명종 시계가, 인공지능 TV가, 삐삐, 핸드폰이 그 기능을 이어받았다. 종종 세상의 무능력함을 해결해주기 원하는 이들에 의해 창설된 보통교육 시스템, 이제는 세상의 무능력함에 의해 무능해진 보통교육 시스템, 그것이 선사하는 저주스런 폭언..

토요일 오전의 허무한 <자살>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가 하고 묻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주위의, 많은 이들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만나기로 예정되어있던 몇 명은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책, 무척 재미있다. 하지만 너무 끔찍해서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다. 르 끌레지오의 이 생각난다. "내가 죽으면 나를 알고 있었던 이 대상들은 더이상 나를 증오하지 않게 되겠지. 나의 내부에 있는 내 생명이 꺼져버릴 때, 내게 주어졌던 이 통일성을 내가 마침내 흩어버리게 될 때 소용돌이는 그 중심을 바꿀 것이고 세계는 그 원래의 존재 방식으로 되돌아 가겠지." 어제 집에 있었고 오늘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드디어 흔들리는 공간 속으로 되돌아왔다. 끔찍하긴..

Rolling Stones

어둑어둑해지는 양재 사거리에 내려 근처 음반 가게에 가서 벨벳언더그라운드 음반을 찾는다. 앤디 워홀이 자켓 디자인을 한 앨범. 하지만 그 앨범은 없었다. 아주, 잠시, 슬픔. 너바나의 베스트 음반에 손이 가다, 롤링스톤즈의 음반을 구입했다. 이 밴드가 나왔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들의 음악은 과격하고 거칠었는데, 지금 듣기엔 꼭 락발라드같다. 상대적으로 요즘 세상이 더 거칠어진 것인가. 사무실에 앉아 롤링스톤즈의 음악을 듣고 있다. 무척 좋다. 나도 늙었나보다.

어제 산 책

영풍문고에 갔다. 나에게 책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아직 행복하다. 그리고 행복하게 칸트의 를 구했다. 대학원에 들어가게 된다면 제일 먼저 읽어야할 책으로 칸트와 베르그송을 염두해 두고 있다. 아베 코보의 도 샀다. 무척 재미있을 것같다. 지금 읽고 있는 플로베르의 를 다 읽고 난 다음 읽어야 겠다. 그리고 이라는 책을 샀다. 이 놀라운 책은 자살에 대한 많은 정보와 사연을 담고 있다. 하나하나가 귀담아들을 내용들이다. 이렇게 2002년도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아무 것도 내 세상을 바꿀 순 없어

Nothing Gonna Change My World. Nothing Gonna Change My World. ... My Soul. ... My Love. 이렇게 늘려나가면 어떻게 될까. 사무실에 종일 앉아 있었지만, 웹사이트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뿐, 가져온 책도 읽지 않았고 뭔가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 기묘한 불안함. 어제부터 플로베르의 를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다. 몇몇 표현을 보면서 이 시대에는 이렇게 묘사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엘러건트 유니버스

"우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전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가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위 문장은 우리가 흔히 낭만주의 과학으로의 본격적인 전환을 이루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아이슈타인이 가졌던 믿음이다. 과학은 새로운 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리학 말이다. 그러나 생물학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기란 무척 어렵다.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있다는 미국의 과학자가 있는가 하면 그것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이 책 무척 좋은 책이다. 지금 열심히 읽고 있다.

Apprendre 'a finir

몸이 지치니, 마음도 따라 지친다. 떠남은 이토록 힘든 것이다. 회사는 폐쇄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 때 MBA 출신들로 가득차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썰렁하다. 이라는 소설을 다 읽었다. 무척 좋은 소설이다. 그러나 좋다는 의미는 작품의 완결성이 뛰어나다는 것이지, 읽고 난 다음 삶의 의미나 사랑의 가치를 찾게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확히 말해, 그 반대이다. 자기 반영성이란, 끊임없는 자신만의 독백으로 완성된다. 슬프다.

면접

너무 많이 긴장하고 떨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고 어쩌지 못했다. 교수들은 나의 Study Plan을 읽어보지 않은 채 들어왔다. 선생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일들 중의 하나는 똑똑한 제자를 받는 것이다. 학생에 있어 행복한 일들 중의 하나가 휼륭한 선생을 만나는 일이고. 힘들게 적은 Study Plan을 읽는 것은 긴장하고 있는 학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은데...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질문 하나 : "스스로를 감성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지성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이건 무척 중요한 지적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만큼 시간이 넉넉하지도 않았고 말도 잘 못했다. ㅡ_ㅡ; 답변은 "나는 감성적인 인간인데, 감성을 Control하는 게 지성이다. 지성을 연마하고자 왔다." ..

살아가기

텅빈 회사 사무실. 시계는 오후 2시를 지나 3시를 향해 뛰어가고 있다. 시간들이 뛰어가는 소리가 내 귓가를 맴돈다. 대학원 원서는 집어넣었지만, 걱정이 앞선다. 학교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탓에, 몇 년 동안 딴 짓을 하다가 갑자기, 나와서 글을 쓰고 살아가야하는 삶이, 그것보다 대학원 시험에서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더 크다. 이번에 되지 않으면 더이상 대학원 진학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할지도 모른다. ... ... 모든 것들이 날 둘러싸고 옥죄어 온다. 두렵다. 자신감을 잃어버린 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