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345

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카불의 책장수 The Bookseller of Kabul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Asne Seierstad (지음), 권민정(옮김), 아름드리미디어 카불에서의 일상은 참혹하기만 하다. 실은 믿어지지 않고 믿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다.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는 비교적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읽는 독자는 차분해지지도 않고 주관적으로 파악할 수 밖에 없다. 남녀간의 사랑이 금지된 곳이라니. 아니, 남자의 사랑은 있지만 여자의 사랑은 없는 곳이 보다 현실에 근접한 표현일 것이다. A WOMAN'S LOVE is taboo, banned by the prohibition of the honor code of Pashtun life and by religious sentiment...

자살과 노래, 사이드 바호딘 마지로흐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의 (권민정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5년)은 책 제목과 달리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일상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보여준다. 그 참혹함 속에서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지만, (다들 잘 알다시피) 여성의 삶은 더 참혹해서 자연스럽게 이슬람에 대한 미움 같은 감정이 싹튼다. 그들(일부 이슬람 국가들과 대부분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어리석음, 종교와 경전에 대한 (무자비한) 축어적 해석과 현실적 상황을 무시한 (강압적/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를 통한) 적용이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이슬람 여성에 대한 여러 풍문을 들은 바 있다. 야한 속옷이 잘 팔리며 부르카 밑으로 진한 화장을 하고 집 안에서는 화려한 옷을 입는다고. 이러한 풍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선입견을 조장하고 이슬..

보들레르의 수첩,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수첩 샤를 보들레르(지음), 이건수(옮김), 문학과지성사, 2011년 1846년 산문과 1863년 산문이 함께 실려있고 죽은 후 나온 수첩까지 실린 이 책은 기억해둘만한 보들레르의 작은 산문들을 모았다. 각각의 산문들은 19세기적인 묘한 매력과 허를 찌르는 감각으로 채워진다. 는 너무 유명한 산문이라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 지금 나이로 보자면, 문학청년 시기쯤으로 분류될 이십대 중반에 쓴 산문이다. 그 스스로도 이렇게 살지 못했을 텐데, 이런 충고를 썼다는 건 그만큼 문학 활동에 자신있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런 이율배반은 그의 생애 전반에 나타나는 바이기도 하다) 시란 가장 많은 수입을 가져다주는 예술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 20쪽 이런 놀라운 사..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장-폴 뒤부아(Jean-Paul Dubois) 지음, 김민정 옮김, 밝은세상, 2006년 "공사판에서 일하는 작자들, 죄다 미치광이들이라오. 조심해야 해요. 진짜 미치광이들이니까. 40년째 공사판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지금도 그 작자들하곤 어울릴 맘이 나질 않아요. 개중에서도 제일 심한 미치광이들이 바로 수도배관공들이라오. 난 아예 계약도 하지 않아요. 그 작자들하고 같은 시간대에 작업을 해야 한다면."- 176쪽 한편으론 답답하고 한편으론 흥미롭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고 주인공 타네씨는 참 운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읽는 소설이다. 등기우편으로 날아온 삼촌의 유산인 오래된 저택을 상속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웅장하고 근사한 저택을 상속받은 타네씨. 그러나 그가 기억하던 저택..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Bohumil Hrabal(지음), 이창실(옮김), 문학동네, 2016 서평 쓰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간단하게 감상을 적기도 하지만, 혹시 나중에 읽었던 책에 대한 내용을 찾을 때를 대비해 자료 정리의 측면도 있다 보니, 다소 길고 인용이 많아졌다. 결국 책 읽는 속도를 서평 쓰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읽었으나 리뷰를 올리지 못한 책들이 열 권을 넘겼다. 시간이 나면 정리해 올리려고 하고 있으나, 쉽지 않고 쫓기다보니 서평의 질도 예전만 못하다. 보후밀 흐라발(1914 - 1997). 체코 최고의 소설가이지만, 국내에는 뒤늦게 소개되었다(아니 전세계적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체코 소설가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가 밀란 쿤데라이고, 토니 주트(Tony Judt, 1..

충분하다, 쉼보르스카

충분하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지음), 최성은(옮김), 문학과지성사, 2016 왜 내가 새삼스럽게 외국 번역 시집을 읽으며 감탄을 연발하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시는 원문으로 읽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글로 번역된 시의 매력에 빠져든 것은, 아마 언어 너머로도 전해지는 시적 감수성, 또는 해석의 가능성, 그리고 지역과 언어를 관통하며 흐르는 인생과 세계에 대한 태도 같은 것에 감동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특히 쉼보르스카의 시들은 한글로 옮겨지더라도 그 시적 매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는 역자의 노고일 것이기도 하겠지만, 시 자체가 가진 힘을 그만큼 대단한 것일 게다. 내가 잠든 사이에 뭔가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꾸었다,어딘가에 숨겨 놓았거나 잃어버린 뭔가를..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황현산(지음), 난다(문학동네 임프린트)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 괴테, 중에서 다행이다. 이 책이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힌다는 건 좋은 일이다. 불문학자인 황현산 교수가 그동안 여기저기 기고한 글들을 모은 이 산문 모음집은 출간 후 몇 년간 많은 이들의 밤을 조용히 채웠을 것이다. 글들은 대체로 짧고 읽기 편하며 담백하다. 실은 이런 글 읽기도 쉽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탓에, 이 책의 유명세는 다소 낯설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이 책을 읽었던 것일까. 나같은 독자에게 이 책은 약간 밍밍한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취향의 문제일 뿐, 이 책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편안하게 권할 수 있는 산문집이다. 여기서 ..

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지음), 정현종(옮김), 문예출판사 전반적으로 잘 읽히지 않는다. 자주 등장하는 '올드 스포트old sport'는 '친구'(소설가 김영하의 번역), 또는 '형씨'(김욱동 교수의 번역)로 옮길 수 있지만, 이 번역본에서는 그냥 '올드 스포트'로 옮긴다. 읽으면서 왜 다수의 사람에게 이 명칭이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영문을 병기하지 않았기에 찾아보지 않는 이상 알 턱이 없다. old sport는 이보게, 자네 정도로 옮길 수 있는 표현으로 good sport도 동일한 말이다. 일부 의견으로는 1970년대에 번역되어 일어중역본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정현종 시인의 명성과 달리 이 책은 읽지 않는 편이 좋을 듯 싶다. 다행히 이 번역서는 절판되었으며, 이 소설의 유명세로 인해 ..

샘 쉐퍼드Sam Shepard

내가 수줍게 사랑하고 좋아했던 배우이자, 극작가이며, 소설가였던 샘 쉐퍼드Sam Shepard가 73세의 나이로, 수다스러우면서도 지독히 쓸쓸했던 이 세상과 헤어졌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그의 재능이며, 그의 언어가, 그의 표정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며 혼자 숨겨두었던 존재들이 나에겐 알려주지 않고 마음대로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모나드에서 모나드로 연결고리는 없겠지만, 모나드 바깥에선 단절된 모나드들을 볼 수 있으리라 한 때 생각했지만, 태어남-죽음은 하나의, 일체의 모나드임을. 우리 각자는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아 정해진 궤도를 돌아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그 궤도가 얼마나 우아해질 수 있는지, 한 번 보여주자. 샘 쉐퍼드를..

백설공주, 도널드 바셀미

백설공주도널드 바셀미(지음), 김상률(옮김), 책세상 이 번역 소설을 다시 영어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정도까지는 비슷할까, 아니면 전혀 다른 소설이 될까? 바셀미의 고도로 양식화되어 있는 미니멀리즘 소설을 한글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을 테지만, 너무 성의 없이 옮겼다는 건 바셀미의 소설을 기다려온 나에겐 상당히 불쾌하게 여겨졌다. 실제 원작에서는 문장은 짧고 단순하며 표현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 번역본에서는 늘어지며 중언부언하면서 양식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그러니 이 번역서를 읽고 바셀미를 읽었다고 하지 말기를. 도널드 바셀미는 20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의 한 명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미니멀리즘 소설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제서야 소개된다는 것이 뒤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