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 934

준비된 자가 성공한다, 데이비드 알렌

준비된 자가 성공한다데이비드 알렌David Allen (지음), 고희정(옮김), 청림출판 상식은 말처럼 쉽지 않다. (213쪽) 애초에 일하는 방법 따위엔 관심 없었다. 일을 성실하면 그 뿐이라고 여긴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래서 야근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고 정해진 시간 내에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딱 정해진 시간만에 끝내거나 약간 오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여긴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을 빨리 끝내면 다른 일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일을 잘 한다는 건 조직 내에서 고역이다. 일을 잘 한다고 해서 승진의 기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리어 알 수 없는 질투와 질시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그리고 하지 않아도 될 상사의 일을 맡기도 하고, 상사가 한 일로 보고 된다. 상황이 이러니, 생산성 도구 같은 것에 관심..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박종훈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박종훈(지음), 21세기북스 몇 해 전에 나온 책을 이제서야 다 읽는다. 이미 칼럼을 통해 박종훈 기자의 통찰력 있는 글들을 읽었던 터라, 책을 읽는 과정은 마치 복습하는 느낌이었다. (칼럼 주소: http://news.kbs.co.kr/news/list.do?mcd=0849#1) 유명세를 치른 책이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테고, 읽은 사람들은 다 읽었을 것이다. 정작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들은 내가 아니라 저 쪽에 있는 사람들인데. 흥미로운 것들은 경제전문기자(실은 박종훈 기자만 말하겠는가!)가 지적하는 사항들과는 정반대로 국가 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국가에서 홍보하고 대단한 성과를 내는 것처럼 포장하는 여러(더 많겠지만) 잘못된 정책들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

유감이다, 조지수

유감이다조지수(지음), 지혜정원 어쩌면 나도, 이 책도, 이 세상도 유감일지도 모르겠구나. 다행스럽게도 책읽기는, 늘 그렇듯이 지루하지 않고 정신없이 이리저리 밀리는 일상을 견디게 하는 약이 되었다. 하지만 책 읽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나는 이제 책 읽는 사람들을 만날 일 조차 없이 사무실과 집만 오간다. 주말이면 의무적으로 가족나들이를 하고 온전하게 나를 위한 시간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이젠 그런 고민마저 사치스럽다고 여기게 되는 건 그만큼 미래가 불안하고 현재가 아픈 탓이다. 근대는 "주체적 인간"이라는 이념으로 중세를 벗어났다. 현대는 "가면의 인간"에 의해 근대를 극복한다. 우리의 새로운 삶은 가면에 의해 운명의 노예라는 비극을 극복한다. 가면이 새..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 심재훈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 심재훈(지음), 푸른역사 나라가 시끄럽다. 하긴 시끄럽지 않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어쩌면 이 나라는 그 태생부터 시끄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시아 변방에 있는 작은 나라. 다행스럽게도 중국 문화권 아래에서도 독자적인 언어와 삶의 풍속을 가진 나라. 이 정도만으로도 제법 괜찮아 보이는데,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더구나 이 책이 식자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무분별한 민족주의적 경향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한국사 연구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당연한 지적을 했는데도). 하지만 이 내용은 책 후반부에 짧게 언급될 뿐, 나머지 대부분은 심재훈 교수가 어떻게 공부했고 유학 생활은 어떠했으며, 고대 중국사 연구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산문들 위주다. 그리고 미국 대학사회..

래디컬 뮤지엄 Radical Museology, 클래어 비숍(지음)

래디컬 뮤지엄 - 동시대 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인가? 클래어 비숍 Claire Bishop (지음), 구정연 외 (옮김), 현실문화 (저자의 website: http://clairebishopresearch.blogspot.kr/) 지난 가을, 키아프(Korea International Art Fair)를 갔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을 관람했다. 이 두 이벤트의 묘한 대비는 무척 흥미로웠고 나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지만, 그 뿐이었다. 키아프만 간 사람들과 국립현대미술관에만 간 사람들 사이의, 두 경향의 현대미술전시가 보여주는 간극이 메워지지 않을 듯 느껴졌다면, 심한 비약일까. 아트페어와 미술관의 전시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여기에서 같은 미술관 공간이라도 비엔날레같은 행..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80쪽) 살아가면서 과거를 끄집어내는 일이 얼마나 될까. 삶은 고통스러워지고, 사랑은 이미 떠났으며, 매일매일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 이 세상은 한때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빛깔을 잃어버렸음을. 감미로운 허위만이 우리 곁에 남아 우리 겉을 향기롭게 감싸며 근사하게 보이게 만들지만, 그것은 언젠간 밝혀질 시한부 비밀같은 것. 그럴 때 그 과거는, 어쩌면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낸 고통의 근원일까, 아니면 도망가고 싶은 이 세상 밖 어떤 곳일까. "토니, 이제 당신은 혼자야."라고 이혼한 아내 마거릿은 전화 속에서 이야기하지만,..

나의 서양음악순례, 서경식

나의 서양음악순례 서경식(지음), 한승동(옮김), 창비 한국과 일본은 참 멀리 있구나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서경식 교수의 유년시절과 내 유년시절을 비교해 보며, 문화적 토양이 이토록 차이 났을까 싶었다, 일본과 한국이. 내가 살았던 시골, 혹은 지방 소도시의 유년은, 쓸쓸한 오후의 먼지 묻은 햇살과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 바다 풍경이 전부였다. 책 속에서 이야기되었던 윤이상 선생의 통영에서의 유년 시절은 내가 겪었던 유년 시절과도 달랐다. 그가 통영에서 살았던 당시(20세기 중반) 보고 들었을 전통 문화라는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서양 신식 문화랄 것도 내 유년시절에는 없었다. 전통 문화와 신식 문화 사이에서 길게 획일화된 공교육과 책을 읽으면 안 되는 자율학습과 텔레비전, 라디오, 팝송이 있었다(..

체의 녹색 노트

체의 녹색노트구광렬 엮고 옮김, 문학동네 음유시인 니콜라스 기옌 알갱이가 빽빽한 옥수수피델 카스트로와 그의 부하들이 그란마에서 내릴 때,격정의 바다는그들이 난폭한 걸음으로 출발하는 걸 본다 턱수염 없는 근엄한 얼굴,이마엔 나비들을,구두엔 수렁, 늪을,죽음, 군인처럼 노란 유니폼에 미제 총을 한 죽음은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몇몇은 상처를 입고 쓰러졌으며 몇몇은 목숨을 잃었다 손가락 수보다 조금 더 많은 수가 희망과 피로로 다시 영광을 향해 출발했다 깨어난 길에선 주먹을 움켜쥐고 양귀비를 따 노래를 불렀다 칼날은 빛났으며 총은 번쩍거렸다 마침내 산속으로 먼저 들어간 피델 카스트로는 병영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산맥에서 내려간다.평원은 총들의 바다가 될 것이다." 1967년 10월 9일, 체 게바라 사망 당시..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한스 위르겐 괴르츠

역사학이란 무엇인가한스 위르겐 괴르츠(Hans-Jurgen Goertz) 지음, 최대희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3 사실 자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반드시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며, 사실이란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다. - 롤랑 바르트 미술과 예술의 역사를 공부하긴 했지만, 제대로 배웠다고 여기고 있었다. 미술사든, 예술사든, 그것은 역사학의 한 분과 학문이라는 건 알았지만,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과 역사학 자체에 대한 것과는 다르다는 것, 그리고 역사학, 또는 역사이론에 지식이 없었다는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가끔 사람들에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가 감동적인가'라고 묻곤 한다. 왜냐면 그 작품의 명성과 감동, 혹은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맑스주의와 형식, 프레드릭 제임슨

변증법적 문학이론의 전개 (개정판: 맑스주의와 형식, 원제: Marxism and Form)프레드릭 제임슨 Fredric Jameson (지음), 여홍상, 김영희(옮김), 창작과비평사 책 뒷 장을 펼쳐보니, 1997년 5쇄라고 적혀있다. 지금 읽어도 쉽지 않은 이 책을 나는 1997년이나 98년 쯤 구입했을 것이다. 아마 인적이 뜸했던 그 대학 도서관 서가에서 꺼내 읽은 아래 문장으로. 이처럼 벤야민(Walter Benjamin)의 평론들의 한 장마다에서 풍겨나오는 우울 - 사사로운 의기소침, 직업상의 낙담, 국외자의 실의, 정치적 역사적 악몽 앞에서 느끼는 비감 등 - 은 적합한 대상, 즉 종교적 명상에서처럼 거기에서 정신이 자신을 끝까지 응시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심미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순간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