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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일본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치가와 사오, <<헌치백>>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단편집을 읽긴 했으나,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도 보았으나, 일부만 기억날 뿐이다. 메이지 다음이 다이쇼 시대인데,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가 나쓰메 소세키라면 다이쇼 시대의 대표적인 소설가가 바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 그리고 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문학상이 바로 아쿠타가와 상이다. 일본의 흥미로운 점은 몇 명의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은 너무나도 놀랍지만, 대중적인 저변은 몇 백년, 몇 천년 전 섬나라 그대로다. 하긴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한국은 어떻게 조선을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될 테지만, 성리학(주자학)과 양반 계급의 그릇된 세계관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음을 일반 대중들은 잘 모르거나 애써 무시한..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에 대하여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에 대해선 누구나 한두번 이상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어떻게(뭘로) 돈 벌어?"라든가 "무슨 사업해?"라고 물어볼 땐 바로 비즈니스 모델을 묻는 것이다. 그래서 Business Model를 다른 단어로 옮기자면 Profit Model(수익모델)로 옮겨도 된다. 다만 이 단어는 좀더 재무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Business Model이 가지는 애매모호함, 두리뭉실함이 거의 없는 대신, 실제적인 재무 정보를 기반해야 하며, 숫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터넷 초창기에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른 Business Model라는 단어는 Business Model Canvas로 다시 한 번 유행을 탔으며, 이 방법론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자..

CDP, DMP, CRM, CIP

세상이 정신 없이 변하고 있다 보니, 뭐부터 챙기고 공부해야 할 지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아마 2년 전부터 심해진 것같은데, 특히 인공지능 관련 산업이나 주제가 본격화되면서 나도 좀 혼란스러워진 듯. 또한 지금 몸 담고 있는 회사 특성 상 디지털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면 최소 6개월 정도는 해당 프로젝트에만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지내다 보니,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기 보다는 알고 있는 것들을 쏟아내면서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이렇게 몇 년 지나면 세상 변한 걸 나만 모르게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운 좋게 최신 기술이 적용되는 프로젝트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디지털 업계도 큰 업체들 중심으로 질서 재편이 이루어진 상태라 벤처나 중소기업이 비집고 들어가기 어렵게 되었다..

흐린 하늘, 흐린 마음, 흐린, 흐린,

한동안 피프티피프티 노래를 들었는데,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했다. 그녀들의 인터뷰를 보며 성격들도 다 좋구나 생각했더니만, 다들 귀가 얇았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전 세계 어딜 가더라도 신뢰(trust)는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덕목이다. 애덤 그랜트Adam Grant는 대놓고 기버(Giver)가 되라고 조언했다. 우습게도 신뢰란 먼저 믿어줄 때 생기는 것이지, 신뢰해주지 않는다고 비난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안타깝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피로도가 전 세계적으로 누적되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어떻게든 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할 것이고 이는 리더십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푸틴의 러시아도 비슷할 것이다. 지금 경제적으로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에게 언제까지 ..

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미셸 포르트(지음), 신유진(옮김), 1984북스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했을 때,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 더듬어 보니 그녀의 소설은 딱 한 권 읽었다. 더 있을 듯한데, 기록된 것은 뿐이었다. 이 소설에 대한 내 평가도 평범해서 금세 잊혀진 소설이었다. 그 당시 읽었던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나 미셸 투르니에와 비교한다면 정말 재미없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 소설은 아니 에르노에게 있어 자신의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린 작품이었음을 이 인터뷰집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바로 글이에요. 글은 하나의 장소이죠. 비물질적인 장소. 제가 상상의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기억과 현실의 글쓰기 역시 하나의 도피방식이에요. 다른 곳에 ..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지음), 을유문화사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건축 관련 책은 흥미진진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건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구성하고 있던 사상이나 문화, 실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적 인간이라고 하였을 때, 건축가를 떠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학자이면서 예술가이면서 사상가. 이것이 이상적인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랄까. 이 책은 그런 측면을 맛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 만 하다. 20세기 후반, 우리의 일상을 가장 크게 바뀐 발명품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휴대폰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것도 너무 대단한 발명품이긴 하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세탁기'라고 할 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세탁기'..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를 그리워할 것이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그는 나에게 현대소설을 가르쳐 주었다. 소설론 수업이 아니라 쿤데라의 소설이!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형편없는 문학강사들과 평론가들은 하일지의 소설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들이 왜 로브-그리예나 미셸 뷔토르를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늘 밀란 쿤데라가 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궁금했다.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밀란 쿤데라는, 안타깝게도 체코에서는 조국을 버리고 떠난 이방인일 뿐이었다. 의 보후밀 흐라발이 체코에 남아 그 곳에서 싸우며 글을 쓴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토니 주트는 20세기를 회고한 책에서 그의 체코 친구들은 밀란 쿤데라가 서방에서 인정받고 인기가 많은 것에 대..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 데이비드 호크니

예술가의 초상(두 인물이 있는 수영장)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캔버스 위에 아크릴물감, 210cm*300cm, 1972년도 작품 외로움에 대한 작품이라고 하면 어떨까, 아니면 그리움에 대한 작품이라고 한다면. 이건 동성 연인에 대한 것이기도 하면서 인상주의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30대 중반의 데이비드 호크니는 동성 연인과의 헤어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회화와 사진 사이를 오가며 원근법에 대한 회화적 고찰을 이어나간 작품이기도 하다. 전자의 측면에서 외로움에 대한 작품이며, 후자의 측면에서 인상주의자들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작품인 셈이다. 카메라의 등장으로 인상주의가 사진이 가지는 환영주의를..

성 바르톨로메오 조각상

마르코 다그라테(Marco d'Agrate, 1504-1574)의 조각상 은 밀라노 두오모 성당 안에 있다. 내가 왜 이 작품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보고 끔찍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 예수 그리스도의 12사제 중 한 명인 바르톨로메오 성인은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산 채로 피부가 벗겨지는 형을 당하며 십자가에 묶인 채 순교하였다. 그래서 바르톨로메오 성인의 상징은 벗겨진 살가죽과 칼이다. 아래 조각상에서 몸을 두르고 있는 것이 바로 벗겨진 살가죽이다. 그래서 몸은 처참할 정도로 드러나 보는 이를 아프게 한다. 전형적인 매너리즘(*) 작품으로 흔들리는 신앙을 잡기 위한 처절함이 드러난다. 16세기는 심리적 차원에서 중세적 세계관과 근대적 세계관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시대다. 양식적으로는 근대로 넘..

문신(타투)과 그리스 청동 투구

집 앞에 골목길 이십대 초반의 여자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전자 담배를 피우면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하얀 두 다리가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고 그 위로 무채색 주방 앞치마가 포개져 있었다. 흰 색 반팔 티셔츠 위로 목덜미 옆으로 살짝 문신(타투)이 보였다. 그 작고 앙증맞은 문신은 아이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더 부각시켰다. 하얀 살갗 위로 희미한 담배 연기로 흘러 지나갔다. 여자아이는 핸드폰을 보던 얼굴을 들어올려 맞은 편 건물 벽을 향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하지만 담배 연기는 금세 사라졌다. 내 짧았던 이십대처럼. 모든 것이 절망스러웠던 시절, 나는 모든 것을 위선이라 여기며, 나 또한 위선으로 포장했다는 걸 그 땐 몰랐다. 거친 말을 진실된 태도라 여겼고 술만 마시면 아무 이유없이 취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