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파아란 영혼






히페리온의 노래 

J. Ch. F. 횔덜린(지음), 송용구(옮김), 고려대 출판부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삶이란, 제가 확신하건대 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시는 낯설지 않으며, 앞으로 우리가 보겠지만 구석에 숨어있습니다. 시는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 튀어나올 것입니다." 

- 보르헤스, <시라는 수수께기> 중에서(<<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11쪽) 



시는 아무래도 원문 그대로 읽어야 제 맛이다. 번역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동일한 단어라고 언어마다 그 어감이나 뉘앙스, 풍기는 멋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글로 옮겨서 밋밋한 시라도 원문으로 읽으면 풍성한 느낌을 주는 시일 수 있다. 몇 해 동안 영시를 읽으면서 배운 바라고 할까. 


횔덜린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으나, 그의 시를 제대로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백 여년 전 독일 튀빙겐, 헤겔과 셀링이 있었고, 루소의 사상과 나폴레옹의 혁명 공화정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신고전주의자들과 낭만주의자들이 뒤섞여, 서서히 싹트던 민족주의적 이상을 노래하던 그 때, 그 당시 가장 위대한 시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모든 이들이 프리드리히 횔덜린이라고 말할 것임에 분명하다. 


만약 내가 독일인이라면, 그의 <독일인의 노래Gesang des Deutschen>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호소력 짙은 시가 될 것이다. 지금도 그러한데, 그 당시에는 어땠으랴. 하지만 한글로 읽는 이 시집은 횔덜린을 앍고 그 시절의 분위기, 그리고 강렬한 이상과 염원으로, 그리스 고전주의적 미학을 성취하고자 할 때의 시학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겠지만, 시 특유의 감미로움이나 위안, 서정적인 표현이나 비유를 즐기기에는 너무 관념적이라고 할까. 


그래도 시 읽기란, 잠시 내 몸과 마음을 놓고 쉬어갈 수 있는 휴식일 것이다. 


이 시집만 읽는 건 재미있을 듯하지 않고 그 당시 독일의 분위기라든가, 독일 문학 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더 흥미로울 듯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하지만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며 인간의 이성적인 냉담함을 약화하는 힘으로 간주되어 왔던) 감상벽이 단숨에 가면을 벗고 증오 속에, 복수 속에, 피를 보는 승리의 환희 속에 항상 존재하는 "광포함의 상부구조"로 등장하는 순간이 (한 인간의 삶에서나 한 문명의 삶에서) 올 수 있다. 내게 음악이 감정의 폭음으로 들린 반면, 크세나키스의 곡에서 소음의 세계가 아름다움이 된 것은 바로 그런 때다. 그것은 감정의 더러움이 씻겨나간 아름다움이며 감상적인 야만이 빠진 아름다움이다. 

- 밀란 쿤데라, <<만남>>, 123쪽 









크세나키스Xenakis의 음악을 매일 같이 듣는 건 아니다. 1년에 한 번 정도, 그것도 우연히 듣기 시작해 끝까지 듣는다. 솔직히 쉽지 않다. 밀란 쿤데라의 산문 속에서 크세나키스를 읽었고, 오늘 크세나키스 음반을 꺼낸다. 두 장으로 구성된크세나키스의 음반은 Naive의 "La Collection" 시리즈 중의 하나로 출시되었다.  


두 번째 시디의 두 번째 음악은 Tetora를 듣는다.  나에게도 밀란 쿤데라가 이야기하는 '아방가르드의 속물 근성'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본다. 




밀란 쿤데라는 '소음의 세계'라는 표현으로 소음에 가까운 크세나키스의 음악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일상의 소음은 그냥 시끄러울 뿐이지만,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더 시끄러워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마치 쇠사슬같은 소음이랄까. 무직하고 딱딱하며 두툼하게 각이 져서 귀를 무겁게 만든다. 



올리비에 메시앙은 크세나키스의 음악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이전 단계의 음악과 대립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유럽의 음악을, 유럽의 유산 전체를 우회한다. 그의 출발점은 다른 곳에 있다. 그의 출발점은 인간의 주관성을 표현하기 위해 자연으로부터 유리되었던 음이 내는 인위적인 소리 안이 아니라, 세상의 소리 안, 마음 속에서 분추로디는 것이 아니라 마치 비가 내리는 소리나 공장의 왁자지껄한 소리 또는 대중의 고함소리처럼 외부로부터 우리를 향해 도달하는 '음(音)의 덩어리' 안에 있다. 

- 밀란 쿤데라, <<만남>>, 125쪽



예전엔 라디오에서 듣거나 누군가에서 빌리지 않는 이상, 듣지 못했던 음악들도 Youtube에서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편리함 속에서 정작 내 주위엔 음악 듣는 이들이 사라졌다. 어쩌면 문화는 심심함 뿐만 아니라 어떤 불편함마저 필요한 것이 아닐지. 크세나키스가 어떤 불편함 속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그래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노력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 속물적 아방가르드가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그리스 고전주의



플라톤이 인간 존재를 완전한 세계(존재의 세계)에서 불완전한 세계(생성의 세계)로 추방된 존재라고 말했을 때, 그 속에는 존재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와 생성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하는 플라톤 철학의 의도가 담겨져 있으며 동시에 불완전한 세계에서 완전한 세계로 향해 가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고전주의의 절정기가 막 끝나가는 무렵을 살았던 플라톤 철학은 종종 그리스 고전주의의 철학적 반영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것은 그가 이데아를 상정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그보다 ‘완전으로부터 불완전이 나왔으며 이 불완전은 영원히 완전을 향하여 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플라톤 철학이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에서 기인된 것이다. 


플라톤 철학이 그러했듯이 그리스 고전주의 양식은 완전함을 향해간 양식이었다. 즉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여, 완전하지 못한 어떤 대상을 영원히 정지해있으며 완전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양식인 셈이다. 그리고 뮈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은 이러한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뮈론, ‘원반 던지는 사람’ 

 



후기 고전주의 



기원전 431년 그리스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죽은 아테네 시민을 기리며 아크로폴리스에 모인 아테네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도시가 평범하기만 한 도시는 결코 아닙니다. 어떠한 다른 도시도 우리만큼 많은 정신적 즐거움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일년 내내 경기와 제사가 있고 우리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또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공공 건물이 나날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 … 우리는 지나침이 없이 미를 사랑하고 비굴함이 없이 지혜를 사랑합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부는 단지 허영을 위한 재료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성취를 위한 한 기회입니다. 우리는 가난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을 진정한 불명예로 여길 따름입니다. … … 단적으로 말씀드려서 우리들의 도시는 하나의 전체로서 그리스에 대한 한 본보기입니다. 모든 구성원의 평등, 정신적 독립성, 다방면의 업적, 육체와 두뇌의 완전한 자립 등올 인해서 우리들의 도시가 산 교육의 장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리스 고전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기원전 5세기 무렵에는 아테네와 그 주변에 약 2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현대와 비교할 것은 못 되지만, 기원후 1600년 경의 아테네가 폐허더미 속에 오두막 몇 채들이 있었던 것에 비한다면, 이 당시 그리스 아테네가 누렸던 물질적 풍요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물질적 풍요가 예술적 만족이나 성취를 가지고 오는가 이다. 예술사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게 되는 이 문제에 대한 정해진 답은 없다. 즉 물질적 풍요와 예술적 성취와의 정해진 상관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각 시대마다 어떤 측면에서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지만 때로 전적으로 다른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당시, 기원전 5세기와 4세기 경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는 물질적 풍요가 문화예술적 성취와 학문의 융성을 동시에 수반하였음을 분명한 사실이었다. 저 페리클레스의 연설 속에서 우리는 당시 그리스의 언어가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었음을, 그리고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에 대해서까지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만만하던 아테네가 스파르타와의 오랜 전쟁 속에서 한때 지중해를 호령했던 자신감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며 리십포스와 프락시텔레스의 양식도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대체로 딱딱한 느낌을 주던 폴리크레이토스의 조각상에서 리십포스와 프락시스텔레스의 부드럽고 상대적으로 여성적인 느낌을 주는 조각상으로 변하는 것이다. 


즉 개인과 사회(국가)의 균형과 조화가 무너지면서 개인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예술 작품들은 어떤 이상이나 당위로서의 세계를 반영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느낌이나 취향을 반영하기 시작하며, 극단적으로는 사사로운 장식으로까지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 고전주의가 개인주의의 발달에 일정 부분 기반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개인주의는 그 고전주의가 뒤로 후퇴하게 하는 기반이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 철학과 서사양식에서는 냉소주의가 물들기 시작한다)




리시포스의 조각



프락시텔레스의 조각, ‘헤르메스’




헬레니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스파르타가 그리스의 패권을 쥐게 되지만, 스파르타에게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끌고 갈 힘이 없었다. 이 때부터 지중해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지중해의 패권을 쟁탈하기 위한 몇 세기의 혼란기를 보내게 된다. 그리고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하여 헬레니즘이라는, 후대 학자들에 의해 쇠퇴기의 양식이며 바람직하지 못하고 천박한 양식으로 평가 받았던 예술 양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어떤 남자의 머리’, 델로스에서 출토, 기원전 80년경, 청동, 기원전 80년경, 높이 32.4 cm, 국립 고고학 박물관, 아테네



‘죽어가는 병사’



이제 세계는 분열되기 시작한다. 하나의, 정치경제적이며 학문적, 정신적 중심은 사라졌으며 사람들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새로운 것들 뿐이다. 이미 위대한 과거는 사라졌고 눈 앞에 보이는 건 혼란스러운 모습들 뿐이다. 걸핏하면 전쟁이 나고 어제까지 만났던 이가 전투에서 죽어버리는 시절이 온 것이다.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지탱하기도 힘든 시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다양한 민족들이 뒤섞이게 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시작한다. 


헬레니즘 양식은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이면서 동시에 극단화된 자연주의적 경향을 띄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나의 체계가 무너졌지만, 그 체계의 유산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체계의 유산 속에서 이질적인 것들은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적 세계 속에서 용납되지 못했던 그 어떤 것들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하나의 완결된 세계로의 그리스 문화 속으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경우에는, 어떤 원리에 의한, 그리고 그것으로 수렴 가능한 자연주의적 양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눈 보이는 대로 나타낼 수 밖에 없는 자연주의적 양식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헬레니즘 조각들은 표현적이고 동적이며 애절하고 자극적이며 흥분을 자아내게 된다. 




라오콘 군상 




‘사모트라케의 니케’, 기원전 200년경, 대리석, 높이 244 cm, 루브르 박물관




하지만 사람들은 위대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우리가 예술 작품에 ‘실험적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예술가가 새로운 현상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양식적인 변화나 전적으로 다른 표현을 하는 경우이다. 그런 점에서 헬레니즘 예술가들은 실험적이었으며, 그 시도는 라오콘 군상이나 니케 상에는 성공적이었다. 


변해가는 것, 움직이는 것을 어떤 고전적 원리를 통해, 바람직한 어떤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처절하지만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감의 소산이 아니라 자신감을 잃어가는 와중에 그 자신감을 되찾기 위한, 하지만 끝내 그것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의 산물이었다. (* 바로크 양식과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를 향해가고 있었던 양식이었다.)



로마의 예술


기원전 700년경의 에트루리아 문명으로부터 로마는 시작된다. 기원전 50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석상에서는 당시 그리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표현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기원전 1세기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통일하였을 때에는 이러한 에트루리아 문명보다는 헬레니즘 문명에 속해있었다. 


헬레니즘 양식이 소아시아와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하였다면 이제 로마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여 북유럽, 북아프리카까지 포함하는 제국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로마의 예술 양식에는 ‘~주의’ 같은 단어가 붙지 못하게 된다. 즉 로마는 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가 아니라 여러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민족들과 지역들로 이루어진 제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단일한 양식이 지배했다고 보기에는 어렵게 되었으며 또한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몇몇 특징적인 양식들이 나타나지만 그리스 고전주의나 헬레니즘 시대와 비교해서 그 예술성이나 감동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양식들은 그리스나 헬레니즘 시대에 가지고 있었던 예술만의 자율성을 상실하였고 감동보다는 즐거움이나 유희의 대상이거나 또는 국가나 가문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공공 미술적 양식으로 전락해버렸다. 초상조각의 무덤덤한 표정은 지도자의 권위, 가부장의 권위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의 건축은 로마 사회가 외양적으로는 얼마나 굳건하고 체계적이었던가를 보여주는 양식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은 아치들로 이루어진 긴 복도와 계단, 몇 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에서 그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큰 건물이었으며 건축공학적으로도 놀라운 걸작이었다.



콜로세움, 72-82년, 로마



판테온



하지만 콜로세움의 건축공학적 기술은 판테온에서는 또다른 기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판테온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투박하고 무거워 보이는 외양과 달리 내부의 모습은 화려하고 신비적이며 종교적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외부와 내부의 분리는, 어쩌면 로마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기 전까지 로마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범람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들은 대체로 내세적이었고 신비주의적 경향을 띄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플로티누스의 철학 사상은 이러한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로마인들은 국가의 의무에 충실히 복무했고 가문의 전통에 누가 되지 않으려 행동했으며 물질적인 풍요와 로마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풍요와 자부심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이나 전통을 기반으로 할 때에만 빛날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로마는 그렇지 못했다. 그만큼 현실적이었던 것일까. 즉 현실적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개인의 희생을 요구했던 것은 아닐까.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드>는 이러한 로마 건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한 개인의 열정과 노력, 희생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 개인을 바라보는 연민까지 담겨있다. 한 쪽으로는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나아가는 개인을 닮고자 하는 시선이 있으며 한 쪽으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고통과 희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그리고 로마인들은 공적 세계 속에서는 전자를 취했지만 사적 세계 속에서는 후자를 택했다. 이러한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분리는 로마의 사회가 초기 신분 기반의 사회였다가 후기에는 계약 기반 사회로 넘어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과도한 개인주의는 개인중심주의로 나아가며 그리고 아예 공적 세계는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로마의 회화 양식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기원전 20년경, 대리석, 높이 203 cm, 바티칸 박물관(로마)



아라비아인 필리푸스 황제, 244-249년, 대리석, 실물크기, 바티칸 박물관. 




아마 폼페이의 유적이 발굴되지 않았다면 로마 시대의 회화 양식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면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회화 양식은 이전 시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식으로, 또한 로마의 건축이나 초상조각과도 극히 다른 양식으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치밀하게 사실적인 표현으로 만들어진, 그래서 딱딱하고 무덤덤해 보이는 조각상과 달리 회화 양식은 몽환적이며 화사하게 꾸며져 있다. 


이러한 조각 양식과 회화 양식의 단절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바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분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각 양식은 공공적인 성격이 강했다면 회화 양식은 집 안에, 개인의 즐거움과 향락을 위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단절에서 우리는 국가의 이상이나 가치, 혹은 가문의 전통(* 로마 시대에는 전적으로 가문적이며 가부장적인 사회였다)과 개인의 이상과 가치가 분리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분리와 단절은 사회 속에서의 개인을 고립시켰고 공적 영역의 가치와 의무는 사적 영역 속의 개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그 무엇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 때 사회는 신분적이고 황제를 중심으로 한 일원화되고 체계적인 것에서 계약적이며 황제를 중심으로 한 세계와 무관한 다른 체계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즉 개인은 공적 사회와 격리되고 공허해지면서 일회적인 재미나 저 세상에나 있을 법한 환상을 꿈꾸게 되는 것이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되는 회화 양식은 이러한 로마 시민들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폼페이 유적의 벽화 1. 




폼페이 유적의 벽화 2. 




폼페이 유적의 벽화 3, 플로라.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북방의 이민족들은 끊임없이 침입해 들어왔으며 로마 사회 내부에서는 동방의 여러 신비스러운 종교들이 급속도로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이 때 기독교는 이러한 종교들 중에서, 로마 황제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위험한 종교였다. 그리고 그만큼 강력하고 혁명적인 종교였다. 공적 영역에서 이탈해가는 로마 시민들은 한 쪽으로는 환상을 쫓으면서 공허를 달래고 있었으며 한 쪽으로는 종교에 대한 심취로 정신이 나가 있었던 셈이다. 





- 위 글은 2004년 초에 쓴 노트입니다. 이 때 서양미술사를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였고, 그 해 말에 작은 서양미술사 책을 공저하기도 했습니다. 책을 내고 난 다음, 미술 관련 책은 거의 팔리지 않고(인문학책보다도 더), 진지한 책은 아예 전공자들조차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ㅡ_ㅡ;; 미술사는 참 흥미롭고도 진지하며 그 어떤 인문학 분야보다도 통찰력을 전해줄 수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깊이있는 공부를 하기에는 여러모로 힘에 부치긴 하네요.책을내고 난 뒤 미술사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여 노트를 계속 업데이트했는데, 언제 다시 책으로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희랍 철학 입문 - 10점
W.K.C.거스리 지음, 박종현 옮김/서광사




희랍철학입문, W.K.C.거스리(지음), 박종현(옮김), 종로서적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81년 초판의 1997년 17쇄본이다. 그리고 서광사에서 다시 나왔으니, 이 책이 계속 나온다는 건 그만큼 학생이 읽기 최적의 책이라는 셈일 게다.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희랍적 사고 방식
- 질료와 형상
- 운동의 문제
- 휴머니즘으로의 반발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이 책은 철학에 관심있는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되는 책 중의 하나다. 화이트헤드가 '철학사란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고 이야기하듯, 플라톤 철학은 철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철학이라면, 플라톤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희랍(그리스) 철학 전반을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적 맥락 속에서의 플라톤 이해와 현대적 관점에서의 플라톤 이해는 다르기 때문이고, 전자는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서는 반드시 행해야 하는 과정이다. 

나는 이 책에 대한 본격적인 정독은 최근 몇 년 전에서야 이루어졌다. 책도 꽤 어렵게 구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한 두 번의 도전 끝에 완독할 수 있었다. 특히 arte(아르테)*에 대한 설명과 운동(잠재태와 능동태)에 대한 설명은 그동안 명확하지 않았던 나의 이해를 보다 심화시켜 주었다. 

워낙 대단한 책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 책은 철학 전공자에게 필요하기도 하지만, 인문학 전반에게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 아르테arte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는 '덕'으로 번역하며, 긴 역자주석이 달린 단어이기도 하다. 정확한 한국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대 언어로 번역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점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이 단어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오래된 문고판 책을 꺼내 읽는다. 한창 공부를 할 때다. 1990년대 후반, 이 책은 지방의 작은 서점에서 - 지금은 없어졌을 - 구했다. 짧지만, 내용은 탄탄하고 전문적이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에 대해 짧지만, 매우 정확한 언급이 담겨있다.

'오뒷세이아'는 같은 10년이란 긴 세월동안의 표류와 귀국을 41일 속에 압축한다. 사건은 극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진행된다. 호메로스의 말은 유창하면서 단순하고 기교적이면서도 그 기교를 느끼게 하지 않고, 자유로이, 미끄러히, 장대히 흘러간다. 장려한, 인간을 초월한 광휘 속에 절절한 애조를 띠며 말해진다. 어떠한 용사라 할지라도 인간의 아들로서 태어난 자의 힘의 한계와 세상의 덧없음을 알고 있다. 이것이 다만 강하기만 한 영웅을 만들지 않고 강함과 애처로움이 상접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결코 체념이나 미신의 세계가 아니다. 지극히 밝은 것이다. 이윽고 언젠가는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한 인간은 신들의 행운을 얻지 못할지라도 절망에는 빠지지 않는다. 아니, 반대로 그러하기에 노력을 쌓아 영원불멸의 이름을 얻으려 한다. 이것이 그리이스 문학, 아니 그리이스인 전체의 하나의 특징이다. 그들은 인간의 아들인 것의 한계를 뼛 속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중요한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 중에 인간만큼 덧없는 것은 없다. 그리이스 문학에서 되풀이 강조되는 이러한 생각과, 이것을 어떻게 해서든 밀쳐 버리려는 분투와 노력, 거기에 그리이스 인간성의 하나의 유래가 있다.
- 코우즈 하게시루 & 사이토 닌즈이 지음, '그리이스 로마의 고전문학', 이재호 옮김, 43쪽, 탐구당, 1982년



그리스의 고전 문학이 아직도 호소력이 있고 가슴 절절한 이유는 인간이 가지고, 가질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질문-우리는 누구이고, 왜 살아가는가?-에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세의 작가들은 여기에서 배워, 인간이기에 자신의 영혼과 생의 고결함을 지키고 살아가야 하는,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적 비극 상황 속에서 살아내는 어떤 생명력 - 베르그송이 찬탄했던 엘랑 비탈과 같은 - 을 그려내게 된 것이다.

위대한 고전주의는 그리스 문학에서 그려졌던 바의, 그런 인간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조형적 대응물은 '슬픔에 잠긴 아테나(Mourning Athena)'가 될 것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로 등장했던 아테나. 이 여신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 도시의 운명에 대한 아테나의 숙고를 만나게 된다.




'슬픔에 잠긴 아테나'는 파르테논의 조각에 비하면 거의 소품에 지나지 않으나 완전한 의기소침 상태를 완벽하게 통어된 형식으로써 표현하고 있는 점이라든가, 일체의 무리하고 경련적이고 무절제한 느낌을 말끔히 극복하고 있다는 점, 그 자유롭고 경쾌하면서도 침착하고 의젓한 점 등에서 그리스 고전주의의 예술 이외에서는 이에 비견할 작품이 없을 정도이다. - 아놀드 하우저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2005년 늦은 봄에 올린 포스팅을 새로 올린다.
야니스 크세나키스.
그리스가 자랑하는 현대음악 작곡가다. 얼마 전 나이브에서 야니스 크세나키스 박스 세트를 구입했다. 놀라운 박스 세트였으며, 지금 듣고 있는 동안 흥분과 전율을 감출 수 없다. 그 박스 세트에 대한 리뷰는 다음에 올리기로 하고, 몇 년 전 글이긴 하지만, 다시 올린다. 

*      * 
 
현대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고작 해봐야 에릭 사티나 바르톡 정도. 뽈 발레리는 '회화만한 지적인 예술은 없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지적인 것들의 대변자라 할 수 있는 수(수학)로 바로 옮길 수 있는 예술은 회화가 아니라 음악이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 중세 시대 내내 조형 예술이 철저하게 무시당한 것에 비해 음악은 신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의 낭만주의자들(후기구조주의자들)은 기하학주의라는 뿌리 깊은 편견에 도전하였지만, 실은 기하학주의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피타고라스-플라톤의 기하학주의는 더욱 강화되었다. 아무렇게 그린 선이나 도형을 무한히 반복하면 일정한 모형이 나온다는 카오스 이론은 우연한 낭만주의에서 규칙적인 고전주의로 가는 어떤 방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언어학에서 시작된 구조주의 또한 이 세계를 하나의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새로운 형태의 기하학주의는 아닐까.
(도리어 기하학주의에서 시작된 양자역학이야 말로 반기하학주의로 나아가는 흐름이 아닐까?)

현대 음악들 대부분은 불협화음을 사용하고  듣기 불편하고 자극적이다. 아마 아무런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감상자에게는 지독한 고문같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아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도 예외는 아니다. 음반을 구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듣는 것마저도 어느 정도의 인내를 감소해야만 하니까.

클래식 음악에 대한 문외한인 나에게도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매우 독특하다. 보통의 음악은 물결처럼 흘러간다. 그것이 협화음이든 불협화음이든. 그런데 크세나키스의 음악은 흘러간다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고 일정한 모양의 음들이 규칙적으로, 무리지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수학적으로 고도로 계산된 일련의 움직임들이 눈에 보이듯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음악을 듣는 내내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감성에 호소하기보다는 듣는 이의 지성에 호소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를 강요하는 듯 하다. 그는 건축적 음악을 만들었고 그것이 그의 음악적 신념이자 태도였다. 마치 잘 마무리된 대리석 벽돌처럼 생긴 음들이 흘러다닌다고 할까.

유튜브에서 그의 음악을 옮긴다. 즐거운(?) 감상을.


Ata 1/2



Ata - 2/2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2

  • 89명의 연주자가 동원되는 무시무시한 곡이지요. 저는 커플링된 Akrata를 가장 좋아합니다. ㅎㅎ

    • ㅎㅎ 저는 집에서 볼륨을 올려놓고 크게 듣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습니다. ㅜㅜ... (가족들이 싫어해서.. ㅋ)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울'을 창조적인 사람들의 특징으로 보았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꼴리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과 맞닿아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의 '우울'은 병든 자의 몫이다. 사회적 질병이 되어버린 '우울증'은 약물 치료와 정기적인 정신과 방문을 요구한다.

요 며칠 우울하다. 내부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외부적인 영향도 크다. 도로 한 복판에서 길을 잃어버린 어린 강아지와 그 강아지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강아지 바로 앞에서 멈추는 마을버스며, 소형 트럭이며, 자동차들이 낸 키익키익 소리가 내 귀에서 점점 멀어지는 풍경이며, 6호선 공덕역에서 역 안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로 몸을 던지는 젊은 사내며, 다리 하나가 없는 슈나우저가 인사동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며, ... 나를 어둡게 했다.

하나의 이익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 싸움의 원칙은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 싸움에서 이겨, 그 싸움의 규칙을 정해야만 되는 것이다.

플라톤이 이데아 세계와 현실 세계로 나누는 것은 그가 현실에서 희망과 비전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화는 이 세계관 속에서 깊어지고 성숙해지고, 결국 우울해진다. 위대한 고전 희극 작품이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 자신을 추스리고 신념과 각오를 다지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고전주의의 위대한 비극 작품이 가지는 힘이고 매혹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힘을 가지는 것은 희곡의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신탁을 끝까지 거부하며 싸웠던 오이디푸스의 신념과 각오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운명(moira)의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끝까지 저항하고 지켜내기 때문이다. 

오늘, 종일 바쁘다. 적당하게 우울하고 쿨한 음악은 힘이 되기도 한다.


George Benson, Golden Slumbers/You Never Give Me Your Money
신고

Comment +0



슬퍼하는 아테나를 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 고전주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걸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 사람들이 생각했던 그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 운명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젊은 미켈란젤로를 매혹시켰고 자끄 루이 다비드로 하여금 그 대단한 천재성으로 고전주의 양식을 꽃피우게 했던 것이리라.

라신느를 읽은 지도 오래 되었다. 라신느를 읽을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 오기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Comment +0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프락시텔레스, <<헤르메스>> (기원전 4세기 경)

 

 

 

그리스의 남겨진 유적들을 보면 사람, 특히 벗은 육체를 표현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 그리스 고전주의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지도 서술의 힘이 퇴색되지 않고 있는 요한 요하임 빈켈만의 설명을 들어보세요. 그러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아마 우리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인의 육체와 비교해보면 아마도 이피클레스가 그의 이복형 헤라클레스를 닮은 것만큼도 닮지 않았을 것이다. 온화하고 청명한 기후는 그리스인의 최초의 인간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유년 시절부터 행하는 육체적 단련이 형성에 기품 있는 형태를 가져다 주었다. 여기에 젊은 스파르타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영웅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갓난아이 때문부터 번도 강보에 싸인 적이 없었고 7 때부터는 땅바닥에 잠을 잤고 투기(鬪技) 수영으로 어린 시절부터 육체를 단련시켰다. 스파르타 청소년을 오늘날 우리 시대의 나약하고 나태한 청소년과 비교해 보라. 그리고 예술가가 젊은 테세우스나 아킬레우스 심지어 디오니소스의 모델로서 앞의 사람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를 생각해보라. 어느 그리스 화가가 테세우스를 두고 가지 상이한 자태를 특징적으로 묘사한 있는데, 그와 같은 의미에 따르면 후자의 경우에는 호사스럽고 나약하게 장미처럼 키워진 테세우스가, 전자의 경우에는 육체로 단련된 테세우스가 표현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 청소년들에게 ()경기는 육체를 단련시키는 강력한 자극원이었다. 가령 올림피아 제전은 경기가 열리는 바로 지역인 엘리스에서 10개월의 연습 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최고상은 성인만 차지한 것이 아니라 핀다로스의 송가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이따금 청소년들의 몫이 되기도 했다. ‘신과 같은 디아고라스 닮는 , 이것이 모든 청소년의 최고의 소망이었다.

사슴을 추월하는 날쌘 발을 가진 인디언을 보라. 얼마나 원기왕성하고 신경과 근육은 얼마나 유연하고 민첩하며, 몸매가 얼마나 날렵한지를 보라. 호메로스는 이와 같이 신들을 묘사하였는데, 특히 아킬레우스를 날쌘 발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의 육체는 체조를 통해서, 그리스 거장들의 조상에서 있듯이 애매모호한 것도 군더더기도 없는 당당하고 남성적인 윤곽을 얻었던 것이다. 스파르타의 청소년은 열흘에 번씩 행정 감독관 앞에서 나체로 검사를 받았다. 그때 조금이라도 군살이 붙을 징후가 보이면 감독관은 한층 엄격한 절식(節食) 명령했다. 조금이라도 군살이 붙어서는 된다는 것이 피타고라스 계율의 하나였던 것이다. 오랜 옛적 그리스인들 가운데 투기에 지원한 청소년들에게 훈련 기간 유제(乳製) 식품 이외에는 먹지 못하게 것도 아마 동일한 이유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육체가 손상되는 것을 아주 세심하게 피하였다. 알키비아테스는 젊었을 얼굴을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피리를 배우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테네의 모든 청소년들이 그의 전례를 따랐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리스의 의복은 모두 자연적인 발육에 조금도 압박을 가하지 않게 만들어졌다. 그들의 의복에는 오늘날 우리들이 입는 옷처럼 특히 목이나 허리 혹은 허벅지 여기저기를 압박하여 아름다운 형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스에서는 여성들조차 아름답게 보이려고 몸을 조이는 옷은 입지 않았다. 스파르타의 소녀들은 대개 가볍고 짧은 옷을 즐겨 입어, 사람들은 그녀들을 엉덩이를 드러내 보이는 처녀들이라고 불렀다.

- 요한 요하임 빈켈만, <<그리스 미술 모방론>> 중에서 (민주식 , 이론과 실천)

 

 

그리고 부언하자면, 때는 기원전이었고 도시 국가를 지키기 위해선 군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시민이라면 군인의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육체에 관심은 당연히 높았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가벼운 권총이나 개인용 화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칼이나 창과 그리고 갑옷과 방패를 들고 다녀야 했습니다. 시대의 아름다움이란 이러한 삶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신고

Comment +0

늦은 봄날의 일상

가끔 내 나이에 놀란다. 때론 내 나이를 두 세살 어리게 말하곤 한다. 내 마음과 달리, 상대방의 나이를 듣곤 새삼스레 나이를 되묻는다. 내 나이에 맞추어 그 수만큼의 단어를.....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필립 솔레르스(Philippe Sollers)가 사드(Marquis de Sade)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에서 한국에서 사드의 책을.....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보르헤스, 문학을 말하다 This Craft of Verse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박거용 옮김, 르네상스 우리는 시를 향해 나아가고,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

대학로 그림Grim에서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W.G.제발트Sebald

아우스터리츠 Austerlitz W.G.제발트(지음), 안미현(옮김), 을유문화사 병상에 누워, 안경을 쓰지도 못한 채,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읽었다. 병상에서의 소.....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 일본인 저자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The Sense of An Ending 줄리언 반스(지음), 최세희(옮김), 다산책방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

쓸쓸한 커피숍

2016. 06. 10 오늘도 기다림은 이어진다. 그리움은 늘 그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서양철학사, 윌리엄 사하키안
서양철학사, 윌리엄 사하키안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