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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글을 쓰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매서운 바람이 어두워진 거리를 배회하던 금요일 밤, 그림Grim에 가 앉았다. 그날 나는 여러 차례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끔 내가 글을 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할 수 없다. 적어도 그것이 해피엔딩은 아닐 것임을 나는, 어렴풋하게 안다. 마치 그 때의 사랑처럼. 


창백하게 지쳐가는 왼쪽 귀를 기울여 맥주병에서 투명한 유리잔으로, 그 유리잔이 맥주잔으로 변해가는 풍경을 듣는다. 


맥주와 함께 주문한 음악은 오래되고 낡은 까페 안 장식물에 가 닿아 부서지고, 추억은 언어가 되어 내 앞에 앉아, "그녀들은 무엇을 하나요?"라고 묻는다. 그러게. 그녀들은 무엇을 할까.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할까. 콜드플레이가 왔다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이는 시간을 먹고 나는 청춘을 먹었다. 게걸스럽게 먹는 사이, 많은 것들을 잃고 얻었다. 노트 한 장을 찢어 길게 반으로 접어, 한 쪽에 내가 잃은 목록을, 한 쪽에 내가 얻은 목록을 적는 사이, 계절이 가고 계절이 오고, 너무 하얀, 그녀의 창백한 볼을 닮은 눈이 내린다. 반쯤 마신 맥주 잔 위로 하얀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쌓인다. 쌓인 눈 위로 서로 손을 마주 잡은 그들이 잔 위로 걸어나와 대학로 거리 어둠 사이로 사라졌다. 그렇게 취해가던 금요일 밤, 다행히 나는 그녀들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실은,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다, ...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녀들과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이 만날 수 없음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적어도 나는 앞으로 그 찬란하던 고통을 받지 않아도, 그렇게 투명하던 눈물도, 끝없는 저주의 언어를 경험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시 볼 수 없을, 하얀 잔 위로 그 발자국처럼, 그 쓸쓸하고 아름다웠던 청춘의 발자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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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점의 출판사 블로그에서 진행하는 서평 이벤트 2개에 참여했다. 

그리고 2개 다 당첨되었고 1주일 동안 2권을 책을 읽고 서평을 올려야만 했다. 허걱. 


1주가 지난 건지, 2주가 지난 건지 가물가물하다. 

한 권의 책을 빠르게 읽고 서평을 올렸다. 서평의 첫 문장이 이렇다. 

'이 책, 천천히 읽어야 한다' 

ㅡ_ㅡ;; 


나머지 책은 이제 서문을 읽었다. ㅜ_ㅜ 

(아, **출판사님 미안)


읽고 있던 손재권 기자의 책, 알렝 투렌과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책은 멈춰진 상태다. 


제안서 하나를 써서 수주했고 

여러 번의 미팅 끝에 또 하나 계약을 할 예정이다. 


조직 개편이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도 뽑아야 한다. 

아는 분의 소개로 '머리에 쥐 나는' 원고 작업을 하나 하고 있고 


그리고 오늘은 금요일이다.

그렇다. 금요일이다. 

아, 끝나지 않을 듯한 금요일이다. 


하지만 나는 남은 일들을 끝내야 된다. 

그러면 금요일도 끝날 것이다. 




직원들이 다 퇴근한 후 불을 끄고 있는 사무실은 뭔가 간결해보여서 좋다. 

나 혼자만 불을 켜놓고. 


하지만 사무실 구석 어둠 속에서 불투명한 형체가 아른거리듯한 느낌, 

귀신이 나올 것같은, 참 형편없는 공포를 아직도 느낄 땐, 

내가 참 형편없어진다. 


우스개 소리로 사무실 구석에 바 만들어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고객에게 술 마시게 하고 

마음에 드는 고객에게도 술 마시게 하여 

서로 손을 잡고 미래를 노래하는 회사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철 없는 생각했다.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근처 이마트에 들려 와인 한 병 사들고 가서 불꺼진 거실에 앉아 와인을 마셨다. 

그런데 이거 맛있네. 

로버트 파커 얼굴에 사인까지 있어 구입했는데, 

역시 마케팅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거짓말하는 마케팅의 시대는 가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마케팅의 시대가 온 것일까?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를 이야기했던 제임스 H. 길모어는 <<진정성의 힘>>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지만... 

 




한 때 '마구로앤와인'이라는 이름도 해변가 근처에서 술집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리고 그 술집하다가 죽은 후에는 '향유고래'로 환생해서 바다 깊숙한 곳에서 심해 오징어와 놀고 ... 


이렇게 금요일이 간다. 

금요일의 의미? 

그건 밤이 만들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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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 옆에서 2호선 선릉역까지 오는 건, 꽤 고역이다. 지하철 안에서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읽었다.

대학은 오직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뿐이며, 교수들은 오늘날의 철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슈가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보여질 수 있는 것 사이의 차이를 아는 것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다고 나는 느꼈다.
(13쪽)

... 때때로 우리는 석공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돌을 깨는 데는 의심이 깃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페이지마다 의심과 두려움 - 캄캄한 공포가 있다. - 조셉 콘라드
(3쪽)  


그 사이 많은 책들을 읽었다. 허균의 누이였으며, 조선 시대 가장 뛰어난 여류 시인으로 알려진 허난설헌에 대한 책을 읽었고, 조르주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를 꽤 힘들게 완독했으며, '창의와 혁신의 핵심전략'이라는 경영 서적도 한 권 읽었다. '햄릿'을 다시 읽었고,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도 다시 읽었다. 

전시는 더 많이 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쓰지 못했다.

어젠 서울옥션에서 114회 미술품 경매가 있다는 레터를 받았다. 그 레터 안엔 청천 이상범의 산수화 엽서 몇 장이 있었다. 건조한 사무실에 앉아, 한참을 생뚱맞은 표현으로 엽서를 쳐다보았다. 

집을 나서기 전에 금붕어 모이를 주면서, 잠시 웃었을 뿐... 

요즘 내 모습은 마치, 억지로 바쁘게 보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여 약간 서글퍼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것일 뿐.
 




일요일 아침이면, 내 방은 이렇게 변한다. 턴테이블엔 오래된 LP를 올리고, 휴일에 듣고 읽을 시디와 책, 잡지를 방 옆에 쌓아둔다.

내 일상이 위선적으로 보이는 건, 정말로 위선적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세상이 위선적이어서 그런 걸까.

마치 살아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지는 금요일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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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5시에 일어났다. 아직 어두울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도시는 환해 있었다. 2주 정도 청소를 하지 못한 탓에, 한 명, 옐로우빛깔 사내가 푸른 곰팡이처럼 서식하는 작은 빌라에는, 온통, 낡은 먼지들과, 이리저리 나뒹구는 시디들과, 이미 그 존재의 위력을 잃어버린 LP들, 읽다만 하이데거, 여러 권의 미술 잡지와 도록들로 채워져 있었다. 마치 형이상학적 대기의 밀림 같이 느껴졌다.  

지난 계절 벽에 걸어놓은, 철 지난 겨울 옷을 아무렇게나 걸치고, 사각형으로 구획지어진 밀림 속에서, 한 달, 두 달 밀린 여러 고지서들을 한 쪽에다 밀어제치곤, 브람스와 슈베르트를 들었다. 이른 아침, 낮게 깔리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향이 진한 커피를 마셨다. 육체는 그간 쌓인 피로를 못 견뎌했으며, 정신은 얇게 흐느적거렸다.

즐거운 금요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가끔은 '즐겁다'라는 단어가 가지는 허위가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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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연다. 방충망이 없는 쪽으로 여니, 가느다란 빗줄기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바람이 밀려온다. 금세 비는 그치고 얇은 구름 뒤 태양의 흔적이 책상 위로 와 닿는다. 여름 감기에 걸렸는데, 그간 피곤했었나 보다. 거의 12시간을 잤다. 오디오에 시디 한 장을 집어넣고 금요일 오전의 고요를 즐기려고 하지만, 내 일상은 그리 즐겁지 못하다. 소주를 마시곤 휴대폰을 잃어버린 탓에 연락처를 다 상실했으니, 연락할 곳도 그리 많지 않다. 자주 배는 아프고 술만 마시면 취해 인사불성이 되고 순수한 언어는 내 영혼을 빗겨 저 흐린 하늘 위로 달아나버린다. 암울하다면 암울하다고나 할까. 슬프다면 슬프다고나 할까. 아무렇지 않다면 아무렇지 않다고나 할까. ‘진리는 시간의 딸’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그런데 시간은 아직 딸을 낳지 않은 모양이고 진리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들은 필연을 가장한 우연의 연속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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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약속이 세 개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밤 10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벤처를 하다 망해먹은 이들이 하나둘 모여 술을 마셨고, 그 중 운 좋게 H그룹 홍보실에 들어간 모 대리가 술을 쏜다고 했다. 맥주를 서른 병 정도, 그 사이 J&B 리저브와 몬테스 알파 까르비네 쇼비뇽을 마셨다. 그리고 그 대리의 집에서 죽엽청주와 들쭉술(* 캡틴큐와 나폴레옹을 섞어놓은 듯한 북한 술)을 마셨다.

결국 뻗었다.

일어난 것이 토요일 오후 3시였으니, 그냥 술에 토요일을 그냥 날려먹었고 일요일도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겨우 밤에 힘들게 자전거를 끌고 나와 한강변을 달렸다. 몸을 적시는 서른넷의 땀방울들. 어느새 육체를 움직여야만 정신을 차리는 둔한 사람이 되어버린 건가.

둔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으로. 이 여름. 썩.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 반대의 사람이 되는 건 너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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