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28

게스 후Guess Who, 그리고 부메랑.

압구정 Guess Who.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벌써 9월말이라는 사실에 나는 놀라고 만다. 내 삶과 내 삶을 둘러싼 시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직, 내 감정만 시간과 관계 맺는다. 내 감정은 늙지 않고 상처 입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부메랑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그것의 궤도를 알지 못하고 그것의 속도를 모른다. 어딘가로부터 돌아온 것들과 마주 하는 중년.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상대에게 상처 입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상처 입힐 땐, 자신만이 소중하니까 ... 그리고 상처 입을 때는 언젠가 다시 보복하리라 다짐하고 상처 입지 않으리라 여긴다. 세상의 상처는 모두 부메랑이어서, 나에게 오지 않으면 내 아들과 딸에게, 혹은 그 후손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제한된 시간과 ..

misc. 2014.09. 05.

창원에 내려가기 위해 옷 몇 가지를 챙겨 집을 나왔다. 아내와 아이는 이미 창원에 내려갔고, 오늘 저녁 모임을 나간 뒤 심야 우등 버스를 탈 계획이다. 어젠 이런 저런 업무들로 인해 밤 늦게 사무실에 나올 수 있었고 벌써 내 나이도 사십대 중반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 사는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누군가 정해준 곳으로 갔으며, 심지어 대학 전공마저도 그랬다. 나처럼 고등학교 3년 내내 모의 고사에서 한 곳만 지원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그리고 그 대학 그 전공을 다 마치고 한참 후에야 내가 받은 대학 교육의 형편없음을 욕했지만). 한국에 사는 우리들은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 당하며 산다. 내 의지대로 의사결정 내리기 어려운 ..

비즈니스 단상 2014-4-15

어제 퇴근길 지하철에 헨리 민츠버그의 을 펼쳐 뒤적였다. 서두에 코닥의 사례가 나오는데, 전략 경영 관련 부서들 - 전략기획실, 경영기획부 등 - 이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다양한 리서치, 시장 자료를 바탕으로 경영 전략 등을 수립해 보고하다 보니, 어느새 현장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책상에서 작성된 근거들로만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코닥 같은 회사가 망하게 되는 이유라고. 이걸 읽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이들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보고만 받으려고 한다. 실은 상당수의 보고서는 믿을 것이 못 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기업의 잘못된 의사결정의 80%가 보고서 탓이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결국 사업 추진자는 반드시 현장으로 몸으로 부대끼면..

비즈니스 단상

종종 페이스북에 비즈니스에 대한 내 생각들을 메모하곤 한다. 그간 올렸던 단상들을 모아보았다. 잘못 뽑은 한 명의 직원이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망하기 직전에 깨닫는다. 기업의 느린 죽음(Slow Death)은 그만큼 위험하다. (2.27)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얼굴을 마주 보고 의견을 주고 받으며 대화를 해야 한다. 애초에 대화란 그런 것이다. 대화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짓 눈짓 손짓으로 하는 것이기에. (2.20)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위험(Risk)에 취약하다. 왜냐하면 실제 손실이나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위험은 그저 잠재적인 것일 뿐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으로 인해 실제 손실이나 피해가 발생하면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

사무실에서 난 키우기

제대로 잘 키우진 못해도 죽이지는 않는다.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방에서 반 년 이상을 버틴 난초들에게 물을 주었다, 어제 밤에. 업무 시간 중에 화분을 들고 화장실까지 옮겨 물을 주는 건 민폐인지라, 밤 늦은 시간까지 일하게 될 때 물을 준다. 입주해 있는 다른 사무실에도 난 화분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물을 주는 것일까? 회사 직원이 많을 땐 서른 명 가까이 들어와 있기도 하는데, 그 누구 한 명 화분에 관심 기울이는 이가 없다. 정치도, 회사도, 우리 마음도 매말라가는 시절이다.

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Journal de deuil 롤랑 바르트(지음), 김진영(옮김), 이순 이 책은 바르트의 어머니인 앙리에트 벵제(Henriette Binger)가 죽은 다음부터 씌여진 메모 묶음이다. 그의 어머니가 1977년 10월 25일 사망하고, 그 다음날 10월 26일 이 메모들은 씌어져 1979년 9월 15일에 끝난다. 그리고 1980년 2월 25일 작은 트럭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한 롤랑 바르트는 한 달 뒤인 3월 26일 사망한다. 그리고 그 해 쇠이유 출판사를 통해 이 책이 나온다. 롤랑 바르트 팬에게 권할 만한 이 책은 두서 없는 단상들의 모음이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으로 씌어지는 이 책은 짧고 인상적이다. 롤랑 바르트 특유의 문장들을 만날 수 있고 그의 슬픔에 대한 인상, 분석, 인용들을 읽을 ..

가벼운 나날이 되었으면.

점심을 먹지 않는다. 실은 아침도 먹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상태가 지속되고 수동적으로 변한다. 시간이, 이 세상이, 타인이 끄는 대로 이끌려 다닌다. 이럴 땐 긴 숙고나 반성, 여유나 독서 따윈 아무 소용 없다. 이제서야 나는 이 세상의 공포를 깨닫는다. 실은 무시해왔다고 할 수 있다. 늦게, 조금은 더 늦지 않았음을 다행스러워하며, 공포 속에서 발을 담그며 슬퍼한다. 그렇게 월요일이 갔고 화요일을 보낸다. *** "완벽한 하루는 죽음 안에서, 죽음과 유사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완전한 굴복에서. 몸은 나른하고 영혼은 온 힘을 다해 앞서나간다. 숨조차 따라간다. 선이나 악을 생각할 기운은 없다. 다른 세계의 빛나는 표면이 가까이서 몸을 감싸고, 밖에선 나뭇가지들이 떨린다. 아침이고,..

휴식에의 염원

작은 회사의 임원이 되고 난 다음, 편안하게 잠든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술에 취해 잠이 들던, 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일을 하던, 메일을 보내던, 고민을 하던, ... 심지어 잠이 들지 못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어제도. 최근에는 점심 거르기도 자주. 내 사업이었다면 어땠을까? 글쎄다. 올해의 실패는 인사(HR)다. 1명의 팀장을 제외하곤 모든 팀장들이 올해 채용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 10년 차가 넘거나 10년 가까이 되는 인력들이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한 번 이상의 고객 불평을 만들었고, 심지어 여러 번이거나, 기본적인 태도가 안 되어 있었고, 서비스 마인드 부재에 고객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가 아예 없었다. 내가 맡은 부서가 아니라 그들을 인터뷰하거나 채용 과정에 의견을..

어느 화요일 선릉역 인근

무관심한 듯 시선을 거두는 행인 A, B, C, ... 무수한 알파벳들은 실은 다른 알파벳들, 다른 숫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봐주고 어떻게 평가할까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가치 기준을 가지고 봐주고 평가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였다. 커피 위로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선릉역 인근 빌딩숲에서는 그 수를 세기 어려운 모기들이 가을 깊숙한 곳까지 진을 치고 있었다. 화요일이 왔고, 수요일이 올 것이고, 목요일, 금요일, ... 2013년이 지날 테지만, 우리에게 인생의 해답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안 그녀는 연애를 포기했고 그 남자는 한국을 떠났다. A는 그림을 포기했고 B는 사업을 시작했다. 15세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세속적 가치, 뉴튼이 공표했고 데카르트가 뒷받침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