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28

세상사는 결국 노동이고 모든 노동은 치열함을 요구할 뿐 감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최근 이메일 서명에 문구를 바꿨다. “세상사는 결국 노동이고 모든 노동은 치열함을 요구할 뿐 감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 조정래(소설가) 위 문장이 나온 기사는 아래다.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1514 **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고 결국 치열한 성실함만이 생의 변명이나 존재 이유가 될 것이다. 어제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문제는 늘 생기기 마련이고 해결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하지만 나이 들고 책임이 커지다 보니, 답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조차 걱정하게 된다. 책임과 걱정은 비례하나 보다.

내 마음, 쓸쓸한.

이우환, 사방에서(From the four direction), 1985 다행이다. 이우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니. 내가 조금 더 나이가 들었고, 내가 조금 더 일찍 돈을 벌기 시작했다면 이우환의 작품을 살 수 있을련지도 모르리라. 기회가 닿으면 포스터 액자라도 구해야 겠다. 가을, 살찌는 계절이지만, 나는 지쳐가기만 한다. 아마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직장인들도 그럴까? 하긴 이런 때가 있으면 저런 때도 있는 법. 오후 외부 회의를 끝내고 들어온 사무실,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가 아래 시를 읽는다. 生의 쓸쓸한 오후를 生의 쓸쓸한 오후를 걸어갈 적에 찬란하여라 또 하루가 가는구나 내 무덤에 풀이 한 뼘쯤은 더 자랐겠구나 - 최승자 ( 2013년 가을호 수록) (* 위 시는 htt..

화양연화와 겹쳐지는 내 일상

눈 앞에 펼쳐지는 색들이 변했다. 조금 투명해지고, 조금 분명해지고, 다소 차갑고 냉정해졌으며, 약간 쓸쓸해졌고, 그리고, 그리고, 지난 더위에 지친 표정으로 흔들거리며 색채가 퍼지며 사라졌다. 온도가 내려갔고 바람이 불었고 사람들은 숨길 수 없는 불안을 숨기며 웃었다. 아니, 울었다. 실은 그게 웃음인지 울음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말을 하고 싶었으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고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내 존재의 집은 나에게 아무 말도 없고 내 곁을 떠났다. 화양연화를 떠올리며 십 수년 전, 화양연화를 혼자, 극장에서 보고 난 다음 월간지 기자와 술자리에 티격태격했던 걸 추억했다. 그 땐 '사랑의 현실에 타협한 왕가위'를 비난했으나,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왕가위가 옳았음을 알게 된다, 되었다. 간밤 ..

불편한 공포,들.

계절이 사라진 자리에 마음의 불편함만이 자리 잡는다. 건너고 싶지 않은 저 다리의 이름은 시간. 혹은 계절. 내 허약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느껴지는, 서늘한 공포. 커피의 향이 사무실 책상 위를 가득 채우지만, 초여름 바람이 열린 창틈으로 들어와선 낚아 채어간다. 향기는 사라지고 어수선한 책상 위 서류더미는 내 마음 같다. 혹은 그대 마음. 해소되지 않은 채 쌓여가는 정신적 모던의 유산들. 불편한 언어들. 그리고 공포. *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그러나 내 소망은 너무나 소..

흩날리는 봄날의 문장.들.

아직도 오열을 터뜨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가 아니라 오로지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 뿐이다. ... ... 따라서 모든 강박 관념과 상반된다 할지라도 이같은 가증스러운 추함이 없이 지낸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 조르주 바타이유 과연 그럴까? 하긴 아름다움은 오열을 터뜨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퇴폐로 인한 상처는 오열을 불러올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니 바타이유의 말이 맞는 걸까. 그렇게 동의하는 나는 그러한 퇴폐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일까. ... 아련한 봄날, 외부 미팅을 끝내고 잠시 걸었다. 부서지듯 반짝이는 봄 햇살 사이로 지나가는 도심 속 화물열차. 바쁜 사람들 사이로 새로운 계절이 오는 속도처럼 느리게 지나쳤다. 그 사이로 사람들과 자동..

해마다 벚꽃이 핀다.

해마다 벚꽃이 피지만, 벚꽃을 대하는 내 마음은 ... 세월의 바람 따라 변한다. 오늘 아침 늦게 출근하면서 거리의 벚꽃을 찍어 올린다. 여유가 사라지고 마음은 비좁아지고 있다. 고민거리는 늘어나고 글을 쓸 시간은 거의 없다. 지금 읽고 있는 김경주의 '밀어'도 몇 주째 들고 다니기만 하고 있다. 초반의 독서 즐거움은 금세 지루함으로 바뀌고 블랑쇼나 투르니에 수준의 산문을 기대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김경주의 산문은 별같이 반짝이는 몇 부분을 제외하곤 그의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봄이다. 주말에는 근교 교외로 놀러 나가야 겠다. 봄의 따스한 아름다움이 사라지기 전에 내 육체 속에 그런 따스함을 밀어넣어야 겠다.

오랜만에 포스팅.

의사 말로는 피곤할 때, 술을 마시면 편도선이 부어오른다고 한다. 올해 들어 연일 주말마다 근무를 했고 제안서를 제출하기 바쁘게 수주하고 프로젝트 셋팅하자마자,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이슈가 생겨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직도 진행 중이고, 남 탓을 하기 전에 내가 책임자인 관계로, ...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가족은 가족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나는 나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할라 치면, 주말 집은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겨우 가족들이 잠든 이 시간이 되어서야 뭔가 정리를 해보고자 노력해보지만, 쉽지 않다. 본격적인 봄이 오면 좀 나아지려나.

어느 토요일 새벽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빈둥거리고 있다. 일찍 자긴 했다, 아니 깊은 잠을 자지 않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해답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방식대로 한다면, 다소 출혈이 발생한다. 그 출혈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책임질 것인가, 아닌가. 적고 보니, 전형적인 천칭자리의 접근법이다. 늘 그렇듯이 해답은 알고 있다. 딱 내 수준이긴 하지만. 찍어놓은 사진들은 많은데, 한결같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아래 사진들은 제작년 가을 경주 여행에서 찍은 것이다.

대선이 끝난 후

잠들기 전 오랜만에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려고 글을 적었는데, 끝내지 못했다. 어찌된 일인지 주저리 주저리 ... 글은 끝나지 않고 두서 없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로 인해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멘붕 모드가 되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현 정부의 여러 잘못된 정책들과 과거 회귀적인 여러 시도들(일부는 성공까지 한)에 대한 반발, 그리고 과거 정치적 자유를 박탈당했던 시대에 대한 향수에 대한 본능적 반발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유하는 어떤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서민을 위한 정책이나 지방 균형 발전에 대한 정책에 대해서도 국민 통합에 대해서도 .... 그런데 아니었다! OTL. 반대였다. 대다수는 그냥 찍는 것이다. 정책 비교나 현 정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