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32

요즘 세상에 대한 생각.들.

지난 4월 중순, 4.19와 관련된 TV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문득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이들의 인터뷰는 나오는데, 왜 당시 경찰이었던 이의 인터뷰나, 자유당의 입장에서 투표를 독려했던 공무원이나 학교 선생들의 인터뷰는 왜 나오지 않을까 의아스러웠다. 그리고 생각은 한 발 더 나아가, 현대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지배와 피지배가 바뀐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에 이르렀다. 피지배의 위치에서 서서 시위를 하던 상당수가 물질적 여유,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정신적 평온함으로 인해 스스로 지배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착각을 가지며, 자신이 언제 피지배였냐고 반문하게 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지배의 계층은 별도로 존재하며(어쩌면 이것은 지배의 관념, 혹은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르겠다), 피지배..

계단 위의 봄

계단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어딘가 올라간다는 것은 언젠간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바람이 불었다. 궁궐 건물 아치형 입구 옆으로 살짝 비켜 불어들어온 바람은 실내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따가운 햇살에 푸석푸석해진 머리칼을 스다듬어 올렸다. 이마 살갗이 거친 손바닥에 밀렸다. 따끔거렸다. 환상은 쓸쓸함 사이에 깃들고 공상은 한 잔 술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은 잡을 수 없는 파도였고 내 곁에 머무는 모든 것들의 존재는 느낄 순 있었으나, 소유할 순 없었다. 잠시 눈을 감고 먼 미래를 회상해본다. 앞으로 다가올 것이지만, 이미 경험했던 어떤 것들의 변형이거나 알레고리에 가까울 것이다. 어느 새 봄은 왔고 내 육체는 봄 향기에 지쳐 쉽게 피로해지고 있었다.

몰락을 향해가는 타인들

집중해서 뭔가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집중은 되지 않고 마음만 어수선하다. 어제 아침 기사를 보니, "당신없인 살 자신없다"며 기러기 아빠인 중년 남성이 자살을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혼자 아이와 아내를 그리워했던 아빠는,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까지도 이젠 멀어졌다고 생각한 아내와의 이혼을 거부하다가 끝내 이혼하고 자살을 택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가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한국에서 오래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어느 미국인은, 한국에 살면서 '행복하다'는 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가 살았던 수 십 년 간 한국은 높은 경제 성장과 물질적 부, 그리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들은 도리어 더 불행해..

blogging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은 지 벌써 2주가 지난 듯 하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여전히 쓸쓸하기만 한 술과 가까이 지내고 육체를 돌보지 않으며 넓은 방안의 먼지들과 둔탁해지는 영혼을 보며 안타까워만 할 뿐이다. 가끔 만나게 되는 묘령의 아가씨에게 던지는 내 '가을의 잔잔한 물결'(秋波)은 번번히 우아하지 못한 몸짓을 보여주며 시간의 연기 속으로 사라져 갔다. 어두운 미래 만큼이나 어두운 내 가슴의 그림자를 내가 어쩌지 못하는 까닭에, 어느 화요일 비 소리는 종종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준다. 거의 10년만에 다시 본 로만 오팔카의 그림을 보고 너무 좋았다. 그러나 로만 오팔카보다, 이우환보다 귄터 워커의 작품이 나에게 압도적이었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둔탁한 운동의 두께 ..

내 인생 최대의 적

뜨거운 차가 부담스러워지는 계절이 온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뜨거움이 어색해지고 낯설어지는 나이가 된 것일까. 아니면 엉망으로 살아온 시절들에 대해 육체가 그 특유의 반응을 쏟아내는 것일까. 천칭자리 태생은 늘 어떤 선택의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고 그 선택을 끊임없이 뒤로 미루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까. 세 여신을 앞에 두고 망설이는 파리스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망쳐놓은 계절은 실성한 듯한 더위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깊은 바다 물고기들이 길을 잃고 얇은 바람은 삽시간 두텁고 무거운 부피로 우리의 도시를 강타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모른다는 건 얼마나 좋고 행복한 일인가. 모르기 때문에 그저 두려움에만 떨고 신에게만 의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갈구하던 ..

월요일 아침의 우울

생을 휘감고 도는 불안이 내 방안에 가득했다. 그것들을 밀어내기 위한 나의 사투는 애처로울 정도였으나, 결국 역부족이었다. 거친 입술이 얇게 떨렸다. 한 겨울밤의 적막. 견디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과연 이렇게 견디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야누스와 같은 동시성은 가끔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부치기도 한다. 까뮈를 읽었다. 밀란 쿤데라를 읽었다. 김기림과 염상섭을 읽었다. 실은 거짓말이다. 까뮈를 읽었지만, 밀란 쿤데라는 읽다가 말았지만, 김기림과 염상섭은 사놓기만 했다. 윤동주의 서시를 외우고 있었는데, 이제 첫 구절 마저도 버벅인다는 걸 깨달았다. 불안함에 대한 각성. 커피 한 잔과 담배로 늦겨울, 쓸쓸한 추위를 견디고 있다. 말없는 금붕어 세 마리는 가끔씩 물 위..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 크~. 안경테를 뿔테로 바꾸었다.살아있음을 알리는 셀프카메라. 일요일 오후 늦게 국제갤러리에 갔다.바스키아의 작품 앞에서, 바스키아라는 인물이 나와 무척 친했던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생에 친구로 지냈나?)그의 작품이 낯설지 않고 친숙해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런데 바스키아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이토록 매력적일 수가. ㅡ_ㅡ;;;그런데 왜 나와 인연 닿는 이는 없는 걸까.

까칠까칠. 내 인생

요즘. 밤이. 무서워. 라디오를 틀어놓고. 잔다.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 제작되어 출시된 캔우드리시버에 물려놓은 작은 에어로 스피커로. 어느 허름한 빌라 4층 방 새벽. 라디오는 계속 이어진다. 잠을 자다 문득 놀라 잠에서 깰 때. 혼자라는 느낌을 가지지 않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 셈이다. 그렇게 밤 곁에 라디오 소리가 흐른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계속 하루가 가면. 상처는 아물고 새 피부가 돋고 나이를 먹겠지. 그러면서 잊혀지고 잊혀지고 잊혀져서 결국 잊어버리게 되겠지. 하지만 잊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늘 옆에서 생생하게, 생동하는 것들이 있다. 잊고 싶은 내 의지와는 무관, 아니 반비례하여 더욱 커지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럴 때일 수록 내 마음은 까칠까칠해지고 내 ..

misc - 2006. 04. 16

마산 창동거리에서 어시장 쪽으로 내려오는 길, 동성동인가, 남성동 어디쯤 있었던 레코드점에 들어가 구한 음반이 쳇 베이커였다. 그게 94년 가을이거나 그 이듬해 봄이었을 게다. 그 때 우연히 구한 LP로 인해 나는 재즈에 빠져들고 있었고 수중에 조금의 돈이라도 들어오면 곧장 음반가게로 가선 음반을 사곤 했다. 어제 종일 쳇 베이커 시디를 틀어놓고 방 안을 뒹굴었다. 뒹굴거리면서 스물두 살이 되기 전 세 번 정도 손목을 그었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삶의 치열함이라든가 진정성 같은 거라든가. 스무살 가득 나를 아프게 했던 이들 탓일까. 아직까지 인생이 어떤 무늬와 질감을 가지고 있는지 도통 아무 것도 모르겠다. 문학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이집트 예술가의 진정성과 현대 예술가의 진정..

네모에 대하여

일렬로 늘어선 아파트들 위로 나즈막하게 몰려든 회색 빛 구름들이, 스스로의 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지려는 찰라, 무슨 까닭이었을까. 이름지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생긴 구름 뭉치들이 네모반듯한 벽돌 모양으로 쪼개지더니, 아파트 단지 위로 떨어져 내렸다. 실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한 구름의 무게가 늙어가면서 허공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다는 것쯤은 사랑에 빠지지 않은 이들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네모난 손을 가진 피아니스트가 십년동안 클럽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구입한 상아 건반 피아노를 두드리면서 '네모', '네모','네모'라고 중얼거린다. 실은 네모난 건 너무 많다. 빨리 달려야만 지나갈 수 있다는 고속도로의 이정표들도 네모이고 그 곳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