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72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김경주 (지음), 문학과 지성사 시인 김경주의 소문을 듣고 이 시집을 산 지도 꽤 시간이 흘렀고, 이제서야 끝 페이지까지 읽었다. 실은 무수히 이 시집을 읽었고 그 때마다 첫 몇 페이지를 읽곤 숨이 턱턱 막혀와 더 이상 읽지 못했다. 그의 시적 상상력와 언어 구사는 탁월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런 이유로 다 읽지 않았지만, 그 동안 많은 이들에게 이 시집을 추천했다. 젊은 시인들 중에서(최근에 시집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가장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았고, 내가 읽은 바 그의 첫 시집은 독창적인 시적 세계와 울림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래서 그런 걸까. 그의 시는 친절하지 않다. 그는 여러 겹의 은유들로 자신의 세계를 꾸미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음악으로,..

크리스텐슨의 책을 덮으며

매년 40권에서 5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2012년 회사 이직 등의 이런저런 일들이 생겨 30권 수준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독서모임을 했던 것이 그나마 일정한 독서 시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2013년에는 운영하지 못했고 얼마 되지 않던 회원들은 소원해졌고 책 읽기의 강제적 조건 하나가 사라졌다. 그리고 어제 작년에 읽은 책 권수를 세어보았다. 아, 20권 수준이었다. 예전에 나는 '느린 독서와 빠른 독서'라는 글을 통해 책 권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적은 바 있다. 하지만 20권 남짓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래서 올해는 정상적인 수준 - 1주에 한 권 - 으로 회복하자고 마음먹었다. 작년말부터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을 읽었는데, 왜 아무런 것이 떠오르지 않는 ..

책들의 우주 2014.01.17

호모 모빌리언스, 이민화

호모 모빌리언스 Homo Mobilians - 이민화 지음/북콘서트 호모 모빌리언스이민화(지음), 북콘서트 흥미로운 책이다. 일종의 스케치이지만, 읽을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순전히 '책'이라는 측면에서 완성도로 따지자면, 이 책에 대한 평점은 떨어진다. 책 중간에 다른 지면에 쓴 기고문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하고 역사 이야기를 했다가 스마트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스케치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런데 이 스케치가 가치 있고 흥미로우며 읽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자극하기 충분하다면, 이 책의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이민화 교수의 다재다능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책은 복잡계,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변화를 저자 나름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를 지속시키고 사회에..

아포리즘 철학, 조중걸

아포리즘 철학 - 조중걸 지음/한권의책 아포리즘 철학 조중걸(지음), 한권의책 결국 철학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가를 말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오랜 철학적 탐구가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철학은 기껏해야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왜 모를 수밖에 없는지, 새로운 앎은 어느 지점에서 개시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줄 뿐이다. 이것이 몽테뉴가 말한 바 "내가 무엇을 아는가?"의 의미다.따라서 철학은 우리에게 겸허하라고 말한다. 오랜 탐구 끝에 우리는 기껏해야 우리가 큰 무지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또한 무지에 잠기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다. 위대했던 니콜라우스 쿠자누스가 신과 관련해 "무지無知의 지知"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게오르그 짐멜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 게오르그 짐멜 지음, 윤미애 외 옮김/새물결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게오르그 짐멜(지음), 김덕영, 윤미애(옮김), 새물결 국내에서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 ~ 1918)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저조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는 철학을 연구하였으며(신칸트주의자이면서 니체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에 있다), 사회학, 미학, 문화비평을 아우르며, 동시에 그의 글들은 대부분은 현대 문명이나 문화, 대도시 사람들의 마음/정신, 일상, 태도, 형식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고, 그의 문장은 짧으면서 뛰어난 문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런 글을 썼다는 점에서 놀라움마저 불러일으킨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발터 벤야민 이전에, 그 누구도..

채식의 배신 The Vegetarian Myth, 리어 키스(지음)

채식의 배신 The Vegetarian Myth 리어 키스(지음), 김희정(옮김), 부키 근래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과격하고 직설적이다. 저자 자신의 체험 이야기를 하다가 영영학자나 고생물학자의 논문을 인용하기도 한다. 전문성이 확보된 듯하면서도 전문적이지 않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내 평가는, 과격하지만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아니, 반드시 읽어야 한다. 아직도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사카린이 위험한 감미료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발암 물질로 알고 있다. 하지만 사카린은 보기 드물게 안전한 인공 감미료다. (참고 기사: 사카린은 억울하다… 착한물질에 씐 주홍글씨 )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아직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았지만, 가령 ‘콩은 무조건 좋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오해하는 것은 아..

랜드연구소의 기업경영리포트

랜드연구소의 기업경영 리포트 The Four Pillars of High Performance 폴 라이트(지음), 이진원(옮김), 비즈니스북스, 2005 정신없이 흘러간 2월이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고객 요청들이 있었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밤 늦게 퇴근하기가 일쑤였고 집에 들어올 때쯤이면 녹초가 되어 이부자리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이 책을 틈틈히 다 읽었다는 것이 대견해보일 정도니 말이다. 미국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경영management에 대한 여러 성과물들과 연구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씌여진 이 책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고성과를 내기 위해 골몰하는 기업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겠다. 많은 기업들은 고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고성과의 비밀을 파헤친 ..

거짓말의 심리학 - CIA 거짓말 수사 베테랑이 전수하는 거짓말 간파하는 법

거짓말의 심리학 - 필립 휴스턴 외 지음, 박인균 옮김/추수밭(청림출판) 거짓말의 심리학필립 휴스턴, 마이클 플로이드, 수잔 카니세로, 돈 테넌트(지음), 박인균(옮김), 추수밭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인문학스러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 책은 인문학 서적이라고 보기엔 매우 실천적이다. 영어의 원제는 'Spy the Lie'(거짓말을 알아채라). 인문학 서적이 아니라 진지하지 않다거나 깊이가 없을 것이라고 미리 단정짓지 말자.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책은 실제 CIA 요원들이 저술하였고,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공개하고 실제 사례를 그대로 분석하면서 이해를 돕고 있다. 살인사건 용의자로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를 선고받은 O.J..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민음사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 칼 R. 포퍼(지음), 이한구(옮김), 민음사 이 리뷰는 허술할 것이다. 읽은 지 1년이 지났고, 뭔가 독후감 같은 걸 남겨야 한다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허술한 이 글을 핑계삼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권을 서가에 꽂을 생각이다. 칼 포퍼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현대의 위대한 과학철학자이면서 보수적 자유주의자로서, 플라톤부터 마르크스까지 '중심(이데아)를 지향하는 어떤 체계'(또는 전체주의)를 극도로 싫어해서 끊임없이 반증을 제시해야 된다고 역설한 학자.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당신은 이데아를 이야기하는 고상한 플라톤 대신 현실적으로 이율배반적이며 학문적으로 전체주의..

대선이 끝난 후

잠들기 전 오랜만에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려고 글을 적었는데, 끝내지 못했다. 어찌된 일인지 주저리 주저리 ... 글은 끝나지 않고 두서 없었다.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로 인해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멘붕 모드가 되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현 정부의 여러 잘못된 정책들과 과거 회귀적인 여러 시도들(일부는 성공까지 한)에 대한 반발, 그리고 과거 정치적 자유를 박탈당했던 시대에 대한 향수에 대한 본능적 반발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공유하는 어떤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 서민을 위한 정책이나 지방 균형 발전에 대한 정책에 대해서도 국민 통합에 대해서도 .... 그런데 아니었다! OTL. 반대였다. 대다수는 그냥 찍는 것이다. 정책 비교나 현 정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