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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지음), 송은주(옮김), 민음사 




결국은 울고 말았다. 소설 끄트머리에 가서, 오스카와 엄마가 아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비극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TV 방송 뉴스 채널로 가보라. 모든 뉴스들이 현대판 비극들로 도배되어 있다. 뉴스 앵커나 기자들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인양, 무미건조한 어조와 '이건 진짜야'라는 눈빛으로 또박또박 분명한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오스카는 아빠를 찾아나선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아빠를. 



첫 번째 메시지. 화요일 오전 8시 52분. 누구 있니? 여보세요? 아빠다. 있으면 받으렴. 방금 사무실에도 전화했는데 아무도 받지 않는구나. 잘 듣거라, 일이 좀 생겼어. 난 괜찮다. 꼼짝 말고 소방수가 올 때까지 기다리래. 아무 일 없을 거다. 상황을 좀 더 알게 되면 다시 전화하마. 그냥 아빠는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전화했어. 곧 다시 걸게. 


아빠로부터 네 개의 메시지가 더 와 있었다. 9시 12분, 9시 31분, 9시 46분, 10시 4분에. 나는 그것들을 듣고 또 들었다. 무엇을 해야할 지, 아니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어떤 기분이 들어야 할지 미처 알 겨를도 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10시 22분 27초였다. 

발신자 번호를 봤다. 아빠였다. 

- 35쪽 ~ 36쪽



소설은 어수선하고 수다스럽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아홉살 꼬마 오스카에겐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이자, 그리움의 대상이다. 사진들이 나오고 문장들마저 조각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설 작법으로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고 빙빙 둘러가는 과정을 반영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빙빙 둘러, 오스카를 따라가며 9월 11일을 아주 천천히 떠올리며, 그 사건 한 복판에 있었던 어느 가족의 슬픈 이야기를 소설 결말부에 가서야 비로소 마주한다. 


소설에 대한 형식적 파괴, 또는 실험적인 변화가 작품 속 깊숙히 들어가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스토리와 형식은 하나의 형태를 지니며,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 원하지 않던 비극과 그 비극을 극복하기 위한 가족의 노력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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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The Reluctant Fundamentalist 

모신 하미드(지음), 왕은철(옮김), 민음사 




대화체로 이루어진 소설은 종종 군더더기가 있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깔끔하다. 이야기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이는 이야기하는 사람의 대화 속에 등장할 뿐이다. 정치적 논란을 불러올 이야기를 매끄럽게 소화시켰다는 점에서 격찬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아직 한국은 전 세계 테러 분위기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몇 번의 피해가 있었지만, 이는 전도 지상주의와 경쟁적이고 배타적 신앙심으로 무장한 이들로 인한 것으로 인해, 이슬람 문명에 대해 우리들의 반감은 적다. 


(특정 종교의 경우에는 이슬람 뿐만 아니라 모든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므로, 이 종교의 문제라고 보는 편이... ) 


이 소설은 파키스탄인의 대화로만 구성된다. 미국과 파키스탄을 오가며 서로를 이야기하는 목소리 속에 고뇌가 묻어나오지만, 동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느낌이랄까. 말을 하지만 행동은 없다. 어쩌면 소설의 형식 속에서 두 문명 사이에 끼인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사랑도 없고 문학도 없고 떠돌 뿐이다. 모든 일들은 그저 지나간 일들이고 회상될 뿐이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른다. 


과격한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가 일상화되어 버린 미국와 북유럽에서 이 소설이 보여주었던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역자인 왕은철 교수는 '나의 번역문이 하미드의 세련된 산문을 우리말로 제대로 살려 냈는지 우려되긴 하지만, 그래도 불편한 주제를 흥미롭게 풀어낸 용감한 소설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역자 후기를 마무리 짓는다. 세련된 산문이라, ... 아마 이 소설에 쏟아진 무수한 찬사는 뛰어난 문장도 한 몫 했을 텐데, 이를 느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듯 싶다. 대화체라서 더욱 그럴 듯 싶기도 하고, ... 영어로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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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앤드루 포터 Andrew Porter (지음), 김이선 (옮김), 21세기북스 

http://www.andrewporterwriter.com/ANDREW_PORTER/Andrew_Porter_-_Writer.html




연거푸 영어권 작가들의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줌파 라히리, 앨리스 먼로, 그리고 앤드루 포터. 그들에게서,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차이보다 보이지 않는 공통점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사건들과 인물들을 사이에 서서, 그 숱한 감정들에 휩쓸리지 않으며, 쓸쓸한 냉정을 유지하며, 아파하면서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사랑을, 혹은 미래를 믿으며 살아가는(남는) 것... 어쩌면 21세기 초반 동시대 단편들이 가지는 특징일까.  


그리고 앤드루 포터에게서는, 사건 속에 있지만, 사건에 대해서 그 어떤 것도 판단내리지도, 결정하지도, 행동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서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과 만나게 된다. 


절망적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희망적이지도 않은 모습. 그렇게 그저 사라질 뿐인 우리들의 모습. 한때 마음 속 깊이 사랑했지만(아니면 사랑이 아닌 어떤 사랑인지도 모를), 단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던 불륜의 연인처럼. 



로버트의 와인을 마시면서 거기 어둠 속에 앉아, 결국, 어쩌면 몇 시간 동안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결국에 나는 떠나야 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 131쪽 



소설 속에선 아직 추억으로 펼쳐지지만, 끝내 망각될 흔적이다. 


서로에게 입히는, 혹은 스스로 입는 상처에 대해 알지만, 아는 것과 그 상처를 치료하는 것, 그 상처에 반항하고 저항하는 것은 무관하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서로 다르고, 이제 만나지도 않는다. 아는 것은 그저 아는 것일 뿐이고 움직이는 것은 그저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빛과 물질은 다르고, 빛은 물질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에 빛이 한 번도 가 닿은 적이 없거나 물질이 빛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알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부정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미 알고 있는, 그러나 견디기 힘든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무섭고,이미 떠나버린 그가, 그녀가 내 곁을 떠났음을 공식적으로 알려오는 것이 두려워, 내가 먼저 떠나는 것으로 꾸미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가 다 알고 있다고 믿지만, 이젠 알아도 아는 것이 아니다. 포스트모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 조금의 노력으로도 실체를 알 수 있음에도, 그래서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부정하는 것. 사랑 앞에서 사랑을 부정하는 것. 미래 앞에서 과거를 핑계삼아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 앤드루 포터의 소설들은 휴머니즘을 버리지 않지만, 휴머니즘 앞에서 한없이 주춤거린다. 그는 무척 힘들게 이 소설들을 썼을 것이고 지금도 참 고통스럽게 글을 쓰고 있을 게다. 


주춤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 21세기의 도시는 우리에게 생의 열정 대신 병든 마음까지 치료한다는 정신의학과 배 고프면 언제든 허기를 해결할 수 있는 편의시설들을 가져다 놓았으니,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렸으나, 그걸 알고 있으나, 그것을 모르는(외면한) 상태다. 


끝없이 주춤거리다, 주춤거리다, 죽을 생이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못할 생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8점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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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송어 낚시Trout Fishing in America

리처드 브라우티건Richard Brautigan(지음), 김성곤(올김), 비채 




‘미국의 송어 낚시’氏를 만나는 것이 쉬워진 탓에, 읽기는 맥주 캔 마시기와 비슷해졌다,고 빨간 말보루 담배를 피우던 그녀가 더듬, 더듬거리며 말했다.


티브이에 나오는 걸 그룹 아이돌이 꿈인 그녀는, 반드시 예능토크쇼에 나가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에 대해 발언할 것이라고, 다시 나에게 말을 더듬, 더듬,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건전하고 낙천적이어서 그녀가 좋다. 


그녀의 꿈과 행동, 그리고 현실에 심각한 오류가 있듯이, ‘미국의 송어 낚시’氏도 그와 그를 둘러싼 소설, 혹은 이야기가 가진 치명적 결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예의가 바르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미국의 송어 낚시’氏는 점심 시간의 조용한 사무실에서, 거친 공기와 피곤하고 증오스런 지하철 안에서, 읽히지 않은 책들이 될 나무로 둘러쳐진 숲 속에서, 숲 속은 아니라고 ‘미국의 송어 낚시’氏는 나에게 지적했다, 숲 속에서가 아니라 아파트 사각형 공간 구석 방 책들 사이에서, 그가 겪었던 미국을 이야기해주었다. 


그것이 어디든, 국가라는 틀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적당한 수준에서 정신의 줄을 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최근 심각할 정도로, 도전적인 다이어트를 해서 제작년 미국 여행에서 사온 미니스커트가 잘 들어간다며, ‘미국의 송어 낚시’氏와 감사의 섹스를 했다. 


갑작스런 극적인 사랑 표현을 받은 ‘미국의 송어 낚시’氏는 화끈거리며 달아오르며 자기 속의 몇 페이지를 태워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 섹스 탓이 아니라 거대한 50센트짜리 동전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낚시를 싫어해요”라고 고백했다. 그녀가 더듬, 더듬거리며 날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말과 행동 사이에는 그 어떤 연관 관계도 맺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평론가의 몫이고, 고결한 우리는 그들의 입과 위장을 보호해 주어야 했다. 예의가 바르다는 이유로. 


‘미국의 송어 낚시’氏는 미국에서 송어 낚시를 하게 됨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그저 안타까워 했다. ‘미국의 송어 낚시’氏는 그들의 대가족이 이런 저런 이유로 흩어지고 사라졌다며, 나에게 낡고 먼저 냄새 나는, 이미 죽은 송어로 발효시킨 술을 권했다. 실은 그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그리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우주의 일임을 ‘미국의 송어 낚시’氏에게 이해시켰다. 


지금에 와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건대, 이미 프린트된 채 여행하던 그에게 이를 이해시키는 동안 나는 여러 차례 그를 죽이고 싶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서점들이 사라지고, 취미/레저/낚시 코너에서 ‘미국의 송어 낚시’氏가 함께 사라져간다고 롱스커트를 입은 그녀에게 슬픈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장사가 되지 않던 어두운 술집 구석에 앉아 있던 그녀는 다시 더듬, 더듬, 더듬거리며 무언가 꿈을 이룬다는 건 자신을 파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오늘 밤에도 자신의 모든 걸 팔 준비가 되었는데, 아직 예능토크쇼는커녕, 걸 그룹 아이돌이 되기 위해 5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연예기획사를 차렸다가 세무 조사를 받았다며 분개했다. 하지만 그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적, 원수가 되어야 한다며, 나의 연약함을 욕했다. 


나는 최근 들어 ‘미국의 송어 낚시’氏를 만나지 못했다. 아마 그는 공항 한 구석에서 취해 쓰러져 자고 있을 것이다. 미국행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한 채. 어제 밤 아메리카 사람으로 보였던 리처드가 알려 주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낚시[개정판]

리처드 브라우티건저 | 김성곤역 | 비채 | 2013.10.04

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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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형우 2016.05.23 15:39 신고

    재밌어요

  2. 최형우 2016.05.23 15:39 신고

    재밌어요

    • 지하련 2016.05.25 11:32 신고

      한 때 이렇게 서평을 쓰기도 했는데, ...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서요. 나이가 들수록 유머 감각이 떨어져서 큰 일입니다. ㅜㅜ.

  3. 최형우 2016.05.25 22:38 신고

    틈날때마다 둘러보고 다니겠습니다.



태양은 누군가가 석유를 붓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 다음, "신문 가져올 동안 좀 들고 있어"하며 내 손에 놓고 가서는 돌아오지 않아 불타고 있는 거대한 50센트 짜리 동전 같았다. (23쪽) 


가을은, 마치 육식 식물 속으로 질주해 내려가는 롤러 코스터처럼, 포트 와인과 그 진하고 달콤한 와인을 마셨던,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의 기억에서 오래 전에 사라진 사람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39쪽) 


나는 그녀와 섹스를 했다. 

그것은 막 1분이 되기 전의 영원한 59초와도 같았고, 아주 수줍게 느껴졌다. (52쪽) 


- 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 낚시> 중에서 



출처: http://www.pasunautre.com/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읽으면 왠지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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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1 - 10점
마지 피어시 지음, 변용란 옮김/민음사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Woman on the Edge of Time 1권, 2권
마지 피어시 Marge Piercy 지음, 변용란 옮김
민음사 모던 클래식 031, 032


1.
이 책은 민음사 홍보기획부의 정은년 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그것이 작년 여름(8월)이니, 벌써 몇 달이 지난 것인가! 책은 완독한 것은 올해 2월이었다. 책을 받고 몇 달은 밀린 책 읽기에 여념 없었고 그 이후에도 이 소설 읽기는 어수선한 일상의 삶에 의해 방해 받았다. 겨우 소설을 다 읽었지만, 그 이후, 한참이 지난 뒤에야 이렇게 서평을 올린다. 이 소설에 대한 서평은 자신 없고 깊이를 가지기엔 내가 아는 지식도 부족하고 여러 문헌을 뒤져가며 연구할 만한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이 작은 글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2.
소설을 다 읽었지만, 이 '투박한'(*) 소설은 너무 현실적(realistic)이었고 여성적(feministic)이었으며, 혼성 장르였으며, 정신분열적이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놀라운 소설들의 부류에 속했다. 그러나 이는 소설적 재미와 무관한 것이다. 마치 마지 피어시라는 작가의 약력처럼.


1936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자랐다. 가족 중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은 그녀는 미시건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했다. 촉망받는 대학생 작가에게 수여하는 홉우드 상을 여러 번 받았고 훗날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비서, 계산원, 강사 등 여성 임시직 노동자의 생활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 간 그녀는 계급과 여성 문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며,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 연합’ 뉴욕 지부장을 맡아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참여했고, 한편으로 ‘빠른 몰락’(1969), ‘독수리를 춤춰 잠들게 하라’(1970)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1년에 케이프코드로 이주한 이후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관심을 기울였고, 오랫동안 동료로 지낸 아이라 우드와 1982년에 결혼했다. 희곡 ‘마지막 백인 계급’(1979)을 공동 집필했던 두 사람은 소설 ‘폭풍의 물결’(1998) 역시 함께 작업했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였던 ‘입대’(1988)을 비롯하여 ‘한줄기로 땋은 삶’(1982), ‘여자의 갈망’(1994) 등 여러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회상록 ‘고양이와의 동침’(2002) 역시 호평을 받았다. ‘그, 그녀, 그것’(1991)으로 최고의 과학소설에 수여하는 아서 C. 클락 상을 받기도 했다.
피어시는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정치적 작가로 자신을 정의한다. 지금까지 소설 열일곱 권과 시집 열일곱 권을 발표한 그녀는 여전히 열렬한 사회운동가이자 작가로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 위의 글에서 '투박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는 소설의 극적 재미나 사건의 진행이 독자의 몰입을 위해 구성된 것이기 보다는 현실과 이상의 대비를 위해, 그 대비 사이에 여백(코니의 환상으로 여기게 하게끔)을 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극적 소설에 비교한다면 소설적 재미는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투박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투박함은 마지 피어시의 여성주의(페미니즘) 소설이 가지는 또다른 매력은 아닐까.




3.
19세기 후반 Elizabeth Stuart Phelps와 Mary E. Bradleydhk 같은 작가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유토피아 세계관을 가진 소설을 발표하였다. 이는 20세기 초 Charlotte Perkins Gilman에게로 이어진다. 그리고 1960년대와 70년대, 일군의 페미니즘 소설가들이 등장하는데, 마지 피어시, 르 귄 Ursula K. Le Guin, 사무엘 드레니 Samuel Delany, 조안나 루스 Joanna Russ 등이었다. (여기에서 인용된 작가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준비해볼 생각이다. 마지 피어시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의외로 주목할만한 여성주의 소설가들, 특히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에 대한 풍부한 표현들로 채워나간 작가들이 꽤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현실 비판적인 경향의 소설들은 그 소설이 지닌 경향성으로 인해 디스토피아를 드러내든지(조지 오웰의 1984), 유토피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페미니즘 소설가들에게서는 유토피아적 경향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 경향은 20세기 후반으로 올수록 디스토피아적 색채를 띠게 되는데, 마지 피어시의 작품도 여기에 속한다.

4.
여 주인공 코니는 사회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정부의 복지 정책마저도 그녀의 일상과 삶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계기로 작용한다. 그녀에게는 그 어떤 안전망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루시엔테일 것이다. 먼 미래에서 온 루시엔테는 소설 속에서 그것이 실제 사실인지, 아니면 코니의 환상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매우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묘사로 인해 그것의 사실성이 드러나지만, 우리는 그것을 환상이라고 단정할 수 없듯이, 똑같이 현실이라고 믿을 수도 없다.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미래의 유토피아적 세계를 드러내는 것은 경향주의 소설이 자주 취하는 방식이지만, 그 방식의 상투성으로 인해 소설이 지닌 힘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이 방식은 정신병이라는 교묘한 장치에 숨겨지고 먼 미래와의 교감이라는 점에서 소설은 SF적 색채를 띤다. 하지만, 루시엔테가 사는 미래에도 전쟁이란 존재하고 그 곳에서 코니는 고통을 받는다. 코니의 시선은 그녀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과 끊임없이 어긋나고, 독자는 외부의 공간에서 코니를 지켜볼 뿐이다.

소설은 환상과 현실, 현재와 미래를 오가고 페미니즘과 SF 소설을 넘나든다. 장르적 한계를 넘어 성적 한계마저도 뛰어넘는다. 소설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듯하지만, 마지 피어시가 취하는 전략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다음, 쓸쓸해지고 슬퍼지는 이유는 변두리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을 우리는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5.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때때로 무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현실을 드러내는 일도 고통스럽지만, 현실로 드러난 소설을 읽는 독자도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의 독자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고 타인의 일로 치부하며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읽으려 한다. 고통은 탈색된 채 TV 브라운관이나 스크린 위를 떠돌고, 고통은 언급되지 않은 채 사라지는 침묵의 바다에 속하게 되었다.

마지 피어시의 작품이 문학적인 가치를 지닌다면, 그것은 현실을 드러내고 싸우는 문학적 방식의 탁월함에 있을 것이며, 고전의 지위를 얻게 된다면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서 일 것이다.

소설 읽기는 고통스럽고 재미없으며 종종 지루해지기 까지 하다. 하지만 현실을 이야기하는 현대적 방식의 소설이 어떤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라도 이 소설은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 2 - 10점
마지 피어시 지음, 변용란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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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8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민음사



대단한 찬사 속에서 읽을 만한 소설책은 아니다. 하지만 대단한 찬사 속에서 이 소설을 읽었을 독자들에게 아마 그 찬사는 그대로 전달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관심과 자기 보호로 뒤범벅이 된 폭력성'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주제의식이라면,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라는 단편은 매우 잘 씌여진 소설임에 분명하다.

그녀의 작가적 재능은 폭력적인 이 세계나 이 세계 속의 개인들에 대한 집요한 탐구 의식, 또는 진지한 성찰에 있기 보다는 번뜩이는 재치가 묻어나는 짧고 강렬한 스토리라인에 있는 듯하다(그래서 그녀의 많은 단편들이 영화로, TV 드라마로 재사용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곳에서 멈춘다.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들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과는 달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은 잘 만들어진 TV 단막극을 보는 느낌을 던져준다. 어쩌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점이 그녀의 장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권 사서 읽었지만, 그녀의 나머지 책들을 사서 읽을 생각은 별로 없다. 그 시간에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도 더 나아보인다. (혹시 방송 단막극 작가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이 소설가의 작품들은 필독서다. 놓치지 말기를.)

 Patricia Highsmith (1921 - 1995)

미국의 범죄 소설가. 스릴러 작가. 2 다스(dozen) 이상의 작품이 필름으로 옮겨졌다. 혹시 오래된 스릴러 영화를 볼 때, 원작가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나올 수도 있으니 유심히 보기를.
(위키피디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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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콜드 블러드 - 10점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시공사





1.
주기적으로,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살인사건들이 있었다. 그리고 방송과 신문들은 그 사건을 연일 다룬다. 사람들의 궁금함을 풀어주기 위함이지만, 실은 자신들의 수익모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자신들의 전문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그 사건의 의미와 해석을 쏟아낸다. 실은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와 피해자, 혹은 그들의 가족에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하며, 아무런 예방 효과도 가지지 못하는 이야기만 떠들어댈 뿐이다.

먼 훗날, 사람들은 그런 사건들을 기억할까? 아마 정신이 나간 몇몇 보수주의자들은, 전쟁 땐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며, 애써 그런 사건들의 의미를 축소시킬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통계학이 아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며, 우리들 중 누군가에게 닥칠 지도 모르는 공포의 일부다. 하지만 우리는 (불행하게도) 그것을 우연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슬픈 일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 해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우리들은 먼 미래의, 우연의 일부로 여겨질 어떤 공포에 대해 무방비로 살아갈 것이 뻔하다. 돈벌이가 기본적인 삶의 방식인 영화는 이런 사건들을 교묘하게 응용할 것이고, 이는 전적으로 허구의 세계에 속한 어떤 것으로 만들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의 의견대로 모든 현실은 가상이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선두에 현대의 미디어들이 앞설 것이다.

2.
‘강호순 사건’을 보면서, 그것의 사회학적 의미와 파장에 대해 생각하면서, 문학의 자리를 생각했다. 과연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3.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는 실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논픽션 소설이다. 1959년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 홀컴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 사건을 기록한 소설로, 트루먼 카포티의 집요하고 냉정한 서술은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절대로 그런 종류의 사건에 휘말려들 가능성이라곤 전혀 없는 어떤 선량한 사람들이, 두 명의 살인자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은 이성적으로는 전혀 납득 가지 않는다.

카포티는 자신의 견해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잔인할 정도로 느리게 사건의 전후, 피해자 가족과 살인자 가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살인자들의 재판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며, 사법 제도의 기능에 대해서도 묻는다.

‘왜 그 두 명은 살인자가 되었을까’에 대한 아무런 논리적 해답도 없다. 그래서 소설은 더 공포스럽고 끔찍하며 아프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살인자들 중의 한 명인 딕이 자신의 판결 결과에 대해 불복하기 위해, 법률 서적을 뒤지며, 여기저기 인권 변호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사형이 부당함을 강변하는 모습을 읽을 땐,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과연 살인자들에게도 용서의 기회가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용서하고 난 다음은 무엇일까, 사법 제도는 이런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기능을 가지며, 동시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따위의 질문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4.
죽은 자들은 아무런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들은 끔찍한 상처는 껴안아야 한다. 그리고 용서도 그들의 몫이다. 우리들의 종교에서는 그 살인자를 용서하라고 가르치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못한다. 강호순 사건에서 보다시피, 몇몇 언론에서는 아예 살인자의 얼굴을 공개해버렸다. 그들은 살인자에게도 인권이 필요한가라고 물으며, 자신들은 독자들에게 진실한 정보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하지만, 나에겐 상업주의와 정치적 고려가 맞아 떨어진 결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은 용서 따윈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도리어 냉정하고 합리적인 시장의 질서는 많은 시장 참가자들에게 여러 가지 좋은 기회들을 제공한다. 많은 이들이 전문가로 나서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로 활용하며, 방송과 신문들은 연일 머리기사로 다루며, 서로 빠른 정보와 정확성을 내세우며 선정성을 교묘하게 가린다.  그리고 발 빠른 콘텐츠 제작사들(영화나 방송, 출판 등)에서는 이미 콘텐츠 기획안을 통과시키고 제작과 출시 일정을 조정하고 있을 터였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우연에 가까운 어떤 사건을 그냥 나에게만 안 일어나면 되거나, 통계적으로 나에게 일어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여기고 지나쳐갈 것이다. 실은 그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도 없고 생각할 수 있는 정신적 깊이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남아 천천히 정리하고 기록하며, 밥벌이에 바쁘고 여유 없으며, 무언가를 기억하기 보다는 잊어버리기에만 익숙한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이야기해주어야만 한다.

진지한 문학이 가지는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트루먼 카포티의 이 소설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여기에 있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이 세상의 끔찍한 뒷모습에 경악하고 몸서리 치면서도, 느리고 진지하게 살아남은 우리들이 마주해야만 하는 진실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5.
한국 문학에 트루먼 카포티 같은 작가도 없고, 이 소설과 같은 작품이 없다는 것은 참 큰 불행이다. 고작 도토리 키 재기를 하면서 대단한 작가인 양 짐짓 포즈 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문학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속에서 기여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를 다 읽고 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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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지음), 한기찬(옮김), 뉴욕 삼부작 The New York Trilogy, 웅진출판, 1996 초판2쇄.






어둠 속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밀어 넣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완전히 잊어버렸을 때, 내 실수와 과오, 내 조그마한 상처, 또는 내 고귀했던 사랑마저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렇게 되었을 때, 왜 누군가가 날 찾는 것일까.

소설은 누군가를 계속 찾아 다니다 그 누군가를 잊어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실은 오래 전부터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졌고 그것을 그 스스로 선택했으며 그렇게 남은 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제 날 찾는 따위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 전부터 세상은 나의 것이 아닌 타인들의 것임을. 그러니 불필요한 사람은 사라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리고 그 사람 대신 언어만 남아 허공을 떠돌게 된다.

노트에 빼곡히 쌓인 언어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우고 자신을 감추고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할 땐 쓰레기통에 들어가버린다. 그렇게 자신을 지우는 것. 어쩌면 상처 입은 우리들의 목적이 아닐까. 이미 상처 입은 채로 태어났으므로 적어도 우리에겐 우리 자신을 지울 권리가 있는 건 아닐까.

참 재미 없는 소설을 읽었다. 팬쇼만 마음에 들고 나머지들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제 꿈을 꿀 시간이다. 나를 지우는 꿈을 꿀 시간. 이 소설을 다 읽고 눈을 감고 나를 지우는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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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도시 - 8점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열린책들


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열린 책들




이야기는 안나 블룸이라는 여자가 그 도시로 오빠를 찾아들어가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도시는 정말 ‘폐허’였다. 그 풍경은 먼 미래, 무시무시한 핵전쟁 이후 무정부상태를 묘사하곤 하는 SF 영화들과 닮아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한 개인(안나 블룸)에게만 그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녀의 실존적 환경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SF 장르 영화의 서사구조와는 틀리다.

그렇다고해서 장르 영화와 얼마나 틀릴 수 있을까. 끝까지 달성 가능한 희망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1) 소설은 안나 블룸이라는 여자가 그 도시에 들어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그 도시를 빠져나갈 계획을 세우는, 어느 겨울에서 끝난다. 소설의 시작은 그녀가 오빠를 찾겠다는 희망에서 시작하였고 소설의 끝은 오빠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이 도시를 빠져나가리라는 희망으로 끝난다. 그러니 거칠게 말하면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폴 오스터는 인간이 얼마나 희망적인가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듯하며 이와 비슷하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부족한 듯하다. 실제 이런 도시가 존재한다면, 아마 그 도시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몇 명은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거나 몇 개의 레지스탕스 조직들이 활동하며 도시의 여기저기에서 총소리가 들릴 법도 하다. 동시에 인간을 거래하는 조직이나 겨울이면 인간을 먹는 풍경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적당하게 비극적이고 적당하게 슬프고 적당하게 희망적이다.

폴 오스터의 여러 소설들을 읽었지만, 이 소설은 폴 오스터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에서 폴 오스터의 문장이나 태도와 소설의 서사가 서로 충돌한다. 다분히 팝(pop)적이다. 읽고 나면 안나 블룸 일행이 그 도시를 나갔을까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것은 작가의 어설픈 결말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폴 오스터가 묘사하는 폐허의 도시는 너무 어정쩡하다. 안나 블룸이 여러 사람을 만나는 과정도 엉성하고 묘사는 사실성이 떨어지며 에피소드들은 너무 가식적이다.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마 소설을 많이 읽는 독자들이 잘못된 소설을 배울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얼핏 보면 재미있고 잘된 소설처럼 보이니 말이다.



1)안나 블룸이 지나온 일들을 돌이켜보자면, 그녀는 매우 운이 좋다. 즉 소설이 끝나고 소설 이후에 전개되었을 그녀의 삶도 그러할 것이라 독자는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폴 오스터답지 않은 해피앤딩인 셈이다.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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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Flannery O'Connor, 1925.3.25 ~ 1964.8.3




어제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식사를 많이 한 것이 원인이 된 듯하다. 그런 와중에 11시까지 일을 했고 밤새 배를 잡고 뒹굴다 급기야 아침에는 토하고 말았다.

이틀이 지나가고 있건만, 무식하게 약을 먹고 있지만, 배는 계속 아프다. 오늘 일찍 집에 들어왔지만, 몇 시간을 잤지만, 배는 계속 아프다.

아픈 몸이라. 무척 낭만적이다. 수잔 손탁의 "은유로서의 병"를 영어원서로 사서 읽고 있는데.. 몇 페이지 읽었나.

병하니, 프란네리 오코너가 생각난다. 홍반성난창으로 죽으면서 그리스도를 통한 생의 구원이라는 테마만 생각했다니. 그리고 보면 나는 죽지 않는다면서 죽은 프랑스의 어느 소설가도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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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곡예사 - 10점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열린책들



폴 오스터, Mr.Vertigo, 열린책들.




'공중곡예사'라는 번역 제목은 썩 성공적이지 못하다. 차라리 '미스터 버티고'나 '현기증씨'가 낫지 않을까.(그만큼 이 소설 속에서 '현기증'이라는 소재는 매우 중요하다. 소설 속에 아주 짧게 언급되지만, 주인공 인생에 있어 한 계기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들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거리감'이다. 가령 고등학교 때 친구가 건네준 빨간 포장의 말보루를 가슴 깊숙이 삼키고 난 다음 펼쳐지는 거리 풍경과 팽창하는 동공과의 거리 변화 따위나 대학 때 옆에 사모하는 여자를 앉히고는 연거푸 데킬라 스트레이트 잔을 여러 잔 마시고 손을 뻗쳐 그 여자의 얼굴 위로 갖다댈 때, 손가락 끄트머리와 그 여자의 볼 사이의 거리, 그 거리가 지니고 있는 어떤 푸른 빛깔의 팽팽한 긴장감 따위가 그러한 거리감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물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열두 살 때였다'라고 시작하는 이 소설은 허공으로 몸을 띄우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몸을 띄운다는 건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모든 수학 문제를 다 풀 수 있었던 건 열두 살 때였다'라든가 '내가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내었던 건 열두 살 때였다'라든가 하는 문장으로 시작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다는 말이다. 단지 현실적인 가능성이 희박한, 어떤 우의적인 사건을 통해 소설의 여러 사건들을 끌고 가게 만드는 폴 오스터 특유의 장난이다.

이 소설 전체가 이러한 장난으로 구성되어 있다. 삶을 그대로 관통하지 못하고 어떤 기만적인 태도, 즉 인생과, 혹은 이 세상과 어떤 거리를 두고 그 사이를 장난으로 채워버리는 폴 오스터 특유의 태도가 이 소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로 이러한 태도로 인해 폴 오스터를 싫어하는 독자들이 있기도 하다.

내가 폴 오스터를 선호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기만적인 태도에 있다. 이 기만적인 태도를 이해하는 것은 폴 오스터 뿐만 아니라 현대 소설을 이해하는 데 무척 중요한 길잡이를 한다. 꼭 로베르토 무질의 <<세 여자>>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외부세계에 대한 태도가 폴 오스터에게 와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은 어떤 교훈적인 것도, 인생에 있어 어떤 통찰도 말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아니 어떤 통찰을 말하는 것 같지만(월트의 입에서 나오는 이상한 말들, 가령 '그러면 당신 몸 속의 공허함이 당신 주위의 공기보다 더 가벼워진다'따위의 말), 다 우스개소리다. 몸을 허공에 띄울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고 이 소설은 몸을 허공에 띄우기를 강요하는 소설이다. 이 어긋남은 읽는 이로 하여금 약간의 우울함 따위를 선사하는데, 그 이유는 몸을 허공에 띄우든 띄우지 못하든, 우리 인생은 이미 조각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인생은 우리 인생이 아니고, 우리를 인도해줄 어떤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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