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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고민하는 힘 강상중(지음), 이경덕(옮김), 사계절 고민하는 힘 -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비가 온 뒤 땅은 굳어지는 왜일까.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진 다음에서야 우리는 왜 사랑에 대해 (철저하리만큼) 숙고하고 보잘 것없이 여겼던 연애의 기술을 반성하는 것일까. 거친 홍수처럼 세차게 밀려들었던 후회와 끔찍한 반성의 세월을 술과 함께 보내며, 나는 얼마나 많이 ‘철 들지 않는 나’를 괴롭혔던가. (그리고 결국 ‘철이 든다는 것’을 지나가는 세월과 함께 포기했지만) 이 책을 읽게 될 청춘들에게 자이니치(재일한국인) 강상중은 힘들었던 자신의 이야기 너머로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등장시킨다. 이미 베버와 소세키가 죽었던 그 나이보다 더 살고 있으면서(그래서 그는 이 책의 말미에 청춘에 대해 ..

기억 속에서 살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싶어. 아버지는 죽지 않으려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잖아." - '서쪽부두'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의 희곡)의 샤를르의 대사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 이제 내년이면 나도 마흔이 된다. 서른부터 마흔까지 너무 길었다. 스물부터 서른까지는 무척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서 스물까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슬픈 플라톤보다 현실적인 헤라클레이토스가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왜일까. 베르나르 마리 콜테스. 현대 프랑스 최고의 희곡 작가.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해 지기 전에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

오늘 아침 블로그를 뒤지다 다시 읽었다. 벌써 4년이 지난 인용이다. 그 사이 나는 해 지기 전 한 걸음만 더 걷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든다. 이제서야라도 한 걸음 더 걷는 사람이 되기로 하자. 이현세의 아래 글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다시 현재형으로 올린다. (2011. 10. 21) - 아래는 2007년 6월 5일 작성 좋은 글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교보문고 북로거이신 기번님의 블로그에서 가지고 왔다. 출처 : 서울신문 2005-02-23 20 면 [이현세의 만화경] 해 지기 전에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강상구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 강상구 지음/흐름출판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강상구 (지음), 흐름출판 출판사 담당자에게 이 책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다음, 바로 서평을 쓰지 못했다. 쓰지 못한 이유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이제 내 나이도 마흔이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이라는 책 제목도, 마흔에 꺼낸 ‘손자병법’에 대한 저자의 머리말도,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다. 을 처음 읽은 건 20대를 마치고 30대를 준비할 때였다. 패기만만하고,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보이던 그때, 내게 은 ‘싸움의 기술’이었고 '승리의 비법‘이었다. ‘싸움은 속임수다’(兵者詭道병자궤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정 이기는 것이다’(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부전이굴이지병 선지선..

어느 토요일의 일상

이번 경우는 이렇게 씌어 있었어도 괜찮았을 지 모르겠다. "나는 여러분 속의 한 사람, 한 알의 씨앗이다. 여러분 중 한 사람인 것이다. ... ... 빛나고 ... ... 진동하고 ... ... 작열하는 씨악이다......" 어느 날 나는 국립도서관에 있었는데, 쉰 안팎의 토끼털 모자를 쓴 부인이 내가 있던 책상 앞으로 다가와선 다음과 같이 말하며 쭈뼛쭈뼛 손을 내밀었다. - 르 끌레지오, '사랑하는 대지' 중에서 낡고 오래된 책을 꺼내 기억하는 몇 문장을 되새겨본다. 그리고 이 일상도 거대한 지구의 운동 앞에서 그 어떤 가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토요일의 일상을 오늘에서야 정리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의 일이 갑자기 많아졌고 이를 헤쳐나가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몸에 이상이 왔다...

The dark side of reason

질서는 언제나 선행하는 무질서를 가진다. 그리고 그 질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다시 무질서가 도래한다. 우리가 이성(reason)이라고 부른 것의 역사는 고작 몇 백 년도 되지 않으며, 그 이성대로 살았던 적은, 그 이성의 빛이 전 세계에 고루 비쳤던 적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데카르트 시대에 이미 반-데카르트주의자가 있었다. 현대의 반-데카르트주의는 일군의 영국 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길에 편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수선한 마음이 지나자,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어수선해졌다. 어수선한 마음이 지나자, 어수선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모든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갈 뿐이지만, 누군가는 교통 정리를 해줘야만 한다. 마치 이성처럼. 칸트가 열광했듯이, 뉴튼이 그런 일을 ..

마크 퀸 Marc Quinn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캠브리지 로빈슨 칼리지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공부한 마크 퀸Marc Quinn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가이나,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대단한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다(도리어 현대 예술이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질문 제기를 한 번 귀담아 들어보는 것도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크 퀸의 'Self'라는 작품이다.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색깔을 보고 무언가를 상상했다면, 그 상상했던 그 무엇이 맞다. 4.5 리터의, 약 5달 동안 모은 자신의 피를 얼려 만들었다(첫 작품 제작 기간임). 먼저 자신의 얼굴을 석고로 뜬 다음(casting), 자신의 피를 넣어 얼려서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크기는 어느 정도 될까? Marc Qu..

랭보의 '삶'

먼지 묻은 시집 두 권을 꺼낸다. 이준오의 (책세상)과 김현의 (민음사). 두 권 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된 책이다. 이준오의 은 고등학교 때 샀던 걸로 기억한다. 한글로 말하자면 김현의 번역이 낫다. 그래서 오역의 비난을 받는 걸까. 랭보의 세계는 너무 심하게 오염된 세계다. 세속의 고귀한 것들에, 그의 영혼에, 버림받은 사랑에, 타인의 경멸과 증오에, 그리고 어둠의 미래를 가진 청춘에. 하지만 랭보는 그 속에서도 꼿꼿하게 서서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그의 시 세계를 '견자의 시세계'라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보면, 어른같은 어린 랭보와 어린이같은 늙은 베를렌느는 꽤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오랫만에 랭보의 시를 읽는다. 나이 스물 한 살 땐 나이 서른 쯤 되면 불어로 그냥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