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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요즘, 자주, 스타벅스엘 간다. 오늘의 커피를 시킨다. 기다린다. 5분. 3분. 2분. 1분. 커피를 받아들고 걷거나 앉는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낯설다. 익숙한 풍경 속의 낯선 나. 시간이 갈수록 내가 낯설어진다. 익숙한 나는 저 멀리 있고 낯선 내가 나를 드리운 지도 몇 년이 흐른 걸까. 나는 익숙한 나를 숨기고 낯선 나로 포장한 지도, 무심히 보내는 오월 봄날처럼 둔해진 건가. 


요즘, 자주, 읽지 못할 책을 펼친다. 롤랑 바르트. 그의 문장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언제였을까. 오직 바르트만이 줄 수 있는 위안. 그건 언제였던가. 



누군가를 만나 바르트 이야기를 하고 바르트 이야기를 하며 커피를 마시고 바르트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신 적은 언제였던가. 바르트가 이야기한 사랑과 문학과 사진과 그 자신을 이야기했던 그 날은 언제였던가. 


어쩌면 내가 마지막으로 문학 이야기를 했던 술자리는 언제였던가. 


익숙하다고 여겼던 사물들, 주제들, 공간들, 사람들이 저 먼 바다로 나가고 내 마음의 해변에는 지금 무엇이 밀려들고 있는 것인가. 그 밀물 속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요즘, 자주 스타벅스엘 간다, 갔다, 오늘도, 오늘의 커피를 하나 받아들고, 사무실로 나와, 일을 한다, 혼자, 아, 끝나지 않는구나, 일은, 그러면서, 커피를 마시며, 어쩌다가 요즘, 자주, 스타벅스엘, 자주 가게 된 것인가, 잠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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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 화창한 일요일, 사무실에 나왔다. 일요일 나가지 않으면 일정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애초에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잘못된 채 시작되었다. 하긴 대부분의 IT 프로젝트가 이런 식이다.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제대로 기획되었더라도 삐걱대기 마련이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사무실에 나와 허겁지겁 일을 했다. 오전에 출근해 오후에 나와, 여의도를 걸었다. 집에 들어가긴 아까운 날씨였다. 그렇다고 밖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를 보러 가긴 너무 늦었고 ... 결국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책이나 읽다 들어가자 마음 먹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5월 햇살은 따스함을 지나 따가웠다. 봄 무늬 사이로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처녀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지만, 그녀들도 사랑을 잃은 날 밤, 쉬지 않고 울 것이고 결국엔 사랑을 믿지 못한 채 늙어갈 것이다. (이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지 


몇 개의 카페를 보내고 난 다음 빌딩들 사이에 위치한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고 안에선 밖이 잘 보였다. 카페 밖엔 사람들이 없었고 까페 안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스타벅스 특유의 소란함이 커피 향 사이로 밀려나왔다.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아는 이 아무도 없는 이 곳에서 나는 내 고요한 휴식을 취하러 왔단 말인가.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카페에서 혼자 시간 보내기를 잘 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두 세 시간 동안 혼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다고 온다고 하지만, 나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하지만 미련스럽게도 자주 시도하지)


2.

카페의 소란스러움은 가라앉은 척 했다.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사물들의 소리와 뒤섞이며 공명했다. 소리들은 일정한 패턴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부딪혔다. 내 귀를 귀찮게 했고 얼굴을 때렸으며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창 가 자리를 앉으려 했지만, 슬픈 5월의, 따가운 햇살은 커다랗고 투명한 창을 그대로 지나 내 몸을 데웠다. 결국 그늘진 안 쪽 자리로 옮겼다. 


둥근 테이블에 앉아 다이어리를 꺼내 메모를 했다. 뭔가 근사한 문장을 적고 싶지만, 문장이 근사할 땐 오직 아름다운 여인 앞에서 사랑을 얻어낼 때 뿐이다. 문장은 차분한 사랑의 확신 속에서 대기 속으로 흘러나와야 하고 그녀는 그 흘러나오는 문장의 모습을 보아야만 한다. 이 순간, 진짜 사랑은 시작된다,고 믿었지만, 그 때 내 나이 27살이었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3.

중년의 사내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멍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두리번거릴 때, 그는 우연히 마주 치는 시선 속엔, 늘 말 못 할 비밀이 있거나 흐느적거리는 슬픔이나 터놓고 내뱉고 싶은 사연이 숨어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확고해질 때면, 황급히 책 속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옆자리에 앉은 이에게 다가가지 않는 용기를 발휘했다. 다행한 일이다. 


4. 

우리는 옆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타인이라고 여기지만, 언젠가부터 나 자신처럼 느껴졌다. 그건 나도 그들에게 익명이고, 그들 또한 나에게 익명이기에, 어쩌면 우리는 익명을 공유하는 하나의 거대한 자아 덩어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거대한 자아는 목적 없이 대도시의 대기 속을 새벽까지 떠돌다 알코올이 가져다주는 꿈 속으로 사라지겠지. (아, 지금은 아닌가)    





5.

카페에서 혼자 오래 앉아 있는 법이 없지만, 그래도 가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어떤 휴식들이 필요해서지만, 휴식을 취하고 나오는진 모르겠다. 다이어리를 꺼내 메모를 하기도 하고 가방에서 읽던 책을 꺼내 펼치기도 하지만, 1시간 이상 버틴 적은 없다.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집중해 공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결국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지만, ... 재미없는 풍경 속으로 내 스스로 들어가는 꼴이다.


6. 

하지만 가끔 근사한 향기를 가진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가끔 삼성동에 갈 일이 있으면 에스프레사멘테 일리를 들리곤 한다. 길을 가다 무심코 들렸다는 듯 성의 없는 목소리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그러면 정말 근사한 커피가 나온다. 





7. 

쓸쓸한 일요일이다. 블로그에 글 하나 올리는 것도 이렇게 어렵다. 마음은 어수선하고 몸은 피곤하기만 하다. 나라는 엉망이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다들 알고 있을 텐데, 저러는 걸까. 아니면 정녕 모르는 걸까.


최근 들어 자주 주말에 나가 일하게 된다. 단기 목표는 있으나,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내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진다. 마음은 아직도 스무살 때처럼 정처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는데, 술 마실 친구들도 드물고 술 마시는 것도 부담스러운 노화가 시작되었다. 거참. ... 어느새 일요일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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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우울한 따뜻함으로 채워진 대기가 건조한 빛깔의 벽과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둔탁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반사하는 유리로 지어진 빌딩 사이로 내려앉고 있었다. 봄이라고 하기엔 아직 이른 날씨지만, 이름 없는 행인들의 표정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딱딱한 염려가 섭씨 10도를 넘나드는 대기의 온도로 녹아 사라질 거라 믿는 듯 보였다. 신도림에서 미팅을 끝내고 구로디지털단지로 왔다.

 

노트와 펜을 샀다. 이동 중에, 아무렇게나 들른 가게에서 노트와 펜을 살 때면, 어김없이 여행을 떠나기 전의 기형도가 떠오른다. 이젠 시간이 많이 흘러, ‘세월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법한 과거의 인물이 되어버렸고, 기형도가 파고다 극장에서 그의 조용한 생을 마감할 때보다 더 나이가 든 나에게, 세상은, 아직도 모르는 곳이다.

 

커피의 온기가 사라지는 동안, 나는 마르셀 프루스트를 읽었다. 그리고 언제나 프루스트는 저 멀리 있는 어떤 이다. 이젠 너무 익숙한 거리감이다.  

 

 

그는 아저씨의 회색 두 눈동자를, 블론드의 코밑 수염을 그리고 무릎, 깊고 포근한 재롱의 장소, 더 어렸을 때는 은둔처였던 장소. 그 당시는 성채(城砦)와 같이 가까이 할 수 없게 여겨지고 목마처럼 즐거움에 넘치고 또 사원(寺院)처럼 침해하기 어려웠던 그 무릎을 그는 사랑했다.

 

 

잠시 그는 그녀를 응시했다. 그는 그녀의 창백함에 매우 감동되었다. 또 그녀의 창백한 이마나 애수를 띤 눈길이지만, 십자가 뒤에 걸린 고뇌처럼 또는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의 보상할 수 없는 상실 뒤에 오는 통곡과 같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피곤한 두 눈동자가 나타내는 무한한 절망에 감동되었다.

 

 

- 사랑의 기쁨, 민희식 역, 정암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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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오후 네 시, 광화문 스타벅스.


소리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은 곳이다. 천정에 매달린 스피커의 쓰임새가 자못 궁금해지는 이 곳은 소리와 타인에게 무신경한 서울 사람들의 비정함으로 빼곡히 매워진 공간이기도 하다. 이 지독한 소음 속에서 어떤 생각이나 상상, 외부를 향한 사소한 관심마저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 곳은 차가운 원두커피를 마시기 위해, 8월 서울의 타는 듯한 열기를 피하기 위한 사소한 희망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단 1초라도 쉬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숨을 쉬지 않고 떠들 수 있다는 대단한 자신감과 용기로 충만한 사람들만이 들어올 수 있다. 심지어 이 곳에 앉아있는 내가 놀랍고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워 보이는 이 공간은, 시대의 몰락을 향해 가는, 우울한 대도시의 풍경을, 폭력적인 소음 속에서도 스산하게 담아낼 수 있는 놀라운 공간이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미쳐있음을 자각하지 못한 채, 무의미한 소음 속에서 자본주의의 끝없는 욕망의 바다를 부유하며 죽어가는 영혼을 내버려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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