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가 문득 지난 일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신비로왔다. 내가 사랑하는 예술처럼.
날 죽이지 마세요.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현대 조각은 공간을 새롭게 하면서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낯선 요리를 본다. 꼭 이국의 젊은 여인을 만나 사랑을 나눌 듯한 느낌이다. 포크로 조심스럽게 하나를 찍어 먹는다. 창 밖으로 어둠이 내리고 비가 내린다. 한 나라의 요리는 그 나라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내 천박한 허기는 낯선 요리를 깊게 음미할 기회를 여지없이 박탈해버린다. 마치 대부분의 소년들이 가진 거칠고 사나운 욕정이 순결한 사랑을 고백하는 소녀들에게 상처를 내듯이(아니면 그 반대든지).
낯선 요리에 반한다는 것은 이국의 대기와 대지 속에 온 몸의 감각을 맡기는 것과 같다. 독일 요리는 순박하다. 화려한 기교나 장식은 없다. 낯선 이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수줍은 듯 말을 건네다가, 상대의 호의를 느끼는 순간 편한 미소로 다가온다. 독일의 요리는 이런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 보였다.
하지만 입맛만큼 세상에 보수적인 것은 없다. 어느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서른세 살 이후 먹게 되는 낯선 음식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서른세 살 전에 먹었던 음식의 맛을 기억해두고 이를 계속 찾게 된다는 것. 외국 생활을 오래 했지만, 밥이나 김치, 고추장을 끊임없이 찾게 되는 것도 우리들의 보수적인 입 탓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여러 번 낯선 음식에 당황스러워한 경우가 있다. 이 점에서 호텔의 가지런한 아침식사만큼 부담 없는 것도 없다. 빵과 우유, 주스, 햄과 샐러드, 계란으로 이루어진 아침 식사는 지친 여행객에게 건조하지만 짧고 깊은 편안함을 선사한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메세 칼스루헤로 향하는 길. 밤새 내리는 비는 온데간데 없고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거리에 부서져 내렸다. 눈이 부셨다. 몇 천 명 정도 사는 듯 보이는 배드 해른알브는 우리의 작은 읍을 연상시켰다. 칼스루헤에서 배드 해른알브까지 전철로 약 40분 정도 걸린다. 이렇게 보면 그렇게 멀게 생각되지 않지만, 자동차로도 삼사십 분 이상 달려야 하는 꽤 떨어진 곳이다.
낮은 인구밀도가 부러웠다. 그래서 독일의 자연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삶은 윤택해보였다. 다만 사람들 성격들이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워, 다소 심심하거나 쓸쓸할 경우가 많은 듯 보이는 것을 제외한다면.
아트페어의 첫 날은 VIP 프리뷰이다. 아트페어는 그 나라나 그 지역의 사회 저명 인사나 미술 수집가, 언론매체 종사자 등 VIP로 볼 수 있는 일군의 사람들에게 먼저 프리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아트페어마다 프리뷰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 어느 아트페어의 경우에는 프리뷰 때 상당수의 작품이 팔려나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느 아트페어에서는 프리뷰 땐 살만한 작품을 점 찍어 놓고 며칠 지나 구입해 가는 경우도 있다. 어느 때에는 마지막 날 아트페어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진 않지만, 가장 신경쓰이는 날이 바로 첫날 프리뷰 때이다. 프리뷰 때 방문한 고객들 중 작품을 구입할 생각이 있는 일부는 아트페어 기간 중에 다시 들려 작품을 구입해 간다.
최근 들어 미술 비엔날레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아트페어의 위상이 높아지고 대한 미술계와 대중의 관심도 늘고 있다. 전자가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전시인데 반해, 후자는 갤러리들과 고객들을 위한 대규모 시장이다.
새로움으로 포장한 평론들, 일반인들에게는 어렵지만 현대 미술의 방향을 결정지을 지도 모르는 작품들, 현대적인 용어들로 작품들을 나누고 설치하고 설명하는 비평가들과 전시 기획자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예술가들. 관람객들은 작품들을 보기 위해 들어온다. 갤러리스트들도 있을 것이고 미술 잡지의 기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엔날레의 주인공은 예술가와 그의 작품이다.
메세 칼스루헤와 서울 삼성동 코엑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오직 아트페어를 보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흰 벽면에 작품이 걸리고 그 옆에는 제목, 작가이름, 크기, 재료, 제작연도, 그리고 가격이 적힌 메모가 있다. 갤러리스트들은 어느 관람객이 작품을 구입할 사람인지 유심히 살핀다. 콜렉터들은 손에 작은 수첩 하나를 들고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을 경우에는 갤러리 이름, 부스 번호, 그리고 작품 이름과 가격을 적는다. 적게는 몇 천 유로에서 많게는 몇 만 유로 이상 나가는 작품을 사기 위해서 그들의 들이는 노력은 매우 대단하다(미주1). 여기에서 예술가는 매우 드물게 노출된다. 한 점이라도 더 팔려는 갤러리스트들과 좋은 작품 하나를 고르려는 콜렉터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정쩡하고 불안한 표정의 예술가들로 구성된 것이 바로 아트페어다.
Thomas Schiela의 작품이다. 그의 홈페이지는 http://www.schiela.de/ 이다. 꽤 흥미로웠던 수채화였다. 한국에서도 극사실주의 작품이 유행이지만, 세계적으로도 추상 작품보다는 구상 작품들이 최근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재털이, 병뚜껑, 옷감, 과일 등이라면 외국 작가들은 일상의 풍경, 사람의 표정, 어떤 몸짓이라는 점이다. 어느 작가가 살아남느냐는 작품의 시작부터 이미 결정이 나있는 셈이다(그런데 가격도 보이는데, 지워야 되는 건가).
주1) 한국과는 달리 미술 작품에 대한 투자의 개념이 달라서, 유럽에서는 작품을 구입해 오래 보관한다. 젊은 청년이 구입한 작품은 그가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고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작품은 그 때 그 자리에 걸려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작품의 가격은 오랜 시간 후에 작품의 가격은 극단적으로 나누어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구입했던 때보다 오른 경우가 많고 어느 경우에는 문화재로 인정되기도 한다.
해마다 겨울이면 조용하고 은밀한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그것은 곱고 차가운 햇살 아래에서 다듬어지며, 창 밖의 불길한 어둠을 가르며 내리는 흰 눈으로 감추어진다. 가끔 깊고 무거운 막다른 골목길까지 걸어 들어오는 행인의 구두 밑에서 사각대는 눈 소리는 내 사각의 방이 가진 쓸쓸한 온기를 터질 듯 한 컷 부풀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기 전, 서울엔 눈이 내렸다. 그것이 내가 올해 본 마지막 눈이었다.
Painting과 Photo 작품들 뿐이라 그리 어렵지 않지만,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평행선을 벽면에 비추어주는 기계다. 저 기계, 건축 현장에서나 볼 만한 기계라고 생각했는데, 작품 설치 때 꽤 요긴하게 쓰인다.
곧바로 Art. Karlsruhe가 열리는 Messe Karlsruhe로 갔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중이었고, 유럽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이미 와서, 전날 항공화물로 도착한 작품들을 꺼내 놓고 작품을 전시장 벽에 설치하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작품을 설치하다가 미리 예약해놓은 호텔로 갔다. Karlsruhe 인근의 Bad Herrenalb에 있는 Treff Hotel이었다. 그런데 ‘Karlsruhe 인근’이라기 보다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우리는 Karlsruhe에서 나와, 숲 속으로 무려 30분이나 들어갔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낯선 브랜드의 GM 자동차에 붙은 네비게이션 뿐이었다. 그것도 딱딱한 독일식 억양의 아줌마 목소리의 영어로 설명하는.
서울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프랑크푸르트에서 다시 칼스루헤로, 칼스루헤에서 배드 헤른알브로, 나는 지쳐 금방 잠이 들었다. 시차도 피곤함에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새벽에 깨는 잠은 어쩔 수 없었다.
아침이 왔다. 낯선 풍경이었다. 독일의 숲이란 이런 모습이었구나. 침엽수로만 이루어진 유라시아 대륙 서쪽중간에 위치해 있는 숲은 겨울에서 봄을 향해가고 있었다. 간간히 새소리가 들렸고 어디선가 교회 종소리도 들리는 듯 했다. 집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 올랐다. 아침을 알리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메시지. 그러고 보니 호텔 조식 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나.
한국은 조금만 운전해 가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것이 산인데, 독일에선 그렇지 않았다. 낮은 언덕을 만나기도 어렵다. 이 곳이 난 어딘지 모른다. 베드 헤른알브에서 메세 칼스루헤로 가는 길 중간에 맞주친 마을이다.
칼스루헤 인근에 바덴바덴도 있고 베드 헤른알브가 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도 인근이다. '인근'이라는 표현이 좀 모호한 감이 없진 않지만. 프랑스, 스위스, 독일이 서로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2월 26일에 인천공항을 출발해 3월 5일에 돌아왔다. 그 사이 할머니께서 저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서울에 돌아오니, 그 사실이 주위를 떠나지 않으면서 날 아프게 했다. 부쩍 나이가 들어버린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말씀이 없어셨고 이미 창원에는 봄이 온 듯 따뜻하기만 했다.
독일 칼스루헤는 신기한 듯 조용하고 깨끗했다. 국제 아트 페어라고 했지만, 모든 자료들은 독일어로만 제공되었다. 의외로 영어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적었다. 역시 유럽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들었다. 방해받지 않는 사적인 공간이 있었고 사적 공간의 폐쇄성을 의식한 듯 독일인들은 대화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버마스의 이론은 나오게 되는 계기도 이러한 독일의 특수성에 기인한 듯했다. 독일인들은 친절했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에 비하면, 한국인들은 대부분 불친절하고 웃음이 없다.
특히 물가는 서울보다 상당한 수준으로 낮았으며, 생필품의 질도 우수했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찍어온 사진 정리만으로 몇 시간이 걸릴 것같다. 커피와 와인을 사왔다. 한국에서는 2만원은 줘야 살 수 있는 커피가 그 곳에서는 5천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프랑스 와인이 프랑스보다 더 싸다고 할 정도이니. 몇 달 정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들었다. 그러나 오래 있으면 분명 외로움을 심하게 느낄 수도...
마지막 날 하이델베르그 성에 갔다. 흥미로웠다. 최초엔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현재 볼 수 있는 건물들은 르네상스 양식이다. 2차 세계 대전 때 상당수의 건물들이 파괴되었으며, 이후 복원되었다고 한다.
오늘 오후 2시에 출국한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가 다시 이스탄불로 가는 여정이다. 이스탄불 공항 세관에 낼 서류들을 준비하고, 짐을 꾸렸다. 우습게도 해외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 때문에 해외에 처음 나가면, 계속 일 때문에 나가게 되는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하긴 내년에도 계속 일 때문에 나가게 될 예정이니.
이번 일을 준비하면서 영어가 조금 늘긴 했으나, 아직 간단한 생활 영어 수준이다. 가서 어떻게 설명은 할 것같은데, 행정적인 절차가 다소 걱정이긴 하다. 영문 보도 자료도 만들어야 하는데, 미처 챙기질 못했다. 의외로 할 일이 많아, 시간에 쫓겼다. 그 사이, 돈을 벌기 위해 원고 집필 때문에 더 바빴다. 또 감정적인 혼란 상태에도 여러 번 빠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스탄불에 가서도 원고 집필이 예정되어 있다. 납기일에 쫓기다 보니. ㅡ_ㅡ;)
Art Fair 참가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고, 참가할 수준의 작가가 있고, 참가 비용만 있으면 된다. 다행히 나만 Art Fair 참가 경험이 없지만, 준비하는 데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년에는 아마 나 혼자 준비해야할 것 같은데 말이다. Contemporary Istanbul 아트페어의 분위기에 대해선 도착해서 올리도록 하겠다. 다행히 인터넷이 되는 호텔로 예약을 했다.
(그런데 Google Map에서 확인해보니, 행사 장소와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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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회째를 맞는 Contemporary Istanbul Art Fair는 이슬람 경제/문화권의 국제도시이며, 비잔틴 문화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며 동양과 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Istanbul에서 열리는 신생 아트페어이다. 최근 Art Fair는 기존 4대 아트페어의 위상과 경쟁력이 다소 약화되면서, 각 지역별 Art Fair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에 Contemporary Istanbul은 2회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7~80여개의 Gallery가 참여하고 있으며, 유럽, 북미, 아시아 등 지역의 편중없이 참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Art Fair이다.
미술 시장은 크게 1차 시장 Gallery, 2차 시장 Art Fair, 3차 시장 Auction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Art Fair는 B2C의 측면과 B2B의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또한 미술의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Art Fair보다는 비엔날레를 중요하게 취급되었으나, 최근에는 Art Fair 주최측의 다양한 부대 행사와 프로그램 등으로 인해 미술의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기에 손색없다고 할 수 있다.
Contemporary Istanbul Art Fair는 터키 Istanbul Convention and Exhibition Center에서 열리며 행사는 11월 28일부터 12월 2일까지이다.
한국에서 참여하는 갤러리로는 한불문화교류협회 '내-안에'의 A&B Gallery, Misool Sidae AKA Seoul Gallery 등이다. A&B Gallery는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불문화교류협회 '내-안에'(Nez-A-Nez)의 전속 갤러리로서 최근까지도 서교동에 전시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내-안에'의 사정으로 인해 잠시 휴관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A&B Gallery는 매년 독일 칼스루헤 아트페어, 독일 퀼른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독일의 여러 갤러리에서 다양한 전시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이번 Contemporary Istanbul Art Fair에서 참가하는 작가로는 강창열, 장동문, 오태환, 김석중, 박해수, 박문관, 손광배, 권무형 등이다. 이 중 강창열, 장동문, 오태환, 김석중, 박해수는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박문관, 손광배, 권무형은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권무형은 최근 유럽에서 높은 평가와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