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20

로르까와 함께 5월 어느 오후

조심스럽게, 상냥한 오월의 바람이 녹색 이파리 끝에 닿자, 이미 무성해진 아카시아 잎들이 놀라며, 스치는 바람에게 지금 칠월이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반팔 차림의 행인은 영 어색하고 고민스러운 땀을 연신 손등으로 닦아내며, 건조한 거리를 배회하고, 길가의 주점은 테이블을 밖으로 꺼내며, 다가올 어지러운 마음의 밤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이야기했지만,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2012년 5월 어느 날, 그 누구도 듣지 않고 말만 했다. 말하는 위안이 지구를 뒤덮었다. 아스팔트 아래 아카시아 나무 뿌리가 바람에 이야기를 건네었지만, 땅 위와 아래는 서로 교통이 금지되었고, 학자들은 그것을 모더니티로 담론화시켰다. (이제서야 로르카의 시가 읽히다니... 1996년도에 산 시집인데..) 연 가 내 입맞..

조직에서의 언어의 중요성: 스티브 잡스의 탁월한 연설

제프리 페퍼의 (지식노마드, 2008)를 다 읽었다. 이 책에서 제프리 페퍼는, 사람들이 직접 드러내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주제 ‘권력Power’에 대해 흥미로운 시각과 통찰을 선사한다. 나 또한 '권력'이나 '정치'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책에게 소중한 독서 경험을 주었다. 권력의 경영 제프리 페퍼 저/배현 역 이 책에 대한 리뷰는 따로 올리기로 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예로 등장한 스티브 잡스Steve Jobs의 애플Apple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며칠 전 나는 페이스북 담벼락에 이렇게 적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1992년도에 출판된 제프리 페퍼의 책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자주 사례로 등장하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 1980년대 잡스의 창의성과 리더십은 제대..

폐허에 대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뒤에야 김경주라는 시인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하긴 대학 졸업하고 난 뒤, 직장생활을 하고 난 뒤, 시집을 샀던 적이 몇 번 되지 않았을 테니... 요즘 나오는 시인이나 소설가에겐 흥미를 잃은 지 오래... 그러다가 읽게 된 김경주. 아래 글은 얼마 전 휴간으로 들어간 브뤼트 마지막 호에 실렸다. 예전부터 한 번 블로그에 옮기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올린다. 이런 글 참 오래만이었다. 언어는 폐허 위에서 생겨난다. 언어의 폐허로부터 시는 태어난다. 시는 자신의 폐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는 폐허의 속살이다. 시는 언어와 폐허가 교미한 흔적이다. 시는 언어의 폐허를 채운다. 언어는 인간의 폐허를 망각하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가서 발화된다. 한 인간의 사랑이 ..

2011년의 어느 가을

거추장스러운 퇴근.길. 먼 길을 돌아 강남 교보문고에 들려, 노트를 사려고 했다. 몇 권의 빈 노트를 뒤적이다가 그냥 나왔다. 노트 한 권의 부담을 익히 아는 탓에, 또 다시 나를 궁지로 몰고 싶진 않았다. 토요일에는 비가 내렸고 일요일은 맑았다. 지난 주 세 번의 술자리가 있었고, 오랜만의 술자리는 내 육체를 바닥나게 했다. 늘 그렇듯이 회사에서의 내 일상은 스트레스와 갈등 한 복판에 서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고, 내가 느끼는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지만, 그럴 형편도 되지 못했다. (다만 지금 내 경험이 시간 흐른 후에 내 능력의 일부로 남길 바랄 뿐) 모든 이야기는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텍스트는 없고 컨텍스트만 있을 뿐이라고들 하지만, 결국엔 텍스트만 있고 컨텍스트..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이제이북스 이제 책을 구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도 잘 찾지 않는 책인지, 서고로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언어가 소리없이 죽어가는 현대 세계에 대한 경고장과도 같았다. "한 언어의 어휘는 세상을 이해하고 지역 생태계 내에서 생존하기 위해 한 문화가 이야기하고 분류하는 사물들의 목록이다." 그리고 이 목록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실은 언어의 죽음은 근대화(혹은 계몽)이라는 미명 아래 강제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죽음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고, 이 책은 종종 가슴 아픈 풍경을 담담하게 적어 나간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고, 그 일은 비생산적이고 경제적..

사라지는 언어, 사라지는 세계

이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과연 이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걸까? 그리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 인간은 맨 먼저 무엇을 할까?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우리 인간은 그 새로운 것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설명한다. 그러다가 그 설명하기에서 막히면 새로운 단어와 표현을 만들어 붙인다. 즉 이 세상은 우리의 언어와 같이 보이고 표현되고 구성되어 있다. 이 세계는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을 위시한 현대 철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가 보고 경험한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고 옮긴다. 딱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만큼만 옮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는 없는 세계이다. 종종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 가령 누군가가 오백..

블랑쇼와 레비나스를 지나는 문학, 또는 언어

세상 속에 자리할 수 없는 불가능성들이 존재하는 황야에서의 고독. 문학은 우리를 그러한 황야로 이끈다. 문학은 언제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한다. - 레비나스 한참 머뭇거렸다. 마치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이유와 내가 소설을 쓰고 싶은 이유를 담아낸 듯한 저 문장 앞에서.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사물들을 말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존재로 하여금 메아리가 울리는 근원적인 언어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일 게다. 사물들의 존재는 작품 속에 명명된 것이 아니라 말하여지는 것이며, 말들은 사물들의 부재를 가리킨다. - 레비나스 그렇다면 한국어 문학 중에 그런 문학이 있었던 걸까? 오늘 잠시 들른 서점에서 모리스 블랑쇼 선집이 나온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았다. 기분이 묘했다. 블랑쇼. 매혹적이..

철길 위의 평화스러운 침묵

잠시 철길 너머 맞은 산등성이를 바라 보았다. 낮게 내려온 흰 구름은 금방까지 내렸던 굵은 빗줄기를 알려주고 있었다. 창원에 내려갔다 왔다. 주말에 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로 올라오고 난 뒤, 제사라고 해서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토요일 아침에 내려갔다가 일요일 오후에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그러는 동안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나는 멈춰 있고, 주위의 모든 것들은 변하는 것 같다. 에고이스트여서 그런 걸까. 아내는 시댁 분위기에 한결 적응한 모습이었고, 어머니께선 며느리가 마음에 드시는 듯하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고 여동생 내외가 간밤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나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에 동참했다. 그 이야기 사이로 언어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아찔아찔..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메를로 퐁티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모리스 메를로 퐁티 지음, 김화자 옮김, 책세상 1. 1년 전의 메모를 꺼내 읽는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의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두 세 번 읽어야 할 책이었으나, 한 번 읽었고 읽은 것을 정리하다가 그만 두었다. 결국 그 정리는 포기하고 읽은 지 1년 만에 간단하게 읽은 바를 적어본다. 메를로 퐁티는 프랑스의 현대철학자로, 현상학에 있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였다. 특히 그의 예술론은 많은 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 영향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아래는 그 메모의 일부분이다. 내가 쓴 것보다 인용한 것이 많다. 원래는 더 많았다. 퐁티의 글이 짧고 압축된 것이라, 어설픈 리뷰도, 상세한 설명도 어려웠다. 2. 우리가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본..

Beautiful day

They were silent for a while. "Beautiful day," she then said through a sigh 숨쉬기 조차 힘든, 전날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채, 더위와 땀, 거친 숨소리와 낯선 화장품 향과 향수 내음이 실내 에어콘 소리와 뒤범벅이 된 지하철 2호선 객차 안에서 서서, 소설을 읽다가 한참을 중얼거렸다. 내 기묘한 일상이 너무 어색한 요즘이다.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환상 소설의 한 토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낯선 언어의 쓸쓸한 반어는 내 시선에서 한참을 머문 후, 다음 페이지로 향했다.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어느 수요일의 정오는 슬프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