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29

Georgia on my mind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입술이 건조해졌다. 1층 편의점에서 입술 보호제를 사왔다. 사무실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가 오래된 mp3를 Play시켰다. 흘러나오는 Georgia on my mind~. 내 나이 드는 건 모르고, 남 나이 드는 건 안다. 내 잘못은 모르고 타인의 잘못은 안다. 그래서 후설은 이성의 지향성을 이야기했던 것일까. 정신없이 1월 보내고 나자, 이런 저런 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이기 시작한다. 어김없이 월요일은 야근이고~..

2011년, 화요일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난 다음, 잠시 휴식을 취해보지만, 기대보다 늘, 언제나 빠르게 오후 1시가 오고, 오후 2시가 온다. 이 회사를 다닌 지도 벌써 2년이 넘어서고 있다. 제대로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했으나, 내 뜻대로 되지도 않고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 내 뜻대로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옳거나 제대로 된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잠시 멈춰서서 생각하고 타인을 고려하고 이후 이어질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나이가 들수록 느려지고 조심스러워지고 걱정이 많아진다. 사무실에 커피를 내려 마시며, 이제는 사라진 에어로시스템의 작은 미니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다. 이젠 제 수명을 다한 듯한 캔우드 리시버 앰프를 사무실에다 옮겨 놓았는데, 언제 한 번 제대로 ..

늦은 가을과 이른 겨울 사이

지난 주말, 회사 워크샵을 강화군 석모도로 다녀왔다. 이 회사에 다닌 지도 벌써 2년이 꽉 채우고 있다. 그 동안 많은 도전과 실패, 혹은 작고 어정쩡한 성공을 경험하면서, 그 경험이 작은 회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니기 시작한 곳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답보다는 물음표가 더 많다는 건, 경험이 많아지고 나이가 든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완벽한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너무 욕심이 많은 것일까. 늦가을 햇살이 갯벌을 숨긴 바다 물결 위로 부서졌다. 사소하게 눈이 부셨다. 차를 싣고 짧은 거리의 바다를 건너는 배 뒤로 갈매기들이 쫓았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에 입맛이 길들여진 갈매기는 이미 야생의 생명이 아니었다. 석모도에 도착한 지..

어느 사적인 일요일

안개가 자욱하게 시야를 가린다. 겨우 일어났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발바닥이 아팠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주문한, 드립용으로 잘게 부서진 브라질 산토스 원두로 드립 커피를 내린다. 물 끓는 소리, 위로 향하는 수증기, 떨리는 손, 돌보는 이 없는 듯 무심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뒤엉켜 어느 일요일 아침을 구성하였다. 요즘 힘겹게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 본래 ‘박탈된’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사적인’이라는 용어는 공론 영역의 이러한 다양한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완전히 사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선 진정한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박탈되었음을 의미한다. 타인이 보고 들음으로써 생기는 현실성의 박탈, 공동의 사물세계의 중재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거나 분리됨으로써 형성되는 타인과의..

어수선한 세상 살이

2010년의 가을이 오자, 사무실 이사를 했다. 다행이다. 직장생활에 뭔가 변화가 필요했고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없진 않지만, 좀 더 넓은 사무실로 옮겼다. 강남구 삼성2동. 강남구청역에서 내려 높은 아파트들을 지나 근사한 빌라촌을 지나 있는 어느 흰 빌딩. 아침 햇살이 부서지는 10월 초의 어느 날. 몇 해 전 우리를 가슴 아프게 했던 텔런트 고 장자연의 소속사가 있던 건물 근처다. 그 건물 앞을 지나칠 때마다 사람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 그리고 체계에 갇힌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할 수, 혹은 치유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결국엔 세월이 약이라고들 이야기하겠지. 안 좋은 일이나 사건이 지나고 난 다음, 사람들은 곧잘 세월이 약이라고들 하지. 그런데 세월이 약일까. ..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 이유선 지음/라티오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 이유선 지음, 라티오 '아이러니스트의 사적인 진리'는 참 좋은 책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철학에 대한 아무런 깊이도 통찰도 가지지 못한 얼치기 문학평론가들이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를 사용하며 적어대는 문학 평론보다 백 배는 더 나은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자신의 삶 속에서 철학과 문학을 서로 엇대어 구조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글들은 설득력을 가지면서 소개되는 문학작품의 맛을 살리고 있다. 서로가 모두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현실화될 때, 여기에서 관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용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오고, 관용은 같이 살기(공존)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관용이 이성에서 나왔다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어. 심지어 사랑마저도.

하루하루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지난 주 운동하다가 무리한 것인지, 아니면 몇 가지 일들로 긴장한 건지, 허리 쪽에 근육통이 생겼는데, 이게 목까지 올라와 며칠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그랬으니, 이번 주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육체를 거느리고 잘 산 셈인가. 오늘이 되어서야 몸이 제대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출근길, 텅 빈 집에 남겨질 만 여 권의 책들과 천 여장의 음반들, 동양난, 서양난 화분들과 아직 이름이 없는 금붕어 한 마리에 대해 생각했다. 참 부질없는 것에 나는 이토록 목을 매는 것일까. 가령, ‘사랑’같은 것 아직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불편하다. 주변 몇 명이 같이 책 읽자고 하는 바람에 시작하는 독서 모임이지만, 역시 뭔가를 제대로 하기란 어렵다. 기대한 ..

아슬아슬하게

새벽 2시가 지나서야 사무실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축축하게 처진 내 육체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피로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집에 도착해 바로 이부자리를 펴 누워, 종일 앞을 향하던 눈은 어둠 속에서 침묵을 배우고 내 영혼은 슬픈 상상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했다. 늘 그렇듯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고 몇 번을 잠에서 깼는지 모른다. 여러 번 뒤척이다 보니, 어느 새 새벽이었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육체와 영혼의 문제를 떠나, 마치 미로와 같은 우주 한 복판에 혼자 멍하게 앉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과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를 번갈아 들으며 밀린 세탁을 했고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도나텔로와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 도판을 보았다. 실은 회사 일도 했다. 딱딱하고 건조하면서 건강..

봄, Spring

어쩌다 보니, 내 마음은 아무도 찾지 않은, 어두운 해변가로 나와 있었다. 행복했다고 여겨지던 추억은 이미 시든 낙엽이 되어 부서져버렸고 미래를 기약한 새로운 기억은 만들어지지 않은 채, 파도 소리만 요란했다. 텅~ 비워져 있었지만, 채울 것이 없었다. 저 끝없는 우주에는. 죽지 않기 위해 죽은 자의 노래를 듣는다. 오랜만에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은 언어를 지나 사랑에 가 닿았다. 쓸쓸한 사랑에. 세상을 살만큼 살았다고 여기고 있지만, 막상 표피가 두꺼워진 것 이외에 달라진 게 없었다. 비워져 가는 술잔, 늘어나는 술병 사이로 언어는 가치없이 뚝뚝 부서져 술집 나무 바닥에 가닿아 사라졌다. 사라지는 모습이 너무 슬펐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왜 사람들이 낯선 죽음을 택하는지 이해할 수도 ..